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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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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정사

산소리

-산소리
-매미날개
-구름 불꽃
-밤톨
-섬 꿈
-겨울 벚꽃
-아침의 물
-밤의 소리
-봄의 종소리
-새집
-수도의 정원
-상처 후
-빗속
-모기떼
-뱀 알
-가을 물고기

작품 해설 - 성(性), 죽음, 꿈의 하모니
연보

저자 소개 2

가와바타 야스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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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sunari Kawabata ,かわばた やすなり,川端 康成

유럽의 허무주의, 미래파,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일본 문학 유파인 신감각파를 대표하는 작가. 난해한 문체 속에 내밀하게 숨겨진 탐미와 죽음, 그 미학적 경지의 불가해성으로 일본 평론가들 사이에서조차 그의 언어체계가 보여주는 의미망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1899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와 조부모, 하나뿐인 누이와 사별했다. 사별한 혈육을 추모하고, 외롭고 허무한 인생을 견뎌내는 방법으로 그는 문학을 선택한다. 동경대 국문학과 졸업 후 신진작가 약 20명과 함께 「문예시대」를 창간한다. 직접 창간사를 썼던 「문예시대」는 일본문학계에 ‘신감각파’의 탄생
유럽의 허무주의, 미래파,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일본 문학 유파인 신감각파를 대표하는 작가. 난해한 문체 속에 내밀하게 숨겨진 탐미와 죽음, 그 미학적 경지의 불가해성으로 일본 평론가들 사이에서조차 그의 언어체계가 보여주는 의미망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1899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와 조부모, 하나뿐인 누이와 사별했다. 사별한 혈육을 추모하고, 외롭고 허무한 인생을 견뎌내는 방법으로 그는 문학을 선택한다. 동경대 국문학과 졸업 후 신진작가 약 20명과 함께 「문예시대」를 창간한다. 직접 창간사를 썼던 「문예시대」는 일본문학계에 ‘신감각파’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가 된다. 그러나 신감각파 문학은 1927년 일원이던 아쿠다가와 류우노스케의 돌연한 자살로 사실상 흐지부지 끝을 맺는다. 다행하게도 이 무렵부터 그의 문학은 독자적인 미적 세계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설국』에 이르러 일본의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자리매김한다.

작가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꼽았던 『설국』은 그다지 길지 않은 중편소설이지만 기고에서 완성까지 무려 13년의 세월이 걸린 작품. 발표 도중 「문예간담회 상」을 받았다. 시작은 1935년 「문예춘추」 1월호였고, 끝은 1947년 「소설신조」 10월호였다.

196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작가로서 영예의 절정에 이른 시기, 그러나 1972년 4월 16일 그는 자살로서 돌연 생을 마감한다. 제자인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가 자결한 뒤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죽음이다. 그의 자살에의 이유에 대해 특별하게 알려진 이유는 없다. 그가 자살할 당시 책상에는 쓰다 중단한 원고와 뚜껑이 열린 만년필이 놓여 있었을 뿐. 그의 작품으로는 『이즈의 무희』, 『서정가』, 『금수(禽獸)』, 『천우학(千羽鶴』, 『산의 소리』, 『명인』, 『잠자는 미녀』, 『아름다움과 슬픔』, 『고도(古都)』등이 있다.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무슨무슨상으로 소개되기 보다는 그 자체의 서정적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것이 책에 대한 예의일지도 모른다. 이미 여러번 번역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이지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백미랄 수 있는 '눈 지방의 정경을 묘사하는 서정성 뛰어난 감각적인 문체'를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번 읽어도 여전히 감동을 준다. 이 작품의 특징은 인물과 배경 묘사가 치밀한 데 반해, 그 안의 두드러진 줄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 행위의 유한함을 자연의 무한함에 비교하려고 했던 저자의 의도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또다른 대표작으로 꼽히는 『산소리』는 몽환 세계와 현실 세계의 귀로에 서서, 과거에 동경했던 연상의 여인에 대한 집요한 집착과 현실의 터부에 대한 과감한 도발이 차가울 정도로 차분히 전개되는 소설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후기 대표작으로 꼽힌다. 해몽 소설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이 텍스트에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유머로 그려지는데 그 유머에는 읽는 이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그런 차가움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장편 소설 『고도(古都)』라는 작품은 아이 때 버려졌던 치에코는 양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자랐지만 가슴속에 알 수 없는 외로움을 품고 있다. 아름다운 처녀로 자란 치에코는 축제의 밤, 홀로 신사에 참배를 갔다가 자신과 똑 닮은 나에코를 만나게 된다. 어릴 적 헤어진 쌍둥이 언니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원했던 나에코는 치에코를 반가워하지만 치에코의 가슴에는 격정적인 파란이 인다. 한날한시 한배에서 태어났지만 신분이 다른 치에코와 나에코. 그 운명의 엇갈림이 고도(古都) 교토를 배경으로 애잔하게 펼쳐진다.

『여자라는 것』은 그가 쓴 여성을 위한 소설로서 변호사의 부인으로 여자의 이상형에 가까운 중년의 이치코. 그런 이치코를 동성애라도 할 듯이 흠모하면서도 이치코의 옛 애인과 남편을 유혹하는 사카에. 깊은 슬픔을 간직한 채 처음 시작하는 사랑에 불타오르는 다에코. 젊은 두 여성, 이들은 이치코를 흠모하면서 각자의 연애에 자신을 불태운다. 『여자라는 것』은 이들 세 여자의 다양한 행동과 심리적 갈등을 세밀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불가사의한 여자들만의 심리상태와 여자의 슬픔을 훌륭하게 표현해낸 작품으로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해서 여자가 여자를 알아가는 공포, 여자가 모르는 여자의 고독과 자부심을 그려내 여자의 생명력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저자의 다른 작품으로 단편집 『이즈의 무희』는 한 고등학교 학생이 훌쩍 여행을 떠나, 우연히 만난 놀잇패거리와 어울려 며칠간 같이 지내다 헤어지는 내용이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제목인, 『이즈의 무희』는 새카맣고 숱많은 머리카락과 대조적인 작고 흰 얼굴에 마음이 설레던 놀이패의 젊은 여자가 알고보니 고작해야, 12-13살 남짓의 어린애에 지나지 않았다는 작은 에피소드에서 나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또 다른 단편을 모은 『어머니의 첫사랑』은 어머니가 죽은 후 어머니의 첫사랑이었던 시야마에게 맡겨진 유키코가 시야마를 남몰래 연모하면서도 와카스기에게 시집을 간다는 내용으로 유키코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간결한 필체로 묘사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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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출생. 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 졸업 후, 일본 홋카이도대학교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전공했으며 「아리시마 다케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동대학교 아시아?디아스포라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최근 연구로 「The Multicultural Space of South Korea」, 「Ethics of Father and Son in Ri’s 流城へ and Kaneshiro’s GO」, 「A Narrative of Those on the Move : The Case of Takeo Arishima」 등의 논문을 집필했다. 주요 저
1962년 출생. 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 졸업 후, 일본 홋카이도대학교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전공했으며 「아리시마 다케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국대학교 일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동대학교 아시아?디아스포라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최근 연구로 「The Multicultural Space of South Korea」, 「Ethics of Father and Son in Ri’s 流城へ and Kaneshiro’s GO」, 「A Narrative of Those on the Move : The Case of Takeo Arishima」 등의 논문을 집필했다. 주요 저서로 『디아스포라 지형학』(공저), 『일본 근현대문학의 명암』이 있으며, 『산소리』, 『이즈의 무희?천 마리 학?호수』, 『소설론』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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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4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436쪽 | 426g | 126*188*30mm
ISBN13
9788901223421

책 속으로

8월이 되려면 열흘이나 남았는데도 가을벌레가 울고 있었다.
나뭇잎에서 나뭇잎으로 밤이슬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문득 신고에게 산소리가 들렸다.
바람은 없다. 달은 보름달에 가깝게 밝지만 작은 산 위를 수놓은 나무들의 윤곽은 습한 밤기운으로 희미해진다. 그러나 바람에 움직이지는 않았다.
(……) 소리는 멎었다.
소리가 멎은 뒤에야 비로소 신고는 공포에 휩싸였다. 임종을 알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오한이 났다. 악귀가 지나가다가 산을 울리고 간 듯했다.
---「산소리」중에서

“어때, 멋있지? 위인의 머리 같잖아.”
기쿠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 꽃은 인간의 머리통 둘레보다 크다. 그 질서정연한 양감(量感) 때문에 신고는 순간적으로 인간의 뇌를 연상했을 것이다. 왕성한 자연의 힘이 지닌 양감에 신고는 또 한 번 거대한 남성의 상징을 떠올렸다. 그 꽃술로 가득한 원반에서 수술과 암술이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남성을 느꼈다.
여름도 희미해지고 바람 한 점 없는 저녁 무렵이었다.
꽃술 원반 주위의 꽃잎이 여성인 듯 노랗게 보인다.
“나는 말이지, 요즘 머릿속이 매우 멍해져서 해바라기를 보아도 머리만 생각나. 저 꽃처럼 머리가 맑아질 수 없을까?”
---「매미 날개」중에서

마을이 달빛으로 훤하여 신고는 하늘을 보았다.
달은 불꽃 속에 있었다. 달 주위에는 부동명왕(不動明王)의 등 뒤에 타오르는 불꽃, 혹은 도깨비불같이 그림에 그린 불꽃을 떠올리게 하는 진귀한 형태의 구름이 있었다.
차가우면서 뿌연 구름의 불꽃, 차가우면서 뿌연 달의 모습에, 신고는 갑자기 가을 기운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
“어젯밤에는 제대로 못 잤으니까 오늘 밤에는 일찍 자야겠구나.” 신고는 왠지 쓸쓸해지고 사람이 그리웠다.
드디어 인생의 결정을 내릴 시기가 온 듯했다. 결정해야 할 일이 다가와 있는 것 같았다.
---「구름 불꽃」중에서

눈과 입이 실로 생생하다. 우멍한 눈구멍에 검은 눈동자가 빛났다. 오렌지색 입술이 가련하게 촉촉해 보였다. 신고가 숨을 죽이고 코가 닿을 만큼 다가가자 검고 부리부리한 눈망울이 밑에서 떠오르고 아랫입술이 부풀어 올랐다. 하마터면 탈에 키스할 뻔했다. 숨을 깊게 내뱉고 얼굴을 떼었다.
그러자 모든 게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잠시 거친 호흡이 이어졌다. (……)
하늘의 사련(邪戀)이라고 느낄 만큼 신고는 두근거렸다. 탈이 인간 여자보다도 요염하게 다가온 건 자신의 노안 탓도 있지 않을까, 하고 비웃어보았다.
---「섬 꿈」중에서

“염색은 속임수야. 속임수를 떠올리는 우리에게는 기타모토 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겠지.” 친구는 말했다.
“기타모토는 죽었다고 했잖아. 자네가 얘기한 것처럼 기적이 일어나서 머리카락이 검게 젊어졌다고 해도…….”
“부자연스러운 기적은 오래 가지 못해. 기타모토는 흰머리를 뽑아 세월의 운행에 반항하고 몰락의 운명에 반항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수명이라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해. 머리털이 검어졌다고 한들 수명은 늘어나지 않지. 흰머리 뒤에 검은 머리가 자라나는 데 굉장한 정력이 소모되어서 수명을 단축시킨 걸지도 몰라. 하지만 기타모토의 필사적인 모험은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겠지.” 친구는 결론을 내리고 머리를 흔들었다. 벗겨진 정수리에 옆 머리카락을 발처럼 넘긴 모습이었다.
---「아침의 물」중에서

미국 군용기가 낮게 날아왔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아기는 산을 올려다보았다. 비행기는 보이지 않지만 그 커다란 그림자가 뒷산 빗면에 드리워지며 지나갔다. 아기도 그림자를 보았으리라.
“이 애는 공습을 모르지. 전쟁을 모르는 아이가 벌써 많이 태어났구나.” 신고는 구니코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놀란 빛은 이제 수그러져 있었다.
“지금 구니코 눈빛을 사진에 담아뒀으면 좋았을걸. 산의 비행기 그림자도 넣어서 말이야. 그리고 다음 사진으로는…….”
아기가 공습을 받아 비참하게 죽는다.
공상 속 두 장의 사진 같은 아기는 현실에 수없이 있을 게 분명했다.
---「새집」중에서

만일 신고의 욕망이 원하는 대로 허용되어 그의 인생을 고칠 수 있다면, 신고는 처녀 적의 기쿠코, 즉 슈이치와 결혼하기 전의 기쿠코를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 마음이 억압되고 왜곡되어 꿈에 초라한 형태로 나타났다. 신고는 꿈에서도 그것을 스스로 감추고 속이려던 것일까? (……)
비가 오는구나, 하며 가볍게 들은 빗소리가 지금은 폭풍우가 되어 집을 때리고 있었다. 다다미까지 축축하게 젖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바탕하고 갤 것 같은 빗소리였다.
---「상처 후」중에서

“천 년이든 오만 년이든 연꽃 씨앗의 생명은 길구나. 인간 수명에 비하면 식물의 종자는 거의 영원한 생명이나 다름없네.” 신고는 끄덕이면서 기쿠코를 보았다.
“우리들도 지하에 천 년이나 이천 년 정도 묻혀서 죽지 않고 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지.”
“땅속에 묻혀 있다니.” 기쿠코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무덤이 아니고 말이다. 죽는 것이 아니라, 쉬는 거야. 정말로 땅속에라도 묻혀서 쉴 수 없는 것일까. 오만 년이나 지나서 일어나면 고민도 사회적 난제도 완전히 해결되고 세계는 낙원이 되어 있을지도 몰라.”

---「뱀 알」중에서

출판사 리뷰

1968년 일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아름다운 문장으로 세계를 전율시킨 가와바타 야스나리
50년 연륜으로 빚어낸 만년의 걸작과 만나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일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일본의 정수를 표현해낸 완성도 높은 내러티브와 섬세함이 있다”라는 스웨덴 한림원의 극찬을 받았고, 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 독자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소설가’로 손꼽힌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정경 묘사와 유려한 문체로 세계를 전율시켰던 그가 50세가 되던 해에 써내려간 대작이 있으니, 바로 『산소리』다. 「이즈의 무희」가 그의 청년기를 『설국』이 중년기를 대표한다면, 단연 『산소리』는 삶의 연륜과 예술적 완결성을 두루 갖춘 만년의 걸작이다. 가와바타 문학의 저변을 이루는 짙은 허무와 고독,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고유한 미의식은 한층 더 깊어진 동시에, 전작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성(性)과 욕망에 대한 절묘하고도 과감한 접근이 돋보인다. 대대적인 손질을 거쳐 15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온 『산소리』는, 순문학이 보여줄 수 있는 서정의 절정을 구현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건넬 것이다.

“나는 누구의 행복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타락한 퇴역군인, 가족을 잃은 전쟁미망인, 성불구가 된 가장……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시대의 얼굴


한적한 가마쿠라 산골에 사는 초로의 노인 신고. 예순둘이 된 그는 온몸이 낡아가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흰머리가 성성하다 못해 눈앞에서 세어버리고, 이유 없이 객혈을 하고, 40년 동안 손에 익은 넥타이를 두고 매는 법을 잊어버려 망연자실한다. 불안해하던 그에게 ‘산소리’는 죽음의 예고처럼 다가오고 평온했던 일상은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전쟁에서 돌아온 후 외도와 폭력을 일삼는 아들 슈이치, 술과 마약에 절어 자살 소동까지 벌인 사위 아이하라, 결혼에 실패해 내쫓기듯 친정으로 돌아온 딸 후사코, 부모의 불화 아래 고집불통으로 자란 손녀 사토코까지. 자식들의 불행을 방관했다는 압박과 회한에 사로잡힌 그가 유일하게 마음을 여는 사람은 며느리 기쿠코뿐이다. 세월을 거스른 절절한 연정 그리고 사그라지지 않는 금기의 욕망이 꿈과 현실을 오가며 아슬아슬하게 피어오른다.

『산소리』는 1949년에 쓰이기 시작하여 5년간 세심한 손질을 거쳐 완성된 작품이다. 패전 직후 미군정이 실시되던 시기에 탄생한 만큼, 소설 곳곳에는 일본인들의 정신적 충격과 또 다른 억압에 짓눌리는 공허함이 시대의 잔상처럼 남아 있다.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신고는 전쟁을 거치며 성불구자가 되고, 아들인 슈이치는 전쟁터에서 몸에 밴 폭력과 타락 때문에 기누코라는 여자와 불륜에 빠진다. 기누코는 전쟁으로 남편과 아이를 모두 잃은 전쟁미망인이다. 그런가 하면 딸 후사코는 남편이 마약중독자로 폐인이 되는 바람에 빈털터리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온다. 퇴폐와 무력감에 취해 비틀거리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작품 속 인물들의 모습은 곧, 폭력과 상실감로 점철된 근대 일본의 단면 그 자체였다. 전쟁이 초래한 죽음의 냄새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으로 기묘하고도 유려한 필치로 그려낸 『산소리』는 제7회 노마문예상을 수상하며 전후 일본 문학의 최고봉으로 자리매김했다.

꿈과 현실의 기로에 선 한 노인의 고뇌와 갈등
죽음과 욕망, 금기를 파헤치는 위험한 유희


일본에서 ‘산소리’는 죽기 전에만 들을 수 있다고 전해진다. 그 제목이 의미하는 바처럼, 작품에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커다란 중추를 이루고 있다. 희미한 기억과 노쇠한 몸을 이끌고 친구들의 장례식을 가는 게 일상이 되고, “머리를 몸통에서 떼어내 세탁물처럼 병원에 맡기고 싶다”라고 할 정도로 온몸으로 인생의 무게를 버텨낸다. 유머러스하게, 한편으론 묵직하게 그려지는 노년의 고뇌는 유한한 인간의 존재를 자각하게 하면서 마음 한구석을 슬프게 하는 차가움으로 텍스트의 저변에 드리워진다.

그러나 『산소리』에서 그려진 노년은 쓸쓸한 허무의 세계로만 수렴되지 않는다. 작품 곳곳에는 끝내 가지지 못한 여인을 향한 집요한 갈망, 그리고 가져서는 안 되는 여인을 향한 위험한 정열이 자리하고 있다. 주인공 신고는 꿈속에서 무인도에서 낯선 여인과 뒹구는가 하면, 낙태한 열네댓 살 소녀가 성녀(聖女)가 되는 소설을 읽고, 아들과 혼담이 오갔던 여인의 유방을 만지기도 한다. 몽환 세계에서 굴절되어 드러난 며느리 기쿠코에 대한 애틋한 욕망은 단순히 주책맞은 노인의 색욕이나 일탈로 매도할 수 없다. 엄격한 도덕의식에서 해방되어 즐기는 매혹적인 성(性)의 유희이자,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며 규범과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 본연의 고뇌인 셈이다. 『산소리』는 죽음과 욕망이라는 두 가지 오래된 금기에 과감하게 균열을 내며, 현실에서 쉽게 맛보지 못할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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