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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詩話)
저술 동기 제1화 이방(李昉)의 「영창릉만가사(永昌陵挽歌辭)」 제2화 인종(仁宗) 시기의 백낙천체(白樂天體) 제3화 두 서울의 실사를 묘사한 시 제4화 매요신(梅堯臣)의 시 「복어(河豚魚)」 제5화 서남쪽 오랑캐의 활집 무늬로 사용된 매요신(梅堯臣)의 「춘설(春雪)」 제6화 지체 높은 승려를 싫어한 정곡(鄭谷)의 시 제7화 정곡(鄭谷)의 시와 매요신(梅堯臣)의 시 제8화 “새 한 마리 지나가듯 몸이 가볍다(身輕一鳥過)” 제9화 구승(九僧) 시의 특징 제10화 맹교(孟郊)와 가도(賈島)의 궁상(窮狀)을 노래한 시 제11화 만당(晩唐) 시인 주박(周朴)의 시 제12화 묘사하기 어려운 경물과 다하지 않는 뜻이 있는 시 제13화 호방하고 초탈한 소순흠(蘇舜欽)의 시와 심원하고 담박한 매요신(梅堯臣)의 시 제14화 호단(胡旦)에게 무시당한 여몽정(呂蒙正) 제15화 간을 앓고 콩팥에 바람이 든 시와 고양이를 잃어버린 시 제16화 왕건(王建)의 「궁사일백수(宮詞一百首)」에 묘사된 이원영(李元?)의 「협접도(?蝶圖)」 제17화 ‘태수생(太?生)’과 ‘말궐병(末厥兵)’ 제18화 이치에 맞지 않으면 멋진 시구가 아니다 제19화 소순흠(蘇舜欽)·소순원(蘇舜元) 형제의 시 제20화 시인의 마음과 다른 독자의 마음 제21화 서곤파(西崑派) 시의 멋진 구절 제22화 낙양(洛陽)을 노래한 전유연(錢惟演)과 정문보(鄭文寶)의 시 제23화 사백초(謝伯初)의 시 제24화 석연년(石延年)의 신선적 삶과 시풍 제25화 왕건(王建)의 「예상사(霓裳詞)」 제26화 조사민(趙師民)의 시 제27화 관운(寬韻)은 통용하고 착운(窄韻)은 전용한 한유(韓愈) 시의 압운 제28화 송기(宋祁)의 시 「오색 과녁(采侯)」 속시화 저술 동기 제1화 조정의 실사를 묘사한 시 제2화 옛날 사람의 시구를 많이 차용한 혜숭(惠崇)의 시 제3화 매요신(梅堯臣)과 한종언(韓宗彦)의 죽음 제4화 정문보(鄭文寶)의 멋진 시구 제5화 과거 시험 때 지은 시 중의 보기 드문 명작 제6화 상관의 총애를 얻게 한 포당(鮑當)의 시 제7화 임포(林逋)의 시 「산속 동산의 작은 매화(山園小梅)」 제8화 위야(魏野)의 시와 인품 제9화 정위(丁謂) 시 중의 경구(警句) 제10화 재주와 생각이 깊고 원대한 구준(寇準)의 시 제11화 진요좌(陳堯佐)의 시 제12화 매일 시를 두세 편씩 지은 방적(龐籍) 제13화 처사 한퇴(韓退)의 생활과 시 제14화 석연년(石延年)이 지은 장헌태후(章獻太后) 만가 제15화 이하(李賀)의 시에 필적할 만한 석연년(石延年)의 대구(對句) 제16화 언어 바깥에 행간의 뜻을 담은 두보(杜甫)의 시 제17화 유개(劉?)의 위인과 은거 생활을 노래한 부필(富弼)의 시 제18화 관작루(?雀樓)를 읊은 왕지환(王之渙)과 창제(暢諸)의 시 제19화 약재 이름을 활용한 진아(陳亞)의 시 제20화 벼슬을 내려도 사양한 양박(楊朴)의 시 제21화 유균(劉筠)과 한기(韓琦)의 시 제22화 미묘하고 완곡한 한기(韓琦)의 시 제23화 환관(宦官) 왕신(王紳)의 궁사(宮詞) 제24화 『구승시집(九僧詩集)』의 편찬자 진충(陳充)과 소장자 민교여(閔交如) 제25화 고향에 갔다가 다시 경사로 돌아오면서 지은 범진(范鎭)의 시 제26화 유풍(劉諷)을 전송한 범진(范鎭)과 주공작(朱公綽)의 시 제27화 사람들의 칭송을 받은 경선지(耿僊芝)의 시 제28화 종신기(終身記)라 할 만한 『초학기(初學記)』 제29화 ‘종곤(宗袞)’의 생활신조 제30화 두보(杜甫)의 묘지는 뇌양(?陽)인가 공현(鞏縣)인가? 제31화 한악(韓渥)의 시에 나타난 ‘과마(過馬)’의 의미와 당나라 지방 군사 장관의 과마청(過馬廳)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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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요신(梅堯臣)의 시 「복어(河豚魚)」
매성유(梅聖?)가 한번은 범희문(范希文)이 마련한 자리에서 「복어(河豚魚)」라는 시를 지어 “봄철의 모래톱에 갈대 싹 나고, 봄을 맞은 강 언덕에 버들개지가 나네. 복어는 이때가 되면, 귀해져서 물고기나 새우는 치지도 않네”라고 했다. 복어는 언제나 늦은 봄에 나와 물 위에서 떼를 지어 헤엄치다가 버들개지를 먹고 살찐다. 남방 사람들은 대개 갈대 싹과 함께 국을 끓이고는 맛이 가장 좋다고 한다. 그러므로 시를 아는 사람들은 첫머리 두 구절만으로 이미 복어의 장점을 다 말했다고들 한다. 매성유는 평생 시 읊기에 고심했는데 한적하고 심원한 것과 예스럽고 담박한 것을 시정(詩情)으로 삼았기 때문에 시를 구상하는 것이 지극히 힘들었다. 이 시는 술자리에서 지어졌지만 필력이 웅건하고 넉넉하며,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지만 결국 절창이 되었다. 梅聖?嘗於范希文席上賦「河豚魚」詩云 : “春洲生荻芽, 春岸飛楊花. 河豚當是時, 貴不數魚鰕.” 河豚常出於春暮, ?遊水上, 食絮而肥. 南人多與荻芽爲羹, 云最美. 故知詩者謂?破題兩句, 已道盡河豚好處. 聖?平生苦於吟詠, 以閑遠古淡爲意, 故其構思極艱. 此詩作於??之間, 筆力雄贍, 頃刻而成, 遂爲絶唱.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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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라는 새로운 양식의 글쓰기는 구양수(歐陽修)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되어 『시화(詩話)』라는 이름으로 첫 작품이 탄생했고, 얼마 후 이에 감명을 받은 사마광(司馬光)에 의해 시화의 속편이라 할 수 있는 『속시화(續詩話)』가 탄생했으며, 이후 많은 문인들이 계속해서 이들을 본뜬 시가 비평서를 쓰기에 이르렀다. 이런 과정에서 ‘시화’는 서서히 중국 시가 비평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현재 전해지는 시화만 해도 수백 종에 이르며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시화 저작이 나오고 있다.
시화가 천여 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중국 시가 비평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이전의 시가 비평서와 차별화되는 고유한 특성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시화가 다른 시가 비평 양식에 비해 훨씬 자유롭게 시에 관한 담론을 전개한다는 점이다. 구양수가 『시화』의 서두에서 스스로 “이 이야기들을 모아 한담거리를 제공한다(集以資閑談也)”라고 밝힌 바와 같이, 시화는 마치 누군가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듯 시를 화제로 삼아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시화는 이야기의 편폭에 제약이 없고, 이야기의 배열과 구성이 매우 자유롭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나의 항목이 대개 100∼200자 정도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항목들이 단편적이고 독립적인 이야기인지라 인접한 항목들 간에 연관성이 없으며 항목의 배열에도 정해진 원칙이 없다. 또한 서술 대상 시기나 서술 대상 시인의 선택도 제한 없이 자유로워 당송(唐宋) 시대의 시뿐 아니라 선진(先秦)·양한(兩漢) 시대의 시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대시인들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 없는 시인들까지 다양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시화는 서술 체제나 서술 범위가 자유로웠을 뿐 아니라, 이야기한 내용도 아주 다양하고 광범위했다. 시의 본사와 시인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고, 시어와 시구(詩句)에 대한 해석과 고증을 하기도 했으며, 시와 시인에 대해 비평하기도 했다. 또한 시단의 풍조에 대해 묘사하거나 평가하기도 했고, 시관(詩觀)을 전개하기도 하는 등 시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전개했다. 이와 같이 시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폭넓게 다루고 있기에 창시자인 구양수가 여기에다 이러한 내용들을 포괄할 수 있는 ‘시화’라는 명칭을 붙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초기의 시화는 이전의 시가 비평서와 달리 비평 중심이 아니라 기사(記事) 중심이기 때문에 얼핏 보면 그냥 잡문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할 정도인데 이들 시화 속의 수많은 기사 중에는 시와 관련 있는 다양한 자료가 보존되어 있어서 일차적으로 시학 연구를 위한 자료를 제공하며, 나아가 사회·문화 연구를 위한 자료와 언어학 연구를 위한 자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시화에 기록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전해지지 못하고 유구한 역사 속에 묻혀 버렸을 사백초(謝伯初) 등 무명 시인들의 시구가 시화 안에 많이 보존되어 있다. 또한 시화의 기록을 통해 조정의 상황과 관리들의 생활상 등 당시의 사회상을 살펴볼 수도 있고, 축국(蹴?)·주령(酒令)과 같은 당시의 문화도 엿볼 수 있다. 나아가 시화는 운자(韻字)·평측(平仄)·성조(聲調)·구어·속어·은어·방언 등 언어학 방면의 연구에 활용할 수 있을 만한 자료도 상당히 많이 보존하고 있는데 그중에는 다른 문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내용들도 있어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이렇듯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자료를 보존하고 있다는 점만 보더라도 시화의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