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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율리우스 카이사르 연보
머리말
서문

1st Year(BC 58년) 42세
헬베티 족의 도발
게르만 족과의 첫 대결

2nd Year(BC 57년) 43세
반(反) 로마 갈리아 연합군

3rd Year(BC 56년) 44세
알프스 통로 개척
바다의 강자, 베네티와의 싸움
아퀴타니아 정벌

4th Year(BC 55년) 45세
게르만 족의 간교한 계략
라인 강을 건너다
브리튼 섬 정벌

5th Year(BC 54년) 46세
트레비리 족의 작은 반란
제2차 브리튼 정벌
암비오릭스의 반란
반란군에 가담한 아두아투키와 네르비 족
또다시 이어지는 반란

6th Year(BC 53년) 47세
게르만 족 용병
암비오릭스와의 전쟁
다시 라인 강을 건너다
갈리아의 풍습
게르만의 풍습
죽음을 모면한 암비오릭스
시감브리 족의 도발

7th Year(BC 52년) 48세
갈리아의 새로운 반란, 베르킨게토릭스
벨라우노두눔과 게나붐, 노비오노둠 정복
베르킨게토릭스의 초토화 전략
아바리쿰 정복
하이두이 족의 분란과 카이사르의 중재
하이두이 족의 배신
게르고비아 공방
대반전, 로마의 승리가 시작되다
베르킨게토릭스의 최후의 결단
알레시아 전투

8th Year(BC 51년) 49세
서문
갈리아 평정
반(反) 카이사르 세력

저자 소개 1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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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ius Julius Caesar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의 군인·정치가. BC 100년 7월 13일에 태어났다. 7월을 가리키는 영어의 July는 카이사르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민중파인 마리우스와 인척 관계로 원로원파인 술라가 권력을 잡고 있을 때는 민중파인 아내와의 이혼 명령을 거부하고 여러 곳을 떠돌며 숨어 지냈다. BC 78년 술라가 죽은 뒤 로마로 귀환, 정치생활을 시작하였으며 BC 69년에는 재무관, BC 65년 안찰관(按察官)을 거쳐 BC 63년 종교상 최고직인 종신 대신관이 되었다. BC 60년에는 폼페이우스 및 크라수스와 동맹을 맺고 제1차 삼두정치를 시작하였다. BC 58년∼BC 50년, 속주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의 군인·정치가. BC 100년 7월 13일에 태어났다. 7월을 가리키는 영어의 July는 카이사르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민중파인 마리우스와 인척 관계로 원로원파인 술라가 권력을 잡고 있을 때는 민중파인 아내와의 이혼 명령을 거부하고 여러 곳을 떠돌며 숨어 지냈다. BC 78년 술라가 죽은 뒤 로마로 귀환, 정치생활을 시작하였으며 BC 69년에는 재무관, BC 65년 안찰관(按察官)을 거쳐 BC 63년 종교상 최고직인 종신 대신관이 되었다. BC 60년에는 폼페이우스 및 크라수스와 동맹을 맺고 제1차 삼두정치를 시작하였다. BC 58년∼BC 50년, 속주 갈리아의 장관으로서 갈리아 전쟁을 수행, 브리튼과 게르만 족의 영지까지 아우르는 광대한 영토를 대부분 평정하였다.

BC 53년 삼두체제의 한 중심인 크라수스가 동방원정에서 전사함으로써 원로원 보수파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으며 BC 51년 원로원이 카이사르의 로마 소환과 군대해산을 결의하자, BC 49년 1월에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유명한 말과 함께 갈리아와 이탈리아 국경인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함으로써 내전을 시작하였다. BC 45년 3월에는 폼페이우스의 아들까지 진압함으로써 마침내 5년간의 내전을 종결시켰다. BC 46년에 10년 임기의 독재관이 되었고, 곧이어 BC 44년에는 종신 독재관이 되었다. 율리우스력을 제정하고 노예에게 관직을 허용함으로써 로마 시민권을 대폭 확대하는 한편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여 로마를 정비하는 등 개혁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지나친 권력의 집중을 견제하고자 했던 원로원 공화파와 공화정 지지자들에 의해 BC 44년 원로원에서 암살되었다. 그의 나이 56세 때였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다른 상품

역자 : 엄미희
명지대학교에서 영어 영문학을 전공하였고, 방송 구성 작가로 『자연으로 돌아간 반달가슴곰』, 『기아체험 24시』, 『물은 생명이다』 등 다양한 다큐멘터리와 교양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였다. 그 후 동 대학원에서 영어 교육을 전공하고 캐나다의Greaystone College of Business and Technology에서 Tesol을 공부했다. 현재는다양한 영문학 서적의 번역 활동과 더불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3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12쪽 | 592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92729420

출판사 리뷰

*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 전쟁 기술에 관한 한 최고의 교과서이자 라틴 문학의 진수.

옮긴이의 글


기원전 1백 년경, 유서 깊은 로마의 귀족 가문인 율리우스 가문의 카이사르 집안에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귀족 가문이라고는 하지만 역대 집정관을 겨우 세 명밖에 배출하지 못한 그저 그런 집안의 아버지와, 집정관을 수차례 배출한 역시 유서 깊은 집안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잘 자라났다. 그러나 기원전 85년, 아이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열여섯이라는 어린 나이로 갑자기 가장이 되고 만다. 집안을 꾸려나가고 결혼을 하고, 또 결혼으로 인해 정적들의 표적이 되고, 그러다 결국 고향이자 조국인 로마를 떠나야만 했다.
그러나 아이는 포기를 몰랐다. 도망치듯 로마를 떠나고 다시 돌아오기를 몇 번이나 하였지만 그는 마침내 로마를, 아니 유럽 전역을 조국 로마의 역사 속으로 끌어들이는 최고의 군인이자 최고의 정치가가 된다. 그가 바로 로마의 영토를 확장시키고 내치를 다지는 등 로마 제국의 발판을 만든, 그래서 로마 제국의 사실상의 창업 군주로 불리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다.
이 책 『갈리아 전기』는 바로 41세의 카이사르가 집정관으로 선출된 후 6개의 군단을 이끌고 갈리아 원정을 떠나 승전보를 보내오기 시작한 때부터 기원전 52년의 알레시아 공방전까지의 기록이다. 이 기간을 통해 갈리아는 거의 완벽하게 켈트 족적인 전통과 단절하고 로마화 되었고, 이후 5백 년 동안 로마에 반기를 들지 않았다. 즉, 카이사르는 7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갈리아 전역을 장악하고 로마의 속주로 만든 전 과정을 『갈리아 전기』라는 걸작으로 세상에 남긴 것이다.
카이사르에게 『갈리아 전기』는 후세의 역사가에게 자료를 제공할 겸 자기에 대한 여러 가지 비난에 대하여 변명하고, 동시에 정계 진출에 대비한 자기선전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라고 치부하기에 그의 서술은 참으로 간결·명석하고 객관적이며, 역사적 진실성이 매우 높다. 그 증거가 카이사르 이후 거의 모든 학자와 연구자들이 카이사르의 문장에 대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먼저 그는 간결하고 객관적이면서도 세련된 라틴어를 구사했다. ‘나는’이라고 지칭하지 않고 ‘카이사르는’이라고 객관화해서 썼으며, 일체의 미사여구와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에 충실하게 기록했다. 즉, 거의 전해지는 문헌이 없는 당시 갈리아(프랑스)나 게르만(독일), 심지어 브리타니아(영국) 지역의 형편을 알아보는 데 매우 중요한 사료史料로서의 역할을 한다. 현대의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카이사르의 기록이 상당한 역사적 정확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이렇게 문학적, 역사적으로 뛰어난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란 그저 세계사 책에 한 줄로 남아 있는 역사일 뿐이다. 이에 라틴어를 직접 대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카이사르의 뛰어난 식견과 힘찬 문체를 경험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당시 유럽 풍속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책을 번역하였다.
아무쪼록 한 시대를 웅장하게 살다 간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세상의 역사가 이루어진 시기의 한 토막을 위대한 작가의 시선으로 돌아본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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