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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sunari Kawabata ,かわばた やすなり,川端 康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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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에구치가 탄성을 올린 것은 진홍색 비로드 커튼 때문이었다. 어슴푸레한 불빛을 받아 그 색은 한층 깊게 느껴졌고, 커튼 앞에는 옅은 빛의 층이 있는 느낌이 들어 환상 속으로 발을 들여놓은 것 같았다. 커튼은 사방에 둘러쳐져 있었다. 에구치가 들어온 삼나무 문도 커튼에 가려지게 되어 있고, 거기에 커튼 끄트머리가 뭉쳐져 있었다. 에구치는 문을 닫고 커튼을 치면서 잠들어 있는 아가씨를 내려다보았다. 잠든 척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잠에 빠져 내는 것이 분명한 숨소리가 들렸다. 생각지도 않은 아가씨의 아름다움에 에구치는 숨을 죽였다. 생각지 못했던 것은 아가씨의 아름다움뿐만이 아니었다. 아가씨의 젊음도 그랬다. 이쪽을 향해 왼쪽을 아래로 하고 옆으로 누워 있어, 얼굴만 나와 있고 몸은 보이지 않았지만, 스무 살 전이 아닐까. 에구치 노인의 가슴속에 또 하나의 심장이 펄떡거리는 것 같았다. -중략- 이런 아가씨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야말로 젊음을 일깨워줄 것 같다. ‘잠자는 미녀’의 집에도 에구치는 조금 싫증이 난다. 싫증을 내면서 오는 빈도는 거꾸로 높아진다. 이 아가씨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이 집의 규율을 깨고, 노인들의 추하고 은밀한 쾌락을 깨는 그것으로 이곳과 결별하고 싶다. 들끓는 피가 에구치를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폭력이나 강제는 필요 없다. 잠들어 있는 아가씨의 몸은 아마도 반항하지 않을 것이다. 아가씨를 목 졸라 죽이는 것조차도 쉬울 것이다. 에구치 노인의 의욕은 사라지고 어두운 허무가 퍼져갔다. --- 「잠자는 미녀」 중에서 나는 불을 켰다. 아가씨의 팔을 가슴에서 내려놓고, 양손을 그 팔의 어깻죽지와 손가락에 대고 곧게 폈다. 5촉짜리 약한 빛이 아가씨의 한 팔이 만들어낸 그 곡선과 빛의 그림자가 이루는 물결을 부드럽게 했다. 동그스름한 어깻죽지, 거기서 홀쭉해지다가 도도록해지는 위팔, 다시 가늘어지면서 곡선이 아름다운 팔꿈치, 팔꿈치 안쪽으로 살짝 패인 오금, 그리고 손목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며 흐르는 곡선, 손바닥과 손등에서 손가락. 나는 아가씨의 한 팔을 조용히 돌리며 그것들 위에서 아롱거리는 빛과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 「한 팔」 중에서 다키코와 쓰타코는 한 모기장 안에 나란히 누워 자신들이 살해될 것도 모르고 자고 있었다. 적어도 완전히 잠을 깨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사실은 무기 징역을 선고받은 가해자 야마베 사부로도 재작년에 옥사하고, 사건이 일어난 지 5년이나 지난 지금으로서는 나를 일종의 바보 같은 허무에 빠트리기보다는 오히려 나로 하여금 일종의 육체적인 유혹을 느끼게 했다. 나는 그녀들의 유골을 수습해주면서 그 육체를 재로 화하기 위해 화장터 가마에 전기 불길이 들어가는 웅 하는 섬뜩한 소리도 들었지만, 그녀들의 젊음은 역시 나에게서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나는 무심코 눈앞의 그것을 잡으려 들기도 한다. --- 「지고 말 것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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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미녀」
거친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절벽 위 ‘잠자는 미녀’의 집. 그곳은 노년에 접어들어 남성을 상실한 남자들의 열락을 위한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진홍빛 비로드 커튼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깊은 잠에 빠진 미녀 아가씨. 그 곁에서 하룻밤을 지새우는 노인의 눈은, 아름답고 싱싱한 미녀의 육체 너머로 오랜 기억과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동시에 응시한다. 「한 팔」 안개 자욱한 어느 밤, ‘나’는 아가씨가 빌려준 한 팔을 옷 속에 숨기고 고독한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다. 아름다운 아가씨를 상상하며 팔을 탐닉하기도 하고, 팔과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던 ‘나’는 이윽고 그녀의 팔을 자신의 팔과 맞바꿔 붙이고 그 묘한 감각을 즐기는데……. 「지고 말 것을」 소설가 ‘나’는 자신이 돌봐주던 두 미녀 아가씨가 잠든 채 살해당하고, 범인 역시 옥사한 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을 잊지 못한다. ‘나’는 살해하는 자와 살해당하는 자 사이의 우연과 필연을 좇는 과정에서 범인의 기억, 경찰과 재판, 예심 등에서의 진술이 서로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모든 것은 범인과 경찰, 검찰, 정신 감정의 등이 창작한 소설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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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깨어나지 않는 여섯 명의 잠자는 미녀,
그녀들을 통해 과거를 더듬는 한 노인의 환상 가득한 다섯 밤! 세계적 대문호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인간의 보편적 난문제를 대담하게 파헤친 세 편의 소설을 묶은 소설집 『잠자는 미녀』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폐쇄 공간에서 알몸으로 잠든 아가씨를 탐닉하는 노인(「잠자는 미녀」), 아가씨에게서 빌려 온 한 팔과 하룻밤을 지내는 ‘나’(「한 팔」), 두 미녀 아가씨의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살해당한 자와 살해한 자의 심리를 파헤치는 소설가(「지고 말 것을」) 등 독특한 소재와 충격적 내용을 담은 이 소설집은 발표 당시, 작가 미시마 유키오로부터 “농익은 과실의 썩은 내를 닮은 향취를 풍기는 데카당스 문학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1969년 영어권을 시작으로 20여 개 국어로 번역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온 이 소설집에 대해 “이것이야말로 내가 쓰고 싶은 유일한 소설”이라 칭송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마침내 이 작품을 모티브로 한 소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쓰게 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은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설국』을 제외하고는 국내에 거의 소개된 작품이 없다. 그 이유는 많겠지만, 무엇보다 난해한 문체 속에 내밀하게 숨겨진 탐미와 죽음, 그 미학적 경지의 불가해성 때문일 것이다. 일본 평론가들 사이에서조차 그의 언어체계가 보여주는 의미망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음을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이번에 소개된 작품집을 통해 국내 독자들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일본의 탐미적 정서와 전통미를 그린 작가라는 지금까지의 통념을 깨고 미(美)와 추(醜)가 동시에 나타나는 역설적 공간으로서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 세계의 본연의 모습, 특히 후기 문학 세계의 정수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에로티시즘의 극한, 그리고 애절한 회한 가와바타 야스나리 후기 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잠자는 미녀」는 예순일곱의 노인 에구치의 심리와 행동을 그린 이른바 ‘노인 문학’이지만, 노인이 되면 욕정이 사라지거나 억제될 수 있다는 인간의 성적 욕망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대담하게 뒤집는 문제작이다. 남자로서의 능력을 상실한 노인들에게 앳된 아가씨들과 하룻밤을 보내게 해주는 ‘잠자는 미녀의 집’을 소개받은 에구치. 그는 ‘잠자는 미녀의 집’에서 잠든 아가씨를 탐닉하다 그 피부, 외모, 냄새, 인상 등을 통해 지나간 인생에서 만난 여자들과의 경험을 떠올린다. 폐쇄 공간 안에서 나신의 아가씨를 마음껏 탐하고 다룰 수 있다는 상황 자체만으로도 에로티시즘의 극한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그러나 이러한 충격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작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육체의 한계와 그럼에도 사그라지지 않는 욕정, 그리고 이로 인한 끝 갈 데 없는 허무를 그리는 한편, 여성에 대한 동경, 궁극적으로는 순결한 아름다움을 지닌 ‘미녀’들을 통해 어머니를 향한, 모성을 향한 희구까지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부조리한 욕정을 짊어지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의 보편적인 한계를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어머니 혹은 모성에의 희구라는 궁극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후기 문학의 절정을 느낄 수 있다. 「한 팔」은 독신남이 아가씨가 빌려준 한 팔과 하룻밤을 지낸다는 독특한 소재의 환상적 작품으로, 남성의 심리와 더불어 그 남성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여성들의 심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해, 여성을 탐닉하는 남성의 심리를 그린 “「잠자는 미녀」의 주제를 한 단계 올려놓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잠이 든 사이, 아무것도 모른 채 살해당한 두 여성의 살인 사건을 다룬 「지고 말 것을」은 언뜻 앞의 두 작품과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선량하고 고마운 여성을 남에게 빼앗겨버린 남성의 아쉬움과 여성에 대한 동경을 그렸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할 수 있다. 또한 소설가라는 직업과 현실에 대한 순수하고 아름다운 관계 설정이 불가능하다는 테마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앞의 두 작품의 해설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너무나 다양하고 그 깊이도 만만치 않아 일본 학자들 사이에서는 ‘난반사亂反射 문학’이라 불리는 가와바타 문학. 그 난반사의 대표작들만 모았다 할 수 있는 이 『잠자는 미녀』를 통해 전혀 새롭고 강렬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학 세계를 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