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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1
브리트니 스피어스 (팝 보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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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간의 파란만장한 음악 인생 돌아보는 "아이코노그래피"
지난 6월 25일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Michael Jackson) 이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하고서야 우리는 비로소 후회와 죄책감에 몸서리치고 있지만 때는 늦었다. 이제 그가 남긴 막대한 문화적 유산만이 그 어느 때보다도 찬란하게 불타오를 뿐이다. 이와 함께 우리는 팝의 황제의 그것에 비견될 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있는 또 다른 젊은 팝스타의 삶을 다시금 조명하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발견한 탁월한 재능 탓에 일찌감치 쇼비지니스에 진출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이후 전례 없는 세계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성장하며 정상의 자리에 군림했으나 어느 순간 벼랑 끝을 향해 질주하는 탈선한 기차처럼 엇나가기 시작해 세간의 지탄을 받은, 그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팝의 요정’ 브리트니 스피어스 (Britney Spears) 이다.
데뷔 후 여섯 장의 정규 앨범으로 무려 8천 6백만 장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 21세기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아티스트임과 동시에 ‘포브스’ 지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영향력을 지닌 유명인사인 그녀를 단지 수많은 기록과 업적만으로 수식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녀는 그 이름 만으로도 모든 것이 설명되는, 단지 ‘브리트니 스피어스’ 일 뿐이니까. 가까운 미래에 그녀의 삶을 주제로 한 책과 영화가 몇 편이고 쏟아져 나올 기세이니 채 서른 살도 되지 않은 이 젊은 여자 팝스타의 삶이 얼마나 파란만장했는지 짐작이 가시리라. 빛나는 재능과 부, 명성은 물론 세간이 부러워할 세기의 사랑까지 일찌감치 경험했으나 유리 상자 안의 생쥐처럼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모든 것을 잃고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 했던,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 누구보다도 드라마틱하게 반전에 성공한 그녀. 어느덧 정상의 자리에서 맞이한 데뷔 10주년을 성대하게 자축하며 그간의 궤적을 짚어보는 베스트 앨범 ‘The Singles Collection’ 을 통해 그녀의 삶과 음악을 되돌아본다. [AND THE STORY BEGINS…] 이 모든 드라마의 시작은 1981년 12월 2일, 인구가 채 2,500명도 되지 않는 작은 시골 마을인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주의 켄트우드 (Kentwood, Lousiana) 에서 출발한다. 훗날 세계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거듭나게 될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 린 (Lynn) 과 건축가였던 아버지 제이미 (Jamie) 사이의 1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오빠 브라이언 (Bryan) 은 지구상 가장 유명한 여동생의 그림자에 가려 평생 날개를 펴지 못했지만 지금의 그녀가 존재할 수 있게 한 가장 큰 조력자 역할을 해 왔고, 그녀의 외모와 재능을 꼭 빼 닮은 여동생 제이미 린 (Jamie Lynn) 은 언니의 후광으로 일찌감치 헐리우드에 발을 내딛으며 차세대 유망주로 주목 받았는데, 특히 지난 2005년부터는 미국 최고의 청소년 채널인 ‘니켈로디언 (Nickelodeon)’ 의 야심작 ‘조이 101’ 의 주연을 맡아 무려 네 시즌 동안 이 드라마를 시청률 1위에 올리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이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춤을 추고 말을 배우기도 전에 노래를 부르는 딸의 범상치 않은 재능을 일찌감치 깨달은 린은 고된 생활고 속에서도 춤과 체조 강습 등에 아낌없는 지원을 쏟아 부었다. 또한 4세부터 교회 성가대로 활약하며 노래에 특출난 재능을 보였던 이 작은 소녀에 대한 입소문은 금세 도시 전체로 번져나가, 그녀는 각종 지역 행사에 ‘가수’ 자격으로 초대되곤 했다. 그렇게 예비스타로서의 가능성을 인정 받은 그녀는 마침내 8세가 되던 무렵 본격적으로 헐리우드 진출을 타진하는데, TV 오디션 프로그램 ‘스타 서치 (Star Search)’ 에 출연해 나이답지 않은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이는가 하면 당대 최고의 아이돌 스타 등용문 ‘미키 마우스 클럽 (The Mickey Mouse Club, 이하 MMC)’ 의 오디션에 지원해 자신의 끼를 유감 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MMC’ 는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그녀를 탈락시키고 마는데, 이 때 그녀를 눈여겨본 한 프로듀서의 주선으로 뉴욕에서 활동중인 에이전트를 소개 받아 뉴욕의 유명 탤런트 스쿨 ‘Professional Performing Arts School’ 에 입학하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다. 처음 밟아보는 대도시 땅에서 이루어진 3년 간의 고된 교육을 통해 그녀는 스타로서의 자질을 점차 완성해 나갔고, 각종 뮤지컬 무대에 오르거나 여러 편의 TV 광고에 출연하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 나갔다. 마침내 11세가 된 그녀는 다시 한 번 ‘MMC’ 의 오디션에 응시, 노래, 춤, 연기 등 모든 분야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으며 단번에 ‘마우스키터 (Mousekeeter)’ 로 발탁된다. 쫈날 정상의 자리에서 다시 조우하게 될 라이벌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Christina Aguilera), 이후 세기의 커플로 주목 받게 될 저스틴 팀버레이크 (Justin Timberlake) 등과 함께 그녀는 그간 갈고 닦은 자신의 재능을 유감 없이 발휘할 기회를 거머쥔다. 그러나 합격의 기쁨도 잠시, 매일 반복되는 공연에 강도 높은 트레이닝까지 쉴새 없는 강행군이 이어졌고, 그녀는 훗날 이 시기에 대해 ‘산타클로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시간마저 박탈 당했다’ 고 회상한다. 2년 뒤 쇼는 폐지되었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르를 하며 학업에 열중하는 평범한 소녀로 살아가는 동시에 춤과 노래에 대한 열정만은 잊지 않고 매일같이 연습에 매달렸다. 1년 뒤 그녀는 수많은 오디션에 참가하며 다시금 꿈을 향한 여정에 나서고, 결국 1997년 ‘이노센스 (Innosense)’ 라는 이름의 5인조 걸 그룹 멤버로 발탁된다. 이 때 그룹 속에서도 숨길 수 없었던 그녀의 재능은 당시 엔터테인먼트 변호사로 활동 중이던 래리 루돌프 (Larry Rudolph) 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자이브 레코드 (Jive Records)’ 와의 미팅을 주선한다. 수많은 중역 앞에 갑작스레 불려와 놀라운 목소리로 노래한 이 소녀는 결국 그 자리에서 곧바로 솔로 음반 계약을 따낸다. 그 후로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자이브는 그녀를 최고의 아이돌 스타로 만들기 위해 치밀한 전략을 세웠고, 그 일환으로 그녀를 백스트리트 보이즈 (Backstreet Boys) 와 엔싱크 (Nsync) 의 투어 오프닝 액트로 내세우며 큰 무대에서의 경험을 쌓게 했으며 곧바로 데뷔 음반 작업에도 착수했다. 당시 ‘틴 팝의 명장’으로 불리우던 당대 최고의 프로듀서 맥스 마틴 (Max Martin) 과 에릭 포스터 화이트 (Eric Foster White) 등이 제작한 최상의 곡들이 선별되었고, 그녀 역시 LA, 뉴욕은 물론 머나먼 스웨덴까지 날아가 정신 없이 녹음에 임하며 의욕적으로 데뷔 앨범을 준비했다. 당시 그녀는 채 음반이 완성되기도 전부터 직접 데모 테이프를 제작해 거리에 나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자신을 알리는데 아낌없는 노력을 쏟아 부었다. 또한 자이브는 미 전역의 26개 쇼핑몰에서 공연을 펼치는, 신인의 데뷔무대 치고는 상당히 큰 규모의 투어인 ‘헤어 존 몰 투어 (Hair Zone Mall Tour)’ 를 개최한다. 단 두 명의 댄서만을 대동한 채 최선을 다해 노래하고 춤 추는 이 신인가수의 열정은 지나가던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회를 거듭할수록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고, 결국 그녀는 음반이 발매되기도 전부터 이미 대중들에게 사인요청세례를 받는 예비스타가 되어 있었다. [팝의 요정, 혜성처럼 등장하다 / …Baby One More Time (1999.01.12)] 마침내 1998년 10월 23일, 역사적인 데뷔곡 ‘…Baby One More Time’ 이 처음으로 라디오 전파를 타며 16세의 브리트니는 그렇게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양갈래 머리에 크리스천 풍의 교복을 묶어 올린 뮤직비디오 속 그녀의 스타일은 큰 화제를 불러 모았고, ‘한번만 더’ 라는 미묘한 암시를 풍기며 아크로바틱이 가미된 고난도 안무를 선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MTV 가 가장 먼저 즉각 반응했다. 이후 열풍은 삽시간에 라디오로 번져 그녀를 ‘가장 어린 나이에 라디오차트 1위에 오른 아티스트’로 임명하더니, 곧이어 발매된 커머셜 싱글도 불티나게 팔려 나가며 이 곡은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수직상승하기 시작한다. 여세를 몰아 이듬해 1월 동명의 데뷔앨범이 발매되었다. 소위 ‘버블검 팝’ 이라 불리는 순수한 10대 취향을 표방한 이 음반은 업 템포, 미디움 템포는 물론 발라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비트 위에 종종 레게나 R&B 의 감성을 덧칠해 또래의 10대들이 느끼는 사랑과 이별, 우정에 대해 노래함은 물론, 화려한 팝 아이콘 셰어 (Cher) 의 1967년 히트곡 ‘The Beat Goes On’ 을 커버해 음반의 대미를 장식하는 대담함마저 과시했다. 본작은 역사상 가장 성공한 팝 음반 중 하나로 평가 받을 만큼 거대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수많은 기록과 업적을 남겼는데, 우선 신인 여가수로서는 드물게 빌보드 앨범차트 1위로 데뷔함은 물론 한껏 탄력 받은 싱글까지 덩달아 차트 정상에 오르며 역사상 두 번째이자 솔로 가수로는 최초로 같은 주에 빌보드 앨범/싱글 차트를 동시에 정복하는 대기록을 수립한다. 또한 미국발 ‘브리트니 신드롬’ 은 곧장 전 세계로 번져나가, 2주간 미국 차트를 정복한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판매 신기록을 수립하며 동시다발적으로 정상에 올랐고, 심지어 몇 개 국가에서 1위에 올랐는지 집계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전례 없는 대히트를 기록한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그녀를 대표하는 곡이자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성공을 기록한 싱글 트랙으로 손꼽히며 가히 90년대 말 팝 문화를 상징하는 문화적 현상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후 이 음반은 미국에궼 6주 만에 플래티넘 고지를 달성하더니, ‘Sometimes,’ ‘(You Drive Me) Crazy’ 등 수많은 히트 싱글을 연달아 배출한다. 특히 자이브는 당시만 하더라도 중소 규모의 레이블로 소속 아티스트들의 차트성적을 관리하기 보다는 음반 판매고에 집중하는 전략을 구사했는데, 라디오가 그녀의 음악을 아낌 없이 틀어댔음에도 불구하고 커머셜 싱글 발매를 자제해 이후의 싱글들이 안타깝게도 1위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았지만 오히려 정규 음반은 채 발매 1년도 지나지 않아 1,000만장 판매에 해당하는 ‘다이아몬드 (Diamond)’ 인증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결과적으로 본작은 미국에서 통산 1,400만 장의 판매고를 달성,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여성 솔로 가수의 데뷔 앨범 중 하나로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3,00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가며 10대 팝스타가 발매한 음반 중 가장 많이 팔린 음반으로 기네스 북에 등재되는 등 가히 가공할만한 수준의 대성공을 거둔다.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데뷔와 동시에 쏟아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 받는 명실상부 최고의 아이돌 스타로 자리매김한 그녀는 이제 대규모 북미 투어를 성황리에 마칠 정도의 대형스타로 성장했고, 각종 잡지와 TV 쇼에 단골로 초대됨은 물론 ‘토미 힐피거 (Tommy Hilfiger),’ ‘맥도날드’ 와 같은 유명 기업의 대표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특히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팝 매거진 ‘롤링 스톤 (Rolling Stone)’ 은 채 데뷔 6개월도 지나지 않은 그녀를 커버 모델로 내세우는 파격적인 모험을 단행하는데, 이는 그녀의 커리어에 있어 매우 결정적인 순간 중 하나이다. ‘퇴폐미’ 로 대표되는 유명 작가 데이빗 라샤펠 (David LaChapelle) 에 의해 포착된, 속옷 차림으로 실제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 수화기를 들고 있는 그녀의 도발적인 모습을 표지로 내세운 ‘롤링 스톤’은 ‘17세에 불과한 소녀를 성적인 도구로 이용했다’며 강도 높은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이러한 논란을 역으로 이용해, 옆집 소녀의 순수함과 요부와도 같은 관능적인 섹시미를 동시에 지닌 팝스타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히 굳히는 영리한 행보를 보인다. 다만 그녀는 여전히 어린 소녀였기에 ‘스타 브리트니’ 를 지나치게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으로부터 ‘현실의 브리트니’ 를 보호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 수단으로서 이후 오래도록 그녀의 이름 뒤에 꼬리표처럼 따라 붙게 될 ‘혼전순결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한편 본작으로 그녀는 생애 첫 ‘그래미 어워즈 (Grammy Awards)’ 의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는데, 연초부터 이어진 눈부신 활약을 인정 받아 제 42회 그래미 시상식에 공연자로 초청받으며 후보에 오른 ‘신인상 (Best New Artist)’ 및 ‘여자 팝 보컬 상 (Best Female Pop Vocal Performance)’ 의 수상이 유력시 되었으나, 각각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사라 맥라클란 (Sarah McLachlan) 에게 수상의 영광을 양보해야 했다. 대신 그녀는 그래미의 라이벌 격인 권위 있는 시상식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를 비롯 ‘빌보드 뮤직 어워즈,’ ‘MTV 유럽 뮤직 어워즈’ 등 세계 유수의 시상식에서 1999년 한 해 동안에만 수십 개의 트로피를 쓸어 담으며 그 아쉬움을 충분히 보상 받았다. [진정한 수퍼스타로 자리매김하다 / Oops!...I Did It Again (2000.05.16)] 해를 넘겨도 그녀가 온 세상에 전염시킨 뜨거운 열병이 가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자, 자이브는 서둘러 그녀의 두 번째 음반을 발표한다. 세계 곳곳을 돌며 펼친 끊임 없는 활동으로 이미 지쳐 있던 그녀였지만, 오히려 휴가까지 자진 반납한 채 일찌감치 의욕적으로 소포모어 레코드 제작에 돌입했다. 과연 폭발적인 신드롬의 데뷔 직후에 발매되는 본작을 통해 그녀가 소포모어 징크스를 극복하고 진정한 팝스타로 거듭날 수 있을지 여부에 모든 대중과 미디어가 집착에 가까운 관심을 보였고, 그 결과 이 음반은 발매 첫 주 미국에서만 무려 131만 장 이상이 팔려나가며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데뷔하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이는 지금까지도 역사상 가장 높은 오프닝 세일즈를 기록한 여가수의 음반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녀가 일련의 히트곡을 통해 자신을 톱스타 반열에 올린 장본인 맥스 마틴을 다시 기용한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스웨덴을 넘나들며 그녀는 음반의 주요 수록곡들을 가장 먼저 완성했고, 이 밖에도 전설적인 여류 작곡가 다이앤 워런 (Diane Warren) 이나 로드니 저킨스 (Rodney “Darkchild” Jerkins) 등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뮤지션들과 음악적으로 교류했다. 그 결과 그녀는 전작에서 선보였던 팝 음악의 정수를 기반으로 더욱 진보한, 엣지 있고 펑키한 비트로 완성도를 높인 소포모어 레코드를 완성해 냈고, 이듬해 그래미로부터 ‘베스트 팝 앨범 (Best Pop Vocal Album)’ 등 두 개 부문의 후보로 지명 받으며 그 음악적 성과를 인정 받는데 성공했다. 특히 전형적인 맥스 마틴의 히트 공식을 그대로 따른 첫 싱글 ‘Oops!...I Did It Again’ 은 발표와 동시에 데뷔곡 못지 않은 전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고, 뒤이어 ‘Lucky,’ ‘Stronger’ 등 연달아 탄생한 스매쉬 히트 싱글들에 힘입어 본작은 발매 3달 만에 미국에서만 500만 장이 팔려나가더니 마침내 전작에 이어 다시금 ‘다이아몬드 인증’ 을 받아내는데 성공했고, 전세계적으로도 무려 2,3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달성하며 전작에 비견될 만큼의 만족스런 상업적 성과를 거뒀다. 또한 그녀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로 칭송 받는 롤링 스톤즈 (Rolling Stones) 의 명곡 ‘(I Can’t Get No) Satisfaction’ 을 커버하겠다고 선언하며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그들이 활약하던 시절에 태어나지조차 않았던 10대 팝스타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로큰롤을 커버하는 것은 커리어 자살행위나 다름 없었기에 레이블은 이 아이디어를 단호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그녀의 결심은 확고했고, 로드니 저킨스의 손길을 거쳐 감각적인 댄스 팝 레코드로 이 명곡을 재해석해 끝내 레이블은 물론 일반 대중과, 심지어는 믹 재거 (Mick Jagger) 까지 설득해 내는데 성공했다. 이 시기에 그녀는 세계적인 스타로서 확고히 자리매김하기 위해 정력적인 활동을 펼쳤는데, 세계 각지를 돌며 음반 프로모션 및 대규모 월드 투어를 진행했고, 수퍼볼 하프타임 쇼에 출연해 에어로스미스 (Aerosmith) 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가 하면, 9.11 테러 희생자들을 돕기 위한 보노 (Bono) 의 올스타 프로젝트 ‘What’s Going On’ 에 참여하기도 했다. 특히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 (Video Music Awards, 이하 VMA)’ 에서 검정색 슈트 속에 살색 의상을 숨겨 입고 격렬한 춤 동작에 맞춰 옷을 뜯는 일명 ‘스트립’ 퍼포먼스를 연출한 것은 지금까지도 팝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순간으로 손꼽힌다. 한편 그녀의 사생활이 본격적으로 타블로이드와 대중들의 관심의 대상이 된 것도 이때부터인데, 바로 그녀가 인기 절정의 그룹 엔싱크의 다섯 멤버 중에서도 독보적인 재능과 인기를 자랑하는 저스틴 팀버레이크와의 열애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후 결별 직전까지 공식석상에 항상 동행하며 서로의 커리어에 힘을 실어주는 한편 다정한 모습을 연출해 차세대 헐리우드의 파워 커플이라는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아이돌을 넘어 아티스트로서 도약하다 / Britney (2001.11.03)] 현존하는 지상 최고의 아이돌 스타였지만 그 달콤함이 결코 영원하지 않으리란 것을 그녀는 일찌감치 깨달았다. 19세, 즉 10대로서 발표하는 마지막 음반인 세 번째 정규앨범을 통해 앞으로 자신이 선보일 음악적 진화에 대한 정당성과 진정성을 부여하는 의미로 셀프 타이틀을 내걸었고, 그에 걸맞는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내놓기 위한 과감한 모험을 시작한 것이다. 우선 그녀는 무려 다섯 곡의 자작곡을 수록하며 음반 작업의 전반에 나서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그녀와의 찰떡궁합을 과시한 맥스 마틴과 완성도 높은 팝 음악을 선보이는 동시에 패럴 윌리엄스 (Pharrell Williams) 와 채드 휴고 (Chad Hugo) 로 구성된 2인조 프로듀싱 팀 넵튠스 (The Neptunes) 를 직접 섭외해 그들에게 새로운 음악적 변화의 중심축을 맡기며 아티스트로서의 변신을 꿰했다. 또한 그녀는 음악적 변화에 부합하는 이미지 변신, 즉 한층 더 과감해진 의상과 카리스마로 무장한 섹스 어필을 전면적으로 부각시키기 시작한다. 특히 이제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나지막이 속삭이는 섹시한 보컬과 거친 호흡으로 대표되는 첫 싱글 ‘I’m A Slave 4 U’ 를 과감히 첫 싱글로 내세우는 파격적인 행보로 큰 주목을 받았는데, 이 곡을 처음으로 공개한 2001년 VMA 에서 그녀는 전에 없던 노골적인 섹시미를 유감 없이 발산했다. 야생 동물이 즐비한 무대 위 뱀을 목에 두르고 관능적인 눈빛으로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대중들을 향해 ‘더 이상 나를 10대의 롤 모델로 한정 짓지 말아달라’는 확고한 메시지를 전달해 차후 성인 팝스타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다지고자 했던 그녀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빛을 발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신보 출시를 앞두고 세계 각지의 언론을 초청해 성대하게 열릴 예정이던 첫 프로모션 행사를 위해 그녀가 호주 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바로 2001년 9월 11일 이었으니 말이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취소 위기에까지 놓였던 일정은 결국 삼엄한 경계를 전제로 하여 예정대로 진행되기는 하였으나 당초 예상만큼의 이슈를 불러일으키는 데는 실패했다. 이후 음반은 발매와 동시에 미국에서만 무려 76만 장의 오프닝 세일즈를 기록하며 빌보드 앨범차트 1위로 데뷔했으나, 테러 이후 ‘즐거움’을 잃은 미국인들의 현실을 반영하? 전작만큼의 초반 기선제압에는 실패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최대 규모의 라디오 그룹 ‘클리어 채널 (Clear Channel)’ 은 그녀와의 투어 스폰서 협상이 결렬되자 그녀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자사 소속 수백 개의 라디오 스테이션에 절대 그녀의 노래를 방송하지 말 것을 지시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로 인해 이 음반의 모든 싱글들이 저조한 에어플레이로 싱글차트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맥스 마틴의 손을 거친 원곡에 당시 최고 주가의 로드니 저킨스를 기용해 라디오 친화적인 곡으로 재탄생시킨 ‘Overprotected’ 는 물론 패럴 윌리엄스가 피쳐링 및 리믹스 작업을 맡아 더욱 힙합적 색채가 강해진 ‘Boys’ 등을 야심차게 내놓았으나, 그 어떤 곡도 미국 메인스트림 라디오에서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음반과의 윈-윈 효과를 기대했던 브리트니 주연의 영화 ‘크로스로드 (Crossroads)’ 가 평단으로부터 가히 ‘처참한’ 수준의 혹평을 받으며, 큰 기대를 모았던 메인 타이틀 곡 ‘I’m Not a Girl, Not Yet a Woman’ 이 빌보드 싱글차트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하는 대굴욕을 경험한다. 사실 이 영화는 1천만 달러의 제작비가 소요된 소규모 작품으로 전미 박스오피스 2위에 오름은 물론 6천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그녀의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지만, 매년 ‘최악의 영화’를 선정하는 이색적인 영화제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 (Golden Raspberry Awards)’ 으로부터 ‘최악의 여배우 상’ 및 ‘최악의 사운드트랙 상’을 수상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가 명실상부 최고의 팝스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급격한 이미지 변신으로 인한 팬층의 변화와 음반시장의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본작은 미국에서 500만 장, 전세계적으로 1,4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고, 세계 시장에서는 모든 싱글들이 고루 큰 사랑을 받았다. 또한 그녀는 또다시 그래미로부터 ‘여자 팝 보컬 상’ 후보로 지명 받는 등 음악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 받았고, 35년 전통의 미국 최고의 버라이어티 ‘SNL’ 에서는 사상 최초로 호스트와 뮤직 게스트를 동시에 맡으며 그녀의 스타파워를 재입증 함과 동시에 테러 이후 이 프로그램의 최고 시청률을 견인하기도 했다. 더불어 본작을 서포트하기 위한 초대형 월드 투어 ‘Dream Within A Dream Tour’ 는 그 어마어마한 규모만큼이나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특히 음반 발매 직후인 11월 18일의 라스베가스 공연은 HBO 를 통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함과 동시에 전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모았고, 그 화려한 영상미를 인정 받아 최고 권위의 TV 시상식인 ‘에미 상 (Emmy Awards)’ 수상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이외에도 그녀는 자신의 오랜 우상인 마이클 잭슨의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에 초청받아 그의 히트곡 ‘The Way You Make Me Feel’ 의 듀엣 공연을 펼치는가 하면 ‘펩시’ 와 수천만 달러 규모의 월드와이드 광고계약을 체결하며 큰 화제를 모은다. 특히 매년 미국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순간인 값비싼 수퍼볼 하프타임 쇼에 1분 30초간 특별히 제작한 그녀의 ‘펩시’ 광고가 방송되기도 했다. 한편 그간의 살인적인 스케쥴로 지쳐버린 그녀는 본작의 활동을 마무리하며 대외적으로 6개월간의 활동 중단을 선언한다. 특히 이 시기에 대중들이 목격하는 앞에서 부모님의 이혼을 극복해야 했고, 세기의 커플로 불리던 오랜 연인 저스틴과의 결별까지 경험하며 심리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를 겪고 있던 그녀는 잠시나마 세간의 관심으로부터 거리를 두어 본인을 둘러싼 무성한 루머들을 종식시키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종적을 감추자 오히려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연일 추측성 보도가 쏟아지며 불명예스럽게 타블로이드 표지에 오르내리게 되었고, 특히 저스틴이 첫 솔로 음반을 발매하며 대대적인 홍보 활동을 펼치자 자연스레 그들의 결별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게 되면서, 그녀는 단 몇 주간의 짧은 휴식을 뒤로한 채 의욕적으로 새 음반 작업에 돌입하며 대외적인 활동을 재개한다.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다 / In The Zone (2003.11.03)] 마침내 성인이 된 그녀는 이제 한층 더 노골적이고 도발적인 가사로 무장한, 확실한 성인 취향의 팝 음악을 선보이기로 작정한다. 그 일환으로 그녀는 맥스 마틴과 결별함으로써 ‘아이돌’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상징적인 선언을 함과 동시에 당시 팝계를 평정하던 흑인음악과 본인이 푹 빠져 있던 일렉트로니카를 커다란 두 개의 음악적 축으로 한 실험적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음반을 제작했다. 그녀의 스튜디오 앨범 중 평단으로부터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 중 하나인 본작에 그녀는 무려 8곡의 자작곡을 수록하며 앨범 제작 전반을 주도했고, 디디 (Diddy), 모비 (Moby), 매트릭스 (The Matrix) 등 유명 프로듀서들과 협연함은 물론 이후 그녀쟀 히트곡들을 연달아 탄생시키며 최고의 프로듀싱 팀으로 성장할 블러드샤이 & 아방트 (Bloodshy & Avant) 와 레드존 (RedZone)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신예 뮤지션들을 적극적으로 발굴, 기용해 신선한 음악적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최근 팝계에서 가장 각광 받는 프로듀서 트리키 스튜어트 (Chris “Treaky” Stewart) 와 더-드림 (The-Dream) 역시 이 시기 그녀와의 작업을 통해 대중들에게 그 이름을 각인시켰다. 또한 유럽에서 승승장구하던 뮤지션인 캐시 데니스 (Cathy Dennis), 가이 챔버스 (Guy Chambers) 등과도 조우하며 그녀는 세련미 넘치는 유로팝의 향취를 본작에 담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첫 싱글 ‘Me Against The Music’ 에 등장하는 가사로부터 인용해 온 본작의 타이틀에 대해 그녀는 ‘음악과 춤에 모든 것을 걸어 하나가 되는 경지가 바로 Zone 이며, 그 안에서의 나의 모든 역량을 담았다는 의미’ 라고 설명한다. 특유의 스탠다드한 팝 트랙은 물론 무게감 있는 비트 위에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한 트립합 넘버들을 위시해 노골적인 일렉팝과 남부 스타일의 힙합 트랙까지, 그녀의 모든 스튜디오 앨범 중 가장 풍부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본작이니만큼 그러한 그녀의 부연설명은 설득력을 얻었다. 이에 광란의 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의 숙취와 밀려오는 후회에 대해 노래하거나 ‘마스터베이션’ 이란 파격적인 주제에 대한 자신의 진솔한 감정을 써내려 가는가 하면 그 어느 때보다도 과감하고 노골적으로 ‘사랑’을 묘사한 가사들을 잇달아 선보이며 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음악적 면모를 과시했다. 한편 음반 발매를 앞두고 그녀는 팝의 여왕 마돈나 (Madonna) 의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VMA 의 깜짝 오프닝 무대를 장식했는데, 이 때 마돈나와의 파격적인 키스 퍼포먼스를 연출하며 순식간에 전세계 모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자신의 것으로 빼앗아온다. 마돈나가 그녀를 자신의 후계자로 점 찍은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추측이 한창이던 당시 마돈나가 그들의 이니셜을 새긴 목걸이를 직접 만들어 선물해 나눠 착용한 뒤 함께 무대에 올라 키스까지 선사했으니, 그 순간의 파급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이로서 그녀는 공식적으로 차기 팝의 여왕으로서 즉위식을 가진 것이나 다름 없다는 미디어의 집중 조명이 이어졌고, 이 무대를 계기로 두 사람의 역사적인 첫 듀엣까지 성사되었다. 한편 세계적 권위의 경제지 ‘포브스 (Forbes)’ 는 그 해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셀러브리티’ 로 선정했는데, 이는 가수로서는 최초이자 유일한 기록일 뿐만 아니라 여전히 역대 최연소 수상자로 기록되고 있다. 이처럼 팝계를 뛰어넘어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그녀의 스타파워를 입증하듯 미국 유수의 언론이 앞다투어 그녀의 컴백 특집을 마련했고, 대대적인 홍보 속에 발매된 본작은 첫 주 미국에서만 무려 60만장 이상이 팔려나가며 역시 빌보드 앨범차트 1위로 데뷔했다. 이후 본격화된 음반시장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본작은 통산 미국 내 3백만 장, 전세계적으로는 1천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당초 자이브는 당시 팝계의 트렌드에 편승해 ‘Outrageous’ 등의 어번 트랙들을 전면에 내세워 멀티 포맷 라디오로부터의 지원을 이끌어낼 계획이었으나, 그녀 본인의 강력한 주장으로 ‘Me Against The Music’ 과 ‘Toxic,’ ‘Everytime’ 으로 이어지는 싱글들이 잇달아 발표되었다. 또한 앞서 언급한 ‘클리어 채널’ 과의 분쟁이 이 시기에 극적으로 해결되었는데, 그 결과 블러드샤이 & 아방트가 탄생시킨 도발적인 일렉팝 넘버 ‘Toxic’ 이 전미 메인스트림 라디오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동시에 빌보드 싱글차트 9위에 오르며 그녀 커리어 사상 최고의 히트 싱글로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 47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Best Dance Recording’ 부문을 수상하며 생애 첫 그래미의 영광을 맛보기도 했다. 이와 같은 전세계적인 센세이션에 힘입어 ‘Everytime’ 도 세계각국차트 정상에 오르며 큰 사랑을 받았다. 이로서 데뷔작 이후 최고의 히트 싱글들을 양산했을 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높은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며 그녀는 국제적인 팝스타로서의 지위를 다시금 확고히 한다. 이후 그녀는 새로운 월드 투어 ‘The Onyx Tour Hotel Tour’ 를 기획하는데, 이는 북미, 유럽을 거쳐 다시 북미 2차 투어를 가진 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와 호주를 아우르는 일정의 대규모 투어였다. 특히 음반 발매 직후 한국에서 3박 4일간의 프로모션 일정을 소화했던 그녀는 당시 세계 전역의 언론이 한데 모인 기자회견장에 한복을 입고 등장하거나 두 차례에 걸친 국내 쇼케이스에서 월드스타다운 면모를 유감 없이 과시했는데, 그 직후 마침내 현실화 된 그녀의 첫 내한공연에 대중들의 큰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북미 2차 투어를 앞두고 영화 ‘캣우먼 (Cat Woman)’ 의 메인 타이틀 곡으로 선정된 네 ?째 싱글 ‘Outrageous’ 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던 중 그녀가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하면서 뮤직비디오 촬영은 물론 투어 스케쥴이 전면 취소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 한창 상승곡선을 그리던 음반활동이 흐지부지 마무리되고 만다. [여전한 스타파워를 과시하다] 그녀가 무릎 수술 후 잠정적인 휴식기에 돌입하자, 그간 그녀가 탄생시킨 수많은 히트곡들을 한 장의 CD 에 압축해 담을 수 있는 적기라고 판단한 자이브는 긴급히 그녀의 첫 번째 베스트 앨범 [Greatest Hits: My Prerogative] 를 기획한다. 본작에 수록된 블러드샤이 & 아방트의 손길을 거친 신곡들이 큰 사랑을 받아, 베스트 음반으로는 이례적으로 800만 장 이상의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특히 일본에서는 그녀의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오리콘 주간 차트 1위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고, 영국에서도 역대 여성 가수의 베스트 앨범 중 가장 높은 첫 주 판매고를 달성한 음반으로 기록되었다. 또한 이듬해에는 첫 리믹스 앨범 [B In The Mix: The Remixes] 가 선을 보였다. 보통의 리믹스 앨범이 소위 말하는 ‘우려먹기’ 식으로 기존에 발표된 리믹스 트랙들을 한데 모아 발표하는 형식이라면, 본작은 약 1년에 가까운 제작 기간 동안 최고의 DJ 들을 기용해 [In The Zone] 을 재탄생시킨 일종의 컨셉 앨범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무했던 홍보와 출시 직후 치명적인 기술상의 오류로 음반이 전량 리콜 되는 등의 불운을 겪으며 큰 빛을 발하지는 못했다. 한편 이 시기에 그녀는 세계적인 뷰티 업체 엘리자베스 아덴 (Elizabeth Arden) 과 손잡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향수 브랜드를 론칭한다. 그녀가 제작 과정에 참여한 첫 향수 ‘Curious’ 는 시장에 출시된 지 5주 만에 수익 1억 달러 고지를 돌파하며 그 해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향수로 기록 되었고, 출시 후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스테디셀러로 사랑 받고 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Fantasy,’ ‘Believe’ 등 후속 라인이 잇달아 론칭되며 지금까지 2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두었는데, 이로써 그녀는 역사상 향수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셀러브리티가 되었다. [생에 첫 자유를 맛보다] 아이콘으로서의 지위를 확인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매달렸던 투어가 전면 취소되면서 좌절감을 경험한 그녀는 당시 자신의 곁에 머물며 간병인 역할을 자처한 케빈 페더라인 (Kevin Federline) 으로부터 큰 위안을 얻는다. ‘헐리우드 드림’을 꿈꾸며 상경해 단역 배우로 활동하던 그는 실제 그녀의 백댄서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데, 북미 투어 도중 헐리우드의 한 클럽에서 휴식을 취하던 그녀는 우연히 케빈과 재회하게 되고 이후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그녀가 무릎 부상으로 인해 휴식기에 돌입한 직후인 2004년 9월 18일 두 사람은 깜짝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의 만남에서부터 결혼까지의 과정은 당초 MTV 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었던 투어 다큐멘터리가 투어 취소로 인해 더 이상 제작이 어렵게 되자 이 커플의 결혼과 함께 전면적으로 내용이 수정되어 미국 UPN 을 통해 방영된 리얼리티 쇼 ‘Chaotic’ 을 통해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쇼의 방영 당시 임신 중이던 그녀는 임신 사실을 채 알기도 전에 ‘아기’에 대한 영감을 받아 직접 작사, 작곡한 발라드곡 ‘Someday (I Will Understand)’ 를 사운드트랙에 수록해 오랜 기다림에 지친 팬들에게 깜짝 선물하기도 했다. 2005년 9월 14일 그녀는 첫 아들인 션 프레스턴 (Sean Preston) 을 출산했고, 이후 그녀는 곧장 컴백 준비에 돌입하지만 예상치 못한 연이은 둘째 아이의 임신으로 인해 불발되고 만다. 게다가 그녀의 명성에 욕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 속에 케빈의 과거 행적이 뒤늦게 파헤쳐지며 이 커플은 타블로이드의 집중 타깃이 된다. 어느 순간부터 이들의 불화설이 날마다 줄을 이었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더 많은 숫자의 파파라치들이 그들의 곁을 상주하기 시작해 이제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카메라 렌즈를 통해 삽시간에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녀가 파파라치를 피하기 위해 아이를 무릎 위에 앉힌 채 운전을 하는 모습이나 몰려든 파파라치들로 인해 당황한 그녀가 아이를 놓쳐 떨어뜨릴 뻔 한 뒤 눈물을 흘리는 모습 등이 여과 없이 포착되며 대중들은 그녀를 ‘자격 없는 엄마’ 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처럼 어수선한 상황에서 그녀는 또다시 해를 넘겨 2006년 9월 12일 둘째 아이 제이든 제임스 (Jayden James) 을 출산한다. 그러나 여전히 불화설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그녀는 모든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랩퍼 데뷔를 준비하는 케빈의 음반 제작비를 전부 부담하거나, 결혼 후 공식 활동을 전면 중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정한 부부애를 과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남편과 함께 공식석상에 나타남은 물론, 출산 직전 만삭의 몸을 이끌고 2006년 ‘틴 초이스 어워즈 (Teen Choice Awards)’ 에 출연해 그의 데뷔 무대를 직접 소개하기까지 ?다. 그러나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그간 미디어의 집중 포화로 만신창이가 된 그들의 결혼생활을 둘러싼 갖은 의혹이 사실이었음을 인정하고 만다. 당시 그녀는 케빈과의 결혼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오랜 매니저인 래리 루돌프와 결별했는데,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음과 동시에 그를 다시 자신의 곁으로 불러들여 컴백을 위한 수순을 차례차례 밟아 나갔다. 하지만 해를 넘겨 이어진 이혼 소송과 양육권 분쟁으로 인해, 특히나 온갖 미디어의 집중조명 아래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인해 그녀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컴백준비가 흐지부지 되며 래리와는 다시금 결별했고, 결혼 이후 그간 꾸준히 그녀 곁을 지켰던 부모님은 물론 그녀의 어시스턴트이자 가장 절친한 친구인 펠리시아 등 모두와의 관계가 소원해 진 뒤였기에, 이제 더 이상 그녀의 곁을 지탱해 줄 그 어떤 이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다. [정상에서 나락으로의 추락을 경험하다] 훗날 그녀는 ‘생에 처음으로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어린 시절부터 춤과 노래에만 매달려 왔던 내 인생이 사실은 너무도 많은 것을 박탈당해 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잘못된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 고 회상한다. 여전히 자신이 세간의 롤 모델로 존재해주길 바라는 대중들의 시선에 대한 반항의 의미로 그녀는 이 시기에 패리스 힐튼 (Paris Hilton), 린지 로한 (Lindsay Lohan) 등 헐리우드의 대표적 ‘파티 걸’ 들과 의도적으로 어울리며 잦은 파티와 음주를 즐기는 등 스스로의 벽을 탈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게다가 이러한 그녀의 ‘성장통’ 은 파파라치의 카메라 렌즈와 타블로이드의 펜대를 통해 시시각각 전세계에 낱낱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당시 양육권 소송이 한창이었는데, 부모의 성품과 행동양태가 중요한 판단 기준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밤 파티를 즐기며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그녀의 모습은 위태로움 그 자체였다. 게다가 미디어를 통해 비쳐지는 그녀의 언동은 실제보다 훨씬 더 과장되고 무모한 것이기에 그녀는 갈수록 재판에서 입지를 잃어갔고,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인 두 아이의 양육권 마저 빼앗길 위기에 놓이자 더더욱 큰 절망에 빠지고 만다. 결국 그녀는 순식간에 겉잡을 수 없는 추락의 일로에 접어든다. 온갖 타블로이드의 집중 공격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녀는 매일 밤 또 다른 사건과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해를 넘기자 그녀의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고, 그녀의 최 측근 가운데 한 명이었던 친척이 갑작스레 사망하자 그녀는 심리적으로 큰 불안을 겪는다. 얼마 뒤 그녀는 심각한 조울증과 행동장애를 이유로 자진해서 재활원에 입소하지만 채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퇴소하더니 파파라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머리를 직접 삭발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이후 그녀는 다시 재활원에 입소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오래가지 못했고, 갑작스레 우산으로 파파라치의 차량을 공격하는 등의 기행이 연달아 목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녀는 놀랍게도 컴백을 타진하고 있었다. 세 번째로 재활원에 입소해 한 달간의 모든 프로그램을 완수한 그녀는 유명 프로듀서들과 함께 꾸준히 녹음 작업을 병행하는 동시에 미국의 유명 음악 클럽 ‘하우스 오브 블루스 (House Of Blues)’ 에서 작은 규모의 미니 투어를 진행했다. 큰 화제를 불러 모은 이 투어는, 그러나 비싼 티켓 값을 무색케 하는 어설픈 무대로 오히려 부정적인 여론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날이 갈수록 그녀의 사생활은 더욱더 꼬여만 갔고, 마침내 양육권 분쟁은 그녀가 무작위로 알코올 테스트 및 양육법에 대한 정기적인 교육을 받는다는 조건 하에 두 사람이 50:50의 비율로 나눠 갖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캘리포니아에서는 유효하지 않은 루이지애나의 면허증만을 소지한 채로 주차장에서 타인의 차량과 접촉사고를 냈고, 이 장면이 파파라치에 의해 포착되며 그녀는 기소되고 만다. 후에 무죄 판결을 받기는 하였으나, 이로 인해 그녀는 즉각 아이들의 양육권을 완전히 잃게 되는 극단의 상황에 치닫게 된다. [완성도 높은 음악으로 반전을 노리다 / Blackout (2007.11.30)] 무려 4년 만에 발매된 신작이지만 당시의 정황은 그녀에게 썩 유리하지 않았다. 사생활은 비극으로 치달았고, 두 아이를 출산한 이후 ‘섹시 팝스타’라는 수식어가 무색하리만치 자기 관리에 소홀했던 그녀의 모습에서 더 이상 과거의 영광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는 공백기 동안 인기 시트콤 ‘윌 & 그레이스 (Will & Grace)’ 에 카메오로 출연하는 등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고, 무엇보다도 사생활과는 별개로 음반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본작의 ‘Executive Producer’ 로 이름을 올린 그녀는 이 시기에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만 해도 무려 50여 곡 이상을 녹음했는데, 스튜디오에서만큼은 프로페셔널 한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음반의 주요 수록곡 들이 이미 오래 전 녹음이 완료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음반 발매 직전까지 매일같이 스튜디오를 드나들며 컴백 레코드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세상의 부정성을 봉쇄하고 삶 그 자체를 온전하게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명명된 본작은 여러가지 면에서 흥미로운데, 우선 굴곡진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를 겪은 뮤지션들이 자신의 노래에 그 고통을 고스란히 반영해 아픔을 치유하거나 때로는 대중으로부터 면죄부를 부여 받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사생활과 음악을 철저히 분리시켰다. 물론 음악을 통해 절망적인 결혼 생활에 대한 심경을 토로하거나 대중과 미디어의 지나친 관심으로 인해 초토화된 자신의 삶을 스스로 비꼬기도 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감정과 사생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결단코 거부했다. 게다가 음반의 모든 수록곡이 첨단의 비트와 기계음으로 무장한 트렌드의 절정인 일렉 댄스 팝이자 노골적인 클럽 튠이었고, 아직 무대에 다시 오를 준비가 되지 않아 보였던 그녀가 내놓은 이 예상 외의 결과물은 평단과 대중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팀바랜드 (Timbaland) 의 오른팔 네이트 힐스 (Nate “Danja” Hills) 는 마침내 그 그늘에서 마침내 벗어나 본작의 음악적 축을 확고히 다지는 역할을 했고, 블러드샤이 & 아방트 역시 여전히 최첨단의 세련된 프로듀싱 감각을 유감 없이 발휘했으며, 브리트니와 5년 만에 재회한 패럴 윌리엄스는 그녀의 관능적인 보컬에 R&B적 감성을 덧씌우는 실험적인 작업을 도맡았다. 이외에도 카라 디오가디 (Kara DioGaurdi), 티-페인 (T-Pain), 션 개럿 (Sean Garrett) 등 최정상의 뮤지션들이 총출동해 지금껏 그녀가 선보인 그 어떤 음반보다도 더 대담하고 감각적이며 세련된 댄스곡으로 무장한 본작은 오히려 절망스런 사생활에 빠진 그녀를 둘러싸고 조성된 신비감 덕에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과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고, 평단은 바로 이 음악이 그녀가 준비한 야심찬 반전의 한방이라며 그녀의 화려한 컴백에 힘을 실었다. 첫 싱글 ‘Gimme More’ 는 발매 이후 3주간 디지털 음원 판매 순위 정상을 지켰고, 첫 주에만 무려 18만 건의 유료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빌보드 싱글차트 3위로 껑충 뛰어 올랐다. 이는 대중들이 여전히 그녀의 음악에 귀 기울이고 있음이 확인된 대목이었고, 이제 그녀가 음반 발매와 함께 모든 것을 추스르고 정상의 자리로 화려하게 복귀할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곡의 인기와는 별개로 그 의도를 전혀 알 수 없는 뮤직비디오는 물론 불안한 심리상태에 극도의 긴장까지 겹치며 대대적인 홍보 속에 세간의 관심이 쏟아졌던 2007년 VMA 오프닝 무대에서 재앙과도 같은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등, 그녀가 아직 돌아올 준비가 되지 않았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말았다. 게다가 음반 수록곡 대부분이 발매를 한참 앞둔 시점에 사전 유출되며 막대한 피해까지 입게 되었고, 결국 발매를 긴급하게 2주나 앞당기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이처럼 모든 상황은 그녀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결국 본작은 전무했던 프로모션 속에서 미국 내 첫 주 3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 전설적인 밴드 이글스 (Eagles) 의 신작에 밀려 빌보드 앨범차트 2위로 데뷔하는데 그쳤다. 사실 빌보드와 사운드스캔은 판매량 집계 과정에서 그녀의 1위 데뷔를 거의 확정적으로 예고하였으나, 차트 발표를 채 24시간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사전 예고 없이 갑작스레 차트 집계 규정을 바꾸었고, 이로 인해 그녀가 데뷔 앨범부터 쭉 이어온 빌보드 앨범차트 1위 데뷔 기록이 마침내 끊기고 말았다. 이후 ‘Piece of Me’ 와 ‘Break The Ice’ 가 차례로 싱글 커트되었는데, 뮤직비디오 발표 이외에는 전무한 홍보 속에서도 아이튠스와 팝 라디오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본작은 미국 내에서 플래티넘 고지를 달성, 전세계적으로도 30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가며 변함 없는 그녀의 저력을 과시했다. [벼랑 끝으로 내몰려 죽음의 문턱에 서다] 그녀의 삶은 여전히 암흑 속을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바닥을 치며 추락했고, 심지어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그녀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비해 미리 부고를 준비해 놓았을 정도이니, 이제 그녀의 삶은 머지 않은 마지막 순간을 향해 위태롭게 질주하는 듯 보였다. 특히 이 시기에 미국 내 전체 파파라치 수입 중 20% 이상이 브리트니 단 한 사람에 의한 것이었다고 하니, 한 팝스타의 추락하는 삶에 미 엔터테인먼트업계 전체가 발 벗고 나서 비정상적 일만큼 집착했던 이유가 이제는 짐작이 된다. 그리고 2008년 1월, 그녀는 극도의 정신 불안 상태에 빠진다. 갑작스레 영국 억양을 사용하거나 도로 한 가운데 차를 세워두고 카메라로 벽화를 찍어대는 등 이미 그녀를 둘러싼 이상 징후가 수없이 발견 되었고, 마침내 절정에 도달해 폭발하기 일보직전의 위태로운 상황에 이르고 만 것이다. 당시 4일간이나 잠을 이루지 못했던 그녀는 마침 자신에게 주어진 면접교섭권 덕에 두 아이와 함께 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갑작스레 극도의 흥분상태에 빠진 그녀는 아이들을 케빈에게 뺏길 수 없다며 두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격렬하게 아이들의 인도를 거부했다. 결국 케빈의 신고로 늦은 새벽 출동한 경찰과 앰뷸런스가 그녀의 집 앞을 빼곡히 메우고 있던 수백 명의 파파라치들과 출동하며 큰 소동을 연출한다. 결국 그녀는 강제로 병원에 이송되었고, 한때 모든 이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팝의 요정’ 이 두 팔이 묶인 채 들것에 실려 나가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전세계에 퍼져 나갔다. 마치 더 이상의 삶의 의미를 상실한 듯한 표정의 그녀가 망연자실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 마지막 순간 카메라에 포착 되었고, 사람들은 이것이 그녀의 최후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언론을 통해 이 소식을 전해들은 그녀의 가족들이 가장 먼저 그녀를 찾아왔다.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라는 의사의 판단 하에 그녀는 병원에서의 요양을 권유 받고, 이때 법원은 그녀의 아버지에게 심신이 미약한 상태인 딸의 대리인으로서 그녀의 모든 재산과 활동에 대한 잠재적인 관리권을 부여한다. 또한 그녀는 그간 관계가 소원했던 어머니와도 극적으로 화해했고, 뒤이어 래리까지 합류했다. 모든 역사의 처음 순간부터 함께해왔기에 자신에게는 딸과도 같은 그녀의 처참한 현실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연민과 책임감을 느낀 그가 자진해서 그녀의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후 그들은 말리부에 위치한 그녀의 저택에서 함께 생활하며 그녀가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온 정성을 가득 쏟아 부었다. 한편 그녀의 먼 친척으로 반짝 스타를 꿈꾸었던 알리 심스 (Ali Sims) 와 함께 그녀 인생의 가장 굴곡진 시간을 함께한 인물인 샘 럿피 (Sam Lutfi) 에게 법원은 접근금지명령을 내린다. 아직까지도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전혀 밝혀진 바가 없는데, 린이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 의해 그간의 악행이 조금이나마 세간에 알려졌다. 그는 브리트니의 매니저를 자처하며 그녀의 집에서 생활하는 동시에 모든 재산을 관리했고, 그녀 소유의 모든 자동차를 고장 내거나 저택 안의 통신 시설을 통제하는 등 그녀로 하여금 바깥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모두 잃어버리게 했다. 또한 그는 브리트니를 끊임 없이 파파라치에게 노출시키는 대가로 그들에게 그녀의 미행과 감시를 맡겼고, 오랜 기간 동안 그녀의 음식에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약물을 갈아 먹이거나 폭언과 협박을 일삼았던 충격적인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그녀는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그에게 복종할 수 밖에 없었고, 가족의 도움을 애타게 필요로 하면서도 그렇게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방치되어 온 것이다. 이후 그녀의 건강 상태가 심각해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린이 마침내 그녀의 말리부 저택을 찾아왔고, 아빠와 아이들이 보고 싶다며 아이처럼 눈물을 흘려대는 딸의 모습을 목격한 뒤에야 무언가가 잘못 되었음을 직감해 그녀를 구해낸 것이다. 이처럼 벼랑 끝에서 위태로운 순간을 경험한 그녀는 마침내 마지막 순간에 한줄기 희망의 빛을 얻었다. 그녀의 가족과 래리는 그녀를 철저히 보호함과 동시에 모든 불필요한 관계를 정리했고, 그들의 보살핌 아래 그녀는 서서히 건강을 회복했다. 얼마 뒤 그녀는 일시적으로 잃었던 양육권까지 회복했고, 이후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보내며 안정을 취하는 동시에 곡 작업에 매진하며 스튜디오에 돌아오는 여유마저 되찾았다. 특히 2008년 봄에는 인기 시트콤 ‘How I Met Your Mother’ 에 카메오로 출연하며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그녀의 출연소식 만으로도 큰 화제를 불러 모은 해당 에피소드는 시리즈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변치 않은 그녀의 스타파워를 유감 없이 과시했다. 이제 그녀는 본격적으로 컴백 음반 작업에 돌입했다. 다만 여러 도시와 국가를 넘나들어야 하는 팝스타의 특성상 자유로운 활동에 제약을 주는 양육권 문제가 큰 걸림돌이었다. 결국 그녀는 케빈에게 전적으로 양육권을 넘기고 본인은 매달 수만 달러에 달하는 양육비를 지급하며 아이들에 대한 면접교섭권 만을 갖는 것으로 하여 그간의 길고 긴 양육권 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것은 이제 그녀가 대외적으로 컴백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커리어 사상 최악의 순간을 경험했던 바로 그 무대를 1년 만에 다시 찾았다. MTV 의 대대적인 홍보 아래 2008년 9월 열린 VMA 에서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 넘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 쇼의 개막을 알리는 오프닝 멘트를 전한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쇼의 대미를 장식하며 진정한 승자로 기록된 이도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매년 VMA 에서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펼치며 시청률을 견인해왔음에도 수십 차례에 걸쳐 후보 지명만 받았을 뿐 단 한 번도 ‘문맨’ 을 손에 쥐어보지 못했던 그녀에게, MTV 는 대상 격인 ‘올해의 비디오상’을 비롯해 무려 3개 부문 수상의 영광을 한꺼번에 몰아주며 무려 10년의 기다림 끝에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에게 큰 힘을 실어 주었다. [역사상 가장 화려한 컴백을 기록하다 / Circus (2009.12.02)] 이제 그녀의 컴백은 시간문제였다. 매일 댄스 스튜디오에서 강행군을 펼치는가 하면, 전작의 화려한 음악적 성과를 일궈낸 장본인인 네이트 힐스, 블러드샤이 & 아방트는 물론 닥터 루크 (Dr. Luke), 레이디 가가 (Lady GaGa) 등 신진 아티스트들과 협연함과 동시에 오랜 음악적 파트너인 맥스 마틴과 재결합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잇달아 전해져 왔다. 그리고 조만간 그녀의 대대적인 컴백이 이루어질 거란 세간의 추측이 무색하지 않게, 그녀의 27번째 생일인 2008년 12월 2일 ‘Circus’ 라 명명된 대망의 신보가 전세계에 동시 발매되며, 이와 함께 대대적인 홍보가 뒤따를 것임을 예고하는 내용의 자이브의 공식적인 발표가 이어졌다. 또한 마돈나는 자신의 최신 투어 ‘Sticky & Sweet Tour’ 에 브리트니의 영상을 사용하며 그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는데, 특히 11월 LA 에서 열린 공연에 그녀를 직접 초대해 함께 ‘Human Nature’ 를 열창하며 그녀의 컴백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얼마 뒤 가히 폭발적인 기대 속에 발표된 첫 싱글 ‘Womanizer’ 는 놀랍게도 전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 프로듀싱 팀 아웃사이더스 (The Outsyders) 의 손을 거친 세련된 일렉트로 팝 넘버였다. 트렌디한 최첨단의 사운드에 전후방에 배치된 노골적인 훅이 돋보이는, 소위 말하는 전형적인 ‘후크송’ 인 동시에 오토튠의 사용을 배제해 오히려 신선한 느낌을 주는 이 곡은 공개와 동시에 팝 라디오 및 아이튠스에서 수직상승했고, 정식 판매가 시작된지 6일만에 무려 286,000 건 이상의 유료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첫 주에 가장 많은 다운로드를 기록한 여성 가수의 싱글’ 이라는 새로운 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에 전에 없던 라디오의 든든한 후원까지 더해지자 96위로 빌보드 싱글차트에 첫진입했던 이 곡이 2주차에 곧바로 1위에 뛰어 오르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기록을 수립하게 된다. 이는 빌보드 역사상 가장 큰 순위 변동이었고, 막강한 경쟁곡들을 제치고 데뷔싱글 이후 무려 10여 년 만에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 다시 오르는 기쁨을 맛 본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컴백을 온 세상에 공포한다. 한편 MTV 는 그녀의 컴백을 지원사격 하기 위해 VMA 당일부터 새 음반 발매 직전까지 약 3개월간에 걸쳐 그녀의 모든 행보를 밀착취재한 90분 분량의 특집 다큐멘터리 ‘For The Record’ 를 제작한다. 그녀의 모든 컴백 과정을 상세히 다룬 이 다큐멘터리는 ‘그 어떠한 질문의 제약도, 질문에 대한 묵비권도 없음’을 전제로 하여, 그녀가 그간 겪었던 방황의 시절에 대해 처음으로 진솔한 속내를 털어놓아 큰 화제를 모았다. MTV 를 통해 미 전역에 방송된 이 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변함 없는 그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증명해냈고, 뒤이어 ‘롤링 스톤’ 등 유수의 잡지들이 앞다투어 그녀를 표지모델로 섭외하며 굴곡진 삶의 명암을 극복하고 마침내 정상의 자리로 화려하게 복귀한 그녀의 행보를 집중 조명했다. 이어 그녀는 유럽에서의 프로모션 투어를 시작으로 활동을 재개하는데, 우선 독일의 ‘밤비 어워즈 (Bambi Awards)’ 에 참석해 수많은 명사들 앞에서 신곡의 첫 공연을 선보임과 동시에 세계적인 패션 거장 칼 라거펠트 (Karl Lagerfeld) 로부터 ‘세계를 대표하는 팝 아이콘’ 상을 수상했고, 다음 날은 곧장 프랑스로 날아가 ‘스타 아카데미 (Star Academy)’ 에 출연해 뜨거운 관중의 환호 속에 자신감을 회복했으며, 셋째 날에는 영국의 ‘엑스 펙터 (X-Factor)’ 에 출연해 전성기 시절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마침내 그녀 자신이 정상 궤도에 올랐음을 입증했다. 3일간 3개국을 오가는 강행군을 무리 없이 소화하며 몸풀기를 마친 그녀는 이후 곧장 미국으로 돌아가 뉴욕과 LA 의 유서 깊은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 행사에 참여해 대중과 소통하는 한편 음반 발매일인 12월 2일 오전 ABC 의 ‘굿모닝 아메리카 (Good Morning America)’ 에 출연해 처음으로 신곡을 미국 팬들에게 소개함과 동시에 성대한 생일 파티를 개최하며 대대적인 컴백의 서막을 알린다. 당시 그녀의 컴백을 둘러싼 대중의 폭발적인 기대감은 이후 본작이 발매 첫 주 미국에서만 무려 50만 장 이상 팔려나가며 빌보드 앨범차트 1위로 핫샷 데뷔하는 놀라운 기록으로 이어진다. 이로서 그녀는 데뷔 앨범부터 여섯 장의 앨범이 연속으로 1위, 혹은 2위에 데뷔한 유일한 아티스트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부여 받았고,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지금까지 미국 내 160만장 이상, 전세계적으로는 400만 장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달성했다. 또한 음반의 타이틀 트랙이자 두 번째 싱글인 ‘Circus’ 는 음반 발매와 동시에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빌보드 싱글차트 3위로 핫샷 데뷔하는 기염을 토했다. 뒤이어 맥스 마틴과의 7년 만의 작업으로 큰 화제를 불러모은 ‘If U Seek Amy’ 와 ‘Radar’ 등이 싱글로 커트되며 앞선 싱글들과 나란히 큰 사랑을 받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녀는 자신의 커리어 사상 가장 거대하고 화려한 규모의 월드 투어 ‘The Circus Starring: Britney Spears’ 를 개막한다. 아직 그녀가 완전히 건강을 되찾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의욕적으로 투어 준비에 매진했다. 다만 그녀가 LA 를 떠나게 될 경우 두 아이들의 면접교섭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므로, 법원은 한층 안정되고 개선된 그녀의 삶을 인정하며 케빈에게 특별 주급을 지급하는 것을 조건으로 두 아이를 투어 버스에 동행시키는 것을 허락했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춘 그녀에게 더 이상 거칠 것은 없었다. 평균 티켓 값이 100달러에 육박하는 초고가의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사전예매를 시작한 직후 무려 100,000장 이상의 티켓이 순식간에 팔려나가며 ‘대박’ 의 징조를 보이더니, 결국 북미 공연 전회 매진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하며 2009년 상반기 미국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기록한 투어로 기록되었다. 북미에서만 총 94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 8,3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두어 들인데 이어 9개 국가에서 이어진 유럽 투어도 큰 성공을 거두었고, 특히 덴마크 공연에서는 단일 공연으로 4~5만 명 이상을 동원하는 등 변함 없는 월드 스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오는 11월에는 현지 관객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벌써부터 공연 일정 연장이 쇄도하고 있는 그녀의 첫 호주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이미 그녀는 이미 지난 여름부터 일곱 번째 스튜디오 앨범을 착실히 준비 중이다. 연일 공연이 계속되는 강행군 속에서도 그녀는 틈틈이 곡 작업에 열중하며 이미 수많은 뮤지션들과의 협연 소식을 잇달아 전해왔는데, 네이트 힐스, 맥스 마틴, 닥터 루크 등 그녀의 성공적인 컴백을 위해 그들이 가진 재능을 아낌 없이 쏟아 부었던 명 프로듀서들과 다시 한 번 조우함은 물론 실력파 하우스 DJ 데이빗 게타 (David Guetta) 나 영국 출신의 개성파 뮤지션 릴리 알렌 (Lily Allen) 등 이번에도 역시 상상을 불허하는 의외의 뮤지션들과의 조합을 선보이며 새로운 음악적 변신을 예고하고 있는 그녀의 새 앨범은 이르면 내년 봄 만나볼 수 있다. […AND THE ‘CIRCUS’ MUST GO ON] 진부한 표현이나, 그녀의 삶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하다. 그녀를 성장시킨 것도, 타락시킨 것도, 그리고 다시 정상의 자리에 올린 것도 모두 결국은 우리의 몫이었다. 그녀가 어느 순간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며 돌이킬 수 없는 타락의 일로로 접어들었을 때, 우리는 나날이 망가져 가는 그녀의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힐난을 내던지는 동시에 한 때 우리가 너무도 사랑했던 그녀의 오늘날 비참한 현실에 책임감과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녀가 다시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적어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은 말이다. 그러나 모든 영화가 그러하듯, 그녀는 마지막 순간 가장 화려한 반전에 성공했다. 사실 그녀가 음악적으로 슬럼프에 빠졌던 적은 없었으니 그녀 본인은 ‘컴백’ 이란 표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빛나는 정상의 자리에 우뚝 솟은 그녀의 모습을 두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컴백’ 이라 칭하는 것에 반기를 들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마돈나는 마이클 잭슨을 기리는 뜻에서 치러진 지난 9월의 VMA 오프닝 무대에 올라 다음과 같은 추모사를 읊었다. “인간이 무언가를 상실하면, 평생 그 상실감을 보상받기 위해 집착하게 된다. 나의 경우는 어머니라는 존재가, 마이클에게는 박탈 당한 그의 유년시절이 바로 그러했다. 나는 모정을 찾는데 성공했지만, 이미 흘러간 유년 시절을, 그것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에서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나. 우리는 유년 시절 거듭된 실수를 용인 받으며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웠지만, 그 기회조차 박탈당했던 그를 내가 그리고 우리가 외면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 후 ‘롤링 스톤’ 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이 발언이 브리트니를 염두에 두기도 한 것이라고 밝혔다. 혹자는 그녀의 삶을 불멸의 팝의 황제의 그것에 비유하는 것에 불쾌감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서두에서 언급했듯 그들이 너무도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마이클은 오?도록 꿈꿔온 마지막 단 한 번의 ‘위대한 반전’을 비극적인 죽음을 통해서야 비로소 실현할 수 있었고, 브리트니는 결국 그 자신의 가장 본질적인 재능을 통해 화려하게 정상에 복귀했다는 데서 희비가 엇갈리고 말았을 뿐이다. 그러나 어쩌면 마이클의 최후가 이미 한참 전에 브리트니의 것이 될 수도 있었고, 또 반대로 음악을 통해 그를 둘러싼 모든 악재를 정면돌파 한 그녀의 용기에 마이클이 영감을 얻어 그의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웠을는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결국 누구나 꿈꾸는 부와 명예로 가득한 화려한 스타의 삶 이면에는 미디어와 대중들에게 낱낱이 파헤쳐진 초토화된 삶이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불변의 진리는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다만 그들이 박탈당한 것이 인간으로서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그 무언가라면, 우리가 그러하듯 그들 역시 그 박탈감을 보상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 어떤 짓을 저질러도 어리다는 이유 만으로 모든 것이 용서가 되었기에, 우리는 거듭된 실수를 통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고 배웠으며 그로부터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자유, 평범한 유년 시절, 행복한 가정 따위는 애초에 주어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 그녀는 남들보다 한참 늦게 홀로서기를 시작하며 뼈아픈 성장통을 겪었을 뿐이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존재인 탓에, ‘블록버스터급’ 의 스케일로 말이다. 그녀의 지난 과거에 면죄부를 달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우리 시대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고 또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될 진정한 의미의 아이콘을 또다시 섣불리 외면해 뒤늦게 후회하는 일 따위는 무의미하단 사실을 이제는 깨닫게 되었길 바랄 뿐이다. 그들도 결국은 삶의 희로애락에 울고 웃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니까. 온실 속의 화초처럼 세간의 사랑을 받은, 그리고 결코 영원하지 않을 그 변덕스런 대중의 사랑을 스스로 지켜나가길 강요 당해온 ‘팝의 요정’ 은 이제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강인한 여인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렇게 팝의 여왕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서커스’ 는 계속될 것이다. 글. 이건휘 (iLoveBrit) lovesounds.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