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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부 어제의 노비와 오늘의 비정규직 가짜를 만들어내는 진짜 범인 | 이름과 실제가 일치하지 않는, 가짜 시비 | | ‘경쟁사회’에서 다산과 신작을 돌아보다 | 인간의 족쇄로 전락한 절대 진리 | 조선 산골 유토피아, 이 시대엔 꿈인가 | 약자의 살을 삼키는 육식 | ‘촛불’에 드리워진 계급의 그림자 | 어제의 노비와 오늘의 비정규직 | 법가의 비참한 최후, 위앙 | 허생은 왜 돈 50만 냥을 바다에 버렸나 | 최남선의 인색함에 날아간 문화유산 | ‘열녀’의 21세기판 변주곡 | 국가권력으로 기녀제도를 존속시킨 양반들 | 관용에 눈감은 ‘예수천국 불신지옥’ | 도둑을 감화시킨 청빈 | 풍수와 점술을 믿을까? 2부 이 시대의 ‘북학의’ 어디 있소 정조의 ‘백성’과 정치인들의 ‘국민’ | 왕들의 살인과 사극의 미화 | 백성을 버리고 떠난 임금들 | 사회 폐단 따지는 ‘이계심’이 그립다 | 이 시대의 ‘북학의’ 어디 없소 | 19세기 ‘선전관(先錢官)’과 21세기 ‘강부자’ | ‘차별’ 먹고 자라는 역모와 반란 | 나라 망친 ‘붕당정치’ | 아첨의 지극한 도 | 정조가 조선 최고 ‘중매쟁이’가 된 사연 | 정조의 《흠휼전칙》과 인권에 대한 최초의 일념 | 파리를 조문하는 글 | ‘빈대 잡으러 집 태운’ 연산군의 언문탄압 | ‘큰 쥐’의 올바른 처리법 | 탐관오리 불멸론 | 지도에만 있는 도시, 지방이라는 식민지 3부 진리는 어디 두고 경전만 섬기는고 제국주의 영토욕 판치는 고구려 땅 | 입시에 짓눌린 ‘김정승의 아들’ | 제 자식 잡아먹는 교육 | 연산군의 폭정이 옳다던 세력들 | 훈장 내쫓는 학부모, 강사 내모는 대학 | 진리는 어디 두고 경전만 섬기는고 | 지배층의 백성 훈육 | 장지연의 비극 | 요절한 천재들이 주는 교훈 | 조선의 과학은 왜 낙후하게 되었는가 | 일상을 공부하는 법 | 인문학 공부의 즐거움 4부 유토피아를 꿈꾸지 못하는 세상 언어로 세상을 재현할 수 있을까 | 문화 다양성의 소멸 | 유토피아를 꿈꾸지 못하는 세상 | 다산을 연구에 몰두하게 한 것 | 소통과 어울림의 공간 | 탐진에 대한 물음에 답하다 | 자립적이며 자족적인 세계 | 소인배 승승장구론 | 소인배 등급론 | 인재는 왜 사라지는가 | 그들만의 세상 | 박지원과 홍대용의 외국인 사귀기 | 조선시대 과거 합격자와 다산의 「감사론」 | 장산의 낡은 집 | 탕론(湯論), 아래로부터 위로의 정치 | 다산, 정치를 말하다 |
姜明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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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 가짜 학위 사건 이후 가짜 학력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해보았는가. 졸업장 따위의 종잇조각이 없으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좋은 자리에는 낄 틈이 없는 사회다. 과거는 상것과 종놈을 제외하고 치르는 양반들만의 리그였고, 그조차 조선 후기가 되면 소수 벌열들의 리그였다. 지금은 안 그렇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기득권자에게 유리한 룰을 어겼다 하여 혹 다른 가짜는 없는가 혈안이 되어 설치고, 마녀 추달하듯 개인의 사생활을 이잡듯 벗겨내는 이 사회가 정상인가. 나는 위조와 가짜가 싫다. 하지만 위조와 가짜를 생산하는 사회구조는 도무지 번성하지 않는 풍토가 더더욱 가증스럽다. 신정아 파동이 가라앉으면 무엇이 문제였는지 모두 잊고 말리라. --- pp.16~17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 사회에는 노비제도 같은 후진적 제도는 없다. 자신과 가족을 파는 사람도 없다. 대신 노동력 외에 다른 수단이 없어 오직 자신의 노동력을 팔고자 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다. 노동력을 팔지 못하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문제는 그 노동력을 구매하겠다는 쪽이다. 옛날 양반들이 굶주린 백성을 노비로 사들이거나 말거나 제 마음대로였듯, 이제 자본은 노동력을 사들이거나 말거나 자유다. 노동력을 팔지 못하는 젊은이가 도서관마다 넘치고, 자기 노동력을 제값에 팔지 못하고 궁핍에 전전긍긍 살아가는 비정규직이 수백만 명이다. 그들의 모습에 살기 위해 스스로를 팔아야 했던 조선시대 농민의 모습이 겹친다. --- p.51 따져 물어야 할 것은 그것이 아이다. ‘백성’이란 명사가 선택되면, 그 명사는 언제나 ‘불쌍히 여김’, ‘보호’, ‘사랑’과 일반적으로 결합한다. 곧 왕이나 양반이나 모두 ‘백성’이란 어휘를 선택할 때는 애민(愛民), 곧 백성을 돌보고 사랑해야 한다는 거룩한 생각을 쏟아놓는다. 그러나 그 백성의 사회적 형태는 상것이다. 상것은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백성’은 책에서만, 머릿속에서만 존재한다. 애민이 진정이라면 그것은 관념 속의 진정이다. 하지만 상것에 대한 멸시는 실재하는 진정이다. ‘애민’이란 거룩한 아니 호사스러운 어휘가 둘러싸고 있는 장막을 걷어내면, ‘상것’들의 사회가 적나라하게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 p.92 정조가 김씨와 신씨를 비롯한 노총각 노처녀를 결혼시킨 데는 인간의 성적 욕망에 대한 깊은 배려가 전제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데 지금 세상에는 그런 배려는 씨알만큼도 없다. 국가는 인간의 성을 인구와 관련하여 생각할 것이고, 자본과 종교는 돈벌이와 윤리와 관련하여 생각할 것이다. 도대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인 성적 욕망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가. --- p.137 맹자는 위(魏)나라 임금에게 사람을 몽둥이로 때려죽이는 것과 칼로 찔러 죽이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묻는다. 차이가 없다고 하자, 다시 칼로 죽이는 것과 정치로 죽이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이렇게 묻겠다. “몽둥이나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교육’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 p.180 ‘아래로부터 위로’의 정치가 ‘위로부터 아래로’의 정치가 되면서부터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뭔가 항의를 표하는 것이 모조리 불공한 일이 되고, 반역이 되었다는 것이다. 왕정(王政)의 하향적(下向的), 일방적 권력 집행을 비판한 다산의 생각은 조선시대 유가(儒家)로서는 정말 발설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왜냐하면 다산의 논리를 연장하면, 정치적 단위마다 존재하는 정치권력을 비판해 갈아치울 수 있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백성이 왕을 갈아치우고, 백성이 정치권력을 쥐어야 한다는 쪽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산의 주장은 엄청나게 혁명적인 것이다. --- p.2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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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시대를 사는 사람이 아니고, 21세기의 한국 사회를 사는 사람이다. 조선시대는 나의 학문적 관심대상이지만, 21세기 한국 사회는 나의 삶이 이루어지는 구체적 시공간이다. 나에게 후자가 더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조선시대는 현재 내가 처한 삶의 조건을 이해하고, 또 삶을 만족스럽게 변화시키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이 책에 실린 글이 끌어대는 조선시대의 글 역시 그 방편의 하나다. --- 「책머리에」 중에서
조선시대 사건을 통해 본 현대 사회 읽기 독법 한문학을 현대의 텍스트로 생생히 살려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강명관 교수. 그는 광범위한 지적 편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풍속사 읽기를 시도하고 있으며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문학을 쉽게 풀이한 저서들을 다양하게 출간하였다. 또한 그는 조선시대에 지식이 어떤 의도를 갖고,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어 유통되는가,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머릿속에 어떻게 설치되어 인간의 사유와 행위를 결정하는가, 그리하여 어떤 인간형이 탄생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왔다. 이 책은 강명관 교수가 조선시대의 사건을 통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거기서 얻은 생각들을 펼쳐놓은 글들의 모음이다. 『시비를 던지다』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 특히 한국사회의 정치, 사회, 교육 등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저자의 독특한 시선으로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따지고 있다. 노비와 비정규직, 21세판 ‘열녀’, 지방이라는 식민지, 훈장 내쫓는 학부모와 강사 내모는 대학 등 저자가 들려주는 현실 속 이야기는 과거 속 옛사람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바로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가 겪는 일인 것이다. 백성들의 노력 위에 풍요로움을 누렸으나, 자신의 안위를 챙기느라 백성을 버리고 떠난 임금과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미국 쇠고기 수입과 대운하 사업을 찬성하는 그분들,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유명했으나 친일파로 밝혀진 장지연의 이야기, 국가권력으로 기녀제도를 존속시킨 양반들과 재수사에 들어간 연예계 ‘장자연’ 사건, 가짜 어보(御寶)를 찍은 홍패를 팔아먹다 걸린 가짜들과 신정아 가짜 학위 사건 등 현대 이야기를 저자의 학문적 관심대상인 조선시대의 이야기를 통해 맛깔스럽게 풀어내고 있다. 우리가 겪고 있는 현대 사회 이야기에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칼날을 거침없이 들이대는 저자의 글에 때론 통쾌함을 느끼게 된다. 「한겨레」와 다산연구소의 「실학산책」, 그리고 다양한 곳에 쓴 60편의 글을 총 4부(정치, 사회, 교육, 다산과 연암의 이야기)로 구성하였다. 옛글을 통해 내 삶의 조건과 지표들을 그려내다 저자는 가짜론부터 탐관오리 불멸론, 소인배 승승장구론, 소인배 등급론까지 옛글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소소한 일상, 여행,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지는 사건 등을 통해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풍자하고 있다. 그의 글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현재, 지금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내 삶의 조건과 지표를 정확히 그려내며,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가짜를 만들어내는 진짜 범인」에서는 종류와 성격이 다른 가짜론에 대해 이야기한다. 『옹고집전』의 진옹가와 헛옹가의 한바탕 시비 사건,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가짜 유유(柳游)라는 인물을 만든 사건, 가짜 어보(御寶)를 찍은 홍패를 팔아먹다가 걸린 사건에서 신정아 가짜 학위 사건까지 글을 푼다.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위조와 가짜를 생산해내는 사회구조와 그 구조를 반성하지 않는 풍토가 어찌 그리 변하지 않았는지 놀랄 정도다. 「19세기 ‘선전관(先錢官)’과 21세기 ‘강부자’」에서는 윤기(尹?)의 문집 『무명자집(無名子集)』에 실린 「정상한화(井上閑話)」의 이야기 한 토막을 들려준다. 원래 선전관(宣傳官)은 임금의 명령을 전하는 무반직으로,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는 중요한 관직인데, 이 관직의 이름이 선전(先錢)으로 바뀐 것이다. ‘벼슬을 하려는 사람도 돈을 바쳐야 하고, 벼슬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돈을 우선시하는 법’이라며 매관매직, 곧 ‘관직 판매’라는 현상과 소수 세력에 의한 국가권력의 사유화는 조선이 기우는 데 일조하지 않았는가. 돈과 권력, 학벌과 인척관계로 결합한 ‘고소영’과 ‘강부자’가 지배하는 세상, 21세기 대한민국 사회는 정확히 19세기 조선의 연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입시에 짓눌린 ‘김 정승의 아들’」에서는 천자문 한 줄을 익히지 못한 명문가의 아이가 결혼을 하고 난 후 뒤늦게 부인을 통해 글자를 배워 과거에 합격하고 좋은 벼슬 지내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를 통해 공부의 압력, 과거 헇격의 압력에 짓눌린 조선 후기 양반가 청소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조선 후기의 과거 공부는 ‘합격증서’를 얻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었고, 윤리적 성숙을 보장하는 지식과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인식의 확장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문의 영광을 위해 공부가 강요되어, 입시에 짓눌린 명문가의 아들은 머리가 굳어버린 것이다. 조선시대의 과거는 현재 대학 입시를 위한 공부 교육으로 바뀌었을 뿐이며, 대학이 진리나 윤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 아니라, 한 개인의 카스트를 정해주는 기관일 뿐이라며 세월은 변했으되 그저 크게 변한 것 같지 않은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탕론(蕩論), 아래로부터 위로의 정치」에서는 다산 정약용의 글 「탕론(蕩論)」을 통해 ‘위로부터 아래로[上而下]’의 정치가 아닌 ‘아래로부터 위로[下而上]’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그 당시에는 굉장히 혁명적인 다산의 주장을 이야기한다. 다산의 생각은 그 당시 유가(儒家)로서는 발설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백성이 왕을 갈아치우고, 백성이 정치권력을 쥐어야 한다는 해석으로 읽힐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와 함께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고 하는 민주정치를 표방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대통령과 국회위원,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뽑는 선거 때만 ‘하이상’이고, 선거 후에는 오로지 ‘상이하’인 현실을 걱정하면서, 과연 얼마나 세월이 흘러야 다산의 글이 정말 흘러간 옛글이 될 것인가를 되뇌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