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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부 폐신 집합소 廢神 集合所 2부 원배 元倍 3부 복배 復倍 4부 주니어 Junior 5부 부활 復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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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회, 어떤 체제에서도 예외적인 신분 이동은 존재하는 법. 체제의 완전 전복이 아닌 체제 내에서의 이동은 그만큼 개인의 계급 상승보단 계급 박탈로 체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p.34
* 노동자들을 보세요. 매일 똑같은 일만 반복하더니 아예 기계가 돼버렸어요. 그건 과도한 근로 의욕에 시달렸기 때문이 아닌가요? 그래서 그들이 꿈을 꾸던가요? 피곤해서 꿈꿀 여력조차 없잖아요. --- p.124 * 사용하지 않는 기계가 녹슬 듯이 기술도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지. 이곳이 지옥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어. 그냥 묻혀버리지. 모든 기술, 개성, 난폭함까지도 말이야. 그렇게 묻혀버린 자리에 지루함과 권태가 찾아오지. 큰 맥락에서 보면 생존을 위해 먹을 것을 찾는 절박함조차 권태의 다른 모습이야. 의식주, 목숨 부지를 위한 몸부림은 그 결말이나 동기가 지독히도 단조롭거든. 그 지루함이 인간의 위대한 능력을 말살하는 거야. --- p.248 * 많은 사람들은 혁명을 기성 세계의 완벽한 전복으로 인식하는데 그건 착각이야. 진정한 혁명은 눈속임이야. 눈속임을 통해 권력이 유지되고 체제는 견고한 다리 위를 건널 수 있게 되는 거야. 비록 그 다리가 환각의 다리일지라도 그 다리를 완벽하다고 긍정하면 그 다리는 곧 난공불락이 되는 거야. --- p. 287 * 콘크리트 밑에서 무의미와 숭배의 박제가 되어버린 영혼과 한 몸으로 뒤엉켜 분노의 집합체가 되어 터져 오른 것이다. 그 순간 칼잡이와 소년 모두 변명하지 못했다. 생존에 대한 최소한의 집착도 품을 수 없었다. 다만 이 거대한 고통의 출현은 현존하는 어떤 힘으로도 제압될 수 없다는 깨달음만이 그들의 머릿속을 아득하게 만들 뿐이었다. 단지 그 뿐이었다. --- p.3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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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 138층 건물에서 펼쳐지는 34년의 무간지옥 풍경!
2009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 주원규의 장편소설이 출간됐다. 세상의 끝, 138층 건물에서 ‘소년’과 그 자손이 겪는 무력한 34년을 그린 이야기로 알레고리와 신화의 변주를 통해 가면을 쓰고 있는 현실의 지옥을 보여주고 있다. 『열외인종 잔혹사』에서 보여준 주원규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에 수백 개의 퍼즐 조각이 뿌려진 듯 이야기의 곳곳에 포진한 메타포가 더해져 사건의 정점에서 독자의 상상을 완벽하게 전복시킨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현실의 불안함을 미래에 빗대어 이야기했다면 주원규는 현재의 병폐를 과거에 묻고 있다. 『무력소년생존기』의 배경인 138층 건물 ‘폐신 집합소’는 우리의 근현대사가 만들어낸 계급사회의 한 단면을 상징한다. 그러나 소설에는 우리의 근현대사가 전면에 나오지 않는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시공간을 배제함으로써 과거의 오류는 아직도 진행형임을 나타내고 있다. 문학의 역할이 당대의 상처를 진단하는 것이라면 주원규는 보다 넓고 깊게 상처를 투시하는 눈을 가졌다. 주원규는 현재의 갈등과 억압, 부조리의 근원을 개인의 무력함이나 지분거리는 관계에 두지 않고 꿈을 거세하고 왜곡하는 시스템에서 찾는다. 자유분방하고 가벼운 하위 장르로 무거운 근현대사를 훑은 시도는 전형적인 장르의 공식을 답습하다가도 종국에 가서는 헛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변두리 장르의 힘을 빌려 이 거대한 아수라장의 가면을 벗기고자 하는 주원규의 치밀한 의도이다. 처절한 욕망이 빚어내는 한바탕 풍자극! 용도도 알 수 없는 공산품을 생산하는 ‘폐신 집합소’는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하고 먹고 자는 것이 반복되는 138층 건물로 이루어진 사회다. 그곳에 사는 ‘모태 노동자’ 소년은 매달 생산율이 낮다는 이유로 멍키 스패너로 구타당한다. 어느 날 소년은 ‘하’레벨에서 벗어나고자 동료 칼잡이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칼잡이는 소년을 처벌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대신 자신이 흠모하는 소녀에게 대신 마음을 전해달하는 요구를 한다. 소녀는 ‘폐신 집합소’에서 유일하게 꿈을 꾸는 존재로 소녀의 꿈을 통해 혁명을 이루려는 비밀결사모임의 일원이다. 비밀결사모임에 참석한 소년은 칼잡이의 마음을 전해주지도 못한 채 소녀와 관계를 가지고 만다. 이후 소녀는 더 이상 꿈꾸기를 거부하고, 꿈의 부재와 함께 폐신 집합소의 지도자인 ‘독재자’ 일당의 견제를 받아 더 이상 비밀결사모임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한편 소녀가 자신의 구애를 거절하고 소년과 관계를 가진 사실과 소년의 아이를 잉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칼잡이는 아이를 낳고 있는 소녀를 살해하고 만다. 칼잡이는 소년에게 소녀를 살인했다는 누명을 씌우고, 소년은 폐신 집합소 창립기념일에 독재자 일당에게 붙잡힌다. 꿈을 통한 폐신 집합소의 항구적 체제 존속을 연구하던 노학자는 소년에게 썀쌍둥이로 태어난 생명체를 반으로 나누게 한다. 소년은 아이를 분리하는 조건으로 생명체 중 하나를 데리고 ‘지옥’이라 불리는 지하로 내려가게 해줄 것을 제안한다. 소년은 결국 생명체의 몸을 둘로 분리하고 반쪽 핏덩이를 가슴에 안고 폐신 집합소의 지하,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혁명이 일어나는 거야. 제대로 된 꿈을 꾸면 말이야.” 138층 건물에는 제대로 된 꿈을 꾸면 혁명이 일어날 거라는 전설이 떠돌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꿈을 꾸어본 적이 없고, 꿈의 실체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는다. 건물은 ‘폐신 집합소’에서 ‘15’로 ‘15’에서 ‘칼잡이’로 체제의 메커니즘에 따라 이름을 바꾸지만, 새로운 형태의 욕망 공급에만 열중하며 철저히 꿈의 본질을 왜곡한다. ‘무력소년’으로 대표되는 폐신 집합소의 군상들은 과도한 노동으로 꿈꿀 여력조차 없었던 폐신 집합소 때나 자신의 등급을 결정하는 ‘보증서’가 난무하는 ‘15’의 체제에서도 시스템에 순응하며 더 많은 욕망을 성취하는 것이 꿈을 이루는 거라 착각하고 살아간다. 결국 이들의 욕망은 막장으로 치달아 마치 투전판을 연상시키는 ‘등급 간 경쟁 촉발 대회’를 열어 자기가 가진 보증서는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 걸고 죽음의 격투를 벌인다. 누구나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는 주술에 취해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찍어내리는 아귀다툼 속에서 무수한 낙오자만 양산될 뿐, 어느 누구도 시스템을 움직이는 최종 승자는 될 수 없다. 이름표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체제를 유지하려 했지만 끝내 무너져내리는 138층 건물의 허망한 운명은 현대의 자화상이자 ‘지금, 이곳’을 바라보는 작가의 냉철한 일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