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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부 삶, 사회, 국어교육 우정을 위한 성찰 국어 교사로 살아가기 민중의 평화를 가르치는 고전 교육 논술 독재 앞에서 공정택, 류근일, 그리고 하워드 진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논술 능력이 필요한 것일까 아이들은 왜 욕을 할까 아이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자 2부 삶을 위한 국어교육 지금 ‘삶을 위한 국어교육’을 생각하는 이유 ‘나’를 찾아가는 국어 수업 수업 시간의 여백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소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이 좋은 영화 공부 아이들에게 ‘세상의 모습’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3부 세상 속으로 혼란을 위한 메모 2007년 6월의 단상들 애국자가 없는 세상 다시 읽는 『죄와 벌』 젊은 교사들에게 보내는 편지 사유하는 교사 글의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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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작품과 아이들 사이에는 실로 두터운 장벽이 가로놓여 있다. 그것은 언어의 장벽이기도 하고, 문화와 가치의 장벽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전 교육은 대개 이 장벽을 효과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론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 나는 이런 노력들을 지켜보면서 어느 순간부터 그 속에 뭔가 중요한 질문이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아이들에게 고전 작품을 왜 가르치는 것인가, 조금 썰렁하게는 “고전 작품을 배워서 어디에다 써먹을까?”라는 식의, 고전 작품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이다. 물론 고전 작품은 입시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배워야 하기 때문에 분명한 현실적인 쓸모가 있다. 그리고 고전 작품을 가르치는 것은 문화의 전수자로서 교사의 당연한 책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정직한 답은 “아이들의 삶을 위해서”가 될 것이다. --- pp.31-32
5년 전 어느 날, 『한겨레 21』을 보다가 조남준 화백이 연재하던 <시사 SF> 코너에서 눈에 번쩍 들어오는 만화를 보았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서정적인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만평이었다. 그것을 인쇄해서 함께 감상하고 아이들에게 손수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과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표현해보게 했다. 아주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비롯한 수업이었는데, 특별한 체험이 되었다. 평소 별 생각이 없어 보이는 아이들이 깜짝 놀랄 만큼 깊고 섬세한 서정을 그려내거나, 때로는 슬프고도 해맑은 마음의 결을 그려낸 것이다. --- pp.143-144 그러므로 나는 차라리 ‘혼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선 기존의 길을 끊고 헤매는 시간이 필요하다. 방황은 언제나 환영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곳저곳에서 제 방식으로 분출하는 ‘세상의 꼴통들’을 사랑하고, 또한 존경한다. 얼마 되지 않아 닥쳐올 ‘미증유의 혼란’을 향해 착실히 나아가는 이 침묵과 안정을 차라리 두려워해야 한다. 조금씩 전체주의가 준동하고 있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 pp.283-384 내가 보기에 오늘날 한국 교육 현장에서 가장 강력한 담론이 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빈곤’, ‘비정규직 문제’와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문제에 대한 우리 교육 주체들의 대응은 거의 절망적이다. 우선 교원들 스스로가 계층화되어 있다. 교사들의 경우 그 험난한 경쟁에서 승리한 정규직으로서의 자부심이 있다. 그리고 대개의 교사들은 그들 자신이 학창 시절 더없는 모범생들이었기 때문에 빈곤층 아이들이 흔히 내보이는 적대감, 무기력, 일탈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학부모들, 특히 교육 문제를 고민하는 중산층 이상의 ‘배운 부모’들은 제 자식의 진학과 입시 문제 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저 아이들이 결국 비정규직으로 취업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바로 지금 빈곤으로 삶 자체가 망가져 있는 아이들의 절망에 대해서는 거의 사색하지 않는다. --- p.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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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의 우정이 내 삶을 지탱해주는 힘”
“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펼쳐놓고 먹을 때가 제일 좋고, 크게 웃으며 즐겁게 수업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거기서 얻은 힘으로 전교조 활동을 하며, 가끔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경남 밀양에 있는 밀성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이계삼 선생님이 어느 잡지에 실은 자신의 약력이다. 그는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며, 학교에서 아이들과 싱그러운 우정을 나누는 데서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상가 이반 일리치가 ‘공생공락(共生共樂)의 도구’로 꼽은 세 가지인 도서관, 자전거, 시를 모두 갖추고 살아가는 기적 같은 행운을 누리고 있음에 늘 감사한다. 이런 소박한 지방 소도시 생활의 이면에서 그는 예리하고 저돌적인 예봉을 휘두른다. 지난 3월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자퇴 선언 대자보를 내건 대학생 김예슬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얼마 후 어김없이, <한겨레> 칼럼 ‘세상읽기’에 기고한 <김예슬 씨의 글을 읽으며>라는 그의 글을 볼 수 있었다. “초·중·고 12년을 대학 하나만 바라보고 내리닫게 채찍질을 했다. 그렇게 진입한 ‘약속의 땅’이었건만, 그들을 정신적 백치가 되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는 굴레 속으로 다시 밀어 넣는다. 그렇게 4년을 내달리게 하고서도 끝내 그들을 청년실업자로, 비정규직으로, 신용불량자로, 나이 서른이 다 되어도 제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른아이’로 빚어내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인재 양성 과정’이 아닌가.” 그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한 지적 공간이라고 여기는 『녹색평론』에 기고할 르포를 쓰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장을 찾기도 했고, 전교조 활동가로 꾸준히 일해 왔으며, 오늘도 4대강 사업 반대운동을 위해 작은 힘 하나를 보태고 있다. 아이들과의 행복하고 바쁜 나날을 보내는 한편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이런저런 문제와 늘 씨름하는 그가 그동안 전국국어교사모임의 회지인 《함께 여는 국어교육》과 월간 《우리교육》 등 교육 관련 매체에 발표한 자신만의 교육론과 국어 수업 사례들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그는 입시로 분절되고 지식으로 토막 난 우리의 말글살이를 ‘삶’이라는 피륙으로 보듬어 싸안는 수업을 꿈꾸게 되었고, 이를 실천에 옮겨왔다. 교사 경력이 쌓여가면서 그는 이런 수업들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삶을 위한 국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정립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그는 책 제목 그대로 아이들을 향한 모든 교육적 노력은 오직 아이들의 삶과 그들의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데 쏟아부어야 한다는 믿음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의 삶과 그들이 꿈꾸는 세상을 위한 국어교육 그는 아이들에게 사랑의 언어를 가르치기 위한 몸부림 끝에 ‘삶을 위한 국어교육’을 택했다. 어느 교사 모임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국어 교사는 이 세상 속에서 아이들의 삶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가치에 대한 성찰이 점점 옅어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때 온 사회를 흔들었던 ‘논술 광풍’ 앞에서 논술의 해악을 고발하거나, 입시 논술의 흐름과 분명한 경계선을 긋거나, 아이들의 삶이라는 대전제를 준거로 삼아 맞서기를 고대했지만, 현실을 부정할 수 없는 ‘무력한 현실주의’를 확인했을 따름이다. 아이들의 고단한 나날들, 수십 년이 흘러도 흔들림 없이 더욱 극악해지는 입시 경쟁 체제, 그 경쟁에서 설사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취업과 사회 진출 길목에서 여전히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암울한 현실들, 그리고 기후 변화와 식량, 에너지, 금융, 경제 문제를 비롯한 수많은 위기의 지표들을 우리의 사고 바깥으로 몰아내고 싶지만, 그것들은 외면한다고 피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는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가 맡은 영역에서, 가르치는 방식에서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방향 전환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가 몇 가지 주제와 수업 사례를 가지고 펼쳐놓은 ‘삶을 위한 국어교육’의 모습을 각 부별로 살펴보자. <1부 삶, 사회, 국어교육>에서는 자신의 학창 시절을 비롯해 그가 희망을 갖고 기대어온 우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땅에서 세상과 부딪치며 국어 교사로 살아가는 이야기, 고전 예문을 하나씩 제시해가면서 아이들의 삶과 고전 교육을 연결시킨 사례를 읽다 보면 실천적인 현장 교사로서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논술 독재의 허위를 낱낱이 파헤치는 그가 아이들을 이끌고 인문학 강좌를 성공적으로 마친 이야기는 가슴 뭉클함까지 느끼게 한다. <2부 삶을 위한 국어교육>에서는, 아이들의 삶과 가까운 개인 수준의 교육과정을 교과서나 입시의 굴레 바깥에서 구현하고자 애써온 편린들을 하나씩 펼쳐 보이고 있다. 글과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하면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국어 수업이 인상적이다. 수업 시간의 여백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사례, 또한 소설과 영화를 어떻게 아이들과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지, 아이들에게 거친 세상의 모습을 어떤 식으로 가르칠 것인지에 대한 노하우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3부 세상 속으로>에서는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이슈에 대한 의견을 조심스럽게, 하지만 소신 있게 내비치고 있다. 대운하, 촛불집회, 교육, 노동 문제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그의 용기 있는 모습은 항상 깨어 있는 시민의 모범을 보는 듯하다. 그가 존경하는 사상가 이반 일리치, 교육가 조너선 코졸, 시인 김수영, 권정생에 관한 이야기들에서는 이 인물들이 그의 ‘삶을 위한 교육’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