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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서문 생명을 살리는 기도를 붙들라
저자 서문 낙타 무릎의 전도사가 되기를 바라며 1부 초대교회의 야성을 회복하라 1장 잃었던 야성을 회복하라 헛된 몸부림 | 진정한 부흥이란 | 야성을 잃어버린 한국 교회 초대교회의 야성을 회복하라 | 병든 믿음, 병든 능력 2장 침체의 장벽을 깨뜨리라 부흥의 일꾼을 키우라 | 상실감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라 작은 승리의 체험이 중요하다 |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우리의 대적은 골리앗이다 | 신앙의 컬러를 바꾸라 | ‘기쁨’의 신앙과 ‘피곤’의 신앙 3장 영혼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라 울보 목사 | 무모한 일에 강한 청년들 | 성도의 60%를 선교사로 선교를 위해 인재를 양성하라 | 정책 있는 선교가 필요하다 칭기즈칸 전략이 주는 선교적 시사점 4장 청년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복음에 미친 사람들 | 사람에게 투자하라 | 청년 목회를 위한 제안 2부 기도하는 무릎으로 부흥을 일으키라 5장 지성과 영성의 균형을 잡으라 지성과 영성의 균형을 이루라 | 체험과 교리의 균형을 이루라 경건주의자들의 약점 | 신학 없는 신앙은 모래성에 불과하다 6장 수용소 목회를 꿈의 목회로 바꾸라 꿈을 이야기하는 설교 | 현장으로 나가는 교회 우리의 소망 예수 그리스도 | 비전이 우리의 재산이다 7장 예수의 이름으로 선을 행하라 교회 체질을 바꾼 설교 | 참된 영적 각성 | 교회의 사명을 회복하라 8장 낙타 무릎이 교회를 살린다 책상신학과 현장신학 | 말씀에 불을 붙이라 | 기도의 능력을 회복하라 9장 약함의 철학을 배우라 세상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 | 약할 때 강한 자의 체험 왜 약할 때 더 강한가 | 약할 때 사역을 감당하라 저자 후기 청년들로부터 부흥을 회복하리라 |
田炳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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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될 때 우리의 영성은 꿈틀거리며 살아난다. 바로 이것이 성도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옛날에 어미 사자가 새끼 사자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그때 포수가 총으로 어미 사자를 죽이고 젖을 빨던 새끼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때부터 새끼 사자는 양의 젖을 먹으며 자라났다. 어느덧 그 사자는 양같이 순해졌다. 몇 년이 지난 뒤 어느 날 아빠 사자가 그 새끼를 찾아와 무서운 목소리로 ‘사자후’를 발했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들은 새끼 사자의 잠자던 본능이 눈뜨기 시작했다. 자기도 아빠 사자와 같이 사자후를 발한 뒤 담을 훌쩍 뛰어넘어 야생으로 돌아갔다. 호세아서 11장 10절을 보면, “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은 사자이시며, 여호와가 사자후를 발하시면 그의 자녀들인 성도가 모여 든다는 뜻이다. 나는 이 말씀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목사의 사명이 무엇인가? 사자후를 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길들여진 많은 영혼에게 우리의 신분은 ‘더러운 것을 뒤지는 똥개’가 아니라 ‘젊은 사자 새끼’라는 것을 깨우치는 것이다. 한국 교회의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사자후를 듣고 깨어나는 축복이 임하기를 바란다. 사자의 야성이 되살아나면 마귀는 우리의 밥이다. --- 본문「잃었던 야성을 회복하라」 중에서 주변이 냉랭하고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가? 먼저 자신이 몸을 불사르는 자세로 기도에 헌신하면 된다. 그러면 내 속에 있는 뜨거움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될 것이고, 하나님이 기도의 동역자들을 모아 주실 것이다.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성도에게 어떤 목표를 제시할 때 항상 비장감이 있다. 왜? 이 목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상황이면 내가 목숨걸고 기도하겠다는 결의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생명을 건 기도 앞에서 뚫지 못할 장벽은 없다. 기도로 장벽을 뚫는 ‘영적 불도저’가 되기를 기도한다. --- 본문「침체의 장벽을 깨뜨리라」 중에서 우리는 예수의 흔적을 갖기 원했다.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휴머니즘의 손이 될까 아니면 정연한 논리를 가지고 지성인들을 굴복시키는, 칼보다 더 강하다고 하는 펜을 잡을까 고심했다. 그러나 우리는 밤낮으로 무릎 꿇고 기도하다가 무릎이 낙타 무릎같이 된 사도 야고보의 그 무릎을 닮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나는 이들과 함께 ‘낙타 무릎’이 될 때까지 기도했다. ‘낙타 무릎’의 자세로 마귀와 전투했다. ‘낙타 무릎’만이 이 땅에 부흥을 심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삼일교회는 ‘은과 금’이 없는 교회다. 세상 시각으로 볼 때 내세울 것이 전혀 없는 교회다. 그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 외에는 의지할 것이 없었다. 이것이 세상 시각에서는 가난함이었으나, 영적 시각에서는 축복이었다. 우리에게 기도는 무기였다. 우리는 기도를 액세서리로 사용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았다. 매일의 영적 싸움에서 기도 없이는 단 1분도 살아남을 수 없는 전투의 연속이었다. 기도의 전투를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모습을 보고 놀랐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 부유한 모습으로 변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마귀가 우리 교회만큼 두려워 떠는 존재가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우리의 기도가 닿는 곳마다 영혼들이 살아나는 일이 벌어졌고, 우리가 기도하는 일마다 현실로 드러났다. 우리의 기도 사역이 있는 곳마다 ‘회심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낙타 무릎이 되기를 원했던 잡초들의 승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의 모든 성도가 낙타 무릎의 자리로 나아오기만 한다면, 우리의 교회는 다시금 부흥을 체험할 것이다. 나는 이것을 나누기를 원한다. --- 「저자 서문 중에서」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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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으로 인생의 사막을 건너라.”
생명을 건 기도 앞에서 뚫지 못할 장벽은 없다! 지금은 기도할 때다!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전병욱 목사의 사자후! 낙타 무릎... 그것은 기도의 무릎이다. 그것은 승리의 비결이다. 뿌리에서 행동이 나온다. 『낙타무릎』은 삼일교회의 뿌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낙타무릎』이 쓰여질 당시 삼일교회는 “은과 금이 없는 교회”였다. 그래서 붙들 수 있는 유일한 끈인 ‘기도의 끈’을 붙들었다. 없는 것이 오히려 본질을 강하게 붙드는 계기가 되었다. 나무가 성장하면 뿌리가 보이지 않는다. 나무의 무성함의 원인은 뿌리의 건강함에 있다. 예전에 잘한 것 때문에 더 배우지 않아서 성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잘한 것으로 오늘 배울 수 없다. 보다 나은 부분으로 나가야 한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나가야 한다. 초등학교에서 잘한 것을 자꾸 회상하고, 자랑하면 답보하게 되어 있다. 그럴 때 ‘자랑이 많다. 그릇이 작다. 또는 자라지 않는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교회는 생명이기에 성장이 중단될 수 없다. 머무를 수 없다. 자랑할 수 없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망한다. 돈으로 옷, 편안함, 먹을 것, 권세를 살 수 있다. 성도는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보다 더 귀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성도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추구한다. (… 중략) 아무것도 안하면, 제일 편하다. 일 안 하면, 신경 쓸 것도 없다. 예민할 것도 없다. 다툴 것도 없다. 그러나 안 하던 봉사, 안 하던 기도, 안 하던 성경공부, 안 하던 새벽기도를 하면 문제가 많아진다. 그것은 더 크게 쓰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어떻게 살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기도와 능력과 사랑에 집중해야 한다. 돈이 없어서 못한다고 하면, 돈을 주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생명에 집중한다. 그래야 기도한다. 돈을 너무 잘 대주면, 돈으로 일하려고 한다. 결국 능력도, 사랑도 다 잃어버리는 것이다. 『낙타무릎』은 돈 없어서 일하지 못한다고 외칠 때, 돈 없어도 기도만을 붙들면 된다는 잡초 믿음으로 뛰었던 이야기이다. 삼일교회의 현재의 뿌리가 되는 이야기이다. 너무 많아서 생명을 잃을 때가 많다. 뿌리가 건강해야 전체가 건강하다. 『낙타무릎』 개정판은 삼일교회 성도들에게는 교회의 뿌리를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일반 성도들에게는 무엇으로 출발해야 할지를 보여 주는 자극이 될 것이다. 한 사역자의 젊은 날의 무례함, 호기, 무모함, 불완전함을 볼 수 있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