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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Oi soo,李外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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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이었다. 춘천은 짙은 안개 속에 침몰하고 있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소설가 이외수의 집필실. 창문으로 실내를 들여다보니 소설가 이외수는 집필에 몰두해 있었고, 그의 머리 위로 황금빛 물고기 몇 마리가 한가롭게 헤엄쳐 다니고 있었다. 벽시계가 새벽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죽은 언어의 껍질들이 방안 가득 흩어져 있었다. 나는 실내로 잠입해 들어가 소설가 이외수의 의식이 원고지와 분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지친 표정으로 담배 한 대를 피워물었다. 허공을 헤엄쳐 다니던 황금빛 물고기들이 순식간에 원고지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바로 그 순간, 내가 불쑥 허공에서 실체를 드러내며 그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 p.100 해탈의 경지를 알고 싶으면 물풀을 보라. 물풀은 화사한 꽃으로 물벌레들을 유인하지도 않고 달콤한 열매로 물짐승들을 유인하지도 않는다. 봄이면 연둣빛 싹으로 돋아나서 여름이면 암록빛 수풀로 무성해지고 가을이면 다갈색 아픔으로 흔들리다 겨울이면 조용히 스러지는 목숨. 그러나 물풀은 단지 물살에 자신의 전부를 내맡긴 채 살아가는 방법 하나로 일체의 갈등과 욕망에서 자유로워진 생명체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의지대로는 흔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물살과 합일된 상태로만 흔들린다. 진정한 사랑도 합일에 있고 진정한 깨달음도 합일에 있다. 모든 선각자가 이구동성으로 도는 하나라고 설파한 사실을 물풀의 흔들림에 근거해서 한 번쯤 깊이 숙고해 보라. --- pp.206-210 사랑은 직유(直喩)가 아니고 은유(隱喩)다. 때로는 봄날의 이슬비로 그대 눈썹을 적시기도 하고 때로는 여름날의 소낙비로 그대 늑골을 적시기도 한다. 때로는 가을날의 강물 소리로 그대 인생을 적시기도 하고 때로는 겨울날의 진눈깨비로 그대 영혼을 적시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이 은유된 사랑에 이르지 못하고 직유된 사랑에 머물러 있다. 인간은 네 가지의 눈을 가지고 있다. 육안(肉眼), 뇌안(腦眼), 심안(心眼), 영안(靈眼)이다. 어떤 눈을 개안하느냐에 따라 사랑의 크기도 달라진다. --- pp.325-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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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안, 뇌안, 심안, 영안… 그대는 어떤 눈을 뜨고 있는가
영혼의 연금술사 이외수가 그려낸 세상 돋보기 아름다운 외모의 금붕어나 떼로 몰려다니며 힘자랑에 여념 없는 납자루떼, 심지어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베스, 그리고 그들에게 늘 시달리며 호수 밑바닥을 기어다니는 물벌레…… 어느 물속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왠지 익숙한 우리들의 자화상을 담은 에세이 한 편이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온다. 열등감에 휩싸여 고독해 하는 하찮은 물벌레의 이야기 『외뿔』은 천하만물의 진리와 사랑도 진정한 깨달음이 없다면 욕망과 허영에 불과함을 일깨우는 책으로, 소설가 이외수가 『사부님 싸부님』(1983년) 출간 이후 18년 만에 내놓은 우화 에세이다. 뾰족하게 깎은 연필로 그리고 볼펜으로 덧그린 까닭에 1천 장의 파지를 만들어내며 문자 읽기를 넘어 시각적인 즐거움까지 안겨주는 이 책은 2001년 첫 출간 당시 10만 부 이상 판매되면서 독자들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은 바 있다. 새 출간을 위해 스토리 전개에 어우러지게 판형을 조절하고 컬러링 작업으로 단장했다. 작가는 도의 본질을 묻는 화두인 “어디로 가십니까”를 모든 국민이 일상적인 인사법으로 사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이 미국풍양속(美國風良俗)으로 되어버린 이 시대를 비판하고, 주인공인 도깨비 몽도리가 내려앉은 춘천시 의암호 물속 세상을 통해 욕망과 허영에 빠진 인간 세상의 축약판을 드러낸다. 또한 재산, 권력, 학벌, 신분, 외모 등을 좇아 발버둥치는 이들에게 물살에 자신의 전부를 내맡기는 물풀의 흔들림을 빌려 진정한 사랑과 깨달음이 합일에서 탄생됨을 깨우쳐준다. 인간이 간직한 네 가지 눈, 즉 육안(肉眼) 뇌안(腦眼) 심안(心眼) 영안(靈眼) 중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세상이 전혀 달리 보이며 육안을 벗어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합일, 곧 조화를 통한 깨달음으로 스스로를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채운다면,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마침내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 작가는 말한다. 단,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탐독하는 이에게만 그 지름길은 열리는 것이다. 느린 걸음으로 호수 밑바닥을 기어다니는 하찮은 생물로서 사나운 물고기들에게 쫓기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염세주의자 물벌레가 마침내 열등감을 딛고 은빛 날개로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탐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 살짜리 어린아이의 모습을 했으나 사실은 인간의 나이로 치면 백 살이나 먹은 영험한 존재인 도깨비가 연꽃 봉오리 속에 숨어 있다가 실체를 의심하는 인간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각박한 세상에 대한 불안으로 미래를 회의하는 이들에게 스스로 깨달아야 밝은 미래가 곧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임을 이 책은 오롯이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