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인 마담에게 혼나고 싶어라 - 고치·도사시미즈
2. 수수께끼의 생물과 아름다운 여의사 - 고토 열도 3. 이름 없는 소설가, 홀로 서성이다 - 미야기·오시카 반도 4. 나오키 상 따위 뭔 상관 - 한국 부산 5. 식탐 때문인가? - 후쿠이·니가타 6. 엄동설한의 외딴섬에 갇히다 - 왓카나이·레분 섬 |
Hideo Okuda,おくだ ひでお,奧田 英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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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불을 끄고 눈을 감으니 흔들림이 더욱 구체적으로 느껴졌다. 몸이 둥실 떴다가 이어서 침대에 내리찍혔다. 동시에 뱃바닥에 파도가 부딪쳐 구궁, 하는 소리가 선내에 울려 퍼졌다. 인생 최초의 격랑 체험이었다. --- p.17p
예이, 휘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쳐들었다. 이거 지금까지 살면서 본 중에 최고의 광경 아닐까. 기억에 없을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갑판 한복판에 큰대자로 드러누웠다. 무슨 이런 파란색이다 있나. 더 바랄 게 없어지지 않나. 자꾸만 한숨이 나왔다. 이 순간 세계에서 내가 제일 감동하고 있으리란 자신이 있었다. 좌우지간 과장이 심한 소설가 한 명이다. --- p.35~36 접시 위의 갓 손질된 물오징어에 유자즙을 뿌리니 다리를 꿈틀거린다. 대가리와 꼬리만 자른 정어리는 어딘가 롤리타 같은 정취로 요염하게 빛을 발한다. 고추냉이를 곁들여 김으로 싼 참치 간장 절임은 매운 정도가 제각각 달라서 잘못 걸리면 콧속이 아리다. 이 지역 수제 맥주의 쓴맛이 목구멍을 넘어가 가슴 전체에 스며든다. 크으. 얼굴이 ? 마크가 된다. 여행지에서 마시는 술은 어째서 이렇게 맛있을까. --- p.59 여기서 죽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건 싫은데. 다음 달이면 인세가 들어온다고. 어쩌지. 구급차를 부를까. 하지만 그건 너무 호들갑 떠는 것 같은데……. 오른손을 누르는데 환부에서 정체불명의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우우, 이거 뭐야. 엄마아……. --- p.89 이 시기의 괭이갈매기는 조심성이 강한지 손에 든 과자는 먹으려 하지 않았다. 공중에 던진 걸 받아먹거나 바다에 떨어진 걸 먹을 뿐이었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오쿠다 어린이 완전히 푹 빠졌다. 직접 받는 데 성공하면 나까지 신이 났다. 갑판 스피커에서 관광 안내 내레이션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기한 바위와 작은 섬이 많은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보지 않았다. 괭이갈매기와 노는 게 더 재미있는걸. --- p.126 허리에 타월 감아도 되나요? 하고 물었더니 “슷폰폰, 슷폰폰(일본어로 발가숭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런 일본어는 대체 어디서 배운 겁니까. 욕조에 몸을 담가 땀을 씻은 다음 알몸으로 침대에 누웠다. 이런 게 바로 무방비 상태다. 또다시 불안이 치밀었다. 이상한 데 만지면 안 돼요. --- p.173 여행은 사람을 감상적이게 한다. 자칫하면 그런 감상은 자기본위적인 사고가 되어 무책임한 착각을 일으킨다. 일방적으로 찾아와 놓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대하는 건 솔직히 말해서 뻔뻔한 행위다. 주민들에게는 그들의 일상이 있고 그곳에 여행자가 낄 여지는 없다. 적어도 나는 그런 차이를 자각하는 사람이고 싶다. 말없이 찾아와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조용히 돌아가는 것. 그게 여행하는 이의 예의다. 괭이갈매기 몇 마리가 배를 따라왔다. 냐아냐아냐아. 이별을 아쉬워하듯 우짖는다. 에고. 콧속이 시큰했다. --- p.273~274 |
항구 마을 식객이 되다
“이 섬에 살고 싶어졌다. 일하다 막히면 평일 낮에 이 바다에 와서 혼자 헤엄친다. 헤엄치다 지치면 나무 그늘에 해먹을 매달고 낮잠을 잔다. 상상만 해도 ‘데렝파렝’ 기분이다.” 너무 시끄럽지도 너무 조용하지도 않은 지방의 항구 마을은 고즈넉한 정취를 자아낸다. 도시와 달리 어딘지 느긋하고 음식도 훨씬 저렴하다. 가끔은 먹는 것 말고는 할 일 없는 항구 마을의 분위기에 작가는 점점 빠져든다. 이곳에 살면 왠지 소설도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며 핑계도 댄다. 여행을 떠난 오쿠다 히데오는 이렇게 진짜 ‘항구 마을 식객’이 된다. 배 위에서 먹는 선내 레스토랑의 소박한 음식부터 싱싱한 고등어 회, 푸짐한 성게알 덮밥, 따뜻한 우동, 장어 구이까지. 작가와 동료들은 느긋하게 여행을 즐기다가도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각 지방의 맛 좋은 요리들을 찾아 빠짐없이 맛본다. 마음씨 좋은 마을 주민들의 인심까지 더해지니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식사 시간이 된다. 삼시세끼 꼬박 챙겨먹으니 살 찐다고 불평을 하기도 하는데, 왠지 조금 작가가 얄밉게 느껴질 정도다. 진솔한 작가 오쿠다 히데오를 만나다 “여행은 좋다. 느껴지는 바람이 여느 때와 다르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전부 새롭다. 아무도 나를 모른다. 잠깐이나마 따분한 일상에서 해방된다.” 재치 있고 기발한 작품들로 독자들을 사로잡고 나오키상까지 수상한 작가. 그러나 『항구 마을 식당』의 여정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오쿠다 히데오는 생각보다 괴팍하고 소심하기도 한 사람이다. 작가는 시종일관 투덜대면서도 보고 느끼는 것들을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풍경과 맛, 사람들의 모습을 작가 특유의 통통 튀는 문장으로 그려내며 독특한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체면 차리겠다고 거짓말을 하지도 않는다. 밤마다 어른들 술 놀이에 푹 빠지는가 하면, 갈매기 먹이 주기에 심취해 눈앞에서 절경을 놓치고, 노래 한 곡에 눈시울을 붉힌다. 왠지 귀엽기까지 한 오쿠다 히데오의 인간적인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고, 작가의 삶의 철학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여행을 떠나고 싶으면서도 망설인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떠난 여행에서 그는 좀더 자유로워지고 해방감을 얻는다. 여행을 떠나면 왠지 더 솔직해진다는 오쿠다 히데오. 일반인들과 다를 바 없는 그의 모습이 독자들에게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작은 용기를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