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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자서 제1권 제2권 녹후잡기 찾아보기 |
柳成龍,유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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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지나간 일을 징계하고 뒷근심이 있을까 삼가노라.” 이것이 바로 내가 『징비록』을 쓰는 연유라 하겠다. 나같이 못난 몸이 당시의 어지러운 때를 당하여 감히 나라의 중책을 맡아 위태로움을 바로잡지도 못했고, 또 기울어지는 형세를 붙들지도 못했다. 생각하면 그 죄를 몸이 죽어도 다 갚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제 오히려 산속에서 목숨을 이어가며 성명性命을 보존하고 있으니, 이 어찌 임금의 너그러우신 은덕이 아니겠는가!
--- p.12 이순신은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숨은 공이 많았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아무도 그를 추천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과거에 급제한 지 십여 년이 되어서야 겨우 정읍 현감이 되어 있었다. (…) 임금은 비변사에 명하여 제각기 장수가 될 만한 인재를 천거하라 하였다. 이때 내가 이순신을 천거해서 비로소 수사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을 본 사람들 가운데 이순신이 갑자기 승진한 것을 두고 의심하는 이도 더러 있었다. --- p.42 “지금 일본이 명나라와 통신하려 하고 있소. 당신 나라에서 이 말을 전해 준다면 아무 일도 없으려니와, 그렇지 못하면 두 나라 사이에 화기和氣를 잃게 될 것이오. 이 어찌 큰일이 아니겠소. 우리가 일부러 와서 알리는 것이니 알아서 하시오.” 변장은 이대로 위에 보고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우리 통신사만 꾸짖고 또한 그들의 오만무례한 것만 탓했다. 크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답하지도 않고 있었다. --- p.50 원래 신립은 날쌘 사람으로 당시에 비록 이름은 있었지만 싸우는 주략籌略에는 능하지 못했다. 옛사람이 말한, “장수가 군사를 쓸 줄 모르면 그 나라를 적에게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한 것이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지금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다만 뒷날을 위해서 경계해야 할 것이기로, 여기에 덧붙여 써 둘 따름이다 --- p.82~83 어찌해서 먼저 사람이 잘못한 것을 뒤의 사람도 이것을 고칠 줄 모르고 지금까지 계속 그것을 답습해서 마침내 일을 그르치는가? 이러고서도 일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은 요행을 바랄 뿐이라, 이것을 설명하자면 말만 길어질 뿐이다. 아! 위험한 일이로다. --- p.3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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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7년의 역사를 가감 없이 기록한
명재상 유성룡의 혜안과 처절한 자기반성 유성룡은 자서(自序)에서 임진란의 쓰라린 경험을 거울삼아 다시는 그러한 수난을 겪지 않도록 후세를 경계하도록 한다는 바람에서 이 책을 집필하였다고 썼다. 이 같은 그의 의도는 『시경』에서 나오는 “내 지나간 일을 징계(懲)하고 뒷근심이 있을까 삼가(毖)노라”라는 문구에서 따온 이 책의 이름 ‘징비록(懲毖錄)’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를 위해 유성룡은 자신이 속한 당파에서 벗어나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가감 없이 기록하는 한편, 후대를 위해 전란을 겪으면서 얻은 경험과 지혜, 방책 등을 세세히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는 자신에게 과오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까지도 숨기지 않고 담담한 심경으로 썼다. 이러한 객관적이면서도 명철한 서술과 치열한 자기반성은 오늘날 위정자들이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하는가에 대한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전란을 맞아 보이는 다양한 인물 군상들의 모습 역시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징비록』을 보면 유성룡의 뛰어난 혜안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순신을 천거하여 왜군에 대비토록 한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그는 무너졌던 진관법을 재정비할 것을 선조에게 건의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오랫동안 평화가 지속되면서 조선의 기본적인 방어 체제였던 진관법이 유명무실해지고 제승방략으로 바뀌어 있었다. 제승방략은 각 지방의 군사들을 한곳에 모아 중앙에서 장군을 파견해 함께 힘을 합쳐 싸우는 방법이었으나 전투에서 패할 경우 한 번에 뚫릴 위험이 있었다. 신립이 충주의 탄금대 전투에서 대패하고 서울까지 단번에 길을 내준 것이 이를 방증한다. 유성룡은 이러한 위험성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성의 수축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것은 『징비록』에 실린 「녹후잡기」에 실린 성가퀴와 옹성에 관한 그의 글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징비록』 곳곳에서 보급과 전시 행정에 불철주야 노력하는 유성룡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순신이 조선 역사상 가장 큰 시련의 시기를 거치며 망국의 갈림길에 들어서 있던 조선을 칼로써 지켜냈다면 유성룡은 붓으로써 조선을 지켜낸 것이다. 『징비록』은 그러한 문신 유성룡의 지혜와 경험이 녹아들어 있는 진수가 담긴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