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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끝을 기억해
청춘의 끄트머리에서 산티아고를 걷다
조은강 저
황소자리 2009.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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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1

작가한마디
카미노로 떠나기 전의 나는 작게 구겨진 종잇조각이었다. 구겨진 종이는 그 길을 걸으며 서서히 펴졌고, 이젠 구겨져 있든 펴져 있든 아무 상관이 없음을 믿는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어도 나는 언제나 나였다.
서울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나 세상과의 관계를 시작했다. 연세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비디오프로덕션, 출판사, 홍보대행사, 광고대행사 등 다양한 직장에서 18년간 일을 했고, 2008년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을 걸었다. 그 경험을 담은 『그 길 끝을 기억해』를 펴낸 뒤, 『나의 아름다운 성당기행』 『나쁜 엄마 심리학』 등을 출간했다. 현재 남편과 함께 고양이 2마리를 돌보며 청림동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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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6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450g | 153*224*20mm
ISBN13
9788991508576

책 속으로

카미노의 첫 번째 속삭임: 어서와요, 여긴 당신을 위한 길이에요.
그러고 보니 여기 오기 전 나는 이토록 난처한 상황이 생길 거라고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다. 춥고, 막막하고, 난감하고……. 나를 여기까지 여기까지 이끌었던 내 안의 낙천성은 하루를 채 보내기도 전에 와르르 무너졌다. 대신 그 자리에는 두려움과 후회가 순식간에 밀고 들어왔다. 카미노를 걷겠다는 계획 전체를 좌초시킬지 모를 그 감정들과 밤새 싸우며, 나는 카미노의 첫날을 알베르게 식당에서 뜬눈으로 맞이했다. --- 「알베르게 식당에서 보낸 악몽 같은 첫날밤」 중에서

이제 처음으로 내 몸에게 ‘너는 할 수 있어!’라고 신뢰를 주어야 할 때였다. 그러지 않는 한 이 길을 넘을 수 없었다. 이 순간 필요한 건 오직 내 자신에 대한 믿음 하나뿐이었다. 잠시 후 우리 앞에 중요한 이정표인 이파네타 교회Chapelle d’ibaneta가 나타났다. 이윽고 ‘정말 존재하는 곳일까’ 의심했던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다. 땀에 흠뻑 젖은 채 순례자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실성한 사람처럼 웃어댔고 사무실 직원은 ‘그래, 그럴 법도 하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아, 정말 론세스바예스가 이곳에 있었네! 우리는 제대로 찾아왔어! --- 「누가 내게 피레네를 넘으라고 했나」 중에서

그렇게 길을 걷노라니 지금껏 단 한 번도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인 5월에 한가로운 여행을 즐긴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에 다니거나 회사에 다니거나 늘 어딘가에 매여 있었던 것이다. 혹시나 다른 직장을 구하지 못해 장기간 백수로 지낼까봐 늘 새 직장에 출근할 날짜를 정해놓고 그만두었기에 사회생활 18년 동안 내가 가진 휴가는 기껏해야 일년에 일주일 내외였다. 카미노에서 만난 외국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그들은 모두 깜짝 놀라 뒤로 넘어가는 제스처를 했다. --- 「하늘이 맺어준 친구, 안토니엘라」 중에서

인생은 아직 풀어보지 못한 선물상자 같은 것, 그 안에서 무엇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카미노는 그 상상하지 못했던 선물을 툭툭 던져주는 길이었다. 놀랍게도, 이날 오후 시주르메노를 향해 가면서 안토니엘라도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다.
“난 한 번도 다른 사람과 같이 카미노를 걸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 누구를 만난다고 해도 유럽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코리안 프렌드와 함께 걷다니!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이야.” --- 「때론 목적지가 제 발로 다가온다」 중에서

카미노의 두 번째 속삭임: 당신의 꿈은 어디에 있나요?
어쩌면 내가 늘 원해왔던 건 바로 이런 조용한 평화였을지도 모른다. 즐거움이나 쾌락 이전에 존재하는 가장 고요한 상태. 무념무상의 상태. 니체는 ‘가장 침묵했던 순간이 가장 엄청난 경험’이 될 수 있다고 했던가. 그걸 평소에는 몰랐다. 그걸 모르고 나는 늘 적극적인 즐거움만 추구했다. 이런 평화야말로 가장 큰 기쁨이자 행복이라는 사실은 이곳에서 처음 깨달았다. --- 「벌판 위에서 만난 황금빛 기적」 중에서

나는 무조건 6월 11일에는 산티아고에서 비행기를 타야 한다. 최대한 천천히 카미노를 걸을 생각이라는 안토니엘라와는 입장이 다르다. 카미노 루트가 아닌, 산토 도밍고 데 실로스Santo domingo de silos에도 가야 한다. 부르고스 남쪽에 있는 작은 마을, 모든 미사를 그레고리안 성가로 집전하는 성당이 있다는 산토 도밍고 데 실로스는 카미노를 준비하며 스페인 관광안내서를 보다가 알게 되었다. 단 몇 줄로 소개되었을 뿐이지만 왜 그랬는지 꼭 그곳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수사들이 부르는 아름다운 그레고리안 성가를 내 귀로 직접 듣고 싶었다. 언제 스페인에 다시 올지 모르는데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잖은가. --- 「당신의 꿈은 어디에 있는가? 죽기 전에 오늘을 살아라」 중에서

그런데 나와 전혀 다른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같은 정서를 발견하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아, 사람은 다 비슷한 거로구나. 피부색이 다르고 성별이 달라도 사랑하고, 상처받고, 아파하는 건 다 똑같구나. 아무도 그냥 카미노에 오지는 않는다. 상처를 잊기 위해서든,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든,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해서든, 반드시 그 길에 오는 데엔 이유가 있다. ‘아름다운 풍경’ 운운했던 내게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낯선 길 위에 버려두고 싶은 것들이, 그걸 버린 뒤 채워오고 싶은 것들이 이곳에 있었기에 모든 걸 제쳐두고 달려왔을 것이다. --- 「6개 대륙에서 카미노로 모이는 이유」 중에서

카미노의 세 번째 속삭임: 때론 혼자서 가야 해요
슬픈 것도 서러운 것도 아니었다. 여자들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울 때가 있지 않은가.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고 참았던 것이 이런 때 흘러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울고 나니 마음이 씻은 듯 개운해졌다. 비로소 이곳에 와서 해야 할 일을 다 했다 싶었다. --- 「카미노를 벗어나 찾아간 그레고리안 성가의 마을」 중에서

이 낯선 이방인의 입에서 ‘성북동, 인천, 광주’라는 단어가 나왔다. 여기는 스페인 북부 지방의 버스터미널이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이 아니란 말이다. 성북동, 인천, 광주라는 단어는 이 공간에서 우리 두 사람만이 아는 암호나 다름없었다. 그리하여 결례를 무릅쓰고 나는 계속 그의 정체를 물었고, 결국 그는 산토스Santos라는 이름의 가톨릭 신부이며 ‘한상도’라는 한국 이름이 있을 정도로 한국에서 오래 일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 「“한국에서 오셨어요?”」 중에서

어느덧 나는 마을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걷는 것도 중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처럼 오랜만에 걸으면서 그냥 걷는 것에 취해버린 것이다. 탈진하기 전에는 멈출 수 없다. 춤추는 빨간 신을 신은 여자처럼, 나는 그야말로 춤추듯 걷고 있었다. 이틀 간 사용하지 못한 에너지가 풀가동되었다. 결국 나는 단 한 사람의 페레그리노도 없이 쓸쓸하고 음산한 길을 걸어 오후 5시가 넘어서야 폰세바돈Foncebadon에 도착했다. 무려 26.3킬로미터를 걸은 셈이었다. 피레네 산맥 등반 이후 최장거리였다. --- 「철저히 혼자가 되다」 중에서

빡빡이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얼큰이가 노래를 시작했다. 아직 해도 안 졌고,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거리 한복판 카페에서 그들은 시원스런 목청으로 아일랜드 노래를 불렀다. 빠르고 신이 나는 행진곡 풍 노래였다. 옆에 있던 다른 페레그리노들이 박수를 보내왔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멈춰서서 지켜보았다. (중략) 그 자리에서 나는 인연의 기묘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람들을 처음부터 몰랐다면 모를까, 그렇게 싫어하고 경계하던 사람들과 이런 방식으로 화해를 하게 될 줄이야. --- 「카미노의 악당들 2」 중에서

카미노의 마지막 속삭임: 당신 앞의 생을 믿어요
방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침대 위에 쓰러졌다. 다들 영광스럽고 행복하고 감격스럽게 산티아고 입성을 이야기하지만 내게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쉬고 싶은 생각뿐. 피곤했다. 그동안 참고 참았던 피로가 일순간 몰려오는 듯했다. 더이상 아무것도 계획하거나 생각하거나 판단하고 싶지 않다는, 정신적 피로감. --- 「저기 산티아고 대성당이 보인다!」 중에서

그런데 출구 근처까지 걸어갔을 때 뒤에서 귀 익은 바이올린 소리가 들렸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배가 가라앉을 때 연주되었던 그 음악, 「주여 임하소서Nearer my god to thee」였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중략)
“아무런 감동도 없었어. 난 산티아고에서 환영받지 못했어.”
내가 이런 심정으로 돌아갈까봐, 저 높은 곳에 있는 누군가가 내 마음을 이렇게, 따뜻한 손길로 달래주는 듯했다. --- 「산티아고에서 이틀을 보내다」 중에서

어쩌면 이 자리가 진정으로 카미노를 끝내는 자리이자 완성하는 자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이상 아쉬움도, 후회도 없다. 산토스 신부님을 우연히 만난 건 그리고 기어이 이곳까지 온 건 바로 이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으리라. 진정한 평화와 진정한 감사가 어떤 것인지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산토스 신부님은 나를 보낸 것이다. 그리고 나의 카미노는 이렇게 특별한 모습으로 완결되는 것이었다. --- 「내 카미노의 끝이자 완성이었던, 그 자리」 중에서

하필이면 9월 1일이라는 같은 날, 정확히 12년 후에 태어난 그녀와 12년 전에 태어났던 내가 이렇게 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이건 아마도 카미노가 내게 전하는 메시지였으리라. 우연히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시작되었던 내 카미노는 스페인을 떠나면서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기적은 그렇게 쉽게 끝나는 게 아니라고, 영원히 반복될 거라고, 카미노는 그렇게 내게 말하며 웃고 있었다.

--- 「기적의 론도」 중에서

출판사 리뷰

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사회가 원하는 인간형이 되기 위해 발버둥쳤다. 한눈 팔지 않고 다양한 커리어를 쌓아갔고, 일터를 제공해주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청춘을 헌납했다. 얻은 것은? 별로 없었다. 지긋지긋한 야근, 휴일에도 아무 때나 울려대는 업무 전화, 만성 피로, 불안, 두통…. 그 길만이 안전한 삶의 방식이라고 믿었던 그도, 친구들도 결코 행복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누구의 이야기일까?

청춘의 끄트머리에서 카미노를 걷다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아도 하등 어색할 것 없는, 이 땅 대다수 젊은이들의 초상이다. 이 책 『그 길 끝을 기억해』의 저자 조은강도 그랬다. 어느날 우연히 켜둔 다큐멘터리에서 카미노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 밤, TV에선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스페인의 햇살을 받으며 끝없는 밀밭길을 혼자 걷는 여행자의 이미지는 그를 단숨에 매료시켰다. 왜 그랬을까? 백두대간은커녕 동네 뒷산에도 오르기 싫어했던 그의 귓가에 계속 카미노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빨리 오라고, 여긴 너를 위한 길이라고. 맹렬히 카미노를 꿈꾸기 시작한 지 채 2주가 못 되어, 회사는 해고를 통지해왔다. 마치 변심한 연인을 내치듯이. 밥 먹듯 야근을 하고도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될 수 있는 인생이라니! 미래가 이토록 아슬아슬한 것이라면, 그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는 건 거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배낭을 꾸리는 그를 보며, 가족과 친구들은 진심으로 걱정을 했다. “괜찮겠어? 혼자, 그 먼 곳에?” 실상 그 걱정은 먼 여행길보다 그의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것이었다. 너 앞으로 어떻게 할래? 앞으로 어떻게 살 건데?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주변 사람들의 기대대로 착하게만 살아왔던 그의 마음속에서 묘한 오기가 고개를 쳐들었다. 나도 한 번쯤은 내가 원하는 길을, 내 마음껏 걸어볼 수 있는 거잖아?
2008년 5월 어느날, 항상 바쁘게 회사로 달려가던 바로 그 시간에 그는 몸뚱이만한 배낭을 메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드디어, 카미노에 가는 것이다.

어서와요, 여긴 당신을 위한 길이에요
이 책 『그 길 끝을 기억해』는 숨막히는 생존현장에서 청춘을 소진해버린 한 직장인의 탈출기이자 절절한 치유 기록이다. 저자인 조은강은 비틀리고 무감해져버린 삶을 회복하기 위해 스페인 북부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로 떠났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모색하도록 도와준다는 이 순례길이, 자신에게도 모종의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리라 믿으며…. 피레네 산맥을 넘고, 들꽃 무성한 오솔길과 양들이 뛰노는 언덕을 지나, 120개나 되는 마을을 통과하는 800킬로미터의 순례길. 30여 일 간의 여정으로 걸어가는 이 길은 과연 아름다웠다.

저자는 발가락이 부르트고 온몸의 관절이 삐걱대는 통증을 필사적으로 견디며 카미노의 치유력을 경험해가는 과정을 진솔하고 사색적인 문장으로 써내려갔다. 책 속에서는 온전한 사회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조바심으로 스스로를 구속하고 사람들을 향해 가시망을 둘러쳤던 그가, 카미노에서 만난 사람들과 웃고 울고 때론 눈 흘기며 기분 좋게 허물어지는 과정이 생생하고 밀도 있는 풍경으로 그려진다. 낯선 길 위에서 불쑥불쑥 떠오르는 내 안의 상처와 한계에 가슴을 치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건강한 삶의 궤도를 향해가는 저자의 발걸음은 여전히 지금 이곳의 일상 속에서 힘겨워하는 독자들에게 기분 좋은 설렘과 위로를 선사한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는 여러 루트가 있지만, 저자는 생장피에드포르St.Jean-Pied-de-Port라는 프랑스 국경마을에서부터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까지 걷는 프렌치 웨이를 택했다. 그러나 시작도 하기 전부터, 카미노에 대한 장밋빛 꿈은 진흙탕에서 허우적댔다. 파리에서 국경으로 이동하는 TGV 안. 변신한 악마처럼 그의 앞에 나타난 알랭 할아버지는 해변가의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꼬드겼다. “노 프로블렘. 아이 엠 싱글!” 이라며. 주책바가지 할아버지를 간신히 따돌리고 생장피에드포르에 도착했지만 기대했던 고즈넉하고 신성한 분위기는 손톱만큼도 없었다. 낡고 지저분한 침대 위에서 다정한 축복의 말 대신 누군가의 지독한 땀 냄새를 견뎌야 했던 첫날밤, 그는 카미노를 걷겠다는 계획 전체를 좌초시킬지 모를 회의와 불안과 싸우며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혼자 낭만에 젖어 준비를 게을리했던 그에게 벌이라도 주려는 것이었을까? 거대하게 버티고 선 피레네 산맥은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그동안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심장이 사정없이 날뛰었고, 대체 카미노엔 왜 온 걸까 하는 근본적인 회의가 수십 번씩 발목을 붙잡았다. 하지만 한 발 한 발의 힘은 굉장한 것이었다. 겨우 달팽이보다 조금 빠른 속도였지만, 27킬로미터를 걸어 마침내 그날의 목적지 론세스바예스에 도착?다. 땀에 젖은 채 실성한 사람처럼 크게 웃던 그 앞에 카미노는 이제 놀라운 일들을 펼쳐놓기 시작했다.

카미노의 기적
수십 년 동안 그의 삶을 지배했던 강박적인 방식들은 카미노에선 아무 쓸모도 없었다. 느낌에 의지해 걷다보면 필요한 장소에 필요한 사람들이 등장했다. 혼자 걷기 위해 카미노에 온 그 앞에 난데없이 뚝 떨어진 안토니엘라는 그를 예정에 없었던 에우나테Eunate로 데려갔다. 오롯한 평화의 기쁨과 행복을 맛보게 해준 곳으로…. 배가 고플 때는 때맞춰 바bar가 나타났으며, 다른 페레그리노가 슬쩍 펼쳐 보여준 안내서 속에서 그에게 가장 요긴한 정보가 튀어나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알베르게에서 시끄럽게 굴었던 “빡빡이”와 “얼큰이”를 미워하게 되자마자, 독일의 수산나가 나타나 화해를 시켜주었다. 밉상이던 빡빡머리 남자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카미노의 막바지 여정을 위로해줄 거라고 누군들 상상할 수 있었을까?
우연의 얼굴을 한 카미노의 기적을 몸으로 느끼며, 작게 구겨진 종잇조각 같았던 그는 서서히 펴지기 시작했다. 지난 삶에 대한 미련과 후회, 조바심과 불안은 점점 엷어졌고 ‘내 몸과 마음’에 대한 신뢰와 너그러움, 긍정적인 에너지가 그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카미노의 기적은 마지막까지 계속됐다. 그레고리안 성가를 듣기 위해 찾아갔던 산토 도밍고 데 실로스에서, 파란 눈의 신부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한국에서 오셨어요?” 스페인어도 영어도 아닌 한국어로. 한국에서 오래 일했다는 산토스 신부님은 그에게 카미노 노던 웨이에 위치한 작은 마을, 소브라도 도스 몬세스에 가보라고 일러주었다. 그 작고 평화로운 수도원 마을에서 그는, 잠시 머물 뿐인 자신을 온 마음으로 반겨준 호텔 주인 리사 그리고 베드로마리아(강동수)와 가밀로(정철)라는 두 명의 한국인 수사를 만났다. 아름다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유를 알 수 없는 웃음이 자꾸만 터져 나왔다. 드디어 찾은 것이다. 스스로에게 수십 번, 수백 번 물었던 ‘나는 왜 카미노에 왔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당신 앞의 생을 믿어요
이 책『그 길 끝을 기억해』는 위태로운 현실의 선로에서 잠시 내려 삶의 건강성을 회복하려 애썼던 한 일상인의 기록이다. 청춘의 끄트머리에서 카미노로 떠난 저자는 길의 끝에서 깨달았다. 삶 속에는 거센 모래 폭풍과 까마득히 깊은 벼랑이 있어 때로 고통스럽지만, 또한 삶은 곳곳에 야생화 흐드러진 오솔길과 살랑살랑 봄바람 부는 밀밭길 그리고 기적 같은 만남들을 숨겨두고 있음을. 그 놀라운 경험과 깨달음이 공중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그는 글을 썼다. 책 속에는 돈을 벌기 위해, 성공적인 직업인이 되기 위해 헛된 노력만 되풀이했던 그가 평온한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 경쾌하고 감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언젠가 각자의 삶에 펼쳐질 카미노에 대한 기대와 희망 그리고 생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을 나눠가질 수 있을 것이다.
리뷰 총점 9.8
한줄평 총점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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