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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미국식 정치에 포획된 세계 18 | 자본의 도구로 전락한 정치 20 | 대처와 레이건의 사생아, 극단적 중도파 23 1장 잉글랜드가 던지는 질문 대처주의를 연장한 블레어주의 33 | 영미형 자본주의의 민낯 39 | 신노동당 정부, 사유화에 박차를 가하다 42 | 스코틀랜드의 도전과 신노동당 정부의 대외 정책 47 | 신노동당의 몰락과 보수당-자유민주당 연립정부 51 | 긴축 정책에 맞서 대학생들이 거리에 나서다 57 | 여물통 앞에 늘어선 신노동당 정치인들 64 | 빈껍데기가 된 국민보건서비스 79 | 체제의 나팔수가 된 BBC 87 2장 스코틀랜드가 내놓은 대답 극단적 중도파, 공포 선동의 찬물을 끼얹다 104 | 스코틀랜드가 보여준 가능성, 정치의 대중적 부활 112 3장 곤경에 빠진 유로랜드 위기에 빠진 신자유주의 142 | 극단적 중도파의 모체, 유럽연합 146 4장 나토폴리스 적이 아닌 동맹국을 겨눈 무기, 나토 159 | 태평양에 제2의 나토가 등장할까 173 5장 우주전함 엔터프라이즈호 적은 사라져도 군비는 줄지 않는다 181 | 지구 권력을 주도하는 미국 183 | 중국의 부상을 둘러싼 시나리오들 187 | 미국식 지구 자본주의의 진실 191 | 자본주의의 정치적 은폐에 닥친 위기 197 | 극단적 중도파의 시대 206 | 제국은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 209 | 군사력, 제국이 남겨둔 최후의 보루 212 | 경제결정론의 함정에 빠진 미국 쇠퇴론 220 | 중국은 미국에 대적할 수 있는가 224 | 미국의 지구화 VS 중국의 지구화 230 | 누가 제국의 진로를 바꿀 것인가 234 6장 대안 시리자, 유럽연합의 공포 선동에 맞서다 248 | 패배의 시대, 승리의 전략을 모색하는 포데모스 252 | 세계 정치의 현주소: 후퇴와 혼동 259 | 아래의 변화와 위의 변화가 만나야 한다 266 부록 신노동당 하원의원의 인생 일곱 굽이 270 옮긴이의 말 272 |
Tariq A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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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함께 붕괴한 것은 소비에트연방이나 ‘공산주의 이상’ 혹은 ‘사회주의 해법’의 유효성만은 아니었다.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도 함께 추락했다. 승리한 자본주의의 돌풍이 전 세계를 휩쓰는 상황에서 사회민주주의는 과거 자신들의 사회 프로그램을 구성하던 요소들을 지키려는 결의나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신 자살을 선택했다. 이것이 바로 ‘극단적 중도파’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p.10
“오늘날 권력과 돈의 공생은 세계 어디서든 믿을 수 없을 만큼 극단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내가 유럽 및 북아메리카 주류 정치에 이름 붙인 ‘극단적 중도파extreme centre’는 바로 이렇게 체제에 봉사하면서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겁 많고 고분고분한 정치인들을 뜻한다.” --- p.13 “사람들의 질병과 질환으로 돈을 벌 수 있죠. 음, 그 발단은 제약 산업과 백신 제조업체예요. 백신으로 수익을 내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면, 질병과 치료로 수익을 내는 것도 안 될 이유가 없죠. 하지만 잉글랜드의 국민보건서비스는 두말할 필요 없이 재분배를 위해 도입된 제도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돈이 환자가 아니라 주주의 필요에 따라 흐르는 상황이고, 이것이야말로 저들의 진짜 관심사입니다.” --- p.87 “모두가 정치에 대한 이런 대중적인 관심에 주목했다.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서 캠페인에 동참하고 선전하며 투쟁한다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실감했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에 주어진 주민투표라는 경험은 자기 조직화의 새로운 기회로 작용했고, 그 캠페인은 철저히 정치적이었다. 게다가 스코틀랜드민족당은 극도로 현명한 접근법을 취했다. 이 당은 스코틀랜드를 잘 모르는 잉글랜드인들이 당연하게 여겼던 고정관념에 영합하지 않았다.” --- p.113 “유럽연합은 혼란에 빠져 있다. 만사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려고 유럽연합 기구 전체에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여놓고는 정상으로 복귀했다고 선전하지만 도무지 설득력이 없다.” --- p.129 “극단적 중도파가 어느 곳에서든 권력을 행사하면서 부유층에게만 특혜를 안겨주는 긴축 조치를 부추기고 해외 전쟁과 점령을 지원한다. 오바마도 대통령도 유럽-아메리카 정치 세계의 내부자일 뿐이다.” --- p.136 “새로운 시장 극단주의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자본이 사회복지 중 가장 중요시되는 영역으로 진출하는 것이 필수적 ‘개혁’으로 강권됐다. 공공 부문에 타격을 가하는 민간자본유치 프로그램이 규범이 됐고, 《이코노미스트》와 《파이낸셜 타임스》는 신자유주의 낙원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간주된 나라들을 상습적으로 비난했다. 이러한 전환에 의문을 던지거나 공공 부문을 옹호하거나 공공재의 국가 소유를 주장하거나 공공주택의 헐값 매각에 항의하는 이들은 ‘보수적인’ 선사시대 공룡으로 손가락질당했다.” --- p.137 “실제 현실에서 나토는 미국의 통제 아래 유럽 동맹국들에게 군사적 우산을 제공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하지만 1949~1990년까지 냉전 기간 내내 나토가 단 한 차례도 전투를 벌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도해본 적도 없었고, 시험에 처한 적도 없었다. 실상 이는 적국을 응징하기보다는 동맹국을 통제하려고 고안된 군사 선전 조직이었다.” --- p.159~160 “지금까지 30년 넘게 지구상에는 미국과 겨룰 만한 경쟁국이 없었다. 일시적인 적들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미국의 지위에 감히 도전하지는 못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제국의 상태에 대한 잘못된 진단들이 독버섯처럼 퍼졌다. 어떤 이들은 미국 사회 내부의 혼란으로 제국이 해체되리라고 내다보았다. 인간사의 모든 제국은 다 무너졌으니 아메리카 제국 역시 망하는 게 필연이리라. 그러나 그 시점은 언제인가? 수많은 후퇴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임박한 파국이나 돌이킬 수 없는 쇠퇴의 징후가 거의 없다.” --- p.178 “미국의 몰락이 임박했다는 이런 그릇된 낙관주의의 토대에 내포된 한 가지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인 기능은 실질적인 저항의 포기다. 미국이 이미 기울었다고 생각하게 되면 이제 물음을 던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제국에 임종의 고통이 다가오고 있다면 실제 증상이 무엇인지 토론하며 시간을 허비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 p.179 “진실은 지구가 여전히 고정된 정치적·이데올로기적·군사적 축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덜커덩거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미국의 세계 지배가 황혼기에 접어들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워싱턴이 미국의 세계적 지위를 내줄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국내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정체 상태’에 빠졌다고 할 수 있지만, 해외에서는 오히려 일종의 과잉행동장애를 보이고 있다.” --- p.179 “공공 부문은 필수 ‘개혁’이라는 명목으로 짓밟혔다. 공공 부문이 영구 부채에 따른 노예계약 신세로 전락하리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핵심 서비스에 자금을 조달할 최선의 방식이라며 민간자본유치 프로그램이 강권되었다. 결국 이것이 규범이 됐다.” --- p.207 “어떤 변화든 그 출발점으로서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필요하다. 사상, 특히 급진적 사상을 구체화하는 것은 바로 행동, 투쟁 경험, 부분적 성취, 패배, 이러한 패배의 극복과 크고 작은 승리다. 일상적인 보수주의나 폭력적 반동의 시대에는 이런 진실이 현 상태의 무게에 짓눌려 대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중운동은 현존하는 의식의 한계를 날려버리고 급진 정치를 재생시키거나 재창조한다.” --- p.243~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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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레이스의 중도론 유행, 어떻게 볼 것인가?
이렇듯 좀 더 시야를 넓혀보면, 현대 사회에서 정치가 전반적으로 소멸해가는 근본 이유가 결코 특정 정권의 부패 때문은 아니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시기가 앞당겨질 것을 대비하여 가동된 최근의 대선 레이스는 최순실 사태만큼이나 의미심장하다. 대선 구도에서 두드러지는 점 중 하나가 바로 ‘중도론’이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와 친박 세력을 비판하며 나오는 목소리들 중엔 중도파(중도우파, 중도좌파) 혹은 (개헌론을 중심으로 한) 제3지대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게다가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중도정당 노선을 내세운 안철수와 중도우파를 표방한 반기문의 ‘제3지대’ 연합 구축을 외치는 목소리마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중도론이 꽤나 우세한 것을 보면, 차기 대권에서도 ‘탈신자유주의적 비전’을 모색하는 길은 요원해 보인다. 핵심은 결국 좌든 우든 극성향을 지양하고 중도를 지향하자는 것인데, 이러한 목소리들의 요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또한, 중도는 정말 그 이름에 걸맞게 중앙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세력인가? 앞서 언급했듯,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 책 《극단적 중도파》가 말하고 있는 핵심이다. 타리크 알리, 현대 정치의 고질병을 진단하다 타리크 알리의 책 《극단적 중도파》는 현대 정치에 내재한 이런 뿌리깊은 질병을 추적하는 작업이자 그에 맞서 대안을 모색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정권 내지는 정당의 교체로 해소되지 않는 좀 더 심층적인 고질병이 자리 잡고 있음을 간파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 대 반민주 혹은 개혁 대 수구와 같은 전통적인 이분법을 고수하는 방식으로는 국내 및 세계 정치가 나아가고 있는 전체적인 방향을 파악할 길이 없다. 타리크 알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자신이 ‘극단적 중도파’라고 명명하는 세력을 통해 구체화한다. ‘극단적 중도파’는 “사회 정치체제의 중심축(신자유주의)이 다른 어딘가로 조금이라도 움직이지 못하게 가로막는 정치 세력”을 가리킨다. 이 명칭은 특정 세력을 시사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그리고 그것이 사실이지만), 동시에 현 시대를 짓누르고 있는 거대한 압력이 무엇인지를 직시하게 하는 유의미한 틀이기도 하다. 좀 더 들여다보면, ‘극단적 중도파’라는 명칭 자체가 흥미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극우’나 ‘극좌’만 있는 게 아니라 ‘극중앙’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앙’이란 현재 형성돼 있는 세력 관계 속의 합의 혹은 균형”을 말하며, “지난 수십 년간 이 ‘중앙’이란 다름 아니라 신자유주의 합의였다”. 다시 말해, ‘극단적 중도파’란 신자유주의라는 축을 절대 교리로 삼아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그로부터의 어떤 이동도 용납하지 않는 강경한 정치 세력이다. 타리크 알리는 이러한 중도 세력에 ‘극단적’이라는 수사를 추가함으로써 중도가 결코 균형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이들 개개인은 사적 이윤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면서도, 신자유주의 체제에 의문을 던지거나 최소한의 공공 영역을 수호하려는 모든 시도들을 구시대적 유물로 간주하여 비난한다. 이런 시장 극단주의야말로 이들의 강력한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타리크 알리는 사회주의 몰락 이후 영국(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의 정치 상황을 집중적으로 서술하면서 ‘극단적 중도파’가 어떻게 출현했고 현재와 같은 주요 정치 세력으로 발전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분석의 또 다른 큰 축은 유럽연합 그리고 워싱턴 DC의 지구 자본주의 및 군사적 제국주의의 메커니즘을 겨냥한다. 특히 미국은 정치·경제·군사를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세계 패권국이며,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나라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요하다. 물론 본문에서도 언급되듯, 최근 들어 경제 위기에 바탕을 둔 미국 쇠퇴론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타리크 알리는 이런 쇠퇴론이 희망 섞인 관측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그는 워싱턴 체제가 기울고 있다는 허무한 낙관론에 맞서 미국 권력에 대한 철저한 분석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혹자는 세계 정치에 대한 알리의 분석이 한국의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석 대상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한국에서도 진행 중인 엄연한 현실이거나 닥쳐올 미래상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특히 의료민영화는 최근 ‘박근혜-차움병원-최순실’ 연합을 통해 상세히 폭로된 바 있고(다른 부문들의 민영화/사유화는 말할 필요도 없다), 미국의 지구적 군사 권력 역시 지난여름 한반도를 뜨겁게 달군 ‘사드 배치’를 통해 구체적으로 체감되고 있는 현실이라 할 수 있다. 사회주의 몰락과 ‘극단적 중도파’의 탄생 이른바 ‘극단적 중도파’는 이렇게 개혁 혹은 수구라는 이분법이 무너져내린 현대 정치의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타리크 알리에 따르면, 이 수치스러운 탄생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상징화된 사회주의의 추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회주의가 붕괴한 후, 적대 세력을 손쉽게 물리치게 된 자본주의는 완전한 승리를 구가하게 되었고, 최소한의 수준에서나마 진보적 구상을 모색하는 것이 정치적 의제에서 사라졌다. 즉, 자본주의가 체제를 독식하자마자, 민주주의는 곧바로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별다른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고, 자신들을 뽑아준 유권자들에게 그 어떤 효과적인 정책도 제시해줄 수 없다는 무력함만을 재차 확인했다. 그리고 이들은 곧 신자유주의라는 대세와 제국주의 전쟁의 요구에 기꺼이 굴복했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과 공적 영역의 붕괴가 바로 그러한 대전환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실업 혹은 반半실업, 가계 부채, 무주택 신세, 이에 더해 각종 서비스(보건, 교육, 공공주택, 대중교통, 공영방송, 저렴한 공공요금 등) 이용 가능성 축소와 삶의 질 저하 등이 그것이다.” 미국, 즉 워싱턴 DC가 주도한 이 일련의 과정은 우리에게 흔히 ‘전 지구적 자본주의’로 알려져 있다.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합의를 강경하게 밀어붙인 선구자들이었다. 복지를 축소하고 노조를 와해시키는 등 대처의 강경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분노한 영국 민중들은 1997년 총선에서 노동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 결과 보수당의 우세 지역인 런던에서조차 노동당이 압승을 거두었고, 보수당은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에서조차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했다. 하지만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은 집권하자마자 민중의 요구에 등을 돌렸다. 노동당 당수였던 존 스미스가 급작스럽게 서거하는 바람에 승리의 주인공이 된 지도자 토니 블레어는 ‘제3의길’(앤서니 기든스가 정초한, 사회민주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조화한 중도주의적 이념)을 내세우며 노동당을 철저히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블레어 일파는 금융자본과 경제적 이윤을 신봉하며 소득 불평등 문제를 간단히 무시해버리는 등 훨씬 더 진일보한 수준에서 대처주의를 계승하는 정책들을 내세웠다. 누구를 위한 긴축인가? 타리크 알리는 극단적 중도파의 친시장, 친기업 정책의 가장 큰 폐해로 각종 공공 영역의 붕괴를 언급한다. 영국의 극단적 중도파 정치인들은 집권기에 자신들의 재산을 막대하게 불리면서도 정작 국민들에게는 긴축을 강요했다. 반드시 혜택을 받아야 할 필수적인 복지 영역이 1순위로 긴축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비극이었다. 주택, 교육, 교통, 의료서비스, 언론 등 대부분의 부문들에 ‘민간자본유치PFI’를 통한 사유화의 타격이 가해지거나 긴축 정책이 실시됨으로써 영국 내의 비교적 탄탄했던 제도들이 소멸 직전에 놓였다. 알리가 상세히 작성해놓은 신노동당 정치인들의 블랙리스트(65~79쪽)는 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모든 항목들이 신노동당 집권기에 정부 부처의 요직을 맡은 이들 대부분이 은행가 혹은 기업가였다는 사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신노동당의 긴축 정책에서 요직을 맡은 데이비드 프로이트는 “주거 수당, 노동능력상실 수당, 장애 수당을 엄격한 ‘근로 의욕’ 기준과 연계되고 자산 조사를 전제하는 단일 급여로 통합”할 것을 권고했고, 교육 분야에 임명된 석유 기업 비피의 회장 출신인 브라운 경은 “대학이 마음껏 등록금을 인상할 수 있게 하거나, 학생 유치를 위해 기업처럼 가격 인하 경쟁을 벌이도록 해서 실패한 학교는 파산 처리”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재정 긴축을 지나치게 추종한 나머지 안전 장치를 설치하지 못한 철도는 끔찍한 참사를 빚었다(패딩턴 역 열차 사고). 무엇보다도 유럽에서 가장 사회화된 형태의 보건 시스템으로 자리매김해온 국민보건서비스NHS가 가장 거대한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대상이 되었다. 민간 영리 의료보험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영국 정부는 “공적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수준을 일부러 제한해서 국민보건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조장”하는 등 다양한 조치를 동원하여 사유화를 진행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의 질병을 이용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극히 반민주적인 제도가 자리 잡는 중이며, 정부는 이런 흐름을 저지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물꼬를 터주고 있다. 공영방송 BBC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BBC는 대체로 체제에 충성하면서도, 정치인들과 종종 충돌을 일으키면서 나름의 균형감각을 유지해왔으나, 신노동당 정부의 통제 하에서 철저히 관료주의적인 제도 언론으로 전락했다. 유럽연합, 극단적 중도파의 토양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의 요구에 절대적으로 속박되어 있기는 유럽연합 역시 마찬가지다. 유럽연합의 실체는 사회 연합도, 정치 연합도 아닌 은행가들의 경제 연합에 가깝다. 유럽연합의 이러한 면모는 특히 지난 2010년 그리스 구제금융을 명목으로 소집한 임시 경제위원회(이른바 ‘트로이카’)의 행적에서 잘 나타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유럽 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의 관료들로 구성된 트로이카는 파산 직전에 놓인 국가를 관리한다는 미명 아래 해당 정부에 사유화의 압력을 가한다. 여기에는 “보건 및 교육 예산 삭감, 공공 부문 감축, 정리해고, 국가 연금 축소, 실업수당 폐지” 등을 이행하겠다는 약속이 포함되며, 혹시라도 이러한 각서에 포함되지 않은 정책을 채택할 시 반드시 트로이카와 사전에 협의해야만 한다. 타리크 알리에 따르면 이는 그야말로 금융적 반半식민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유럽연합은 극단적 중도파 정당들이 세계 각지에서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훌륭한 토양을 제공해준다. 다시 말해, 트로이카의 기구에 종사하는 일개 관료들이 독립 정부에 제멋대로 관여하는 일련의 사태들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세력이 바로 극단적 중도파이다. 이들은 긴축 정책을 유럽연합의 정책 탓으로 돌릴 뿐만 아니라, 국내 경제가 악화된 원인을 유럽연합의 국가들로부터 노동력(이민자)이 유입해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흔한 표현으로, 이주민들이 국민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는 근본 원인을 은폐하기 위해 내세운 희생양일 따름이다. 알리는 유럽연합 자체도 모순투성이지만, 진짜 심각한 문제는 유럽에 대한 무비판적 옹호자들이 대다수라는 사실에 있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유럽의 지성으로 평가받는 몇몇 사상가, 이론가들조차 유럽연합에 대한 분석과 비판에는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참고할 수 있는 것은 매년 유럽의 진보적 경제학자들이 모여 경제 정책의 실패를 분석하고 진보적 대안을 제시하는 ‘유로메모랜덤’ 정도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즉, “누가 이들이 권고한 변화를 실현할 것인가?” 미국의 지구 권력 유럽연합이 극단적 중도파의 모체라면, 지구적 차원에서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에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이는 나토의 실질적인 기능을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자체 선전에 따르면 나토는 소련이라는 적을 격퇴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유럽 동맹국들을 통제하고 세계 곳곳에 미군 기지를 편성하기 위한 포석으로 기능하고 있다. 알리는 미국의 지구적 권력을 분석하면서 두 겹의 프레임이 요청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미국식 자본주의로 언급되는 경제적 우위와 군사력의 과시가 그것이다. 미국의 경제적 대항마로 중국이 부상하고, 2008년의 붕괴로 인해 국내 경제가 정체되면서 미국 쇠퇴론이 급속히 제기되고 있는 현실이지만, 그가 보기에 이것은 경제결정론의 함정이자, 설익은 낙관론에 기대 실질적인 저항을 포기하려는 나태한 태도에 가깝다. 미국이 경제적 측면에서는 지난 50년에 비해 다소 취약해졌을지 몰라도, 군사적,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적이 없는 상황에서도 지속되는 미국의 강박적 군비 지출은 워싱턴 체제가 아직 굳건하다는 사실을 증명해보일 따름이다. 이런 과잉행동은 정체 상태에 빠진 미국의 국내 경제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결코 간단히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현상이다. 알리가 보기에는 이러한 군사력이야말로 지구 자본주의를 보호하고 지탱하는 핵심 동력이며(태평양과 대서양 모두가 초대형 군산복합체와 세계 최대 국민경제의 무대이다), 따라서 미국의 군사력에 대한 엄밀한 분석 없이 미국 쇠퇴론을 주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대안은 가능한가? 타리크 알리의 분석대로라면, 유럽의 다수 국가들은 유럽연합 트로이카의 지배 아래 놓여 있고, 전 세계적으로는 미국이라는 강력한 헤게모니가 유럽연합은 물론 지구상의 모든 국가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구도가 그려진다. 알리가 반복적으로 주지하는 것처럼 미국이 여전히 제국의 지위를 점하고 있고, 그 밑에서 극단적 중도파 세력들이 신자유주의라는 중심축을 단단히 붙들고 있다면, 이런 흐름을 해체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 가능한가? 어떤 틈새도 보이지 않는 이 구도에서 과연 대안은 가능한가? 그는 2014년 스코틀랜드의 독립 주민투표, 남아메리카의 볼리바르주의 혁명들, 그리스의 시리자, 스페인의 포데모스와 같은 몇몇 대중 운동에서 급진적 대안의 실마리를 본다. 하지만 아래로부터의 운동만으로 변화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운동들은 단지 출발점을 제공할 뿐, 여기에 위로부터의 운동이 합세하지 않는 한 변화는 결코 지속될 수 없다. 그러나 위로부터 혹은 기존 구조 내부로부터의 변화는 아래로부터의 위협이 맞서기 힘들 정도로 강력하지 않은 한 발생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대중운동은 정치적 연속성을 유지할 항구적인 민주적 구조를 필요로 하며, 그런 구조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대중이 이런 운동들을 더 강하게 지지할수록 조직화의 필요성도 커지는 것이다. 그가 인용한 레닌의 경고 역시 이런 변화의 어려움을 표현하고 있다. “억압이 아무리 거세다 할지라도 항상 이것만으로 일국에 혁명적 상황이 도래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하층계급이 과거의 방식으로 살기를 원치 않는 것만으로는 혁명이 일어나기 어렵다. 반드시 상층계급도 과거의 방식으로 지배하고 통치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야만 한다.” -V. I. 레닌 결국 신자유주의를 무엇으로 대체할지, 또한 어떤 수단으로 그렇게 할지는 여전히 토론 주제로 남아 있다. 추천사 “타리크 알리는 명쾌하고 유창하고 문학적이며 극도로 정직하다!” ―하워드 진, 역사학자 “알리는 진실을 복원하고 무지로 뒤덮인 이슈들에 불을 밝힌다.” ―《르 피가로》 “타리크 알리의 표현인 ‘극단적 중도파’는 우리의 문제들을 묘사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제공한다. 그에 따르면 극단적 중도파는 민주주의에 어떤 대안도 타당하거나 가능하지 않는다는 점을 과시하는 것을 핵심 과제로 삼는다.” ―제임스 킬고어, 좌파 운동가, 《우린 모두 짐바브웨인이다》 저자 “알리는 여전히 국외자이며 지적인 폭격수다. 옥스퍼드의 세련된 논객!” ―《옵서버》 “이 책은 불편한 독서를 유발하기 때문에 백악관의 문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사유를 정지시키는 포괄적이며 강력한 비평!” ―《파이낸셜 타임스》 “타리크 알리는 그를 ‘68 정신’의 상징으로 만들어준 그 열정을 잃지 않았다.” ―크리스토퍼 히친스, 《신은 위대하지 않다》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