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감사의 글
서문 - 이제는 전설이 된 석학들을 찾아서 대담 1 라이몬 파니카르(Raimon Panikkar) 가장 위대한 사람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대담 2 레지스 드브레(Regis Debray) 미래학자의 예측은 항상 틀립니다 대담 3 오스카 니마이어(Oscar Niemeyer) 땅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건축의 문제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대담 4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 내가 한 줌의 재로 사라질 거라는 생각 때문에 불안하지는 않습니다 대담 5 나딘 고디머(Nadine Gordimer) 우리는 그저 다 같은 인간일 뿐입니다 대담 6 아도니스(Adonis) 세계의 미국화는 비극일 뿐입니다 대담 7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Boutros Boutros-Ghali) 미국도 다자주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대담 8 어윈 샤가프(Erwin Chargaff) 어떤 과학자도 생명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대담 9 카를로스 푸엔테스(Carlos Fuentes) 21세기에 우리는 다문화 세계에서 살게 될 겁니다 대담 10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자연의 역사에 진보는 없습니다 대담 11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 왜 어떤 나라는 발전하고 어떤 나라는 그렇지 못할까요? 대담 12 필립 존슨(Philip Johnson) 필립, 나는 전 세계를 보고 싶습니다! 대담 13 레셰크 코와코프스키(Leszek Kolakowski) 나는 종교적 감성이 죽었다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대담 14 쥘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 심리적 공간의 파괴가 앞으로 닥칠 위험 가운데 하나입니다 대담 15 페데리코 마요르(Federico Mayor) 거지가 훨씬 인간답습니다 대담 16 예후디 메뉴인(Yehudi Menuhin) 지금 먼지에서 뒹구는 사람도 위대해질 수 있습니다 대담 17 체스와프 미우오슈(Czeslaw Milosz) 예, 시가 인간을 구할 수 있습니다 대담 18 아모스 오즈(Amos Oz) 우리는 탐욕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대담 19 폴 푸파르(Paul Poupard) 인간은 결코 무관심의 대상일 수 없습니다 대담 20 일리야 프리고진(Ilya Prigogine) 인간과 자연은 시간의 창조물입니다 대담 21 아서 슐레징거(Arthur Schlesinger) 나는 인간화된 시장이 가능하리라고 믿습니다 대담 22 미셸 세르(Michel Serres) 아름다움, 아름다움만이 우리를 구해 줄 겁니다 대담 23 월레 소잉카(Wole Soyinka) 우리는 초월적 세계를 향한 욕망으로 가득합니다 대담 24 에드워드 텔러(Edward Teller) 과학기술은 진화를 끌어가는 힘이 아닙니다 대담 25 두웨이밍(杜維明) 현대성에서 전통의 의미를 강조해야 합니다 대담 26 폴 비릴리오(Paul Virilio) 시간이 돈이라면 속도는 힘입니다 대담 27 엘리 위젤(Elie Wiesel) 증인의 말을 경청하면 우리 자신이 증인이 됩니다 후기 옮기고 나서 - 정의定議가 필요하다 찾아보기 |
Constantin von Barloewen
강주헌의 다른 상품
|
1. 현실 정치와 이상 정치
바를뢰벤: 현실 정치와 이상 정치 간에는 언제나 변증법적 관계가 있습니다. 현실 정치와 이상 정치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두 정치의 타협점을 찾을 가능성은 있을까요? 파니카르: 그 경계는 이분법적 사고를 해결할 가능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말했듯이 현실이 도덕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현실 정치가 이상과 대립되는 위치를 고수한다면, 그런 정치는 현실 정치가 아닙니다. 또 인위적인 세계에서 고집스레 벗어나지 않으려는 정치도 현실 정치가 아닙니다. 우리는 둘 중 하나, 요컨대 ‘현실 정치냐 이상 정치냐’라는 잘못된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간디는 “종교적 지도자나 성자가 정치를 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고, “나는 정치를 하는 성자가 아닙니다. 나는 성자이기를 바라고 성자의 경지에 이르려고 노력하는 정치인에 불과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 사고방식이 바로 간디의 힘이었습니다. --- pp.37-38 2. 인터넷과 사이버 민주주의 바를뢰벤: 선생님의 주장에 따르면, 인터넷과 사이버공간은 횡적으로 한없이 뻗어 가지만 수직적 차원이 결여된 가상공간입니다. 달리 말하면, 방향을 끌어가는 주도적인 사상이나 조절 장치가 없습니다. 이런 사이버 민주주의의 미래를 어떻게 예측하십니까? 드브레: 미래학자들의 예측은 항상 틀립니다. 게다가 우리는 인터넷이 정확히 무엇이고,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아직 자세히 모릅니다. 따라서 나는 기술 천년지복설 신봉자들, 즉 기술 낙관론자들의 주장대로 인터넷을 이용하면 멀리 떨어져서도 여러 집단을 구조화시켜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를 건설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 어떤 공동체에나 명확히 경계 지어진 닫힌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인터넷은 비연속적이고 일회적이며 불안정합니다. 따라서 인터넷은 지식의 교환을 수월하게 해줄 수는 있어도 조직에 결속력을 주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진정한 문화의 터전이 되기도 힘듭니다. 기술혁명의 다른 산물에 비해 인터넷은 양면적이지도 못합니다. 대체로 기계와 기구를 경멸하는 인본주의자들처럼 인터넷의 역할을 무시할 수야 없겠지만, 그 가치를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숭배할 것도 없습니다. --- p.49 3. 근본주의/현대성 바를뢰벤: …… 근본주의가 반(反)현대주의의 한 형태라고 말할 수 없을까요? 알제리, 이란, 파키스탄에서 그런 조짐이 엿보이지 않습니까? 아도니스: 맞습니다. 하지만 현대성, 즉 현대주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절대적인 의미에서 현대성은 무엇을 뜻할까요? 이를테면 독일이나 서구 세계에서 말하는 현대성은 아랍 세계나 아프리카, 인도에서 말하는 현대성과 완전히 다릅니다. …… 현대성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따라서 당신의 질문에 정확히 대답하려면 근본주의에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현대성이 무슨 뜻인지 추적해 봐야 할 겁니다. 내 생각에 근본주의, 특히 이슬람 근본주의는 서구 세계, 특히 근대 서구 세계가 조장하고 부추긴 면이 없지 않습니다. 일부 서구 국가의 정치 때문에 아랍 세계에서 근본주의가 기승을 부린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모든 근본주의는 절대적인 의미에서 반현대적입니다. 반개방적이고 반자유적이고 반탐구적이란 점에서 반현대적입니다. 근본주의는 과거로의 회귀, 후진적 세계로의 회귀입니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현대 세계에서 요구되는 태도는 아닙니다. --- pp.102-103 4. 생명 윤리 바를뢰벤: 생명 윤리가 채택되면서 유전공학의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올바로 평가하기 위해 지금까지 취해진 노력에 대해서도 선생님은 무척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유전공학이 지금까지 해오던 식으로 유전형질을 조작하려는 욕구를 억제하지 못할 거라고 말입니다. 샤가프: 나는 윤리를 소시지처럼 잘라 내고 구분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윤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형이상학이 하나밖에 없는 것과 똑같습니다. 생명 윤리가 있다면 포르노 윤리도 있을 것이고, 도벽 윤리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포르노에 윤리가 있습니까? 도벽에 윤리가 있습니까? 게다가 우리는 ‘생명bio’이 진정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릅니다. 장기를 적출하거나 장기를 복제해 돈벌이를 하는 게 아니라면, 생명 윤리는 죽음의 윤리일 뿐입니다. 생명 자체는 미스터리입니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 우리는 여기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고, 고성능 컴퓨터를 동원해도 그 과정을 해독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연구하는 것은 생명이 아니라, 생명을 이루는 요소와 조건일 뿐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찾아낸 요소와 조건이 실질적으로 필요한 잰지도 제대로 모릅니다. --- pp.161-162 5. 문명의 충돌/공존 바를뢰벤: 선생님은 서로 다른 문화나 문명이 앞으로 충돌할 가능성을 염려하셨습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문화 간의 대화, 종교 간의 대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지는 않으십니까? 헌팅턴: 문화권, 문명권 간의 대화를 추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문화의 공존을 위해서 다른 대안은 없으니까요. 『문명의 충돌』에 담긴 핵심 주장에 대해 쏟아지는 비판을 생각해 보면, 내 예언이 제풀에 실현될 것만 같습니다. 향후 수년 내에 문명들이 충돌할 개연성이 한층 높아진 것이 사실이니까요. 어떤 사건을 예언한 탓에 그 사건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진 셈입니다. 하지만 어떤 예언도 그 예언을 실현시킬 힘까지 갖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 예언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 내가 문명의 충돌을 주장한 이후로 나타난 반응에서도 정책 책임자들이 그런 충돌의 가능성을 점점 더 걱정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문명들 간의 대화를 활성화시키려는 대대적인 움직임이 실제로 시작됐습니다. …… 물론 대화를 한다고 합의에 이른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어떤 문제를 토론해서, 우리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그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차이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pp.235-237 6. 자본주의와 윤리 바를뢰벤: 세계경제에 아직 윤리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슐레징거: 탐욕은 먼 옛날부터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무척 강력한 동기입니다. 남아메리카에서는 성직자까지 노예제도를 옹호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성직자들이 춤이나 도박은 죄악시했습니다. 자기만족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나쁜 습성 중 하나입니다. 세상의 주인인 양 다른 사람을 서슴없이 판단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기업계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처신하려 하겠지만, 현실 세계에서 기업은 돈을 벌고 재화를 생산하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또 기업은 혁신을 시도한다고 하지만, 그 혁신이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래도 시장은 그런 목표에 따라 평가되어야 합니다. 창조적인 파괴는 자본주의에서 치러야 할 대가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허약하고 무방비 상태인 개인들을 공격할 때 그런 파괴적 결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 pp.439-440 7. 제3세계 문제 바를뢰벤: 얼마 전부터 일부 아프리카 국가의 부채를 탕감해 주며 그 국가들에 자주적 결정권을 부여하는 경향이 눈에 띕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소잉카: 왜 선진국들이 자주적 결정권을 돌려주었을까요? 가난한 나라들이 자주적 결정권을 즉시 요구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습니다. 이 문제는 자세히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개발원조금의 상당 부분이 현장에 파견된 전문가들을 유지하는 데 쓰인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놀랄 겁니다. 10년 전에 아프리카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 국가의 경우에는 85퍼센트에 달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탈식민주의 시대라고 하지만 해방의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옛 식민국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 주었던 1차 자원을 공식적으로 인도하는 시대에 불과했습니다. 원조 공여국이 아프리카의 독재자와 손잡고 지배자적 위치에 있으려고 하는 한 이런 불균형 관계는 개선되지 않을 겁니다. 원조 공여국은 별다른 보상을 치르지 않고서도 독재자와 결탁해 막대한 이익이 보장된 사업을 체결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언젠가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그들을 착취한 부자 나라들에게 불행의 책임을 묻는 날이 올 겁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이젠 지쳤어. 부패한 정부에서 이만 벗어나고 싶어. 우리와 뜻이 맞는 짝과 공평한 입장에서 사업을 하겠어. 또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물건만을 생산하겠어”라고 말하게 될 겁니다. --- pp.464-465 8. 대화의 힘 진정한 대화를 위해서는 듣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상대의 말을 선입견 없이 들어 줄 때 진정한 대화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내가 들은 말에 의미를 부여할 때 상대에게 반응도 자연스레 할 수 있지 않은가. 이런 과정에서 경청은 지적인 힘과 창조적인 힘까지 발휘하며, 뭔가를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내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들리느냐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달리 말하면,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올바른 대화는 내면의 치유라 할 수 있다. 상호 이해는 ‘생산적 지지’로 이어진다. 대화자가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는 기회를 가진다는 점에서, ‘생산적 지지’는 대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생산적 지지를 위?서는 선입견을 버리고 상대의 말을 들어 주려는 열린 마음, 뭔가를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조건들이 갖추어질 때 대화의 균형이 한층 쉽게 유지되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깊이 들여다보면 과학적 사고의 단편화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단편화는 분열된 정치 문명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런 현상을 인간의 진화 법칙에 따른 필연적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의 생각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의 대담들은 문명의 비판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과학적 사고의 단편을 극복하는 동시에, 21세기를 지배하는 문명의 단편화를 극복하는 방법을 석학들에게 물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기존의 전제와 지식, 자아와 타자의 관계, 심지어 우리와 이 세계를 공유할 미래 세대와의 관계까지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해 보려는 시도다. --- pp.554-555 |
|
20세기의 진정한 휴머니스트들, 이 시대를 성찰하다
이 대담집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석학들을 찾아 세계 곳곳을 다니며 그들과 나눈 이야기를 방송과 책으로 만드는 방대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이 책은 이제는 고인이 된 이들을 포함한 뛰어난 개인들이 지난 세기를 어떻게 살았는지를 돌아본다는 점에서 역사적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며, 거장들의 눈으로 앞으로의 세계를 전망한다는 점에서 설득력 있는 미래서이기도 하다. 스물일곱 명의 대담자들은 지난 20세기를 한 시대로 만든 걸출한 개인들이며 우리 시대 가장 빛나는 지성들이다. 문학(고디머, 푸엔테스, 소잉카, 오즈 등)과 음악(메뉴인), 건축(니마이어, 존슨), 과학(굴드, 프리고진 등), 철학(세르, 크리스테바), 정치(부트로스 갈리, 헌팅턴), 역사(슐레징거, 두웨이밍), 인류학(레비스트로스), 종교(파니카르, 푸파르), 매체?미디어 이론(드브레, 비릴리오) 등 다양한 분야의 거장들은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분야의 경계를 넘어 시대와 세계에 대해 고민하고 발언한 지식인이자 사상가이다. 전문가만이 존재할 뿐 사회와 세계를 통찰하는 지식인을 찾기 어려운 우리 시대에 이 책은 지식인이라는 존재와 역할을 보여 준다. 대화를 통해 함께 고민하다 이 책은 스물일곱 대가들의 다양한 논점을 담고 있지만, 타자와 세계를 편견 없이 바라보고 대화할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은 서구와 비서구, 문명의 공존과 충돌, 과학기술의 가능성과 한계 등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지만, 그럼에도 전 세계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타자와 대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질문에 대해 단언하지 않고, 개념에 대한 정의(定義)를 내려 상대방과 최대한 공통분모를 찾은 후에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옮긴이가 지적했듯이(558~561쪽 참조), 관점에 따라 같은 대상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만큼 개념에 대한 정의를 공유하는 것은 대화의 전제조건이다. 입장을 달리하는 토론자들이 상대의 관점을 배제한 채 각자의 입장만을 되풀이하는 토론 프로그램에서 답답함을 느낀 적이 있다면 성숙한 토론 문화와 사회 통합을 위해 이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획일적인 세계질서가 강요되고 나와 다른 목소리를 용인하지 못하는 지금, 우리에게 이 책은 경계와 억압을 넘어 차이와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모색할 계기가 되어 준다. 주요 내용 문명의 충돌인가 공존인가 이 책은 문명 간 소통과 대화를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로 다룬다. 1세계와 3세계, 서양과 동양을 망라한 다양한 대담자들은 다른 문명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를 보여 준다. 이들은 다른 문명들 간의 갈등과 충돌이 표면화되거나 잠재해 있는 상황을 우려하면서 편견 없이 마주보고 대화할 것을 강조한다. 또한 각 종교가 내세우는 근본주의를 비판하고 다양한 모습의 현대성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문명의 충돌론을 제기한 헌팅턴은 문명 간 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뿌리 깊은 적대감에 여전히 주목한다. 동양적 사유와의 관련성 속에서 종종 논의되기도 하는 물리학자 프리고진은 동양에서 대안을 찾으려는 서구의 신비주의적?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경계한다. 동아시아 발전의 이유를 유교에서 찾아 온 두웨이밍은 유교가 보편 윤리로 기능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또 라틴아메리카 출신의 대담자들(푸엔테스, 마요르 등)은 서구의 정신세계를 수용하면서도 고유한 문화를 지켜 온 라틴아메리카 문명의 대안적 가능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입장과 출신 지역에 따라 견해를 달리 하면서도 문명 간 대화를 통해 전 세계적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데는 한목소리를 낸다. 과학기술의 가능성과 한계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 생화학자 샤가프,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물리학자 일리야 프리고진, 핵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 등 유명 과학자들과의 대담에서는 과학기술의 가능성과 한계를 주요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들은 과학기술이 인간의 생존과 생활에 혜택을 준 점에는 동의하나 과학기술의 잘못된 사용을 우려한다. 수소폭탄을 개발한 텔러가 과학기술이 가져올지도 모르는 부작용 때문에 개발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과학기술 자체보다 그 사용을 결정하는 집단에 더 큰 책임을 물었다면, 샤가프는 생명(유전)과학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전망하며 생명을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 놓기를 바란다. 드브레와 비릴리오는 인터넷과 사이버 공간의 가능성을 주목하면서도 정보과학의 발전을 곧바로 소통의 증대나 민주주의의 신장과 연결시키는 데에는 회의적 시각을 보인다. 이들은 모두 기술 결정론적 시각을 비판하고 그 기술을 작동시키는 인간의 역할, 기술의 배후에 있는 사회의 구조를 중시한다. 위험에 빠진 민주주의 세계화와 문명 간 단절로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는 현재, 석학들은 이를 민주주의의 위기로 진단한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이집트 출신의 부트로스 갈리는 여러 종류(금융, 테러, 질병 등)의 세계화가 초래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초국가적 노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소수의 국가만이 영향력을 독점하거나 책임을 방기하는 등 국제적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부재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그는 권력의 다자주의를 제시한다. 미국의 역사학자 슐레징거는 미국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점진적으로 진보해 왔으며 특유의 혼성적 문화를 일구어 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미국이 다른 국가나 연합체에 점차 협력하게 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작가 고디머는 현재의 민주주의가 위기 상황임을 인정하면서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하고 인권과 평등의 신장을 쟁취한 역사적 경험을 떠올리며 민주주의의 미래를 밝게 전망한다. 시(詩)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 이 책의 대담에 참여한 이들은 기본적으로 인문주의자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시인, 작가 외에도 건축가, 음악가 등 예술 분야의 대담자들은 공통적으로 생각의 속도보다는 생각의 깊이에 더 의미를 두고 있으며 신성한 것과 형이상학적인 것, 실용주의가 지배하기 전의 가치들에 주목한다. 건축가이자 사회주의자인 니마이어는 건축 기술이나 자재 못지않게 시나 종교적 심성에서 영감과 직관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정신분석학자 크리스테바는 현대 사회의 가장 큰 위기로 심리적 공간의 파괴를 언급하면서 사회 내부의 이방인들, 인간 내면의 소외된 쪽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폴란드 출신의 작가 미우오슈는 근대 이후로 합리주의 계열의 사상으로 편향될 시점마다 문학과 예술이 균형을 잡아 주었다며 지금 이 시대에 그러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작가 엘리 위젤은 역사의 비극을 기록하는 시, 문학,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들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