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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큰 바위 얼굴'을 꿈꾸는 사람들
제1장 정치자금 피, 눈물, 그리고 한(恨)|제도-의식-행태|과격한 이상주의 만장일치 제2장 조중동 모택동|뻥튀기|언론 탓|포퓰리즘 제3장 인물 김영삼|조갑제|김순덕|박세일 제4장 언론개혁 원로(元老)|변화는 고통이다|무덤|당파성 제5장 문성근 사진|농담|음모|뗑깡 제6장 정연주와 KBS 정연주 죽이기|공영방송 죽이기|'인민재판'|자기 도끼로 제 발등 찍기 제7장 신당(新黨) 이간질|시장논리|인(人)의 장막|잔칫날 제8장 논쟁 노무현 죽이기는 노무현 스스로 하고 있다'? |
康俊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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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책임은 없는가?
‘노무현 죽이기’는 노무현 정권이 아무리 조심스런 행보를 보여도 집요하게 이루어지겠지만, ‘노무현 살리기’를 하는 데 방해가 되는 노무현의 책임은 없는가? “지금 노무현과 얼굴을 자주 맞대는 그의 핵심 측근들은 호남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약한 사람들이다. 그냥 운동권 출신이거나 개혁 지향적일 뿐이다. 호남 세력은 표만 던졌을 뿐 노무현의 참모나 측근 진영엔 거의 들어가지 못했다. 호남 세력이 들어가지 못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니다. 그로 인해 빚어질 수밖에 없는 큰 문제가 있다. 김대중의 경우 그의 지지 세력과 참모는 성향이 비교적 일치했던 반면, 노무현은 전혀 다르다. 바로 이 차이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대단히 심각하며 지금 그게 ‘신당 논의’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차이에서 비롯되는 문제는 ‘인의 장막’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인의 장막’을 꼭 나쁜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인의 장막’을 생각할 필요도 없다. 지금 내가 말하는 ‘인의 장막’의 작동 방식은 매우 간단한 거다. 대통령이 물리적으로 워낙 고립돼 있는 존재이다 보니 곁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대통령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게 ‘장막’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신당 문제는 이제 노무현 정권 위기의 주범으로까지 지목될 정도로 국민들에게 ‘짜증’을 안겨주면서 그 폐해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신당 문제에 맞서 지은이는 노무현에게 필요한 건 다음과 같은 ‘용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무현은 기존의 ‘감정적 코드’만큼은 버려야 한다. 아무리 구주류 인사들이 혐오스럽고 그들의 지지자들로부터 받은 모욕이 뼈에 사무치더라도 그들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들을 껴안는 용기를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무조건 껴안으라는 게 아니다. 그들에게 진정한 정치개혁 한번 해보자고 호소해보라. ‘인간’ 중심이 아니라 ‘의제’ 중심으로 풀어가자는 말이다. 그들이 어떤 ‘의제’를 거부하면 그땐 굳이 노무현이 나서지 않더라도 호남인들이 먼저 응징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의제’는 실종된 가운데 ‘인간 청산론’으로 빠지면 그것도 ‘지역감정 이용론’이라는 딱지를 붙여 청산하려 들면 호남인들이 가장 먼저 반발할 것이다. 노무현은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노무현이 이런 용기를 발휘하는 데 다음과 같은 사실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정치개혁’의 관점에서 보자면 민주당 구주류는 분명 기득권을 지키려고 안달하는 ‘수구파’에 가깝지만, 노무현의 핵심 중 한나라당에 몸담았거나 그 근처를 기웃거렸던 인사들보다는 훨씬 ‘개혁.진보적’인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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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기’에 이어 ‘살리기’?
“‘죽이기’를 낸 데 이어 곧장 ‘살리기’를 내는 것에 대해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친다고 흉보는 분들이 없기를 바란다. 이건 내가 원치 않았던 역할이다. 지금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소아병적 광기(狂氣)가 나를 강제로 끌어낸 것이다.” "노무현 살리기"는 지은이가 '노무현 죽이기'를 선 뵌 지 10일 만에 내는 속편이다. 물론 이것이 원고를 10일 만에 썼다는 뜻은 아니다. '노무현 살리기'는 노무현을 둘러싼 소름끼치는 광기들을 접하고서 저자가 평소 일기 쓰듯이 정리한 글들을 묶은 것이다. '노무현 죽이기'가 ‘고발’의 성격이 강했다면 '노무현 살리기'는 ‘대안’의 성격이 강하다. 저자는 이런 일련의 작업이 현실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서 ‘역사의 기록’이라는 의미에만 머물러도 좋은 건지,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왜 노무현을 살려야 하는가? “국익과 더불어 우리의 자존을 위해서다. ‘노무현 죽이기’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자학으로부터의 쾌감’에 종지부를 찍고 모두 다 의젓한 성인으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언제까지 어린애들처럼 징징대면서 노무현을 씹고 조롱하고 야유해야 하겠는가.” 물론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 신문과 수구 세력들은 “국익과 더불어 우리의 자존을 위해서” 노무현이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 경우에는 그들이 말하는 ‘국익’이 어느 나라의 이익을 뜻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우리’가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인지 섬세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실패하면, 파시스트 정권이 들어선다”는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의 말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노무현 죽이기’의 광기는 계속 이어진다 쭉~ 한국 사회 수구 세력들의 전위부대인 조중동의 노무현 죽이기는 워낙 광범위하고 집요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사례들을 묶는다면 몇 권의 책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노무현 살리기'에서 거론하고 있는 대표적인 것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민주당의 대선자금 문제. 이 문제와 관련해 조중동의 사설과 기사 그리고 외부 기고자들의 칼럼에는 ‘피, 눈물, 그리고 한(限)’과 같은 단어들이 흘러넘쳤다. 물론 민주당의 대선자금 문제가 제기되게 된 굿모닝시티 분양 사기극은 분노해 마땅한 사건이며 관련 정치인이나 인사들은 법에 따른 엄중한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불과 몇 개월 전까지 굿모닝시티 사기극의 주인공인 윤창렬을 영웅으로 띄우는 데 가장 앞장섰던 자신들의 행적에 대해 반성을 하면서 피해자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피해 배상 방안을 모색하려는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조중동은 이런 것은 아예 외면하면서 “서민의 피같은 돈”이라는 표현들을 동원해 노무현 정권과 여권 때리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행여 자신들에게 쏟아질 수도 있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더 원대한(?) 정략적 목적이 있는 것일까? 둘째, 노무현이 중국 방문 중 중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한 학생으로부터 “존경하는 정치인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고 ‘모택동과 등소평’이라고 답한 것에 대해, 조선일보가 보인 광기는 이제 조선일보가 아메바 수준을 넘어서서 사오정 시리즈의 주인공이 됐음을 확실히 보여준 것이었다. “존경하는 정치인은 없고 모택동과 등소평을 증오한다”고 답해야 했던 걸까? 아니면 ‘징기스칸’이나 ‘달라이 라마’를 존경한다고 답해야 했던 걸까. 셋째, 지면을 통해 ‘유착 지식인’들의 호들갑을 크게 띄워주는 것도 조중동이 ‘노무현 죽이기’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작업이다. ‘유착 지식인’이란 “기존 주류 체제와 유착해 기존 주류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앞장서온 지신인들”이며 “기존 주류 체제를 옹호하는 대신 그 체제의 홍보력으로 명성을 날려 자기들이 가진 능력 이상으로 과대평가를 받아 온 지식인들”이다. 이들은 매일 600만 부에 이르는 조중동의 발행부수에, 국가의 장래야 어찌 되건 말건 개념 정의의 최소 요건도 갖추지 못한 ‘포퓰리즘’ 타령을 실어보내는 포퓰리즘 행위를 날마다 자신들이 실천하고 있으면서도, 노무현 정권을 ‘포퓰리즘 정권’으로 몰아치는 썰렁한 개그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더 썰렁한 것은 조중동과 ‘유착 지신인’들의 썰렁한 개그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현실이겠지만. 넷째, 원로들의 시국선언을 이용하는 조중동의 행태도 가관이다. 지난 7월 3일 재야 원로인사 10명은 기자회견을 갖고 시국선언을 하면서 “국민통합과 정치개혁을 위한 새로운 주체세력이 결집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물론 이 시국선언은 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었다. 이 시국선언뿐 아니라 여러 원로들의 번지수를 잘못 짚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은 조중동에 대문짝만하게 실렸고, 여러 사설과 칼럼에서 반복 인용되었다. 하긴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조중동 보다도, 시국선언을 하더라도 수구 신문들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호통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과 가깝게 지내는 상당수 원로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섯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광기어린 ‘문성근 죽이기’는 한국에 과연 ‘정치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있기는 한 건지 심각한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들의 ‘문성근 죽이기’는 자기들의 음모만 폭로한 셈이 되고 말았다. 아마도 이 사건과 관련하여 조선.동아에게 가장 어울리는 이름은 KBS 프로듀서협회가 <조선?동아에 엄중 경고한다>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말한 “조선.동아 두 ‘찌라시’ 신문”일 것이다. 수구 신문들이 집념을 갖고 저지르고 있는 ‘문성근 죽이기’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 이 ‘죽이기’와 더불어 같이 이루어지고 있는 ‘정연주 죽이기’와 더 나아가 이 둘과 연계돼 있는 ‘KBS 죽이기’를 살펴보면 그 이유는 명확해진다. 이 세 죽이기는 모두 ‘노무현 죽이기’와 관련돼 있는 것이다. 특히 ?조선일보?가 선도하고 전두환 정권 시절 ‘부역 언론인’ 출신 한나라당 의원들이 가세해 저지르고 있는 ‘KBS 죽이기’는 조선?중앙의 방송사 소유 욕구와 맞물려 있는 것으로 지적받고 있기도 해 그들의 탐욕과 정략에 혀를 내두르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