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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해설 | 어느 고독한 소년의 발자국 |
Yasunari Kawabata ,かわばた やすなり,川端 康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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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9월 18일부터 1917년 1월 22일까지 쓴 일기가 있다. 열여덟 살에서 열아홉 살이 되던 1917년 무렵에 나는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유가시마에서의 추억〉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스물네 살 여름에 썼다. 이 이야기의 전반부를 스물여덟 살에 고쳐서 〈이즈의 무희〉라는 작품으로 완성했다. 후반부에는 중학 시절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썼던 소년을 향한 사랑의 추억이 적혀 있다.
--- p.19 침상으로 들어가 세이노의 따뜻한 팔을 잡고, 가슴을 끌어안고, 목덜미를 껴안았다. 세이노도 잠결에 내 목을 세게 끌어안고 자기 얼굴 위에 내 얼굴을 포갰다. 내 뺨이 세이노의 뺨에 겹치고, 나의 마른 입술이 세이노의 이마와 눈꺼풀로 떨어졌다. 내 몸이 너무 차서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세이노는 가끔 무심히 눈을 뜨고는 나의 머리를 꼭 끌어안았다. 나는 세이노의 감긴 눈꺼풀을 빤히 바라본다. 달리 무슨 생각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30분 내내 이런 상태가 이어진다. 내가 원하는 건 그뿐이었다. 세이노도 내가 더 원하길 바라지 않는다. --- p.28 세이노를 보면서 음탕한 마음을 품지 않았다고 어찌 말할 수 있을까. 종이 한 장 차이까지 간 적 없다고 말할 수 있나. 그러나 이러한 반성도 나의 분노를 억누르는 데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나는 그저 세이노를 오구치보다 더 사랑하고 있고, 특히 내가 오구치와 다른 점은 세이노로부터 깊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이노는 나에게 모든 걸 허락하니까, 내게 온통 매달리니까, 이 변명을 유일한 내 편으로 삼았다. --- pp.32-33 너의 손가락을, 손을, 팔뚝을, 가슴을, 뺨을, 눈꺼풀을, 혀를, 치아를, 다리를 애착했다. 나는 너를 사랑했다. 너도 나를 사랑했다고 해도 좋다. --- p.35 긴 복도 끝에서 신발 끄는 소리가 들리면, 늘, 당신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곧장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당신은 오른발과 왼발 소리가 달랐다. 나는 또 종종, 계단을 한 번에 두 발씩 내려가는 당신의 버릇을 흉내 내 본다. --- p.47 내가 5학년에 진학한 봄, 나의 부원으로 처음 기숙사에 들어온 세이노는 2학년이었다. 나이는 열여섯이었다. 몸이 아파서 늦게 입학했다고 했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이런 인간이 있었나 싶을 만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내가 태어나 처음 만나는 인간이다. 깜짝 놀란 만큼 정말이지 세상에 둘도 없는 인간이다. --- p.131 내가 하는 말과 행동과 비밀스러운 생각을, 그걸 한 뒤 스스로 반성해 볼 틈도 없이, 스스로 부끄러워할 틈도 없이, 세이노가 반발하며 내게 냉정하게 대들 틈도 없이, 세이노는 그저 전부 받아들였다. 그에게는 나를 우러러보는 맑고 깨끗한 눈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의 마음의 창에 비친 내 그림자는 흐려지는 일이 없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평온함을 느꼈다. --- p.132 1915년 봄부터 네 명이 함께 쓰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된 야스나리는 중학교 4학년이 된 1916년 봄부터 방장이 된다. 그리고 1916년 4월, 나이는 한 살 어리지만 집안 사정과 투병 생활로 늦게 학교에 들어와 학년으로는 3년 후배인 소년이 입학해, 야스나리가 방장으로 있는 기숙사에서 같이 살게 된다. 이름은 오가사와라 요시히토. 작중에서 세이노라고 불리는 소년이다. ‘오가사와라는 이런 여자를 아내로 맞이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화하고 대단히 순수한 소년이었다.’ 야스나리의 중학 시절 일기에는 세이노의 모델이 된 인물에 대한 묘사가 남아 있다. --- 「해설」중에서 |
학창 시절, 아름다운 소년과 맺은 특별한 관계. 자신의 마음을 ‘기형’이라 생각했던 고독한 소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그를 향한 애착과 욕망 사이에서 번민한다. 시간이 흘러 원숙한 작가가 된 그는, 그때의 일기와 편지를 소설로 써 내려간다. 구원과도 같았던 순전한 사랑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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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노 소년과 살았던 1년 동안은 하나의 구원이었다.”
고독한 소년의 곁에 머문 구원과도 같았던 순전한 사랑 작품은 쉰 살을 맞은 작가 가와바타가 자신의 작품 전집을 만들기 위해 지난 생애를 돌아보는 데서 시작한다. 일평생 써 온 글을 정리하던 그는 학창 시절에 쓴 편지와 일기를 발견한다. 나이 든 지금의 자신이 보기에는 놀라울 만큼 순수하고 적나라한 열정으로 가득한 그 글들은, 모두 한 소년에 대한 기록이었다. 열다섯 살에 천애고아가 된 가와바타는 고독한 소년이었다. 마음 둘 곳이 없는 불우한 환경으로 인해 깊은 허무감과 슬픔을 품은 소년은, 기숙사 같은 방에 후배로 들어온 한 살 아래인 열여섯 살의 미소년 세이노를 만나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된다. 외적인 아름다움을 선망하던 사춘기의 가와바타에게 세이노는 단순한 친애 이상의 대상이었지만 특이한 종교적 환경에서 자라 유달리 순진한 세이노는 마치 신앙과도 같은 오롯한 사랑과 믿음으로 가와바타를 대한다. 가와바타는 애욕에 번민하면서도 세이노 소년의 다정함에 마음을 기댄다. 침상으로 들어가 세이노의 따뜻한 팔을 잡고, 가슴을 끌어안고, 목덜미를 껴안았다. 세이노도 잠결에 내 목을 세게 끌어안고 자기 얼굴 위에 내 얼굴을 포갰다. 내 뺨이 세이노의 뺨에 겹치고, 나의 마른 입술이 세이노의 이마와 눈꺼풀로 떨어졌다. 내 몸이 너무 차서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세이노는 가끔 무심히 눈을 뜨고는 나의 머리를 꼭 끌어안았다. 나는 세이노의 감긴 눈꺼풀을 빤히 바라본다. 달리 무슨 생각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30분 내내 이런 상태가 이어진다. 내가 원하는 건 그뿐이었다. 세이노도 내가 더 원하길 바라지 않는다. _28쪽 가와바타가 고등학교로 진학한 후로도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만나지 못했던 둘은, 대학 시절 재회한다. 신흥 종교 수련소인 세이노의 집을 방문한 가와바타는 한때 자신에게 귀의했던 소년이 진짜 종교인이 된 모습을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소년 시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 준 그의 순전한 애정이, 자신 안의 어둠을 정화해 준 단 하나의 구원이었음을. 내가 하는 말과 행동과 비밀스러운 생각을, 그걸 한 뒤 스스로 반성해 볼 틈도 없이, 스스로 부끄러워할 틈도 없이, 세이노가 반발하며 내게 냉정하게 대들 틈도 없이, 세이노는 그저 전부 받아들였다. 그에게는 나를 우러러보는 맑고 깨끗한 눈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의 마음의 창에 비친 내 그림자는 흐려지는 일이 없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평온함을 느꼈다. (132쪽) “나는 세이노 소년과의 사랑을, 그 일이 있었던 중학생 때 쓰고, 고등학생 때 쓰고, 대학생 때 쓴 셈이다.” 철저한 자기 고백으로 기록된 아름다운 시절의 ‘진짜 마음’ 원숙한 작가가 된 가와바타는 자신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에 쓴 글을 읽고는 그 생생한 감정에 놀라기도 하고 애수에 잠기기도 하며 한 편의 소설로 정리해 나간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 『소년』은 시간의 순서나 구성의 흐름을 따라서가 아니라 회고에 잠긴 작가의 사고를 따라가는 실험적인 형식을 취한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것은 세이노 소년에 대한 추억이다. “나는 세이노 소년과의 사랑을, 그 일이 있었던 중학생 때 쓰고, 고등학생 때 쓰고, 대학생 때 쓴 셈이다.”(34쪽)에서 알 수 있듯, 작품은 세이노와 함께한 중학 시절의 일기, 진학하여 멀어진 고등학교 시절에 세이노에게 미처 보내지 못해 남아 있는 편지와 세이노가 보낸 편지, 대학 시절 세이노의 집을 찾아가 만난 일을 기록한 ㅊ유가시마에서의 추억〉의 발췌로 구성되어 있다. 자전적 이야기인 만큼 주인공 소년은 누가 봐도 작가 ‘가와바타’이지만 작중에서 그는 ‘미야모토’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세이노’ 역시 모델이 된 소년 ‘오가사와라’의 작중 이름이다. 이는 ‘진실처럼 꾸며 낸 이야기’인 사소설의 구성 방식으로, ‘진짜와 가짜’를 뒤섞어 이것이 소설임을 알려 주는 장치이다. 그럼에도 『소년』은 어른이 된 가와바타는 도저히 그릴 수 없는 사춘기 소년 특유의 자기 자신도 주체하지 못하는 씁쓸한 애수와 사랑의 마음이 가득 담긴 작품이다. ‘소년’ 가와바타의 처연하고 예민한 감수성이 문장마다 온전히 녹아 있는, 한 시절에 겪은 ‘진짜 마음’의 기록인 것이다. 고독한 소년 시절, 마음에 깃든 단 하나뿐인 특별한 상대. 그를 통한 사랑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 『소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잊히지 않고 다시금 빛을 발하며 사랑받는 이 작품은, 7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읽는 이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설국』과 〈이즈의 무희〉를 사랑하는 가와바타의 오랜 팬들은 물론, 그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도 아주 오래도록 마음 한편에 남을 특별한 작품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