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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2부 3부 옮긴이의 말 집요한 농담에 대한 단상 * 듀나 |
Martina Wild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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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처럼 파란 커피네요?”
요요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했다. “터키옥처럼 푸른빛이 난다고 해서 터키 커피라고도 하지. 색깔만 놀라운 게 아냐. 맛을 보면 정말 깜짝 놀랄걸?” 요요는 약간 단맛이 나는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평생 이런 커피는 처음 마셔 보는 것이었다. 카페 파이루츠는 쌉쌀하면서도 묘한 여운이 남았다. 푸른 터키옥 빛깔의 커피는 목을 넘어가는 순간, 온몸에 기적과도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명치끝이 싸하면서 마치 파란 물감이 번지듯 따스한 기분이 온몸에 퍼졌다. 요요는 자기도 모르게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들이켰다. --- p.87 “장벽의 두께라고? 그거에 관해서야 의견이 분분하지. 나는 개인적으로 장벽의 두께가 일정하지 않다고 봐. 그러니까 장소에 따라 두꺼운 데가 있는가 하면 얇은 곳도 있지 않을까. 50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곳이 있고, 1킬로미터가 넘는 곳도 있을 거야. 게다가 장벽은 아래로 내려올수록 위보다 두꺼워. 다시 말해서 땅속에 있는 장벽의 뿌리는 그 두께가 몇 킬로미터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거지. 이런 계산이 맞다면 어느 정도 장벽 속에 머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일 거야.” --- p.149 “참 유감이군.” 마침내 알리시아가 입을 열었다. “우린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일 수 있을 텐데.” 요요는 귀를 의심했다. 저건 무슨 수작일까? 시간을 벌려는 것일까? 아무튼 진심은 아니다. 그게 아니면 돌았거나. “네가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니구나.” 이렇게 말하며 요요는 마침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 p.176 “뭐라고요?” 내가 되물었다. “이 지하 공간이 어디에 있느냐고.” “그거야 노랑 정원이겠죠.” “아니, 틀렸어. 우린 바로 장벽 바로 밑에 있어.” 장벽 바로 밑에! 난 너무나 놀란 나머지 흑 하고 입을 다물며 눈을 크게 떴다. “장벽 바로 밑? 아냐, 안 돼, 어떻게……. 불가능한 일이에요.” “천만의 말씀. 여기서 나가는 순간, 넌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될 거야.” --- p.264 알리시아는 기분 좋게 웃었다. 승자의 웃음이었다. 권총을 풀밭에 던진 알리시아는 요요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요요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좋아.” 다시 알리시아가 말했다. “난 네가 모든 걸 망쳐 놓으리란 걸 알고 있었지.” 그런 다음 알리시아는 부하들을 불러 요요를 데리고 가게 했다. 요요는 부하들에 이끌려 한참 숲길을 걸었다. 걸어가는 동안 하늘이 빙빙 도는 것만 같았다. 알리시아가 키스를 하다니. --- p.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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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적 상상력과 인문학의 향연,
상투적 사회에 대해 반기를 든 십대들의 이야기! 무루스(Murus)는 라틴어로 벽을 뜻한다. 마르티나 빌드너의 장편소설 무루스는 24세기를 배경으로 장벽을 사이에 둔 이질적인 두 공간의 충돌을 통해 SF적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장벽이 갈라놓은 세계는 이분법의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무려 390년간 지속된다. 한쪽이 최첨단 미래도시라면 다른 한쪽은 납득할 수 없을 만큼 문명이 거세된 사회다. 사회의 상투적인 양극단의 모습을 용납할 수 없는 십대들이 장벽을 둘러싼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지금까지의 세계는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간다. 24세기 현재, 390년 전에 세계를 둘로 가르는 장벽이 세워졌다. 장벽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태어나자마자 강보에 싸여 버려진 아이, 요요는 가축을 쳐서 생계를 유지하는 농가에서 길러진다. 장이 서는 날이면 기득권층이 거주하는 노란 섬에 가서 그들의 명령과 질서에 따라 움직이며 길러온 가축을 내다판다. 노란 섬의 대상인이자, 도시의 최고 권력자인 오마르 무살라와 그 일족을 제외하면 주민들은 음악도 학문도 알지 못하고 그저 근근이 살아갈 뿐이다. 이들에게 유일한 법은 장벽을 숭배하는 것, 그리고 장벽의 표준 높이로 알려진 22미터보다 높은 건물을 짓지 않는 것이다. 장벽을 욕보이거나, 장벽을 세운 알레프 부스타니의 무한한 지혜를 의심하는 것조차 금기인 이곳에서 장벽은 주민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는 종교이자, 그 자체로 권력이다. 어느 날 요요의 집 앞에 머리가 박박 깎인 채 버려진 한 소녀, 로테가 발견된다. 로테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로테의 상처를 치료할 약을 구하려다가 자기도 모르게 전혀 다른 세상을 통과하고 온 요요, 어딘가 이 세계의 사람 같아 보이지 않는 시몬을 만나 예상치 못한 모험에 빠져든다. 벽을 넘어온 자는 기억을 잃는다, 기억을 잃지 않는 유일한 통로는 미로 속에 감춰졌다! 이제 곧 세상의 종말이 올 거라는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도 장벽은 우뚝 서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얼마나 길게 늘어서 있는지, 그 두께가 어느 정도인지, 높이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측정하지 못한 채, 세계의 중심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흉흉한 소문 속에 아이들이 장벽 너머에서 건너온다는 이야기가 바람에 실려 떠돌고, 장벽을 넘어가거나 넘어오는 사람들은 모조리 머리가 이상해져버린다는 말까지 나돈다. 장벽의 저쪽에서 로테를 찾아온 그녀의 아빠 시몬은 장벽 학자로서 지식을 총동원해 기억을 잃지 않고 벽을 넘어오지만 그 통로를 다시는 찾지 못한다. 모든 기억, 자신의 존재 자체를 잊으면서까지 장벽을 넘어온 이들은 다시는 영영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지 못할 운명에 처한다. 장벽에 대한 모반을 꿈꾸다가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자들은 이제 두 가지를 모두 해내야 한다. 하나는 장벽을 부수는 것, 또 하나는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다. 분리되지 않으면 엉망진창이 된다고 믿는 자들 VS 벽이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믿는 자들 이 소설은 철저하게 구체적인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세계는 과연 인간의 욕망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머지않아 멸망이 도래할 것이라고 믿는 자들과 세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분리를 주장하는 자들의 갈등은 처음부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메모 구슬과 자가용 에어 모프, 최첨단 지하 건물과 지하 수송 수단, 실험적인 양식의 건축물 등에서 비롯된 기계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은 결코 벽을 허물 생각이 없어야 옳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문명을 고도로 발달시킨 벽이 세상의 암적 존재로 자라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행동한다. 이들이 혁명에 다가가는 과정은 복잡한 기계 속에서 나사를 정확히 조이는 일처럼 SF 세계의 논리에 정확히 일치한다. 모험과 혼돈의 극단, 과학의 옷을 입은 철학적 상징의 총체! 제3의 공간, 장벽의 내부가 펼쳐진다. 장벽의 내부는 누구도 쉽게 통과할 수 없는 미로 속이다. 그 안에서 시간은 멈추고, 바깥 세계와는 상관없는 그곳만의 시간이 흘러간다. 장벽을 처음 세운 자, 알레프 부스타니를 위한 세계인 이곳에서 그의 허락을 얻지 못한 자들은 누구도 온전히 자신을 지켜낼 수 없다. 장벽의 권위는 세계에서 유일한 가치를 지닌 장벽 학문에 의해 더 공고해지며, 이를 추종하는 자들은 바로 장벽의 권위에 의해 더욱 부유하고 강력해진다. 벽이 가르고 있는 것의 이질성과는 별개로 아예 독립된 공간으로 존재하는 벽의 내부는 갇힘과 부숨, 그리고 탈출의 변증법을 실현시킨다. 혼돈의 공간이 제시하는 마력과 과학의 경계적인 상상력은 구체적인 이론들을 들이대며 카오스적 이성의 향연을 펼쳐 보인다. 『무루스』는 인류의 욕망과 세계의 개별적 원동력을 혼돈과 분리, 이성과 비이성, 문명과 반문명의 모습을 섞어 폭발 직전 상상력의 도가니를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