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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 공양을 드리는 아이 / 새의 아빠 / 보물섬을 찾아서 / 일본인 교장 / 갑자기 커 버린 어느 날 / 굴 장수 이모 / 사랑과 자유 / 정백미 서 말, 참기름 두 병 / 상해에서 만난 여인 / 나팔을 불어라 / 매미의 울음소리 / 손에 손을 맞잡고 / 태항산 전투 / 다리 하나쯤은 괜찮아 / 이북으로 가는 이불짐 / 짧은 행복 / 평양에서 온 편지 / 세기의 신화 / 년 만에 찾아온 동지 / 다시 찾은 관훈동 번지 / 자유 찾아 만 리 길 / 지은이의 말 / 김학철이 살아 온 길 / 김학철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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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그 큰 돈을 어떻게 갚지?’
성걸은 엄마가 자기 때문에 밤잠도 못 자고 삯바느질을 할 생각을 하니 진땀이 났다. 집에 도착하자 성걸은 책보자기를 던지며 소리쳤다. “엄마, 나 학교 안 갈래!” “왜?” 엄마가 놀라 물었다. “일본인 교장이 있는 학교는 안 갈래. 미나미 교장 미워 죽겠어!” 그 말에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 일본인 교장이 없는 학교는 없단다.” “왜 없어? 왜 우리나라에 우리나라 사람이 교장 하는 학교가 없어? 여기가 우리나라인데 대체 왜 없는 거야?’ 성걸의 말에 엄마는 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p.37 그때 문틈으로 하얀 종이가 들어왔다. 엄마의 편지였다. “아, 엄마!” 아들아, 이 어미의 말을 명심하거라. 다음에 적은 것을 날마다 정성 들여 108번씩 외우면 다리의 상처가 꼭 아물 것이다. 부처님의 무량 공덕을 믿어라.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학철의 큰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편지 위에 떨어졌다. 학철은 곧 누이동생 성자에게 편지를 썼다. 엄마에게 이 편지를 전하거라. 사람은 ‘인력거를 끄는 동물’이 아니다. 다리 하나쯤 없어도 문제 없다. 걱정 마라……. 학철은 책을 펼치고 생각했다. ‘다리 하나 없는 것쯤 괜찮아! 이제부터는 작가가 되는 거야! 작가가 되어 이 격정의 시대를 기록하는 거야!' --- p.146 10년 동안의 피비린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누명에서 벗어났지만 학철은 달랐다. 학철의 고소는 매번 기각당했다. 결국 학철은 최고 인민 법원에 직소했다. 매일 9시 40분이면 우편배달부를 기다리는 날들이 3년이 넘도록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문 열어 주세요, 빨리요!” 목소리가 요란하고 다급해서 학철은 흠칫 놀랐다. 연변 작가협회의 젊은 직원이었다. 직원이 흥분하여 말했다. “선생님, 무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어서 공판장에 나올 준비를 하십시오! 무죄 판결서가 공포됩니다! 장소는 연길시 하남에 있는 당학교입니다!” 강제 노동과 옥살이로 보냈던 학철의 24년이 이렇게 끝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 오도록 학철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많은 세월의 기억과 상처와 한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졌다. 방은 종잇장이 떨어져도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 pp.194~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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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걸(김학철의 본명)은 1916년 원산에서 태어나 아들에게 지극 정성인 홀어머니 밑에서 철없는 소년 시절을 보낸다. 공부보다 노는 것을 좋아한 사고뭉치였지만 책 읽기를 좋아해 국어와 작문 과목만큼은 우수했다. 중학교 진학을 위해 서울로 유학 온 성걸은 적은 용돈을 쪼개 헌책방에서 책을 사 읽고, 되팔아 다른 책을 읽을 정도로 독서에 심취했다. 그러던 중 광주학생운동을 목격하고 안중근, 윤봉길, 서원준 등 여러 독립지사들의 활동 소식을 접하며 자신과 나라의 운명에 대해 깨닫는다.
독립운동을 하려고 무작정 중국으로 떠난 성걸은 독립운동 단체인 조선민족혁명당 당원 김혜숙을 만나 이름을 김학철로 바꾸고 테러리스트 활동을 시작한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뛰어난 언변으로 적진의 사기를 꺾는 데 일가견이 있었던 학철은 조선의용군 분대장으로서 중국 팔로군과 함께 직접 전투를 지휘하며 용감하게 싸우지만 호가장 전투에서 한쪽 다리를 잃고 나가사키 형무소에 수감되고 만다. 학철은 전향서를 쓰라는 일본의 요구를 끝내 거부했고, 결국 3년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지 못한 오른쪽 다리를 자를 수밖에 없었다. 1945년 11월, 나가사키 형무소에서 출소해 서울로 온 학철은 짧은 기간 동안 십여 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가로 활동을 시작한다.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것도 잠시, 좌파 탄압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월북한다. 평양에서 노동신문사 기자로, 평양 의원으로 활동하며 행복한 생활이 펼쳐지는가 싶었지만 곧 김일성과 관료주의를 비판한 글이 문제가 되어 중국으로 쫓겨나게 된다. 중국에서의 삶도 순탄치 않았다. 중국어로 쓴 작품들이 10만 부 넘게 팔리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지만 이번에는 우파로 몰리게 되어 모든 지위를 잃고 가난한 노동자로 살아가게 된다. 학철은 혼신을 다해 사회주의의 실상을 폭로하는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를 집필했지만, 문화대혁명이라는 지식인 탄압에 작품을 압수당하여 10년 형을 선고 받고 추리구 감옥에 갇힌다. 학철은 10년 만기 출소한 뒤에도 반동분자로 낙인 찍혀 일자리도 없이 목숨만 근근히 이어가는 생활을 해야 했다. 3년 뒤, 극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은 학철은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20년 동안 자신이 거쳐 온 역사의 소용돌이를 문학으로 승화하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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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철 연보
1916년_ 11월 4일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 1919년_ 3·1운동 일어남. 1924년_ 원산 제2공립보통학교 입학. 1929년_ 3월, 서울 보성고등학교 입학. / 11월, 광주학생운동 발발. 1932년_ 서울 보성고등학교 졸업. 1935년_ 임시 정부를 찾아 중국 상해로 망명. 1936년_ 조선민족혁명당 입당. 1937년_ 7월 7일, 노구교 사건 및 중일전쟁 발발. / 황포군관학교 입학. 1938년_ 7월, 황포군관학교 졸업. / 10월, 무한에서 조선의용대 창립. 1941년_ 12월, 호가장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됨. 1942년_ 나가사키 형무소에서 10년 수감 판결. 1945년_ 왼쪽 다리 절단. / 8월 15일, 광복. / 10월 9일, 출옥하여 서울로 감. / 11월 1일, 조선독립동맹 서울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시작. 1946년_ 10여 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함. 좌익 탄압으로 월북. 1947년_ 노동신문사 기자로 일하며 작품 창작을 계속함. 김혜원 여사와 결혼. 1950년_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 10월 중국으로 망명. 1951년_ 1월, 중국 북경 중앙문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작품 창작. 1957년_ 반동분자로 몰려 24년 동안 강제노동에 종사. 1966년_ 문화대혁명 시작. / 7월, 가택 수색으로 『20세기의 신화』 원고 발각됨. 1967년_ 12월, 10년형을 선고 받고 추리구 감옥에 감금됨. 1977년_ 12월, 10년 만기 출옥. 1980년_ 12월, 무죄 판결. 작품 창작을 다시 시작하여 20년간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함. 1994년_ KBS 해외동포상 특별상 수상. 2001년_ 9월 25일 오후 3시 39분, 연길시에서 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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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유를 외친 불굴의 영혼, 김학철
김구, 안중근, 윤봉길, 서재필 -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독립운동가들이 거쳐 간 격정 시대에 온몸으로 자유를 외친 김학철이라는 생소한 인물이 있다. 광주학생운동, 조선의용군 창설, 중일전쟁과 문화대혁명 등 혼란한 역사의 한복판에서 자유를 억누르는 그 어떤 권력과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인간 승리의 신화를 보여 준 인물, 김학철. 그의 일대기가 연변작가협회 소속 작가로 함께 활동하며 가까이에서 지켜 본 리혜선 작가의 손끝에서 재탄생했다. 본격적으로 독립운동과 창작 활동을 한 청년 시절 이야기뿐만 아니라 자유와 문학에 대해 생각을 쌓아갔던 김학철의 유년 시절 이야기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총과 펜을 들고 자유를 외친 이름 없는 영웅, 김학철 조선의용군 분대장으로 전투를 지휘하던 김학철은 호가장 전투에서 다리를 부상당하고 나가사키 형무소에 갇힌다. 전향서를 쓰면 다리 치료를 해 주겠다는 일본의 유혹을 끝내 뿌리친 학철은 3년 6개월 동안 피고름을 흘리는 고통을 견디다 결국 다리를 자르고야 만다. 그러나 문학으로 투쟁을 계속하리라 다짐하고 이승만, 김일성, 모택동 등 권력과 우상에 끊임없이 투쟁하며 자유를 외친다. 중국으로 망명한 뒤에도 문학연구소 연구원이자 유명 작가 로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모택동과 사회주의를 비판한 글을 발표해 24년간 강제노동과 옥살이를 한다. 이처럼 김학철은 끝없는 자기희생으로 몸 바쳐 자유를 외쳤고 자신에게 돌아올 고통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본주의와 경쟁사회의 출현으로 과정보다는 결과만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한 요즘, 오직 인간성과 정의를 최우선의 가치로 두었던 김학철의 정신은 오늘을 사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