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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志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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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는 한국 사회의 역사 인식이 본질주의적 사유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왕조사든 민중사든 교과서적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주제들을 부러 찾았다. 교과서적 역사를 흔들 수 있다면 국가든 민족이든 계급이든 젠더든 주제는 상관없었다. 해체의 전략으로는 언젠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제시한 ‘일화(anecdote)’적 역사 서술을 택했다. 공식적 역사 서술이 구축한 정교한 인과관계를 흔드는 데는 불쑥불쑥 이야기를 던지는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머리말 중에서
영국의 역사가 노먼 데이비스가 폴란드에 유학 와서 지도교수를 정하고 박사논문 주제를 의논했던 일화를 소개한 게 기억나는구나. 옥스퍼드에서 역사를 공부한 후 청운의 꿈을 품고 야기에오 대학에 온 이 젊은이는 러시아 혁명 직후 폴란드와 볼셰비키 러시아 간의 전쟁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고 싶다고 지도교수에게 제안했단다. 그 지도교수의 반응이 뭐였는지 아니? “이 사람아, 미안하지만 그런 전쟁은 우리 역사에 없었네.”였단다. (중략) 당시만 해도 1970년대 초니까 1919년부터 1921년에 걸쳐 일어난 이 전쟁에 참여했고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런 전쟁이 폴란드 역사에 없었다는 게 이해되니? 사회주의 모국인 소련이 폴란드를 침공한 그 전쟁은 사회주의 형제국가인 소비에트 러시아와 폴란드의 우호를 위해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 과거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미래보다 과거가 더 예측하기 어렵다는, 구소련의 냉소적인 농담은 농담이 아니라 이처럼 현실이었구나. --- pp.385-386 굳이 역사 공부를 하려고 애쓰지 마라. 잠이 안 올 때를 빼놓고는, 재미도 없고 죽어 있는 역사책을 읽으려고 굳이 애쓰지 말거라. 역사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언니하고 싸우면서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왜 생기는가를 생각해보고, 엄마와의 팽팽한 신경전에서 헤게모니의 문제를 느껴보고, 아빠하고 싸울 때 권력과 지배, 순응과 저항의 문제를 생각해보면 우선 그걸로 충분하다. 어떤 훌륭한 역사책보다 네가 몸으로 느끼면서 배우는 삶의 문제가 더 생생하고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너와 상관도 없는 먼 과거를 파헤치기보다는 우선 ‘네가 서 있는 곳을 파헤쳐라.’ 공식적 역사를 부정하고 밑으로부터 살아 있는 역사를 갈구했던 맨발의 스웨덴 역사가 스벤 린드크비스트(Sven Lindqvist)의 주장이다. 지금까지처럼 ‘역사 공부’ 하지 말거라. --- p.3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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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묻고 답해야 할 시대의 문제를 던지고
새로운 역사적 상상력을 제안하다 학문과 국경의 경계와 틀을 뛰어넘는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자 임지현, 그가 무덤 속에 잠들어 있거나 여전히 우리 주위를 유령처럼 떠도는 역사 인물들에게 열아홉 통의 도발적인 편지를 썼다. 《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가 바로 그것이다. 편지의 수신인은 에드워드 사이드, 사카이 나오키, 괴링, 공자, 무솔리니, 스탈린, 김일성, 박정희, 로자 룩셈부르크와 체 게바라, 마르코스, 벤구리온, 한나 아렌트, 바우만, 요코, 니시카와 나오키, 그리고 한·중·일 3국의 동료 시민들이다. 그는 개별 수신인에게 보내는 사(私)적인 편지를 공개함으로써 이 편지글을 읽는 독자 ― 21세기를 이끌어갈 새로운 세대 ― 에게 ‘사(史)적인 말걸기’를 시도한다. 그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역사연구를 기반으로, 역사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역사적 시선이 왜 중요한지, 그리하여 역사란 무엇인지 등, 역사가 묻고 답해야 할 시대의 문제를 제기하며 새로운 역사적 상상력을 제안한다. 임지현, 그는 한국 사회의 본질주의적 역사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여, 그 정점에 위치한 역사 교과서의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주제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다. 그리고 벤야민이 일찍이 제시한 ‘일화(anecdote)’적 역사 서술 방식을 활용해 그 교과서적 역사를 여지없이 해체해버리고 있다. 그가 들려주는 들쑥날쑥한 일화들은 공식 역사 서술이 구축한 정교한 인과관계의 틀을 흔드는 불온한 역사들로 가득하다. 짧지만 강렬한 일화들은 독자로 하여금 동양과 서양, 제국과 민족, 식민주의와 민족주의,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대립의 인식 틀을 깨고 또 다른 역사 인식의 출구를 모색케 한다. 《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는 21세기를 이끌어갈 새로운 세대에게, 파시즘, 식민주의, 홀로코스트, 내셔널리즘 등 20세기의 불길한 역사 유산과 결별하고 이제 자신이 서 있는 삶의 현장에서 ‘나의 역사’를 직접 창조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새로운, 통쾌한 역사 교양서이다. ‘역사 교과서’의 고정관념을 거부하는 ‘불온한’ 역사책 - 이 책의 특징 1 교과서 속 역사는 문제풀이용으로는 제격이다. 언제나 정답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삶에 정답이 있을 수 있을까? 이 책은 ‘민족’의 ‘아름다움’과 ‘정의’, ‘순수’만을 강요하고 선별하여 그것만을 기억하게 만드는 ‘고정관념’의 틀에 묶인 교과서적 역사를 거부할 것을 촉구한다. 이는 곧 몸으로 느끼면서 배우는 삶의 문제가 그 어떤 역사책보다 생생하고 중요하다는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부모와의 다툼에서 헤게모니의 문제를 느껴보고 권력과 지배, 순응과 저항의 문제를 생각해보라고 권함으로써, 지금까지의 교조적 ‘역사 공부’를 던져버리고 밑으로부터의 살아 있는 역사를 추구하라고 추동한다. 저자의 주장은 간명하다. 역사 교과서를 찢어버려라, 그리고 지금 자신이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부터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라! 일화적 역사 서술, 공식 역사에 균열을 일으키는 해체적 글쓰기 전략 - 이 책의 특징 2 이 책은 교과서적 고정관념의 틀을 해체하기 위해 독특한 서술방식을 글쓰기 전략으로 이용하고 있다. 기존의 견고한 교과서 역사의 틀을 깨는 방식으로 들쑥날쑥한 ‘일화’를 들려줌으로써 공식의 역사에 균열을 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사이드 편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이데올로기와 상관없는 일상의 경험이, 스탈린 편에서는 제국주의 스파이를 잡아낸 한 열혈당원의 일화가, 그리고 아렌트 편에서는 너무나 평범한 한 청년이 잔인한 학살자가 되는 상황이, 로자 편에서는 평범치 않은 로자의 연애 이야기가 박제화된 역사 이미지들을 깨뜨린다. 홀로코스트를 둘러싼 문제, 그중에서도 ‘악’의 문제에 접근하는 일화를 살펴보자.(15장 ‘근대는 야만이다: 악의 합리성 - 지그문트 바우만에게’ 참조) 나치가 만들었던 극한의 상황은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선택이 가장 비합리적이고 야만적인 선택이 될 수밖에 없음을 드러냄으로써, 악이란 곧 ‘부끄러움을 모르는 합리성’이라는 것을, 이들 일화는 그 어떤 정교한 분석적 이론보다도 큰 울림을 전달한다. 소소한 일화에 담긴 강렬하고 흡입력 긴 여운은 서서히 우리 역사 인식을 바꿈으로써 타인의 아픔을 느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유연한 사고로 이끌어간다. 저자가 기억을 더듬어 슬금슬금 꺼내놓은 일화들의 세계로, 즉 지구 반대편의 역사 인물과 그들의 시대로 자유로이 유영하듯 떠돌다 돌아온 지금 이 자리는 이제 예전의 그 자리가 아니다. 불온한 상상력을 꿈꾸게 됨으로써, 이제 새로운 나의 역사를 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이데올로기와 국경을 뛰어넘는 새로운 역사를 상상하라 - 이 책의 특징 3 이 책에서 저자는 동양과 서양, 제국과 식민지, 민족과 인종, 남과 여, 선과 악 등 우리를 규정하는 모든 경계와 구분을 넘어서자고 제안한다. 힘과 권력, 제국이 만들어낸 20세기의 강요된 의식과 역사를 극복하고, 이제 새로운 역사를 꿈꾸고 상상하자고 제안한다. 이는 저자가 수차례 외친 메시지이기도 하다. 국사의 틀에서 벗어나 트랜스내셔널 역사를 지향하는 연구자로서, 그는 한?중?일의 동료 시민들에게도 국경과 변경에 대한 인식의 전복적 상상력을 제안한다. 일상과 이데올로기의 충돌과 결절지점을 일화를 통해 깨우침으로써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권의 신성불가침과 민족주의의 주술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그러한 빈곤한 과거의 역사 인식에서 벗어날 때만이 21세기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중의 수신인에게 띄우는 私적이고 史적인 편지글 - 이 책의 특징 4 《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에는 수신인이 있다. 그 수신인의 삶과 생각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번 편지글의 주인공은 그 수신인이 아니다. 수신인은 일종의 거울이다. 수신인에게 띄운 편지는 저자 임지현의 그간의 학문적 궤적과 고민을 비추어보는 반면교사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저자의 개인적이고도 역사적인 편지글을 조망하는 독자는 그 ‘거울’ 안에 포섭됨으로써 임지현과 수신인 모두를 만나고, 또다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편지글이라는 형식의 자유로움과 서술의 편안함이 독자로 하여금 저자와 수신인의 사이를 더욱 가깝게 느끼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