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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Berlin, Germany - 예쁜 척하지 않아서 좋은 너 Amsterdam, Netherlands - 누구에게나 아주 상냥한 방문 Barcelona, Spain -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순진한 얼굴 Gyeongju, South Korea - 둥근 무덤을 만날 때마다 뾰족함을 잃었다 Seoul, South Korea - 실은 가장 고마운 생활의 내역 Paris, France - 낭만적인 모든 것들의 숙소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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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분주한 수많은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고민은 결국 ‘나’에 대한 것이다. 나에게 온전히 몰입하겠다는 다짐이 자꾸 무너진다. 그럴 때면 하루하루를 모면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어떤 날은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거대한 결혼식 같다. 번잡하고 알맹이는 쏙 빠져 있는 상황, 머물기 싫은, 그렇다고 먼저 떠날 용기도 없는 나날. 수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에 정작 내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누군가로부터 구할 수 없는 스스로의 소식은 화려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 나에게 닿는 일을 좀더 쉽게 만드는 것은 결국 ‘여행’이었다.
* 멀리서 들은 부고 소식처럼 외로운 기분에 잠긴다. 살짝 좋은 기분이 엿보이면 나는 겨드랑이가 아프도록 손을 흔들었다. 혹시 나를 스쳐 지나갈 수 있으니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내가 여기에 있다고, 나를 태워가라고. 사건이 될 만한 하루를 찾아 나선다. 묵묵부답하다가도 낯선 색깔로 반짝이는 단서들. * 실제로 우리의 괜찮은 모습은 찍히지 않는다. 당황할 때, 슬플 때, 기쁠 때, 크고 작은 사건에 부딪힐 때…… 내 모습이 투영된 무언가 앞에 서 있지 않는다. 모두 삶의 현장에서 흘러갈 뿐이다. 우리는 아무런 노력 없이 삶의 자리에 머물면 된다. 그것만으로 유별나고 궁금한 여자가 된다. 어쩌면 타인이 바라보는 눈빛, 찍히는 시선보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응시하는 것이 일상을 영화로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제대로 ‘내’가 되는 것. 그것만이 주인공이 되는 길이다. * 바닷물이 품절되는 일 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끔씩 일어나면 좋겠다. 안일한 체류자의 안색을 흔드는 일이 있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그림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마음 뻐근한 일이 생기면 좋겠다. 복숭아를 집는 그녀의 물감 묻은 손에 누군가 반해버리면 좋겠다. 짧은 베를린의 여름에는 사랑의 범죄를 저지를 엉뚱함이 발하면 좋겠다. 용감한 자신을 발견하면 좋겠다. 맥주 같은 야단스러운 위로가 있으면 좋겠다. 자주 길을 잃으면 좋겠다. 종이의 예술로 외로움의 벌금을 지불하면 좋겠다. 생소한 감정의 활약이 들리면 좋겠다. 갓길에 떨어진 타이어처럼 혼자일 때, 스스로의 그림이 단 하나의 구원이 되면 좋겠다. * 맛있는 음식을 먹고, 푹 쉬는 여유를 가져도 마음 한구석 낌새가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멍석 깔린 기념일에 쓰임새가 없는 사람이다. 흥겨움에 보탬이 되지도 못하고,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특별함이 강요되는 날은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숙제가 잔뜩 쌓인 기분이 된다. 숙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선물이 아니라 다음 날, 특별함을 씻어낸 개운한 아침이다. ‘그냥’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많은 날 중의 하나. 남은 오늘 하루는 실속 있고 조용한 하루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창문에 쌓인 ‘메리크리스마스’ 글씨에 쌓인 눈을 털어내다가, 귤을 까먹다보니 손톱에 12월이 낀다. 남은 시간 동안 스물넷의 이름을 더 많이 불러달라고 말하며 보다 젊은 네 번의 날만이 남았다. * 1월 1일이 지나고 똑같은 하루가 이어질 것이다. 단지 한 해의 시작이라는 그럴싸함으로 포장된 날을 통과하고 다시 무뎌질 것이다. 기대한 것이 이루어지기보다 실망하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이제는 잘 안다. 덜 익은 고기와 냉동만두로 할 말을 잃게 했던 식당처럼. 바라고, 당하고, 잊히고, 흩어지고, 부대끼면서 한 해를 살 것이다. 출근길에 급하게 아이라인을 그리고, 주말을 기다리고, 크고 작은 사건에 절망하거나 열광하며, 예측할 수 없는 고약한 365개의 날들 앞에 서 있다. 12월 31일, 혹은 1월 1일의 생각들을 적절히 기억하며 살기 원한다. 1년의 시작과 끝에 우리가 계획하는 호들갑을 정확히 365개로 나눠 가지면 좋겠다. 그것이 나의 새해 소망이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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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분주하다. 하는 것도 없이. 나는 그대로인데 무언가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 변화에 대처하는 계획을 세우거나 지난날을 반성할 틈도 없이 시간은 무심히 제 갈 길을 간다.
스물셋, 마음껏 떠난 여행을 밑천삼은 『조용한 흥분』으로 불현듯 다가온 작가 유지혜도 그랬다. 분주하고 초조했다. 어느새 서툰 행동도 귀엽게 넘어갈 수 없는 나이 스물다섯이 되어버렸다. 알고 있다. 한창 좋을 나이라는 것을. 하지만 책임져야 할 미래의 무게가 묵직하게 다가오는 나이이기도 하다. 어른다운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왠지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확신과 불안이 반반씩 섞여 있는 나이, 타인의 매력적인 오답에 끝없이 흔들리는 나이. 우리가 ‘청춘’이라 예찬하는 이들이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여행을 다녀오고, 한 권의 책을 펴내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작가는 생각했다. 그토록 떠나고, 돌아오고, 일상을 열심히 살아도 왜 마음이 분주한 걸까. 그건 결국 ‘나’ 때문임을 알았다. 나에게 온전히 몰입하겠다는 다짐이 자꾸 무너지고, 하루하루를 간신히 모면하는 데 급급했다.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니 SNS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에 정작 내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에게 연락하고 싶었다. 나에게 닿는 일을 좀더 쉽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여행’이었다. 스물넷 끝자락에 먼 곳으로 떠났다. 때로는 서울의 일상을 여행했다. 마음이 달아오르는 초여름에는 파리로 갔다. 대단한 결심이나 씩씩한 꿍꿍이는 없었다. 가벼운 나이에 작은 돌 하나 얹기에는 여행만한 것이 없다는 믿음만 있었다. 내 안의 어리석은 목소리를 충동적으로 여길 정도로 몽땅 반영했다. 속이 후련했다. 늘 발견과 기쁨만 있는 여행은 아니었다. 때때로 막막했다. 생각보다 초라한 나와 완벽하지 않은 날을 견뎌야 했다. 그 여행 속에서 매일 일기를 적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결정적 순간으로 여겼다. 그리고 알았다. 여러 모양의 ‘내’가 건재하다는 것을. 누군가를 만나는 시간, 다른 것에 집중하는 순간에도 사실은 ‘나’를 만났던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제목을 ‘나와의 연락’으로 정했다. 먹고 사는 것에서 자유롭지 않더라도 ‘나와의 연락’을 첫째로 두고 싶었다. 베를린, 파리, 바르셀로나, 서울, 경주…… 유지혜의 두번째 여행기 『나와의 연락』은 여기저기에서 스스로 묻고 대답한 솔직한 연락이다. 작가와의 대화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