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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대학 거부 선언」 전문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글을 시작하며 사라진 물음과 이상한 물음 Ⅰ 나의 이야기 저는 김예슬입니다 고려대학교에서 세 번 울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Ⅱ 나의 적들의 이야기 길어진 대학 짧아진 젊음 인간을 잡아먹는 시장 자격증 장사 브로커 대학 배움을 독점한 국가 학습 중독 소비 중독 누가 내 삶의 결정권을 가져갔나 Ⅲ 거짓 희망에 맞서다 우리는 충분히 래디컬한가 모두가 김연아일 수는 없다 88만원 세대라 부르지 마라 인문'학'이 아니라 인문'삶'이다 가슴 뛰지 않는다고 가슴 치지 말자 부모산성 넘어서기 Ⅳ 저항하지 않으면 젊음이 아니다 어떻게 꿈이 직업일 수 있는가 살아있다는 것은 저항한다는 것이다 이런 삶의 대학 하나 세우는 꿈 글을 마치며 작은 돌멩이의 외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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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20대는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 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한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p.13
언제부턴가 사라진 물음, "왜 대학을 가는가?" 그리고 이상한 물음, "왜 대학을 그만두는가?" 나는 세 장의 대자보에 다 담을 수 없었던 이 '사라진 물음'과 '이상한 물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p.20 '진리'는 학점에 팔아 넘겼다. '자유'는 두려움에 팔아 넘겼다. '정의'는 이익에 팔아 넘겼다. 나를 가슴 벅차게 했던 그 세 단어를 나 스스로 팔아 넘기면서, 그것들이 모두 침묵 속에 팔아 넘겨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p.35 일단 멈춰야 했다. 내가 지금 이 때를 놓치고 만다면, 여기서 다시 멈춰서지 못한다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살았던 것처럼 대학 내내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좋은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아갈 것이고, 내 아이는 그렇게 살지 않길 바라지만 또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만 같았다. ---p.36 바코드처럼 우리 이마에 붙어 있어 그것들을 스캔해서 읽히는 그 '스펙'이 곧 나이기에. 이 속에서 괴로운 건 비단 학생들뿐일까? 우리 시대 교육과 대학 문제로 고통 받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그렇게 수많은 아이들과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온 삶을 바쳐서 이뤄낸 '대학 가는 꿈'의 결과는 '무직, 무지, 무능' 3無가 아닌가! ---p.42 삼성과 대기업들은 창의적인 인재, 도전정신이 있는 인재, 도덕성이 있는 인재를 요구한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형 수족관 속에 길들여진 돌고래의 톡톡 튀는 재주를 원할 뿐이다. 더 높은 연봉을 흔들어 보이며 잘한다, 최고다 칭찬하면 미친 듯 춤추고 재주부리다 진이 빠지는, 그러면 더 싱싱한 돌고래로 대체되는 그 과정을 되풀이 해야만 하는 에버랜드의 돌고래. 그들이 인정하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그들이 쓸모 있다고 판단하는, 그것이 정말 인간인가? 그것이 나의 전부인가? ---p.46 이런 말을 하는 나에게, 너는 "반기업 정서"와 "반시장 정서"에 물들었다고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 온다. 그런 당신들은 "반인간 정서"와 "반사회 정서"가 너무 심하게 물든 것이 아닌가? 자연이 죽어가는 곳에 비즈니스는 존재할 수 없지 않은가. 사회 공동체가 해체되는 곳에 시장이 존재할 수 없지 않은가. 인간성이 무너지는 곳에 기업인들 살아남을 수 없지 않은가. ---p.48 우리 시대 가장 끔찍한 말의 타락 중의 하나가 '교육인적자원부'이다. 교육이 인적자원을 만들어 내는 것인가? 그것이 한 나라 교육의 최대 목적인가? 자연이 오직 자원인가. 저 강물이 생수 공장과 공업용수 자원일 뿐인가. 저 갯벌이 매립골프장 조성용 자원일 뿐인가. 저 산이 펄프용 목재 생산의 자원일 뿐인가. 여성이 성욕 충족과 아이 생산의 자원일 뿐인가. 시와 예술이 창조경영 아이디어의 자원일 뿐인가. 인간은 자원이 아니다! 나는 자원이 아니다! ---p.53-54 한 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치기 위해 부모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야만 하는지, 한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굴욕을 감수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 한 아이가 왜 나인지, 왜 이런 나는 이리도 많은지,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날 때부터 온전한 인간이었던 내가 왜 초등, 중등, 고등으로 분류되어야 하는지 묻고 싶다. 12년 동안 학교 교실에 가둬져 왜 대부분의 시간을 잃어버려야 하는지, 그게 왜 의무가 되어야 하는지 나는 묻고 싶다. 하나뿐인 경주 트랙이 아닌 수많은 길이 난 야생의 초원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며 스스로 배워가는 것이 왜 꿈일 뿐이어야 하는지 나는 정말 묻고 싶다.---p.56 내 인생의 1/4을 빨아들여 온 대학, 국가, 시장이라는 억압의 3각동맹은 나머지 내 인생의 3/4까지 좌우하고 있다. 이 셋이 한 몸이 되어 만들어낸 하나의 환상으로. 그건 '배움'을 오직 '가르침을 받은 결과'라고 믿게 하는 것이다. 학교 교육은 우리가 가르침을 받아야만 알게 된다고 믿게 하면서 스스로 해내서 배우는 것은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대학과 시장은 우리를 값비싼 '지식상품'의 고객으로 만들었다. ---p.57 자신의 경험과 개성을 바탕으로 해서 스스로 생활을 꾸려 나가는 일은, 삶에서 진정 필요한 일은 모조리 시장으로 떠넘겨 버렸다. 아이는 유아방과 유치원과 학교에 맡기고, 아이들의 대화 상대는 TV와 컴퓨터에 맡기고, 가사는 도우미에게 맡기고, 옷과 생활도구는 마트와 백화점에 맡기고, 영혼은 제도 종교에 맡기고, 건강은 병원에 맡긴다. 이 체제는 온전한 것을 갖고 태어난 인간을 매일 매일 불구자로 망가뜨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자신의 건강한 발을 두고 값비싼 첨단 목발을 끼는 바보처럼, 삶의 소중한 기능을 시장에 떠넘기고 불구가 되는 대가, 그것이 자격증이고 돈의 크기이다. ---p.58-59 나답게 살다 보니 꼭 이런 것이 필요해서 배우고, 꼭 이런 자격증이 필요해서 갖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나답게 살기 위해 먼저 그 삶을 살아내면서, 거기에 꼭 필요한 돈만을 버는 것이 아니다. 일단 돈부터 벌고 봐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더 많은 돈이 곧 더 큰 행복이고, 그러니 좋은 대학부터 들어가야 하고, 좋은 직장부터 붙고 봐야 한다. ---p.59 삶을 위해 돈이 필요하지 돈을 위해 삶이 필요한 건 아니지 않은가? '삶'이 아닌 '생존'을 위해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먼저 나부터라도 멈춰서고 이 체제로부터 빠져 나오기로 결심한 것이다. 덧붙여, 이 대졸자 주류 사회에서 대학 안 나온 청년들의 실업 문제와 저임금 문제는 조명도 안 되고 있는 현실에 나는 분노한다. 육체노동은 '천민'들의 짓인 양 경시하는 사회 인식이 부추겨지고 있는 현실에 나는 분노한다. ---p.60 우리 세대 모두를 김연아처럼 세계 경쟁 무대에서 1등으로 빛나라고, 너도 그럴 수 있다고, G세대로 띄우는 건 어떤 의도가 있다. 그것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탐욕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수많은 젊은이를 루저로 밀어뜨리는 것이고, 고유한 삶의 길을 하나뿐인 성공으로 부정하는 것일 수 있다. "젊은이의 진취성과 도전정신"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이 양극화 현실과 복잡한 모순을 단순화해, 세계화된 자본권력의 트랙에 젊은 세대를 밀어 넣는 것일 수 있다. ---p.74 지구 시대에 '고르게 부자인 삶'의 꿈이 진정한 진보일까?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핀란드처럼 될 수 있을까? 그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는 '선진화'가 되어야 하고, 3만 달러가 필요하고, 그러니 더 많은 경제성장과 국익추구가 필요하다는 데 힘이 실려버리지 않는가?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재벌총수를 유전무죄로 풀어주자고, 노동자 파업을 없애버리자고, 그런 CEO 대통령을 뽑자고 자동적으로 미끄러지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사회과학적 진보의 무서운 역설이 아닌가! ---p.79 더욱이 우리에게 딱지 붙여진 이 이름은, 대학 졸업을 못하고 중산층이 못되면 억울하고 비참하리라는 식의 또 다른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것일 수 있다. "보수는 괴로워하지 않고 아이를 경쟁에 밀어 넣고, 진보는 괴로워하면서 아이를 경쟁에 밀어 넣는다", "보수는 아이가 명문대생이기를 바라고, 진보는 아이가 의식 있는 명문대생이기를 바란다" ---p.80 지금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없는데 모르는 건 없는 역설의 시대이다. ---p.87 '사랑의 이름'으로 길들이며 자율성의 자기 날개를 꺾어버리지 마십시오. 당신은 결코 아이의 미래를 대신 살아줄 수 없습니다. 그저 뜨거운 침묵으로 지켜보고 격려해주기만 하면 스스로 저지르고 실패하고 성찰하고 일어서며 자신의 길을 찾아갈 것입니다. 부모님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은 서툴지만 자기 생각대로 살고 책임지겠다는 자녀의 저항에 기꺼이 져주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_ Page 101 내겐 백 번의 좋은 말과 교육보다 우리 부모님이 보여주신 한 번의 삶의 모범이 나의 등불이 되고 하늘처럼 보였으니. 오늘의 나에게 조금이라도 빛나는 면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대학도 나오지 않은 나의 어머니, 아버지가 묵묵히 보여주신 진실한 삶으로부터 물려받은 선물일 것이다. ---p.102 지금 이대로 가면 내 삶이 좋아질까? 교수님과 부모님 말씀대로 하면 새 길이 열릴까? 조금 더 열심히 하면 앞이 보일까? 내가 착해지면 이 사회가 밝아질까? 그렇다면 우리 열심히 적응하자. 조금 더 인내하고 순응해 나가자. 아니라면, 우리 저항하고 탈주하자! 젊음은 살아있음이고 살아있다는 건 저항한다는 것이리라. ---p.113 "억압 받지 않으면 진리가 아니다 상처 받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저항하지 않으면 젊음이 아니다" ---p.117 나의 대학 거부 선언은 진달래가 피고 매화꽃이 떨어질 때쯤이면 시든 꽃처럼 조용히 잊혀질 것이다. 그리고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져 나온 대학은, 학교는, 이 거대한 시스템은, 일상의 속도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끄떡 없이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발길에 채이는 돌멩이처럼 굴러다닐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나는 내 자리에서 근원적인 나의 저항을 치열하게 살아낼 것이다. 작지만 옳은 일을 옳은 방법으로, 꾸준히 밀고 가는 것만큼 무서운 힘은 없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p.123 이제 나는 자유다. 자유의 대가로 나는 수많은 비난을 받을 것이고 길을 잃을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하지만 죽은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대학생의 첫 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p.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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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선언》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한 서글픈 20대. 진리는 학점에 팔아 넘기고, 자유는 두려움에 팔아 넘기고, 정의는 이익에 팔아 넘긴, 대학大學 없는 대학을 거부한 한 젊은이가 있다.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기 보다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탈주하고 저항한 김예슬. 그의 선언은 김예슬을 넘어 김예슬들의 문제였으며, 대학생 김예슬을 넘어 인간 김예슬의 문제였다. 그가 3장의 대자보에 다 담을 수 없었던 수많은 물음과 생각을 이제 단행본 《김예슬 선언》을 통해 꺼내 놓는다. 이 책에서 그는 대학과 국가와 시장이라는 저 '거대한 적들'을 향한 과감한 문제제기로 모순의 실체를 선명하게 규정한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들려오는 모든 '거짓 희망'에 맞서 하나하나 진실을 밝혀 나간다. 나아가 거대한 적을 넘어 '나 자신이 바로 그 적이다!'라는 냉엄한 진실 앞에 자신을 세운다. 130페이지의 이 작고 단단한 책, 《김예슬 선언》은 우리들 모두의 인간선언이다. '이건 정말 아니다', ' 무언가 근본부터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있었던 이들에게는 명확한 언어의 샘물이 될 것이며, 시대의 모순이 개인의 문제로 내던져진 듯한 이 시대에 상처받고 좌절했던 이들에게는 따뜻한 격려와 용기가 될 것이다. 한국 최초의 사회적 대학 거부 행동 지금 우리 사회는 조용히, 그러나 크게 술렁이고 있다 2010년 3월 10일, 고려대학교 교정에 붙은 대자보 하나가 시대의 양심을 찔렀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제목의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의 대학 거부 선언. 그로부터 대한민국은 조용히, 그러나 크게 술렁였다. '김예슬 선언'은 순식간에 인터넷 커뮤니티와 트위터를 통해 퍼져나가면서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바로 다음 날부터 TV와 주요 일간지를 비롯한 수많은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으며, 각종 포털 메인에 올랐다. 수 백만 네티즌들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거렸다', '다시 삶의 용기를 얻었다', '아이를 둔 아버지로서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죽은 줄 알았던 마음이 뜨거워졌다' '의연한 용기가 부럽고, 태연한 나의 일상이 부끄럽다'등 오랫동안 참아왔던 가슴 속의 말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를 전태일의 분신자살에 비유했고, 유시민의 항소이유서에, 핸리 데이빗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에, 68혁명에 비유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왜 이 사건에 주목하는가? 저자 김예슬이 "大學이라는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라고 선언하고 대학을 거부한 것은 한국 최초의 사회적 대학 거부 선언이자 행동이었다. 스스로 큰 물음을 던지고,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한, 김예슬의 근원적인 인식과 행동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거울이 되었다. '김예슬 선언'은 속울음처럼 참아와야만 했던 무한경쟁의 현실, 우리 시대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대학문제, 사회 양극화의 뇌관인 교육문제의 심장을 찌른 것이다. 어느 순간 질문하기를 포기했던 우리들 그의 물음을 따라가다 보면 나의 물음과 마주하게 된다 《김예슬 선언》은 저자가 대학 거부를 결심하기까지 수많은 날을 고민하면서 오랫동안 품어왔던 물음들, 그리고 대학거부 선언을 한 이후 저자에게 쏟아진 수많은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 책에는 대답보다 물음이 더 많을 것이다. 제대로 된 물음은 이미 답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기에. 저자는 대학 거부 선언 이후 저자에게 가장 많이 쏟아진 '도대체 왜 대학을 그만두는가?'라는 질문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대학에 갈 때는 아무도 "왜?"라고 묻지 않았다며, "왜 대학을 가는가?"는 언제부턴가 사라진 물음이 되었고, "왜 대학을 그만두는가?"는 이상한 물음처럼 들려왔다고 밝힌다. 이 '사라진 물음'과 '이상한 물음'과 함께, 그가 대학 거부를 결심하기까지 던져 온 물음들을 하나하나 풀어 나간다. 저자는 우리 시대 대학과 대학생의 존재 양식에 대해, 나아가 '대학생 김예슬'의 문제를 넘어 '인간 김예슬'의 문제에 대해 끝없는 자문자답을 던진다. 그의 물음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질문하기를 포기했던 무수한 삶의 물음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대학, 국가, 시장이라는 거대한 적의 실체를 명확한 언어로 규정하다 《김예슬 선언》은 '거대한 적들'을 향한 과감한 문제제기이다. 저자는 모호한 것들을 걷어내고, 이 시대 모순의 구조적 실체를 선명하게 규정한다. "인간을 잡아먹는 시장", "자격증 장사 브로커 대학", "배움을 독점한 국가"가 그가 겨눈 우리의 적들이다. 저자는 수많은 아이들과 부모님이 온 삶을 바쳐서 이뤄낸 '대학 가는 꿈'의 결과는 '무직, 무지, 무능의 3無 '이고, 시장, 대학, 국가라는 '억압의 삼각동맹'이 만들어낸 최종의 인간상은 삶의 소중한 기능을 시장에 떠넘기고 불구가 된 '소비자'일 뿐이라며, 청년들에게 꿈도 열정도 도전의지도 없다는 말은 이런 현실 구조를 은폐한 떠넘기기에 다름 아니라고 일침을 가한다. 나아가 저자는 이를 통해 경쟁과 소비의 악순환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대졸자 주류 사회, 의무교육과 자격증 유일잣대 시스템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 비즈니스 문명, 도시?기계 문명, 자본권력의 세계체제에 대해 근원적 도전을 던진다. 수많은 진보 담론과 20대 담론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으로 '거짓 희망'에 맞서다 저자는 "우리가 희망을 잃어버린 것은 헛된 희망에 사로잡혀서"이기 때문이라며, 그 동안의 수많은 진보 담론과 20대 담론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래디컬Radical한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충분히 래디컬하지 못하기에 쓸데없이 과격하고, 위험하게 실용주의적이고, 민망하게 투박하고, 어이 없이 분열적이고, 놀랍도록 실적경쟁에 매달린다는 느낌이 든다"며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으로 '거짓 희망의 말들'을 하나하나 밝혀간다. 모두가 세계 경쟁 무대에서 1등으로 빛나라며 젊은이들의 가슴에 '탐욕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G세대' 담론, "88만 원짜리 저가상품을 188만 원짜리 중가상품으로 매장에 내어놓게 하자"는 '물질주의' 진보담론을 비판하고, 인문학마저도 대학 합격과 성공과 돈벌이를 위한 경쟁력 강화와 지식권력 강화의 수단이 되어버렸다고 꼬집는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 시대 모든 부모님들을 향해 '사랑의 이름'으로 아이를 길들이며 자율성의 날개를 꺾지 말아 달라고, '좋은 부모'가 되려 하지 말고 당신의 '좋은 삶'을 살아 달라고, 간절한 편지를 남긴다. IMF를 겪으면서 공고한 '가정의 성城'을 쌓고 '각자 살아남기'에 힘을 쏟게 된 부모 세대의 고통과, '부모산성 뛰어넘기'가 가장 어렵다는 친구들의 호소가 겹쳐져 아픈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땅의 모든 '김예슬들'에게 전하는 격려, 그리고 용기 《김예슬 선언》은 우리시대 거대한 적들에 대한 선언인 동시에, 그 속에서 상처받고 고독했던 우리들에 대한 격려이자 북돋움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그가 밝힌 거대한 적을 넘어 '나 자신이 바로 그 적이다!'라는 냉엄한 진실 앞에 정직하게 자신을 비춰본다. 우리의 꿈과 욕망과 열정마저도 실은 '주어진 꿈'이 아닌지, '오염된 꿈'이 아닌지, 자신에 대한 성찰로부터 그는 다시 시작한다. 저자는 생각할 틈도 없이 거짓 희망의 북소리에 맞춰 앞만 보고 진군하는 것이 훨씬 괴로운 것이었다고, 지금 자신이 혼란스러운 것은 '다른 길을 찾으라'는 고통스런 선물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격려하고 우리 모두를 격려한다. 빛나는 젊음 하나 믿고 위험한 길을 나서는 그의 뜨거운 물음은 계속된다. 오늘 우리의 학교와 배움이 새롭게 재창조되어야 한다는 것이 왜 "극단적인 꿈"으로 버려져야 하는지, 그가 가슴 깊이 품어온 진정한 삶의 대학을 꿈꾸듯 이야기 한다. 시대의 모순이 개인의 문제로 내던져진 듯한 이 시대에 《김예슬 선언》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대학 문을 밟지 않으면 온갖 차별을 감내해야만 하는 '대졸 주류 사회'의 이 땅에서, 《김예슬 선언》은 대학을 가지 못한 많은 분들과 지금 이 시간 농촌에서 공장에서 알바와 노동현장에서 고되게 일하는 분들께, '영혼의 불안'으로 흔들리는 수많은 젊음 앞에 바치는 마음의 약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