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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한글+ 한문 원문
류성룡
더클래식 2017.03.10.
원서
懲毖錄
베스트
역사 top100 1주
가격
11,000
10 9,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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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징비록 1권
제1장 전란 전의 일본국과의 관계
제2장 우리의 국방 태세와 이순신의 기용
제3장 임진왜란의 발발과 서전의 붕괴
제4장 국왕의 피란과 구원군의 요청
제5장 평양성 전투
제6장 이순신과 조선 수군
제7장 민중의 봉기, 의병

징비록 2권
제8장 평양 수복
제9장 전선의 교착
제10장 진주성
제11장 정유재란 발발
제12장 이순신의 투옥과 수군의 전멸
제13장 이순신 복귀
제14장 마지막 전쟁, 노량
제15장 구국의 영웅, 이순신

녹후잡기錄後雜記

저자 소개 1

柳成龍,유성룡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다. 156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벼슬길에 나섰다. 전적, 공조좌랑 등을 거쳤으며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壯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어 이조참의를 거쳐 부제학, 대사간, 우부승지, 도승지를 거쳤다. 1583년 다시 부제학이 되어 「비변오책(備邊五策)」을 지어 올렸다.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으로 기축옥사가 일어나자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려놓으려 했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았다. 1590년 우의정에 올라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에 녹훈되고 풍원부원군(豊原府院君)에 봉해졌다. 이후 왜란이 있을 것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다. 156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벼슬길에 나섰다. 전적, 공조좌랑 등을 거쳤으며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壯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어 이조참의를 거쳐 부제학, 대사간, 우부승지, 도승지를 거쳤다. 1583년 다시 부제학이 되어 「비변오책(備邊五策)」을 지어 올렸다.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으로 기축옥사가 일어나자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려놓으려 했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았다. 1590년 우의정에 올라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에 녹훈되고 풍원부원군(豊原府院君)에 봉해졌다. 이후 왜란이 있을 것에 대비하여 형조정랑 권율(權慄)과 정읍 현감 이순신(李舜臣)을 각각 의주 목사와 전라도 좌수사에 천거하였으며, 진관법鎭管法을 예전대로 고칠 것을 주장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조판서를 겸하고, 도체찰사로 군무(軍務)를 총괄했다. 이어 영의정이 되어 선조를 모시며 평양으로 파천했다. 이때 나라를 그르쳤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유로 반대파의 탄핵을 받고 면직되었는데, 의주에 이르러 평안도 도체찰사가 되었다. 명나라의 장수 이여송(李如松)과 함께 평양성을 수복한 뒤 충청·경상·전라 3도의 도체찰사가 되어 파주까지 진격했다. 이여송이 벽제관(碧蹄館)에서 패배하고 퇴각하려 하자 이를 만류했으며 일본과 화의에도 반대했다. 유성룡은 전란 기간 내내 군대 양성과 더불어 훈련도감 설치, 화포를 비롯한 각종 무기의 제조, 성곽의 수축을 건의하여 군비 확충에 노력했으며, 소금을 만들어 굶주리는 백성을 진휼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록되고 다시 풍원부원군에 봉해졌다.1607년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호는 서애西厓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저서로 『징비록懲毖錄』 『서애집西厓集』 『난후잡록亂後雜錄』 『신종록愼終錄』 『영모록永慕錄』 『관화록觀化錄』 『운암잡기雲巖雜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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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3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148*210*30mm
ISBN13
9791159035135

출판사 리뷰

KBS 대하 드라마 〈징비록〉의 원작,
선조들이 피로 쓴 통렬한 반성의 기록 《징비록》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 뒤에
환난이 없도록 조심한다(予其懲而毖後患)”는 말이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징비록》을 저술한 까닭이다.

KBS 특별기획 대하드라마 ‘징비록’이 인기리에 방영을 마쳤다. 드라마 ‘징비록’의 원작 《징비록》을 더클래식 동양고전 컬렉션 12번째로 소개한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당시 전쟁의 총 책임자였던 서애 유성룡이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친 전란의 원인, 전황 등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는 전쟁의 참상과 그 배경이 상세히 적혀 있고 조정에서 있었던 여러 실책들을 반성하는 문장들이 쓰여 있다. 그는 후손들이 다시는 이러한 비극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이 《징비록》을 남겼으며 백성들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 씀씀이는 문장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라에 충성하고 민족의 앞날과 백성을 염려했던 서애 유성룡의 쓰라린 고백과 성찰의 문장들을 만나 보자.

국가가 유지되는 것은 인심에 의해서이다.
비록 위태롭고 곤란한 시기라도 인심이 굳게 뭉치면 국가는 편안하며,
인심이 떨어지고 흩어지면 국가는 위태롭다.

《징비록》은 국가의 명운이 달린 역사적 사건 앞에서 유성룡이 쓴 기록이다. 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잘 드러난 이 《징비록》은, 일본의 침략에 위태로운 조선을 걱정하며 탄식하는 유성룡의 고백들이 쓰여 있다. 전쟁 수행의 최고책임자로서 막중한 책임감과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한 후회의 문장들을 통해 후대에 큰 교훈을 남겨주기 위한 그의 진정성이 돋보이는 기록이다.
임진왜란 이후로도 우리나라는 그에 못지않은 외세의 침략으로 인해 치욕과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당시의 지도자를 자처했던 이들 중 부끄러운 과거를 반성하고 나라의 앞날에 경계와 충고를 해주려는 《징비록》과 같은 글을 남긴 사실은 찾기 힘들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이런 면에서 유성룡의 《징비록》은 국가의 앞날을 이끌어가는 정치인이나 중대한 책임을 맡은 사람들에게 필히 일독을 권한다.
더클래식 동양고전 컬렉션 시리즈 중 열두 번째로 소개하는 징비록은 번역의 기준을 가급적 독자들이 편하고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원문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어를 풍부하게 사용해 번역하는 데 두었다. 또한 한글 번역문과 징비록 원문을 함께 실어 문장의 뜻을 음미하며 해석 할 수 있도록 안내되어 있다. 조선 시대 최고의 기록문학으로 평가 받는 《징비록》을 더클래식 동양고전 컬렉션으로 만나보자.

리뷰/한줄평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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