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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MUN-KU,李文求, 호:명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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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전에 양평의 지역신문에 났던 늙은 농부 최옹이 암소 한 마리와 27년째 농사를 짓고 사는 이야기 또한 전자과학 시대에 숨가쁘게 사는 인생으로 하여금 넉넉한 느낌을 주었다. 최옹은 "젖 떨어진 놈 데려다 써레질 가르칠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같이 늙는 처지가 됐다"면서, "펄펄 기운내는 소는 내가 못 견딘다. 이 녀석은 다 알아서, 내가 쫓아갈 만큼만 일을 한다. 또 이리 가라면 이리 가고 저리 가라면 저리 가고, 아무 데나 풀어놔도 때가 되면 집을 찾아온다."
동네 사람들이 말하는 이 소의 미담 사례는 다음과 같다.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모여 놀면 저만치 주저앉아 아이들이 다 흩어진 다음에야 지나간다. 아이들이 겁나서가 아니고, 행여 지나가다가 아이들을 다치게 할까봐서 그러는 것이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은 '하릅강아지(한 살 된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의 왜곡이다. 어쨌든 하릅강아지뿐 아니라 하룻강아지까지도 개들은 다 이름이 있다. 그렇지만 소들은 이름이 없다. 최옹도 "소가 무슨 이름이 있어. 그냥 워- 하고 부르면 되지. 그래도 다 알아들어"한다. 예나 이제나 우이독경, 즉 쇠귀에 경을 읽을 필요는 없다. 사람도 못 알아듣는데 소가 어떻게 알아듣겠는가. 그러나 늙은 소는 농부의 농사용어를 알아들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식보다 낫다고들 할 수 있겠는가. --- p. 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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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전에도 선생님이 텔레비전에 나와 하신바 '해방이 그렇게 빨리 올줄 몰랐다'는 해명이야말로 정녕 '미당이 아니면 할 수가 없는 가장 미당다운' 대답이며, 그 이상의 무엇을 요구하는 것은, 예컨대 오답을 유도하거나 위답을 기대하는 뒤틀린 심사와 무엇이 다르겠냐고 되묻곤 해왔습니다.
선생님은 어디선가 '60년 동안 써먹은 가슴이라 심장이 아플 수밖에 없다'고 당신의 환후를 말씀하셨습니다. 하오나 그 60년, 아니 팔십 평생의 가슴앓이는 편편이 시가 되고, 그 시는 마침내 국민적인 유산 상속으로 하늘을 찌르도록 쌓여 오늘에 이르렀으니, 선생님의 모든 작품은 역사적 고전의 집대성인 당시(唐詩)와 쌍벽을 이루는 한시(韓詩)이며, 또한 현대적 고전의 집대성이라고 일러온 지가 벌써 오래였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보실 적마다 이르시기를, "술은 반드시 청탁을 가리되 부디 족보 있는 술을 마시거라"하시고 저의 대중없는 술버릇을 걱정하셨습니다. 꼭 상표가 있는 술을 마시고 동동주니 특주니 하는 이름 없는 술에 속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30년 동안 그 뜻을 받들어 지금도 아무 술이나 입에 대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어찌타 하필이면 "아아, 우리는 어이튼 한잔 해야 허거든!" 하셨던 하해지택(河海之澤)은 이날껏 받들지 못했는지 참으로 어이없고 한탄스럽습니다. 아아, 이 불초한 것이 선생님께서 이미 신화(神化)하신 날에야 비로소 한잔 술을 올리오니 영현이시여, 흠향하옵소서. * 이 글은 고인이 된 미당 서정주 선생을 생각하며 '미당 선생 영전에 붙여'라는 제목으로 2000년 12월에 쓰여진 원고입니다. --- pp. 87∼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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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려있는 글들은 고인이 죽음을 예감하며, 혹은 투병의 괴로움을 토로하며 써 내려간 글이 아니다. 자신의 지병은 이미 보이지 않는 저쪽 먼 구석으로 밀어놓고,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회의 한 사람으로 이런저런 자신의 생각과 정서를 표현해놓은 것이다. 하여 ‘유고집’의 어두움과 장엄함과 절규함 등을 예상했던 독자라면 다소 의외라고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전혀 다른, 그러니까 따뜻하고도 적극적인 ‘현역’ 이문구의 몸짓에 자못 놀라면서 편편들을 읽게 될 것이다.
책 속에는 집필한 날짜들이 일일이 적혀있지 않지만, 모든 원고들은 2000년에서 2002년 사이에 쓰여진 것이다. 매체의 게재 여부와는 상관없이 선생 스스로 삶에 대한 여러 소회를 기록한 글도 있고, 때로는 당시의 크고 작은 시대적 상황과 연관하여 이를 바라보는 선생의 관점을 궁금히 여겼던 매체의 기고문도 포함되어 있다. 1부 <지상의 마지막 불목하니>에서는 이문구 선생이 평소에 바라보는 자기 자신, 혹은 남의 삶들을 주제로 삼고 있는 ‘인생론’ 부분이다. 과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잊지 못할 타인을 추억하며, 사람의 인생과 평생을 동반하는 자연에 대한 감회까지 쓰다듬고 있다. 본인 스스로 말하길 ‘어쩔 수 없는 필부’라고 고백한 <필부 이야기>를 보면, 자신은 책이 나가면 훨씬 더 많이 팔리기를 바라는 푼수는 아니지만, 남들이 원하는 만큼의 욕심도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밖에 어렸을 적 작가에게 슬픔의 근원처럼만 보여졌던 문둥이들에 대한 기억, 세상의 여러 특기사항 중 재미나게도 불을 지피는 실력이 수준급임을 자랑하는 작가의 천진난만함을 엿볼 수 있다. 2부 <결혼식장에 간 동리선생>에서는 30년이 훨씬 넘도록 그의 인생을 지배했던 문학, 문단계를 소재로 한 글들을 모았다. 저 유명한 소설가 김동리 선생이 제자 이문구의 철없는 부탁에 주례를 보러 갔다가 겪게되는 황당한 에피소드, 평소 문단에서 ‘인격자’로 지칭되어 왔던 작가들에 대한 회고담, 그리고 선생이 직접 편집한 친일문학 작품집에 스승이었던 미당 서정주의 글을 싣고, 훗날 서정주 선생이 타계했을 때 눈물을 흘리며 뒤늦은 회한을 풀어내는 편지글 등은 참으로 주옥같다. 3부 <고개 들어 세상 보니>에는 그의 짙은 눈썹에서 보여지는 날카로운 비판력으로 사회의 어지러운 군상들을 꼬집는 내용들을 모았다. 가령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았던 계란이 어느샌가 콜레스테롤 운운하며 요주의 음식으로 전락하고, 국조(國鳥), 길조라 불리우며 추앙했던 까치 역시 ‘까치 소탕 100일 작전’이란 명명으로 제거의 대상이 되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변덕의 세상을 꼬집고 있다. 시기에 따라 말을 바꾸고, 사리사욕을 위해선 국민에게 가벼운 말(言) 사기쯤은 죄도 아니라 생각하는 정치꾼들 또한 이문구 선생의 회초리를 피하지는 못하고 있다. 4부 <‘꼭한’ 사내 ‘똑한’ 여인>에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우리가 쉽게 알지 못하는, 그러나 엄연히 자리잡은 우리 고유어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담뿍 실려있다. 우리 말에서 흔히 보여지는 성차별에 대한 글도 제법 눈길을 끄는데, 가령 남자가 씀씀이가 후하고 크면 ‘손이 크다’고 일러왔으나, 여자가 그러한 성격을 가졌다면 금새 ‘손이 헤프다’고 평가하는 것 등이 그러하다. 시중에 <이문구 용어사전>이 나와있을 정도로 한국 현대문학계에서 ‘말에 대한 성찬’을 가장 중요시하게 여겨온 작가로 평가되어 온 이문구의 우리말 사랑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