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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교란 무엇인가
2. 기자조선은 실제로 있었을까 3. 삼국시대의 유교 4. 후기 신라의 유교 5. 불교의 나라 고려 6. 유교를 우뚝 세운 성종 7. 국자감과 사학 12공도 8. 무신정권기는 암흑기인가 9. 원을 통해 주자학이 들어오다 10. 역성혁명, 고려에서 조선으로 11. 정도전과 권근은 유교입국의 쌍벽 12. 주자학으로 무장한 관료들 13. 수성의 군주 세종과 세조 14. 사림파가 등장하고 사화가 이어지다 15. 정계와 학계를 뒤흔든 성리학 논쟁 16. 다시 어지러운 동아시아 정세 17. 중화사상은 진정한 명분을 갖는가 18. 문화군주 영·정조 시대에 꽃핀 실학사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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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양반 사회라는 것은 극소수의 '노심자(勞心者, 사士)와 그것을 지탱하는 절대 다수의 노력자(勞力者, 민民)이 있어야만 존립할 수 있다. 그런데 허명뿐인 양반이 확대 재생산되어 유민화될수록 '노력자' 계층에 대한 착취와 횡포가 집중하고, 양반 사회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19세기 조선 사회는 양반 정치의 근저를 흔드는 '민란의 시대'였다.
조선왕조 후반기에 확대 재생산된 문벌 양반은 그전 시기에 과거를 통해 문반이나 무반이 되었던 과거 양반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제 15장에서 지적했다. 이러한 문벌 양반은 정약용이 지적한 것처럼 "한번 그 지위를 얻으면 100년이 지나도 버리지 않는" 그러한 무리의 양반이었다. 과거는 본래 문벌 귀족에 의한 권력의 독점과 그에 따른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등장한 시험제도였다. 그런데 문벌이 형성됨에 따라 과거 그 자체의 기능이 변질되고 말았다. ---p. 3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