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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옮긴이 서문
일러두기

[제 1 권] 침입자들을 격퇴하다
헬베티이족을 격퇴하다(기원전 58년)
아리오비스투스를 갈리아에서 쫓아내다(기원전 58년)

[제 2 권] 벨가이족의 정복
벨가이족 동맹의 와해(기원전 57년)
벨가이족 부족들을 각개격파하다(기원전 57년)

[제 3 권] 첫 번째 반란
알프스에서의 작전 실패(기원전 57년)
대서양 연안 전투(기원전 56년)
아퀴타니아에서 이기다(기원전 56년)
모리니족과의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하다(기원전 56년)

[제 4 권] 게르마니아와 브리탄니아 원정
우시페테스족과 텡크테리족을 도륙하다(기원전 55년)
첫 번째 라인 강 도하(기원전 55년)
첫 번째 브리탄니아 원정(기원전 55년)

[제 5 권] 두 번째 반란
두 번째 브리탄니아 원정(기원전 54년)
사비누스의 부대가 에부로네스족에게 대패하다(기원전 54년)
네르비이족이 키케로의 월동 진지를 공격하다(기원전 54년)
갈리아의 북부와 중부 지방에서 반란이 잇따르다(기원전 54~53년)

[제 6 권] 라인 강 근처에서 작전을 펼치다
트레베리족을 격퇴하다(기원전 53년)
두 번째 라인 강 도하(기원전 53년)
갈리족의 관습과 제도
게르마니족의 관습과 제도
에부로네스족의 나라를 초토화하다(기원전 53년)

[제 7 권] 베르킹게토릭스의 반란
서막(기원전 52년)
아바리쿰의 포위와 함락(기원전 52년)
게르고비아에서 로마군이 패하다(기원전 52년)
베르킹게토릭스가 야전(野戰)에서 패하다(기원전 52년)
알레시아의 포위와 함락(기원전 52년)

[제 8 권] 마지막 반란
히르티우스의 머리말
비투리게스족, 카르누테스족, 벨로바키족의 반란(기원전 52~51년)
마지막 교전: 욱셀로두눔의 함락(기원전 51년)
내란의 먹구름이 드리우다

[부록]
로마의 주화와 도량형
로마군 편제
로마의 통치구조
율리우스 카이사르 연보
참고문헌
찾아보기
지도

저자 소개 2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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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ius Julius Caesar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의 군인·정치가. BC 100년 7월 13일에 태어났다. 7월을 가리키는 영어의 July는 카이사르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민중파인 마리우스와 인척 관계로 원로원파인 술라가 권력을 잡고 있을 때는 민중파인 아내와의 이혼 명령을 거부하고 여러 곳을 떠돌며 숨어 지냈다. BC 78년 술라가 죽은 뒤 로마로 귀환, 정치생활을 시작하였으며 BC 69년에는 재무관, BC 65년 안찰관(按察官)을 거쳐 BC 63년 종교상 최고직인 종신 대신관이 되었다. BC 60년에는 폼페이우스 및 크라수스와 동맹을 맺고 제1차 삼두정치를 시작하였다. BC 58년∼BC 50년, 속주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의 군인·정치가. BC 100년 7월 13일에 태어났다. 7월을 가리키는 영어의 July는 카이사르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민중파인 마리우스와 인척 관계로 원로원파인 술라가 권력을 잡고 있을 때는 민중파인 아내와의 이혼 명령을 거부하고 여러 곳을 떠돌며 숨어 지냈다. BC 78년 술라가 죽은 뒤 로마로 귀환, 정치생활을 시작하였으며 BC 69년에는 재무관, BC 65년 안찰관(按察官)을 거쳐 BC 63년 종교상 최고직인 종신 대신관이 되었다. BC 60년에는 폼페이우스 및 크라수스와 동맹을 맺고 제1차 삼두정치를 시작하였다. BC 58년∼BC 50년, 속주 갈리아의 장관으로서 갈리아 전쟁을 수행, 브리튼과 게르만 족의 영지까지 아우르는 광대한 영토를 대부분 평정하였다.

BC 53년 삼두체제의 한 중심인 크라수스가 동방원정에서 전사함으로써 원로원 보수파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으며 BC 51년 원로원이 카이사르의 로마 소환과 군대해산을 결의하자, BC 49년 1월에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유명한 말과 함께 갈리아와 이탈리아 국경인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함으로써 내전을 시작하였다. BC 45년 3월에는 폼페이우스의 아들까지 진압함으로써 마침내 5년간의 내전을 종결시켰다. BC 46년에 10년 임기의 독재관이 되었고, 곧이어 BC 44년에는 종신 독재관이 되었다. 율리우스력을 제정하고 노예에게 관직을 허용함으로써 로마 시민권을 대폭 확대하는 한편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여 로마를 정비하는 등 개혁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지나친 권력의 집중을 견제하고자 했던 원로원 공화파와 공화정 지지자들에 의해 BC 44년 원로원에서 암살되었다. 그의 나이 56세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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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병희는 그리스·로마 고전을 원전에서 한국어로 옮겨온 번역가다. 그의 작업은 한 개인의 성취를 넘어, 한국어 고전 번역의 토대를 이루어왔다.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고전학과 독문학을 수학했다. 희랍어와 라틴어에 대한 정규 검정을 거친 뒤, 고대 텍스트를 원문으로 읽고 번역하는 작업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아왔다. 그에게 고전 번역은 단순히 텍스트를 옮기는 일이 아니었다. 작품이 지닌 오랜 전승과 형식, 텍스트가 형성되어온 문헌학적 흐름을 살피고, 그 안에 담긴 의미 구조와 문체, 극적 리듬을 함께 읽어낼
천병희는 그리스·로마 고전을 원전에서 한국어로 옮겨온 번역가다. 그의 작업은 한 개인의 성취를 넘어, 한국어 고전 번역의 토대를 이루어왔다.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고전학과 독문학을 수학했다. 희랍어와 라틴어에 대한 정규 검정을 거친 뒤, 고대 텍스트를 원문으로 읽고 번역하는 작업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아왔다.
그에게 고전 번역은 단순히 텍스트를 옮기는 일이 아니었다. 작품이 지닌 오랜 전승과 형식, 텍스트가 형성되어온 문헌학적 흐름을 살피고, 그 안에 담긴 의미 구조와 문체, 극적 리듬을 함께 읽어낼 때 비로소 번역은 완성되었다. 천병희는 오랜 훈련과 치밀한 검토를 바탕으로, 이러한 여러 층위를 한국어로 옮기며 고전이 지닌 사유와 아름다움을 오늘의 독자에게 전달해왔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비극과 희극, 철학과 역사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고전을 체계적으로 번역하며, 한국어로 읽는 서양 고전의 기반을 마련했다. 주요 번역서로는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아이스퀼로스 비극전집』 『소포클레스 비극전집』 『에우리피데스 비극전집』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플라톤 전집,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정치학』 『수사학/시학』,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전쟁사』, 크세노폰의 『페르시아 원정기』 등 다수가 있으며, 주요 저서로 『그리스 비극의 이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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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1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746g | 153*224*30mm
ISBN13
9788991290440

출판사 리뷰

갈리아 원정을 통해 로마인에게 진가를 인정받은 인물, 카이사르
전쟁의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전쟁의 달인, 카이사르


카이사르 흔적의 결정체 『갈리아 원정기』가 드디어 라틴어 원전번역으로 출간되다
기원전 50년, 로마에서 출판된 『갈리아 원정기』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책이다.

이 책은 당시 유력자였던 폼페이유스가 동방에서 거둔 정복위업을 빛바래게 하고, 카이사르의 시대를 열어주었다. 로마인에게 드리운 원한 맺힌 갈리아에 대한 공포를 종식시킨 자신의 업적을 알리고, 폭넓은 지지기반을 만들겠다는 정치적 목적에서 씌어진 책이었다. 어쩌면 정치 계절에 흔히 출간되는 정치인 책의 원조일지도 모른다. 덕분에 카이사르의 인기는 치솟았고, 그는 로마 민중의 찬사를 받으며 한발 한발 권력의 핵심으로 나아가 궁극의 권력을 얻게 되었다. 그의 출세는 자신의 영화를 넘어 세계사를 바꾸어놓았으니 세계는 이제 그를 중심으로 돌 준비를 마친 것이다.

그렇다면 지독한 야심가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출판된 책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전 세계인이 읽는 고전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갈리아 원정기』가 가지는 사료적 의미와 역사서로서의 가치, 문체적 특징과 조직적 관점에서는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와도 맥을 같이하지만, 실제 지휘관들은 어떤 일을 했고, 군대를 어떻게 움직였는지 말해주는 역사서는 이 책이 유일하다. 그 누구도 기록하기 어려운 전쟁에서의 군사작전을 직접 들려줄 뿐 아니라 그 시원시원하고 군살 없는 명료한 문체는 이 책을 전쟁문학의 고전으로 빛나게 했다. 『갈리아 원정기』는 당시 서유럽 사회를 보여주는 최고?의 문헌이기도 하다. 갈리아 지역에 총독으로 부임해 8년간 공적인 지원 없이 지금의 서유럽 일대를 정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의 북쪽 경계선을 방어하는 임무를 띠고 갈리아에 파견되었지만, 카이사르는 경계선 확장과 나아가 그 이상의 제국을 꿈꾸며 갈리아 지역에 들어갔다. 민중파와 원로원파의 정치 폭력이 난무하던 혹독한 시기에 나고 자라 장군이 된 카이사르는 갈리아 원정이 없었다면 이런저런 관직을 두루 지낸 평범한 귀족으로 역사에 묻히고 말았겠지만, 그는 갈리아 원정을 통해 로마의 역사와 세계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러나 정치가 카이사르에 대한 평가는 고대 역사가들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극단적이라 할 만큼 강한 개인적 견해와 격렬한 논쟁이 있어왔다. 정치가로서의 그의 진실은 극단의 끝이 아니라 중간지점 어디쯤이겠지만, 문사文士와 문인文人으로 남긴 이 책에 대한 가치는 세월이 변해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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