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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며: 일제 식민지 시대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1부 ‘사라리맨’의 일상, 반도에 분 ‘바람’ 1. 봉급날이 서러운 사람들 _ ‘사라리맨’의 애환 2. 정들이고 돈 빼앗은 가짜 경성제대 학생 _ 식민지 조선의 교육열 3. 스위트 호-ㅁ, 문화주택 한 채 가져보았으면 _ 문화주택 열풍 2부 근대 소비문화의 풍경 1. 좃고 낫분 것은 별 문제로 하고 어떠튼지 대세 _ 백화점의 약진 2. 스타일의 새 시대를 열다 _ ‘모던’ 그리고 유행 3. 손님의 마음을 ‘꼬여내는’장사법 _ 조선 상인의 마케팅 4. 히트송의 필수 조건, 조선스러운 맛 _ 대중 가요로 본 일제 강점기 3부 가난의 시대, 소외의 시대 1. 집 갖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네 _ 토막촌 심방기 2. 하느님이여! 이 불쌍한 인생을 굽어보소서 _ 가난과 싸우는 기술, 투빈기 3. 졸업을 했으나 할 일이 있어야지 _ 식민지를 울린 청년 실업 4. 조선인은 종로에서, 일본인은 본정에서 _ 경성의 분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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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고 기억하기 불편한 역사’바라보기!
일제 식민지 시대는 ‘수탈과 억압적 지배로 점철된 수난의 역사’로 기억되는 그래서 해방 이후 지금까지 우리에게는 우선 청산이 되어야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청산’이라는 공적인 염원과는 달리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철도, 병원 등의 근대적 시설이 건설되고, 근대적 제도가 도입됨으로써 한국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된 시기”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보편적 인식 속에는 ‘부끄러운’ 그래서 기억하기 ‘불편한’ 역사로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여전히 유효한 관념인 ‘부끄럽고 기억하기 불편한 역사’로 남아 있는 이 시기를, 당시를 살아간 사람들의 일상의 모습과 관념, 욕망 등을 통해 이야기한다. 식민지 시대를 전공한 두 저자는 비록 ‘1920년대와 30년대’라는 시간과 ‘식민 도시 경성’이라는 공간으로 한정했지만, 샐러리맨의 일상, 높은 교육열과 좋은 집에 대한 열망, 백화점으로 대표되는 소비와 다양한 유행의 형태, 소외받고 가난한 자들의 모습 등을 통해 ‘1920년대와 30년대 경성의 일상’이 “큰 틀에서 지금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관습, 문화 등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설명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전차나 전기, 백화점, 화려한 주택 등 이전의 조선 왕조와는 다른 표피적 변화의 이면에 존재하는 “식민주의자의 이해관계가 철저하게 관철된 억압과 차별”의 모습을 간과하지 않는다. 월급쟁이도 월급쟁이 나름, ‘사라리맨’의 애환 모두가 가난을 면하지 못하던 식민지 시기였기에, 게다가 “마뜩한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던 식민지 조선의 여성들”에게 매월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사라리맨’은 한때 최고 신랑감이었으며 사회적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경성이라는 대도시의 주민으로 남부끄럽지 않게 살려면 매월 4∼50원 정도의 수입이 있어야 했던 1930년대에, 월급쟁이의 다수를 차지한 월수입 2∼30원 정도의 ‘사라리맨’의 고달픈 일상과 애환은 7∼80년이 지난 오늘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복잡한 전차 안에서 시달려 했던 고달픈 출근길, 회사의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유한 ‘출세와 승진의 방법’, 1년에 몇 번 있는 보너스에 일희일비했던 그들의 모습, 그리고 문화주택 한 채 장만하기 위해 은행 대출을 불사했던 그들의 모습 속에 오늘 우리의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다. 츨근 인파로 가득한 전차에는 월급쟁이의 고달픈 애환이 서려 있었다. 전차 안의 풍경은 지금의 지하철 풍경과 어느 정도 닮아 있어서 이른바 ‘쩍벌남’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고 전차 좌석을 안방처럼 여기고 드러눕는 얌체도 적지 않았다. --- p.31 소비 공간의 패자, 백화점의 등장 1920년대 후반 근대 소비문화가 유입되면서 경성의 남촌을 중심으로 소비문화의 대표 장소인 백화점과 고급상점들, 그리고 카페나 ‘빠’와 같은 유흥업소들이 등장했으며, 이후 1930년대가 되면서 ‘미쓰코시(三越)’, ‘미나카이(三中井)’, ‘조지아(丁字屋)’, ‘히라다(平田)’ 등의 일본 백화점과 조선인 박흥식의 ‘화신’ 백화점이 상권을 놓고 경쟁한 5대 백화점 시대가 열렸다. 각각의 백화점은 경품 제공과 가격인하, 무료 배송, 상품 정보지 발송 등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치며 한정된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하지만 번쩍이는 철과 유리로 만들어진 건물이 세워지고 소비를 욕망하게 하는 상품들이 넘쳐났다 해도 그것을 소비할 수 있는 자들은 소수였고 민족적으로도 구별되었음”을 저자들은 잊지 않는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백화점 행사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낸 것은 경품 행사였다. 백화점들은 물건을 구입하면 경품권을 주는 방법으로 사람들을 끌었는데 경품은 현금부터 문화주택까지 다양했다. --- p.31 가난의 시대, 소외의 시대 이제 “물욕에 사로잡힌 여인네들과 남정네들이 도시 상점가”를 누볐으며, 이들 중 경제력을 갖춘 소수는 “고급상점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유행”을 선도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가난한 조선인들 중에서 유행과 문화를 향유하고 소비할 수 있는 자들은 소수였다. 게다가 1920년대 이후 세계 경제공황의 여파가 조선에 미치면서 조선인들의 삶은 가난에 더욱 찌들었다. 한때 출세를 보장받은 전문학교나 대학교의 졸업생들조차 취직자리를 구하기 위해 말 그대로 목숨을 걸었을 정도였으니, 경성으로 이주했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지방민들의 삶은 더욱 처절할 수밖에 없었다. ‘토막’ 혹은 ‘장옥’살이로 대표되는 가난한 사람들의 소외, 도시 개발을 위한 빈민촌의 강제 철거, 그리고 당시를 휩쓴 실업문제 등은 비록 반세기도 더 지난 과거의 모습이지만 오늘날 우리? 당면한 문제들을 절묘하게 투영하고 있다. 억울함을 이기지 못한 주민대표는 “이런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사람이 들어 있고 가구가 그대로 있는 집을 마구 헐어버렸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어린애들하고 오늘 잘 곳이 문제입니다. 못 벌어먹을지언정 이 집은 헐지 못하겠다고 하니까 인부들이 마구 욕을 하고 헐어버렸습니다. 인정도 없고 눈물도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까”라고 호소했다. --- p.1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