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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에 쓰는 서문
1부 평범한 의욕 자작 해설 작가와 비평가의 현실적 원근론 그것은 울음이다 나의 첫 창작 받을 줄도 모른다 2부 신춘문예에의 길 신춘문예에 당선되려면 굳은 손을 푸는 워밍업 《산문시대》 이야기 신춘문예 당선 소감 동인문학상 수상 소감 이상문학상 수상 소감 당신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기를 3부 제야의 문답 정직한 이들의 날 잠 타령 회사원과 매몰 광부 원작을 가위질하는 뜻 고향의 봄 크리스마스 청춘 내 고향의 추석 신년 편지 색채와 나 싫을 때는 싫다고 하라 4부 어린 시절의 두 가지 이야기 나의 혼인기 신혼 일기 아장아장 아기가 달려왔다 5부 한 이불 밑의 행복과 불행 낮은 음성의 위로 미인대회와 공상 처녀론 온달처럼 평강공주처럼 어머니 내가 본 사치 연정에 대하여 후기 추천의 글|‘산문시대’를 헤쳐 나간 이들의 뜨거운 호흡_ 신형철 |
KIM, SEUNG-OK,金承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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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수첩」은 1962년 《산문시대》 제2집을 위해 쓴 작품이다. 특별히 말할 만한 작품의 모티브는 없으나 나로서는 동인지에 발표한다는 느슨한 기분 덕택으로 나의 센티멘털리즘을 실컷 쏟아 넣을 수 있었던 작품이다. 센티멘털리즘이 많이 마멸되어버린 지금 후회되는 것은 쓸 수 있었을 때 이런 작품을 좀 더 많이 써놓을 걸 하는 것이다. 그때 우리의 동인지 《산문시대》를 아무 보수도 받지 않고 인쇄해주던 인쇄소는 전주의 가림인쇄소였는데 제2집 인쇄를 위해 전주에 가 있는 한 달 동안 남문 부근의 싸구려 여인숙 한 방에서 강호무의 재촉을 받아가며 이 작품을 써내던 일이 그립게 생생하다. 동인지에 발표된 직후 문리대 안의 학우들, 특히 지방 출신 학우들이 마치 자신의 얘기를 대신 써준 듯하다고 공감을 표시해왔을 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글 쓰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것도 기억난다. --- p.24
내가 소설을 잘 못 쓰는 이유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털어놓자면, 소설을 쓰는 동안 엄습해오는 비현실감 때문이다. 가령 아내가 현실적인 몸을 움직여서 현실적인 에너지를 소모해가며 지어주는 현실적인 밥을 먹고 앉아서 형체도 없고, 있다고 믿기에도 자신이 서지 않는 이미지를 펜으로 붙잡아보려고 허둥대는 내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며 나 자신이 한 개의 깃털처럼 가벼운 허깨비로 보이는 것이다. 이런 비현실감은 나로서는 아직은 견디기 힘들다. 거기에 비하면 차라리 소설이 안 써져 초조하고 불안하고 구상한답시고 밤을 새우고 하는 편이 훨씬 현실감이 있어서 견딜 만하다. 물론 하루빨리 그 비현실감에 견딜 만큼 익숙해져야 하겠지. 따지고 보면 소설을 쓴다는 것은 또는 시를 쓴다는 것은 결코 비현실적인 일이 아니고 비현실적으로 느끼는 것은 단순히 정신노동자들이 육체노동자들에 대해 본래 느끼는 콤플렉스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그 비현실감을 이겨내지 않고서는 내가 작가가 된다는 것은 싹수가 노란 것 같다. --- pp.41~42 소설가란 스스로 ‘이것이 문제다’고 생각하는 것에 봉사해야지 어느 무엇에도 구속당해서는 안 된다. 권력자나 부자의 눈치를 살펴서도 안 되고 동시에 힘없고 가난한 사람의 비위만 맞춰서도 안 된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다만 자기 가치에 비춰 문제가 되는 것에 자신을 바쳐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큰 변화가 없으나 그 선배의 마지막 충고 속에 항상 내 가슴에 궁금하게 걸려 있는 말이 있었다. “네가 진심으로 두려워해야 하고 미워해야 할 속물은 따로 있다”고 한 마지막 말이었다. (…) 그 후 때때로 스스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뒤로 미루고 나 자신은 별로 ‘문제’라고 느끼지도 못한 채 다만 돈 때문에, 그리고 ‘이것이 대중의 문제다’고 남들이 주장하는 바람에 일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그 선배가 말하던 ‘더 두렵고 더 미운 속물’이야말로 저 정체 없는 대중이고 동시에 그들이 돈을 주니까 그 대중에 봉사하는 나 자신임을 깨닫게 되어 소름이 끼치곤 한다 --- pp.59~61 응모하는 사람들은 신춘문예에도 큰 결함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 결함은 ‘경쟁’인데 경쟁 이 될 수 없는 문학을, 더구나 단 한 편의 작품으로 경쟁시킨다는 제도 자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더 큰 결함은 응모자가 응모작을 준비할 때 의식하는 ‘경쟁’이다. 경쟁의식 때문에 불안해지고 그 불안 때문에 과거 당선작들을 모방하게 되고 그런 결과로 자기 재능이나 자기가 추구하는 세계를 충분히 나타내지 못하고 그리하여 기성작가와 다른 ‘신인’을 찾으려는 심사 기준 때문에 불합격품이 되고 만다. 그 결함은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이기도 한 것이다. 자기가 쓰고 싶은 것, 자기만이 쓸 수 있는 것을 써서 던지고 만일 낙선했을 때도 자기가 잘못한 게 아니라 심사위원이 잘못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배짱으로 신춘문예에 임해야 할 것이다. 당선 가능성은 그런 태도의 사람에게 더 많은 것 같다. --- pp.65~66 이청준은 고등학교 때 한 번 만났다. 그는 광주일고를 다녔는데 광주에 가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내 친구가 방학 때 그를 데리고 순천으로 와서 만났던 것이다. 청준이를 데리고 온 내 친구를 통해 그가 중학교 때부터 가정교사를 하며 공부했다는 것, 전남 지방에서는 일류라고 하는 광주서중?광주일고에서 계속 수석을 해온 수재라는 것 등을 알았다. 한 번밖에 만난 적이 없었지만 그때 그는 광주일고 학생회장을, 나는 순천고 학생회장을 했으므로 같은 학생회장이라는 사실로 나는 그에게 어린애 같은 친밀감을 느꼈다. 그런 친구를 생소한 사람들 가운데서 만나게 되니 무척 반가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뜻밖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독문학을 할 친구같이 보이지 않았다. 전남 지방에 서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수재들은 대개 판검사를 목표로 법대에 진학하는 것이 통례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청준도 그러려니 생각했다. 아니, 그래야 할 친구로 생각했다. 내가 그런 뜻의 말을 했더니 그는 별다른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 pp.84~85 수천 년 역사상 처음으로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를 학교에서 가르쳤고 그들의 학교생활을 시작한 4·19세대는 그들에게 ‘주권재민’ ‘삼권분립’ ‘정당정치’ ‘민주주의 정신은 페어플레이 정신’ 등등을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의 어른들이 비록 입으로는 가르쳤지만 얼마나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자기들의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가를 모른 채 소박하고 순진하게 그것을 자기네 것으로 이해하였다. 한 개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첫 20년을 고스란히 동질의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란 4·19세대 이전에는 없었다. 이 점에서도 4·19세대는 행복한 세대이고 그들이 받은 교육을4 ·19로써 구현해 볼 수 있었던 것도 행복한 일이다. --- p.93 집을 향해 밤길을 가는 동안 나는 아이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마련해놓은 것의 초라함을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의 집, 우리의 방도 그 사랑스러운 아이를 맞아들이기에는 몹시 초라하다고 생각되었다. 아이가 가지고 놀 장난감, 아이가 볼 그림책, 아이가 앉아서 공부할 의자, 아이가 다닐 학교, 아이를 가르칠 선생님, 아이가 건너갈 한길, 아이가 놀 공원, 아이가 치료받을 병원, 아이가 드나들 관청, 아이를 보호해줄 제도와 법, 아이가 즐길 풍속, 아이가 살아갈 조국, 아이가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할 가치……. 우리의 아이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수없이 많지만 아이가 우리에게 보내는 완전한 믿음에 비하면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마련해둔 것들은 얼마나 불완전하고 볼품없는가! 그 초라한 것 중에는 우리의 문학도 끼어 있다. 이제부터라도 나는 아이에게 초라한 문학을 내밀지 말아야 하겠다. --- p.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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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시대》 동인 활동부터 문학상 수상까지
처음 만나는 청년 김승옥의 순수와 열정… 소설보다 진솔하고 거침없다! “문학이라는 빛에 의지해 헤쳐 나간 이들의 뜨거운 호흡이 살아 있다. 김승옥은 내게 영원한 동시대의 작가다.” ―신형철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김승옥은 1945년 전남 순천으로 귀국했다. 여순 사건 직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그곳에서 어머니와 남동생들과 함께 성장했다. 1960년 서울대 문리대학 불문학과에 입학하면서 시작된 ‘하와이(전라도)’ 출신의 서울 생활은 궁핍하고 위태로웠다. 등록금을 마련할 수 없어 군 입대를 결심하고 낙향하기 전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생명 연습」을 투고했다. 소설가가 되겠다는 뜻을 품었던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지독히도 힘겨운 서울 생활이 내 생명력의 스프링을 탄력의 한계점 이하로 끌어당겨버려서 허탈해지기 시작했으므로 나는 이번 학기만 마치면 군에 입대하기로 작정했다. 그렇게 작정하고 보니 뭔가 패배한 것 같고 밀려나는 것만 같아서 억울하고 분하기도 했다. 그 억울하고 분한 마음도 달랠 겸 일단 서울 생활을 청산하는 기념품을 남기고 싶었는데 그것을 나는 소설 쓰는 일로 삼았던 것이다(개정판 109~110쪽).” 여러 신문사 중에 《한국일보》를 고른 까닭은 응모 마감일이 가장 늦어서였다. 순천으로 돌아와서도 당선 여부보다는 자원입대할 수 있는 길을 알아봤다. 그러다가 덜컥 당선됐다. 생각지도 않던 소설가의 삶은 그렇게 열렸다. 등단 이후 김현?최하림과 함께 《산문시대》 창간호를 준비하던 열정, 동인을 모으기 위해 고군분투한 설득과 실망의 시간, 그때 만난 동인들―강호무·김창웅·김치수·김성일·염무웅·서정인·곽광수·김산숙·…… 김승옥이 가난하고 불안하던 젊음의 시간을 견딜 수 있도록 해준 버팀목들이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결코 낡지 않는 문체로 지금도 사랑받는 김승옥을 “내게는 영원한 동시대의 작가”라고 고백하면서 이 책의 가치는 ‘산문시대’ 동인 활동 회고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이야기한다. 『뜬 세상에 살기에』에는 《산문시대》 이야기뿐만 아니라 김승옥의 ‘자작 해설’도 실려 있다. 한국 현대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등 대표 작품들의 탄생 배경과 작가 자신의 솔직한 심경을 들을 수 있다. 1963년 《사상계》 문화 담당이던 한남철 작가의 ‘지시’로 처음 소개된 「무진기행」은 발표 이후 가장 사랑받는 김승옥 작가의 대표작이 됐다. 이 원고를 가장 처음 본 사람들은 당시 《산문시대》를 인쇄하기 위해 전주에 내려가 있던 김현과 최하림이었다. 두 사람은 “별로 좋은 것 같지 않다. 발표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렸다. 작가 역시 미심쩍고 탐탁지 않아서 찢어버릴 작정까지 했으나 《사상계》와의 약속에 대한 성의 표시라도 하려는 생각으로 “제발 잡지에 싣지 말고 돌려보내주시면 다음에 좋은 글 써 보내겠습니다”는 편지와 함께 보냈다. 한남철의 안목이 아니었다면 「무진기행」은 영영 사라질 뻔했다. “뜻밖에도 독자들에 의해 이 작품이 오늘날까지도 내 대표작처럼 되어버렸다. ‘멋모르고 내휘두른 펀치에 상대방이 녹다운됐다’는 표현이 있지만 이 작품에 대한 반향 앞에서 나야말로 그런 자의 어리둥절함을 느껴야 했다. 아마도 내가 가장 우울했던 시기에 가장 순수한 슬픔만을 가지고 쓴 데서 이 작품은, 나 자신은 미처 몰라본 어떤 호소력을 우울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갖게 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개정판 23쪽).” 약자를 위한 연민, 부조리를 향한 분노… 개인의 상처, 시대의 아픔을 기록하다 “인간이란 상상이다. 상상은 고통을 만든다. 고통을 함께하는 인간끼리는 행복하다.” 제1회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로 선정되면서 김승옥은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작가로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자. “사람들은 나한테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고 싶어 하고 줄 수 있는가? 슬프게도 그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 시대, 이 나라, 이 이웃 속에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느꼈고 그리하여 상상한 것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제가 줄 수 있는 것은 저의 초라한 상상밖에 없습니다. (…) 제 고통을 드리겠습니다. 다행히 제 고통이 다른 이들의 고통과 같다면 행복할 것이고, 제 고통이 다른 이들의 고통과 동떨어져 있다면 저는 불행할 것입니다(개정판 135~137쪽).” 오사카에서 태어나 순천으로, 여수로, 남해로, 다시 여수로, 순천으로, 서울로…… 작가는 어려서부터 일제강점기, 여순 사건, 한국전쟁, 4?19 혁명 등 한국 현대사 속 굵직한 사건들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됐다. 그사이 타고난 감성은 내외적으로 더욱 예민해졌다. 줄 것이 ‘고통’과 그것에서 비롯하는 ‘초라한 상상’밖에 없다는 말에서 그의 진심이 느껴진다. 타인의 상처와 시대의 비극에 함께 아파하고 분노할 줄 알았던 청년 김승옥이 사람들에게 제안한 대처법은 고통을 함께하자는 것이었다. “고통을 함께하는 인간끼리는 행복하다”는 말만큼 지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말이 또 있을까. “이승만 하야!”를 외치던 민심의 분노는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라앉지 않았다. 청년 김승옥의 수필이 긴 시간을 돌아와 다시 독자들을 위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