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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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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816년에 출간된 판본을 1995년 영국 솜스 출판사(Thoemmes Press)가 재발행한 ≪A new view of society≫를 저본으로 했습니다.
오언은 이 책에서 자신이 뉴래너크(New Lanark)에서 직접 실험한 내용을 영국에 알리려 한다. 한창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던 영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겪어야 할 현실은 너무나 참혹했다. 그동안 공유지나 그 소유가 분명하지 않은 땅에서 양을 치고 먹을 것을 장만해 왔던 사람들은 울타리 치기 운동[인클로저(enclosure) 운동]으로 한순간에 생계 수단을 잃어버렸다. 그러자 이들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는 도시에서는 누구도 그들의 삶을 돌봐주지 않았다. 이렇게 사적 소유권이 분명해지면서 사람들이 서로 삶을 보살피던 공동체적인 관계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경제학자 카를 폴라니(Karl Polanyi)는 이렇듯 과거의 모든 사회적 관계를 파괴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일컬어 ‘악마의 맷돌’이라 부를 정도였다. 그 맷돌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기력했다. 힘이 없는 사람들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약육강식의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야 했다.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1838)는 이런 현실을 다뤘다. 고아원에서 자란 올리버가 거리의 범죄자들에게 끌려가 소매치기 생활을 하다 인연을 만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새로운 삶을 찾는다는 내용의 이 소설은 당시 영국 사회의 비참한 현실을 담고 있다. 오언의 ≪사회에 관한 새로운 의견≫은 이 소설이 나오기 전인 1813년에서 1821년 사이에 몇 번에 걸쳐 발표되었다. 그런데 당시 영국의 비참한 상황을 묘사하며 그 대안을 꿈꿨다는 점에서 디킨스와 오언은 같은 편에 서 있었지만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은 전혀 달랐다. 디킨스는 사람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 인간의 성격이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가정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봤다. 그래서 올리버는 고아원이나 소매치기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착한 본성을 잃지 않고 원래 자신이 속했던 상류층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오언은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봤다. 오언은 올리버의 성격이 그가 자란 환경 속에서만 형성될 수 있기에 그렇게 착할 수 없다고 봤다. 사람의 성격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리버를 괴롭혔던 악당들의 사악함은 그들의 본성 탓이 아니라 그들이 쭉 생활해 온 그 환경에서 생긴 것이다. 그러니 그 사회를 미워할지언정 그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오언의 견해였다. 오언의 생각을 따르자면, 어떤 사람을 칭찬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칭찬과 비난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가 사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재능은 좋은 사회를 만나야 꽃을 피울 수 있고, 설령 장점이라 하더라도 나쁜 사회에서는 범죄로 활용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컴퓨터에 뛰어난 천재가 좋은 기회를 만나면 전문가가 되고 다른 기회를 만나면 해커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오언은 이런 생각이 옳다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런 믿음을 직접 공동체에서 실험하고 증명했다. 자신이 직접 관리했던 영국 뉴래너크의 공동체만이 아니라 미국의 뉴하모니에서도, 사람의 성격은 잘 배치된 시설과 잘 짜여진 교육 과정을 통해 변화될 수 있다는 게 경험적으로 증명되었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삶을 합리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오언은 비참함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변화시키려 했고 그런 변화의 동력이 외부의 힘보다 사람들의 자발적인 마음에서 나와야 한다고 믿었다. 오언은 갑작스런 혁명보다 사람들이 무지와 오류에서 벗어나며 서서히 자신의 세계에 눈을 뜨길 바랐다. 그렇게 눈을 뜬 사람들은 서로 협력하며 각자와 사회 모두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원리들을 만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에 관한 새로운 의견≫에서 오언은 사람들이 기계를 개량하고 발전시키는 데 쓰는 돈과 관심의 일부만이라도 바로 자기 자신에게 쓰고, 부와 힘을 가진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돈을 지원한다면, 새로운 사회가 쉽게 만들어지리라 믿었다. 눈앞의 이윤에만 매달리지 않고 전체의 이득을 고려한다면 그런 변화는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어릴 적부터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주위 사람들을 우정과 사랑으로 대하며 자란다면 그 아이들은 훌륭한 미래의 시민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래서 오언은 어린아이들을 위한 교육 과정을 마련하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뉴래너크에 세계 최초의 유치원을 세우기도 했다. 합리적으로 교육을 받고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얻고 가족을 꾸리고 간간이 오락을 즐길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행복은 지금 사회의 조건에서도 충분히 실현될 수 있다. 우리가 각자의 행복만 생각하지 않고 사회 구성원 전체의 행복을 생각하고, 모두가 더불어 행복을 누리려 한다면 좋은 사회는 지금 당장이라도 만들 수 있다. 오언은 이런 좋은 방향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지적한다. 가장 큰 장애물은 우리가 몸속 깊숙이 받아들인 편견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두려워하는 편견, 인간 본성이 정해진 것이라는 편견,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편견, 다른 무지한 사람들과 달리 자기 자신만은 이미 합리적이고 계몽되었다는 편견은 그런 발걸음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국가나 교회가 강요하는 잘못된 교리들이나 잘못된 교육체계들도 좋은 사회로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오언은 이런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회로의 발전이 결코 중단되지 않으리라 기대했다. 새로운 사회로의 발전은 인간이 돌이킬 수 없는 자연의 진화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많이 다뤄지지 않지만 합리적인 계몽의 힘과 함께 오언이 사회 발전의 동력이라 여긴 것은 바로 협동조합이었다. 오언은 노동자들이 자립하려면 협동조합을 구성해서 질 좋고 값싼 물품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뉴래너크와 뉴하모니 공동체에서 오언은 실제로 소비협동조합을 운영했고 그 조합의 수입으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유지하는 비용을 충당했다. 협동조합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고, 서로 힘을 합쳐 어려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새로운 발명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가 축적해 온 지혜였다. 나아가 오언은 여러 산업을 공동으로 통제하고 협동해서 운영하면 더욱더 좋은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함께 출자하고 공동으로 소유하며 지혜를 모아 관리하면 사업이 개인과 사회의 이익 모두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언이 생각하기에 협동조합은 개인과 사회의 이익을 조화시키고 그 점을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게 하는 좋은 제도였다. 이 책에서도 오언은 노후를 대비하는 공동주택과 필요한 물품을 싸고 계획적으로 구입할 수 있는 협동조합에 관해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오언이 마련한 새로운 시설은 이런 협동의 원리들로 구성되어 있다. 1844년 영국 로치데일(Rochdale)에서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생활협동조합은 오언의 영향을 받은 노동자들이 밀가루와 설탕으로 폭리를 챙기던 중간유통업자들에 맞서 세운 식품점이었다. 세계의 협동조합 운동사를 쓴 존스턴 버챌(Johnston Birchall)도 오언이 소비자협동조합의 창시자일 뿐 아니라 오언을 따랐던 사람들이 협동조합 운동을 더욱더 발전시켰다고 얘기한다. 그러니 오언의 구상은 뉴래너크라는 특정한 공동체만이 아니라 영국의 다양한 지방에서 만들어진, 그리고 전 세계와 한국에서도 만들어진 다양한 협동조합 운동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연구한 에드워드 톰슨(Edward Thompson)은 오언이 1790년에서 1850년까지 영국 노동계급 운동의 기본 바탕을 이룬 이념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오언의 협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기 삶의 변화를 추진하도록 이끌었다. 오언의 구상이 공상으로 그치지 않고 현실에 직접 영향을 미친 주요한 사상이었기에 오언에 대한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사상가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와 영국의 사상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는 오언의 실험을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정의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오언이 노동계급의 이익에 관심을 가지지만 지배계급에게 호소하고 혁명적인 정치 행동을 반대한다는 점에서, “계급투쟁을 약화시키고 계급적대를 해소하기 위해 철저하게 노력한다”는 점에서 공산주의로 발전하는 역사와 반대 방향에 있는 공상이라 비판한다. 지금 현재의 상황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런 평가가 과연 정당한 것이었는가, 라고 묻는 것은 정당하다. 계급투쟁과 사회적인 적대에 기초한 혁명 전략이 전적으로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지만 과거 사회주의권의 변화는 수많은 파괴와 희생에 기초한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라는 악마의 맷돌을 부수는 방법이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하나의 틀로만 모아질 수 있는 것인지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검토하며 그 장단점을 곰곰이 따져봐야 할 것이다. 물론 오언의 실험도 성공하지는 못했다. 뉴래너크나 뉴하모니의 실험은 모두 실패로 끝이 났고, 오언은 공동체를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운동가로서 남은 생을 보내야 했다. 그 실패의 이유는 여러 가지다. 예를 들어, 버챌은 정부와 기업가들의 억압 때문에 노동조합이 폐쇄되어 협동조합이 활성화되지 못했고, 조합원들이 빈곤에 빠질 정도로 경기가 악화되었으며, 이윤 배분과 관련된 원칙이 정해지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어쨌거나 오언 스스로 밝혔듯이 이 계획은 급작스레 실현되지 않고 서서히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바꾸며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원인들이 계획을 방해했을 것이고 애초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계획을 진행시켰을 것이다. 이렇듯 공동체는 실패했지만 오언의 주장은 당시에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 당시보다 지금 더 유명한 이름인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이 공공연히 오언을 지지했고 정부 관료나 기업가들도 오언을 지지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오언의 이상을 따라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 하고 있다. 오언이 강조했던 새로운 교육의 필요성과 협동조합 운동의 중요성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도 여전히 의미를 가진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져온 심각한 사회적 양극화는 다시 일하는 사람들을 빈곤과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교육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소수를 선발하는 비합리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무엇이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 책은 하나의 좋은 방향을 제시해 준다. 본서가 번역 저본으로 삼은 책은 1816년의 판본을 다시 찍어 1995년 영국 솜스 출판사(Thoemmes Press)가 발행한 ≪A new view of society≫다. 총 4개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책은 제1·2에세이를 원문을 훼손하지 않는 한에서 발췌하여 우리말로 옮겼다. 그리고 제3·4에세이는 모두 옮겼다. 제1에세이와 제2에세이는 오언이 새로운 사회의 원리를 밝히는 장이고, 제3·4에세이는 그것을 실제 사회에 적용하는 부분이다. 원리도 중요하지만 오언 스스로 밝혔듯이 이 책은 자신의 구상이 공상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는 데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따라서 저자의 의도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제3·4에세이를 완역했다. 이 책은 나 혼자 힘으로 마련되지 않았다. 한국의 아나키스트 이문창 선생이 오언의 글과 생시몽, 푸리에의 글을 함께 묶어 번역해서 출판한 바 있다. 그렇게 먼저 진행한 작업이 있었기에 길을 잃고 헤매지 않을 수 있었는데 이 역시 일종의 협동인 셈이다. 변화의 계기는 멀리 있지 않다. 각자가 조금씩 자신의 영역에서 변화를 추구할 때 그 변화를 모은 세상은 우리의 뜻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있을 것이다. 지금 내 곁에서 변화를 꿈꾸는 다른 모든 이들과 함께 이 글을 읽으며 생각을 나누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