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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1장 깨어남 제2장 준비 제3장 출근 제4장 근무 제5장 병원 제6장 부모와 함께하는 식사 제7장 농땡이 제8장 쇼핑 제9장 휴가 제10장 헬스클럽 운동 제11장 목욕 제12장 독서 제13장 TV 시청 제14장 요리와 식사 제15장 파티 제16장 부부싸움 제17장 섹스 제18장 잠과 꿈 에필로그 옮긴이의 말 |
Robert Rowland Smith,로버트 롤랜드 스미스
남상일(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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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잖아도 우리 삶의 99퍼센트는 별로 곰곰이 생각하지 않는 일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성찰할 시간도 그리 넉넉하지는 않은 셈이다. 자신의 삶을 성찰하면, 옷을 입거나 잠을 자는 것처럼 무의식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행동의 배후에서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며,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된다. ---p.9
만약 우리가 언제나 문 밖에 서서 만반의 대비를 갖추고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거의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예측하지 못한 선택은 전혀 없을 것이다. 즉흥적인 행동, 실행할 판단, 짊어질 책무, 인간으로서의 사명 같은 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늘 약간의 대비만 할 수 있다는 사실따라서 아침에 100퍼센트 준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은 아주 다행스럽다. 그것은 곧 놀라움이 감춰져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 순간이 나타날 때마다 우리는 당장 판단력을 동원해 즉석에서 생각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인간성을 얻고, 성숙해지고, 고귀한 자유를 누린다. ---pp.30-31 비록 우리는 두더지처럼 살아가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토스카나에서 포도를 가꾸는 새로운 삶을 상상할 수 있다. 비록 지금은 열차 속에 정어리처럼 포개져 실려 가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몰디브를 항해하는 꿈을 꿀 수 있다. 니체는 이런 공상을 꾸며내는 이유가 현재의 상태를 참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 공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곧 그 공상이 유약함의 조짐이라는 의미다. 니체는 간단하면서도 쉽지 않은 도전으로 대응한다. 이상을 현실로 만들거나, 가능하다면 현실을 이상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pp. 41-42 의사의 수술실에 들어가는 것은 앞에서 보았듯이 이성, 정확성, 치료가 지배하는 밝은 치료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만이 아니라 권위, 상상력, 비합리성이 지배하는 어두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기도 한다. 우리의 신체와 정서가 모두 영향을 받으며, 대기실에서 잡지를 읽으면서 진료를 기다리는 내내 우리의 취약성이 증대한다. ---pp.77-78 우리가 부모에게 진 빚은 절대 갚을 수 없다. 오히려 그 빚을 갚는다면 두 세대간의 모든 관계, 모든 정서적 연관이 무효화되고 말 것이다. 부모에게 진 빚은 실제로 남에게 돈을 빚진 것처럼 양측에 이자의 관념이 작용한다.……이런 의미에서 부모에게 진 빚은 아예 갚지 않는 편이 좋다. ---pp.88-89 농땡이는 당신의 행복을 저해한다. 사장과 합의한다면 허가를 얻은 셈이므로 사정이 달라지지만, 원칙적으로는 다를 바 없다. 농땡이는 자신과 사회를 분리시키는 작은 단초가 되는 비공식적 행위다. 물론 그런 비공식성이 자유로움과 스릴을 더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마약과도 같은 자유의 도취 효과는 예속을 낳게 되고 결국 농땡이는 거리에 나가 더 얻기 어려운 것을 얻으려는 행위로 악화되기 쉽다. 자유가 꿈꾸는 무한함은 즐겁지만 가장 황폐한 풍경이 될 수도 있다. ---p.96 우리는 이미 단어가 실재와 단절되어 있고 모든 역사는 이야기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글 읽기는 언제나 자기 안의 깊은 세계와 바깥의 먼 세계를 경험하게 해준다. 설령 출판되고 공개된 책이라 해도 그것을 읽는 경험은 고귀한 프라이버시이며 비밀의 나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pp.153-154 어떤 의미에서 요리는 철학이다. 호박을 긁어내면서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가 하면, 후추를 갈거나 닭 뼈를 추리거나 고등어 살을 발라낼 때 생물의 해부와 내장 기능을 기록하고 조사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재료 준비의 분석적 측면은 나중에 요리에도 반영된다. 요리는 철학처럼 반(半)직관적 상태를 계획된 상태로 변형시키고 소화하기 쉽도록 가공하는 과정이다. ---pp.183-184 만약 섹스가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면? 그렇다면 멸종이 불가피할 것이다. 종의 차원에서 섹스는 죽음에 저항하는 생명력이며, 존재를 지속하려는 노력이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에서는 섹스가 완성 또는 완료를 가져오지만, 이제 섹스는 새로움을 나타낸다. 두 연인의 반원이 서로 합쳐져 새 생명을 낳는 과정이다. ---p.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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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을 지탱해온 세계 지성들의 향연
-판에 박힌 일상을 해부하고 환기시킨다 깨어났다는 것의 진짜 의미는 뭘까?|꿈에서 깼다는 건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을까?|출근할 땐 왜 옷을 차려입어야 할까?|일하는 것과 일터에 있는 것은 같은 것일까?|부모님과 식당에 가면 누가 돈을 내야 할까?|농땡이 부릴 자유가 있을까?|TV를 보는 데 죄책감을 가져야 될까?|의식 없이 잠자는 동안에도 나는 존재할까? 저자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는 이처럼 잠에서 깨어나 출근을 하고 밥을 먹고 쇼핑을 하고 병원에 가고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목욕을 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하루의 일상생활을 세심하게 추적하면서 철학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크루아상과 커피가 놓인 아침식사 자리에 돌연 소크라테스가 등장한다. 검지를 치켜들고서 “너 자신을 알라”고 외쳤던 소크라테스는 무심코 크루아상을 덥석 베어 무는 순간 “성찰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며 우리를 각성시킨다. 소크라테스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성찰은 상아탑 속에 둘러싸인 막막한 지식이 아니다. 소크라테스에게는 ‘나 자신’을 아는 일만큼이나 웨이터에게 대체 팁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도 중요한 일이니까. 이 책 '소크라테스와 아침을'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철학은 과거를 딛고 차근차근 발전해나가는 여타의 학문과는 다르기에 2500년 전의 소크라테스가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난다고 해도 전혀 고리타분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저자는 철학의 이러한 속성을 유려하게 활용하여 새로운 성찰을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소크라테스, 오비디우스, 아르키메데스, 라캉, 마르크스, 칸트, 헤겔, 롤랑바르트, 니체, 데리다, 프로이트, 융, 칼 슈미트 등 고금을 막론하고 우리 삶을 지탱해온 세계의 지성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출근길에 니체는 집에서 나와 일터로 향하는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공상의 실체에 대해 설명해주고 일하는 동안에는 마르크스가 진정한 일의 목적에 대해 일깨워준다. 쇼핑할 땐 라캉이 주의할 점을 경고해주고, 헬스클럽에서 열심히 땀 흘리며 운동할 땐 푸코가 다가와 사실은 우리의 일상적인 운동이 국가 통제의 한 방법일 수도 있다고 알려준다. 우리의 귓가에 속삭이는 이들의 말은 짜증나는 잔소리나 간섭이 아니라 촌철살인의 충고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 -당연한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일상을 의심하라! 저자는 깨어남의 순간에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순간을 어떻게 철학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깨어나는 것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누구도 깨어남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깨어남은 그 자체로 매우 확실한 사건이지만 그 누구도 실제로 깨어나는 그 순간을 경험하지 못한다. 깨어나는 순간은 경험을 하겠다고 별러서 경험해지는 것이 아니라 깨어남을 인식하는 순간 이미 경험할 수 있는 찰나를 놓치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깨어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까? 이러한 우리의 의심에 데카르트가 다가온다. 데카르트는 마치 “무죄가 증명되기 전까지는 유죄”라는 원칙을 지키듯 모든 것을 의심하는 회의적 방법을 통해, 자신이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다는 확고한 깨달음을 얻었다. 의심한다는 것은 곧 생각한다는 것이고, 생각하려면 일단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그는 생각할 수 있다면 우선 존재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데카르트는 존재의 증거를 찾아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는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침에 깨어나는 일은 의식과 존재를 직접 접하는 매우 철학적인 행위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잠에서 깨어날 때 우리는 의식으로 돌아올 뿐 아니라 의식으로 돌아오는 능력 또한 증명한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분명한 우리의 일상이지만 일면 외면하고 싶고 눈치가 보이는 “농땡이”, “TV 보기”, “부부싸움”과 같은 사건들도 짚고 넘어간다. 농땡이가 유용한지 무용한지에 대한 이야기 전에 농땡이를 부릴 자유가 우리에게 있는지부터 상세히 고찰하는데, 농땡이는 자유과 구속이 병존하는 양면성을 가진 행위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자유과 개성을 주창하는 존 스튜어트 밀이라면 농땡이를 내버려두겠지만, 에밀 뒤르켐은 농땡이의 속성인 무목적성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자유에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한데 농땡이 자체는 어쨌든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동료에게든 사장에게든 피해를 끼치는 행위다. 농땡이를 쳐도 된다는 자신감은 오히려 자신이 회사에서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정처 없이 리모컨을 돌리며 TV를 보는 일은 무용하기만 할까? 저자는 TV의 현대적인 의미에 주목한다. 빔 벤데르스의 의견을 확대하면 결국 TV? 보는 것은 세계가 돌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며 다양하게 꼬인 삶을 확인하는 것이다. TV는 사회를 반영하면서도 사회에 감응하기에 TV 시청은 사회에 갇히는 동시에 암호를 얻는 길이기도 하다. 게다가 리모컨은 도구를 사용하려는 수백만 년에 걸친 인간 활동의 결정체다. 따라서 TV 시청은 폐기물처럼 쌓인 이미지의 더미에 찔끔찔끔 흘러나오는 부끄러운 즐거움이 아니라 인류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된 기술 숙달의 한 지표일 수 있다고 말한다. TV를 보는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또한 부부싸움 속에 숨어 있는 수사학에 대해서 설명하고, 부부싸움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전한다. 오히려 열띤 부부싸움 끝에 어느 한쪽이 승리할 경우 두 정체성이 하나의 정체성으로 합쳐지므로 그것이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관계 유지를 위해서는 차이가 필요하고 그 차이를 확인하는 하나의 방법이 부부싸움이므로,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 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철학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철학을 일상으로 끌어들였을 때, 자칫하면 일상마저 지루하고 따분해질 수 있지만, 저자는 쉬운 언어를 통해 철학자들의 담론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게다가 저자는 단지 철학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심리학, 문학, 예술에서부터 최신의 영화와 드라마, 책까지도 독자의 이해를 돕고 흥미를 유발하는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 삶의 99퍼센트는 곰곰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흘려보내는 일상이라고 지적하면서, 삶에 관해 누군가가 가르쳐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당장 성찰해보는 게 낫다고 권한다. 자신의 삶을 성찰하면 옷을 입거나 잠을 자는 것처럼 무의식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행동의 배후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고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뻔한 일상이 순간 새로워지고 더 이상 뻔한 것이 아니게 된다. 일상을 고찰한 철학책은 수도 없이 많지만 이 책 '소크라테스와 아침을'은 단지 사상가들의 담론과 주장을 전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일상에 끌어들인 철학자들의 주장을 이해하는 데서 그치는 ‘책 속에만 있는’ 철학이 아니라 독자가 실제로 자신의 어떤 삶이든 성찰할 수 있도록 자신이 먼저 그 예시를 보여주고 있다. 책 속에 담기지 않은 일상의 그 어떤 상황-어린이집에 맡긴 아이를 데리러 가는 일, 야근, 회식, 늦잠, 친구와의 언쟁 등-이라도 철학적으로 성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철학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