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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잔을 올려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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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 대학의 교수였던 미술학자 파노프스키는 나치가 나치의 이상대로 학생들을 가르칠 것을 강제하자 미국으로 이민을 했다. 그가 가진 유럽 중세에 대한 사색 하나.
"중세는 과거의 유산을 받아들이고 연구하거나 새로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나간다. 중세는 고전 예술작품을 베끼거나, 아리스토텔레스나 오비드를 그들이 작업했던 동시대인처럼 그대로 사용한다. 고고학적이거나 문헌학적이거나 비판적인 관점, 다시 말하자면 역사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 그는 아마도 중세시대 최고의 악습을 이어나가던 나치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인간의 생물학적인 조건, 그러니까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생물학적 조건에 모든 가치를 부여하는 어떤 비이성을 보지는 않았을까? 그건 중세의 조건이지 현대의 조건은 아니었을 테니까. 하지만 어쩌면 지금도 우리는 중세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가장 현대적이라는 세계의 수많은 도시 안에 섬처럼 떠도는 작은 민족그룹들... --- p. 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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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화주의자였다. 68세대의 일원이기도 했던 그는 녹색당 일에 평생을 바쳤다. 평생 돈을 버느라 시간을 소비한 적이 없다. 많은 68세대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는 소위 '대안적인 삶'을 살았다. 가족들은 현실적으로 무능한 그를 떠났다. 그들의 동료인 녹색당 사람들이 정권을 잡자 그는 녹색당에서 나왔다. 그리고 68세대들이 골방에 앉아 만들던 작은 소식지를, 지금은 잊혀져 아무도 만들지 않는 그 소식지를 다시 만들었다. 낮에는 공사장에 가서 일을 했다. 그것으로 그는 빵을 벌었다. 아니 빵과 함께 담배도 벌었다. 그는 골초였다. 그러던 그가 올해 초 담배를 끊었다. 아주 단방에. 올해부터 담배세가 전쟁을 협조하는 데 쓰이기 때문이었다.
--- p. 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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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어를 구워 산딸기술을 파는 집이 절 아래에 있었다. 우리는 그곳으로 가서 절 구경도 하고 장어도 좀 먹고 술도 좀 마셨다. 산딸기술은 슬픈 연붉은 빛을 띠고 있었고 향은 아찔해서 먼먼 시간이 아무리 휘돌아가도 그 끝은 영영 잊혀지지 않을 듯했다. 십 년도 넘은 일. 그때, 지금은 뿔뿔이 어디론가 헤어진 사람들이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가끔 혼자 앉아서 고향 갔다 온 누군가가 가져다준 매실술을 마셨다. 술도 술이지만 향에 실려오는 전설 같은 그날 그 절집, 그리고 온힘을 다하여 퍼덕이던 그때까지도 살아 있던 장어의 검고 진득한 피부...... 산딸기술에 씹히던 기름 많은 장어의 살 같은 그런 기억이 하나둘 떠오른다. 마치 마음이 어둑한 등불을 켜고 있는 것 같았다. --- pp. 68∼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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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란 그러나 가난한 음식은 아닙니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그러나 흥이 많은 이들이 그런 음식을 기꺼워하고 먹게 마련이지요. 이를테면 가진 것은 없어도 산천경계 좋은 풍광에 잘 취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언젠가 마포를 걷다가 노천에 연탄화로를 내놓고 석쇠에다 돼지껍질을 구우며 소주를 마시는 이들을 보았습니다. 마음에 맺힌 것은 많으나 걸리는 것이 많아 자신의 부아를 쉽게 내놓지 못하는 검게 그을은 분들이 오종오종 마주 앉아 있었습니다. 불을 켠 자동차가 지나가면서 뭐라뭐라 구시렁거렸습니다. "환경미화 좀 해!!" 검게 그을은 분들은 듣는 둥 마는 둥 막 지기 시작하는 노을을 느껍게 바라보았습니다. 돼지껍질이 지글지글 익어가는 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급기야는 나즈막하게 노래를 흥얼거리는 분도 있었습니다.
"보옴이이며는 사과아꽃이 하아야얗게 피이어나아고 가을엔 황그음이이삭 무울결치이느은 고옷...... 아 아, 내에 고오햐앙......" 나즈막하게 익어가는 돼지껍질에 나즈막하게 입혀 듣던 노래. 가만히 발걸음을 멈추고 몰래 엿듣고 있는 것을 들킬세라 괜히 딴 곳을 바라보는 척하며 그 노래를 들었더랬습니다. --- pp. 38∼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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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고 난 뒤 한동안 나는 마당에다 꽃이나 약초나 채소들을 심는 데 열중했다. 꽃도 꽃이지만 나는 우리나라 채소들을 심어서 먹고 싶었다. 교포 아주머니에게서 얻은 미나리와 깻잎, 고추와 갓을 나는 마당 한 귀퉁이에다가 심었다. 기다렸다. 갓에서 싹이 나오고 깻잎이 자라고 고추에 작은 흰 꽃망울이 달리기 시작할 무렵, 우박이 내렸다. 갓김치에다 깻잎 장아찌에다가 고춧잎 무침을 먹어보리라고 기대에 잔뜩 부풀어올랐던 나는 우박이 내리고 난 뒤 마당 귀퉁이에 서서 울었다. 울화가 치밀었다. 약이 올랐다. 모든 게 다 꿈이었다. 그렇게 그런 것들이 먹고 싶으면 그곳으로 가면 되지 않는가. 이곳에서 사는 게 다 꿈이었고, 그곳으로 가는 것도 다 꿈이었다. 붙잡힌 영혼이여, 몸이 무거운가, 왜 이곳에서 그곳으로 선뜻 움직이지 못하는가.
--- p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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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 낯선 유럽땅에서, 고고학이라는 역시 낯선 공부를 하고 있는 시인 허수경이 길지 않은 편지 한 통을 보내왔습니다. 한국을 떠난 지 십 년, 세번째 시집이 나온 지도 어느새 이 년, 그간의 독일생활이 점점 궁금해지고 있는 이즈음, 그의 편지는 더욱 반갑습니다. 한 장 한 장 글을 넘기다보면 그 동안의 시간과 거리를 뛰어넘고 어느새 시인은 옆자리에 다가와 앉습니다.
멀리 있어서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그간의 자신을 이제 시인은 말합니다. 만일 내가 서울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이 많은 이야기들을 나는 친구들에게 했을 것이다. 경숙에게 인숙 언니에게 조은에게 경미 언니에게, 이제하 선생님에게 김사인 선배에게 이시영 선생님에게 고향친구들에게 어머니에게 언니에게…… 함께 말을 나눌 사람이 없던 나날 동안, 그러니까, 내가 '이름 없는 나날'이라고 부르는 이 나날 동안 나는 혼자서 먼먼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서울에서 살았던 나날 동안 외로운 저녁이면 함께 만나서 밥을 먹고 깔깔거리고 걱정 나누고, 했던 서울 사는 육 년 동안 만났던 그이들. 그이들이 있어서 좋았던 그 저녁을 위하여, 그 저녁을 위하여, 나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잔을 올려야 하리라.--본문에서 이 짧은 산문집은 그 '이름 없는 나날'의 기록입니다. 숨겨두었던 그 일기를 훔쳐보다보면, 가만가만, 조근조근 말하는 시인의 음성이 귓가를 간질이는 듯합니다. 변두리 조그만 찻집, 몸을 조금만 앞으로 숙여도 서로 코가 닿을 것 같은 그런 조그만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차 한 잔을 마주하고 앉아, 소곤소곤 피곤하지 않은 수다를 나누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 안에는 오래된 기억이 있고, 생활 속의 크고 작은 깨달음들이 있습니다. 벚꽃 날리는 들판, 양은주전자에 받아온 막걸리 향에 취한 대학 시절 시인의 모습이 보이고, 우울한 낯빛에 작은 키의 시인이 누군가에게 혀를 내밀며 '메롱'을 하는 모습이 겹쳐집니다. 다시 그 위에 어딘지 짐작도 안 되는 어느 사막 한가운데서 모래먼지를 뒤집어쓴 채 땅을 파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잠깐은 킥킥거리고, 함께 짧은 한숨을 토해내고, 또 잠시 깊은 침묵을 나누고…… 그렇게 밤새 수다를 나누고 나면 가슴 한켠이 뻑뻑해옵니다. 킥킥, 히힛, 웃음 뒤엔 알 수 없는 물기가 만져집니다. 하지만 왠지 휴, 긴 한숨 뒤로 마음이 놓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쓰며 시인 역시 그렇게 마음이 흔들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또 혼자 조용히 히죽거려도 보았을까요. 먼 곳에 있어서겠지요. 그런 시인의 글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독일에 있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한잔 하자며 탑골로 나오라던 선배의 말에 시인은 마음이 무너지는 듯했다고 합니다. 선뜻 이곳으로 올 수 없는 곳에 그는 있었으니까요. 그런데도 책을 덮은 오후, 어둑어둑 어둠이 내리는 버스 정거장에 서서 그를 불러내고 싶습니다. 불러내어 그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 기울이고 싶습니다. 잠시 투정을 부려보고 싶습니다. 김혜순 시인의 말처럼 그는 가만히 그런 우리를 품어줄 듯싶습니다. 허수경의 산문 문장은 이곳에서도 살 수 없고, 저곳에서도 살 수 없는 사람이 막막한 사막에서 오히려 집에 있는 사람에게 그 글씨들을 한 땀 한 땀 읽어주듯이 그렇게 박혀온다. 더 고독한 사람이 덜 고독한 사람을 품에 안아주듯이 말이다. 그의 문장은 고즈넉하고, 지는 햇빛이 마당을 휘돌아 서향으로 앉은 집 마루로 들 듯이 읽는 이의 혀를 감싸고 들어온다. 김혜순(시인, 문학평론가) 시인의 이 짧은 산문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책장을 넘기면서 머뭇거렸던 만큼, 책을 덮고 난 후에도 그 여운은 쉽게 가시질 않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것은 결국 시를 쓰기 위한 것이라고 했던 시인의 말처럼, 그가 먼 곳에서 "빛으로 불러"오고 있는 것은 그저 오래된 문자라 아니라, 그 자신의 시와, 그 자신의 말과 문학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세상에 혼자뿐인 듯한 늦은 저녁, 천천히, 한 자 한 자, 시인의 편지를 펼쳐볼 것을 권합니다. 책을 덮고 나면 문득 그의 옛 다짐이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미안하다, 나의 옛 시간이여. 나는 너를 이제 버린다. 나는 차갑게 세계를 건너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