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문_ 묻지 않았던 질문과 생각지도 못했던 믿음
1부_ 내가 믿는 기독교 1. 양자의 고백 - 나는 기독교에 입양되었다 2. 그리스도 수난 연극 - 연극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다 3. “아멘”에서 “어, 이런”까지 - 곤경에 빠지는 순간은 확신이 사실이 아닐 때이다 2부_ 세상에 길들지 않는 기독교 4. 길들지 않은 야생 거위 - 하나님은 문화적 새장에 갇히지 않으신다 5. ‘다름’이 좋던 시절 - 기독교는 그리스의 이야기가 아니라 유대의 이야기였다 6. 성경 사용 설명서 - 성경은 무기도 백과사전도 아니다 7. 이상한 의학 - 모든 것은 통합되어 서로 영향을 미친다 8. 온전케 하는 신학 - ‘무엇에든지’ 마음을 열라 3부_ 죄인들과 함께하는 기독교 9. 저 위 그리고 저 바깥 - 어떻게 협곡이 하나님을 막아설 수 있는가 10. 이 아래 그리고 이 안에 -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직접 개입하신다 11. 신묘막측한 지으심 - 우리는 하나님 앞에 실망스러운 존재인가 12. 언제나 그랬듯이 -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창조되었다 13. 죄와 심판 - 하나님의 정의는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의 회복이다 4부_ 소망으로 가득한 기독교 14. 우울한 눈동자에 감춰진 슬픔 - 우리는 죄인 이상의 존재이다 15. 내가 알지 못했던 유대인 - 예수님은 그리스도이기 전에 메시아였다 16. 예수님이 원했던 혁명 - 가이사의 왕국에서 하나님의 왕국으로, 예수님은 이것을 원했다 17. 하나님의 초대 - 새로운 생명, 새로운 율법, 새로운 리듬에 동참하라 18.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 - 하나님 나라는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감사의 글 주 |
장혜영의 다른 상품
|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신학을 공부했고, 교회를 개척하고, 전도하며,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다. 나는 부활을 믿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연합하기를 추구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이 믿음을 좇기 시작한 이후 지난 20년 동안, 점점 심해진 내 내면의 싸움이다.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으려면, 매우 조심스레 또 근심하면서 입을 열게 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하지만 나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 아니, 지난 1,500년 동안 성행해 온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그 기독교는 그들의 시대와 그들의 장소에는 완벽히 어울렸지만, 지금 이 시대 그리고 이 장소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 기독교는 우리가 더 이상 묻지 않는 질문에는 대답하지만, 우리가 더 이상 묵살하지 못할 질문에는 입도 떼지 못한다. 또한 우리가 아는 하나님과 세상 그리고 그 세상 속 우리의 자리와 이도 맞지 않는다. 이 사실은 분명히 하자. 나는 믿고자 싸우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다르게 믿고자 싸우는 것이다. --pp. 15-16 이 권위의 문제는 살펴볼 가치가 있다. 기독교 순환논법에서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본다. 성경은 그 권위를 하나님과 성경에 권위를 주는 공동체를 통해 얻는다. 다른 여러 사람들처럼 나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성경을 믿는다. 하지만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은 그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 성경을 믿어야 한다고 말이다. 따라서 그들은 비기독교인에게 성경을 건네며, 그 비기독교인들이 하나님에 대한 성경을 읽고 눈을 뜨기를 기대한다.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내게는 순서가 뒤바뀐 일로 보인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서야 누가 무슨 이유로 이 이야기를 믿겠는가? 나는 성경이 언제나 최선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의로운 자라 부르셨을 때, 그는 성경을 믿지 않았다. 성경이 아직 쓰이지 않았던 때였으니 말이다. 모세는 자기 백성의 생생한 이야기를 신앙 교재로 사용하지 않았다. 다윗은 이사야의 예언을 묵상하지 않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사이에 바울의 편지를 읽지 않았다.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성경은 이야기의 중간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믿음이라는 이야기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pp. 90-91 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동안, 하나님 나라가 내세 혹은 예수님이 최후 승리를 위해 재림하실 때 하나님이 여시는 세계라고 배워왔다. 내가 아는 많은 기독교인들은 마태가 자신의 복음서에서 사용한 ‘천국’이라는 표현을 마가나 누가가 선호했던 ‘하나님 나라’보다 더 빈번히 사용했다. 그리고 천국이라는 표현은 왕국의 개념을 다른 시간과 다른 장소의 느낌으로 바꾸어버렸다. 타락과 탐욕과 악이 다스리는 이 땅은 분명 천국이 아니다. 우리가 듣기로 예수님이 중요한 이유는 그분이 죄에서 우리를 구하려고, 또 언젠가 우리가 하늘에 있는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도록 도우려고 오셨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진짜 집으로 착륙해도 좋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까지 공중에서 대기 중인 비행기에 기독교인의 삶을 비유해야 할까. 아니면 우리는 끔찍한 추락 사고에서 탈출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나도 정확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두 가지 비유 모두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보이신 대로 우리는 죽음 이후에나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열쇠를 주셨고 그 구원은 우리가 하늘나라의 문을 지나 들어갈 때에야 실현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내세가 지배하는 이 기독교는 성경적 이야기에서 이탈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예수님의 뜻의 핵심에 나쁘게 작용한다고 믿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 예수님은 다른 시간과 다른 장소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다른 것을 선언하셨다. 예수님은 이곳과 저곳, 또 지금과 그때 사이의 경쟁을 암시하지도 않으셨다. 아니, 예수님은 현재의 것과 미래의 것 모두를 포함해 전체적인 재구성을 선포하셨다. 예수님은 바로 지금, 바로 이곳에서 그리고 영원히 우리가 살아야 할 새로운 삶을 가져다주셨다. --pp. 280-81 --- 본문 중에서 |
|
포스트모던 시대 기독교의 새 지형을 탐색하는 믿음 점검서
“나는 믿고자 싸우는 것이 아니다. 다르게 믿고자 싸우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자신의 신앙 여정을 통해 성찰한 신학적 회고록 “나는 그리스도는 좋아하지만, 당신네 그리스도인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그리스도와 너무도 다릅니다.” 마하트마 간디가 했다는 이 말은 오늘날 팽배해 있는 기독교에 대한 불신과 경계심을 보여주는 현실이기도 하다. 이러한 21세기 목회 토양에서 복음의 씨앗은 어떻게 뿌려져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가운데 출현한 것이 ‘이머징 미니스트리(emerging ministry)’ 혹은 ‘이머징 교회(emerging church)’이다. 20세기 말의 ‘구도자 중심의 교회’에서 ‘구도자 중심 이후의 교회(Post Seeker Sensitive Church)’로 나아가고 있는 21세기 교회의 모습을 탐색하고 있는 이 흐름을 미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잡지 Christianity Today는 2004년에 커버스토리와 특집으로 다룬 바 있다. 불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기독교적 배경이 전혀 없지만 여러 매체를 통해 기독교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논리보다는 감성적인 경험을 통해 수용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영적으로 갈급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이들의 노력은 포스트모던 사회의 불신자와 구도자들에 대한 대책을 갖고 있는 않은 상태에서 여전히 기존 교인들에게만 유효한 새로운 프로그램과 목회 방법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는 한국 교회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이 책은 브라이언 맥클라렌과 함께 이머징 교회 운동을 이끌고 있는 더그 패짓이 자신의 신앙 여정을 통해 포스트모던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성찰한 신학적 회고록이다. 교회를 전혀 몰랐던 유년시절, 삶의 변화를 가져왔던 고등학교 2학년 때의 극적인 회심, 이후 교회와 믿음을 향한 강렬한 열정, 그렇지만 자신이 몸담고 있는 기독교에 대해 점점 쌓여만 갔던 의문과 답답함에 대해 이야기하며 21세기 기독교에 대한 매력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우리의 감정과 환경은 믿음에 필요 없는 부수적인 것들인가? 기독교 믿음을 붙들기 위해서는 특정한 세계관으로 회심해야 하는가? 우리는 성경을 무기나 백과사전처럼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믿지 않는 사람들을 무엇으로 설득할 것인가? 하나님은 항상 ‘저 위 그리고 저 바깥에’만 계시는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 늘 실망스러운 존재인가? 예수님이 원했던 혁명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 예수님, 죄, 성경, 인간, 교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새로운 통찰과 도발적인 질문으로 믿음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이 책은 신학적 숙고와 기독교의 역사, 그리고 믿음의 변화에 얽힌 자신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엮었다. 오래된 논쟁의 재탕이 아니라 새로운 통찰과 도발적인 질문 그리고 소망이 넘치는 대안을 제시한 책! 예기치 못한 회심, 생각지도 못했던 믿음 기독교와 무관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저자는 때때로 술과 약물을 즐기는, 교회에는 가본 적이 없고 근심 많은 10대 소년에서 친구들에게 이제나 저제나 구원받은 이야기를 할까 안달이 난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봄, 친구와 함께 우연히 보게 된 연극 'PASSION'을 통해 극적인 회심을 하게 된 것이다. 이후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을 모아 소그룹을 만들어 성경공부를 인도하는가 하면, 학교에서 복음을 전하고, 심지어 종교 신문을 돌린다는 이유로 정학을 당하기도 했다. 여러 종교 행사와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가 마침내 기독교 대학으로 진학한 뒤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여 목회자의 길까지 된다. 그러나 기독교에 ‘입양’되어 적응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모든 것이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과정에서 우리가 더 이상 묻지 않는 질문에는 대답하지만, 우리가 더 이상 묵살하지 못할 질문에는 입을 떼지 않는 기독교에 ‘거침없는’ 질문을 던져 답을 찾아가는 긴 여정을 이 책에 담았다. 믿고자 하는 싸움이 아니라 다르게 믿고자 하는 한 구도자의 치열한 신앙고백문이기도 하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이방인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 기독교 믿음은 늘 다문화적이었고, 다양한 문화와 언어들 속에 살아 있었다. 기독교는 한 번도 사람들에게 통일된 언어를 사용하라거나 특정한 문화적 관습을 따르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다가 다양한 문화 속에서 또 다양한 문화를 통해 전해지던 생동감 넘치는 유대인의 이야기는 온데간데없고 그리스식 단일 문화의 기독교만 남게 되었단 말인가? 저자는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급속히 확산되면서 생겨난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소집된 첫 ‘종교 회의’(행 15장)와 그 이후 콘스탄티누스 황제? 의해 기독교가 로마의 공식 종교가 된 사건을 비교함으로 그 배경을 ?적한다. 즉 기독교가 로마의 유일한 공식 종교가 되면서 기독교는 철저히 그리스식 세계관의 영향을 받게 되었으며, 그 속에서 ‘공식적’인 현대 기독교가 탄생했다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지난 1700년 동안 그리스식 관점이 하나님과 예수님, 죄, 그리고 구원을 포함한 모든 것에 관통해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관점이 돌에 새긴 듯 논쟁이나 변화의 여지없이 믿음에 대한 유일한 설명이 되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제안들과 질문들이 독자들의 마음에 새로운 질문들을 불러일으키기를 소망한다. 이머징 교회 운동의 방향을 보여주는 화제작 댄 킴볼의 『시대를 리더하는 교회The Emerging Church』, 『고귀한 예배The Emerging Worship』가 이 운동을 개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개관서라면, 브라이언 맥클라렌과 더그 패짓의 책들은 그 신학적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최근에 번역된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온다?를 비롯 A Generous Orthodoxy, The Secret Message of Jesus, Everything Must Change 등이 그런 책들인데, 더그 패짓의 이 책 또한 이러한 흐름의 내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책이다. 국내에서는 이제 주요한 책들이 소개되고 있어 한국적 목회 상황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지 가늠해보기는 쉽지 않다. 다만 한국 교회의 성장 둔화, 정체, 쇠퇴를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는 높지만 정작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구체적인 연구는 부족하고 목회적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큰 상황에서 최근 미국 복음주의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운동의 흐름을 짚어보는 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믿음에서는 종종 무시되거나 제한되는 ‘어떤 것’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는 마치 마지막 “아멘을 외치고 난 다음,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 것과 같을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고심해야 할 사실과 생각들을 등지는 순간이야말로 실패의 순간이라고 믿는다. “기독교는 보수와 보존의 믿음이 아니다. 오히려 창조와 참여, 움직임, 그리고 변화의 믿음이다”라고 믿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