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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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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가난해 옷이 없었다. 고목 하나가 서쪽 계단 아래에 버려져 있었는데, 매년 겨울이 되면 햇살이 처마 아래로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지나가면 몹시 기뻐하며 서로 불러 나무 위에 줄줄이 앉았다. 햇살을 쬐느라 차츰차츰 옮겨 가다가 동쪽 담 아래에 이르렀다. 해가 서쪽으로 저물면 서로 끌며 방에 들어갔는데, 마음이 늘 참담했다. 형이 무호로 간 뒤로 집안 형편은 더욱 기울어 한 달 새에 끼니를 거른 것이 여러 번이었다. 혹여 과자가 생기면 아우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둘러대며 기어코 내게 먹게 했다.
---「방포, 아우 방림의 묘지명(弟椒?墓誌銘)」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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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파는 명실상부 청대를 대표하는 문인 집단이다. 여기서 동성(桐城)은 중국 안휘성(安徽省) 남부에 있는 한 지역의 명칭이며, 동성파라는 호칭 역시 이 문파의 주축 인물들이 동성 출신인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 대표 인물들로는, 방포(方苞, 1668∼1749), 유대괴(劉大?, 1698∼1780), 요내(姚?, 1732∼1815)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이 세 사람은 모두 동성 출신이다. 관련 연구자들은 대개 방포를 동성파의 출발로, 유대괴는 그것을 성장시킨 인물로, 그리고 요내는 하나의 문파로 확립한 인물로 주로 거론한다. 이 중 특히 요내는 여러 글을 통해서 자신과 방포, 유대괴의 지역적, 학술적 인연을 지속적으로 피력했다. 이는 사실상 그들 간에 존재하는 학술적 연대 의식의 확인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들이 동성이라는 지역을 넘어서서 하나의 학술적 집단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중요한 계보가 구축되었고, 동시에 그러한 사실을 대외적으로 천명하고 선전하는 효과까지 거두었다. 여기에 더해 그들 모두에게 관통하는 문학 이론상의 공통점은 그 계보의 실질적인 내용을 채워 주고 있었다. 곧 학파의 시조인 방포가 주장했던 일련의 문장 이론들, 즉 문장은 아결(雅潔)하게 써야 한다든가 또는 의법(義法)을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 등은 이후 지속적으로 동성파 문인들에게 수용, 계승되어 나갔다. 그렇기에 지역적 유대를 넘어선, 소위 ‘문통(文統)’, 다시 말해서 문장가의 계보를 구축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공통의 이론적 배경을 갖춘, 전통 있는 문학 집단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방포로부터 요내, 그리고 요내의 문하까지를 망라하고 있다. 만약 독자 여러분이 동성파나 청대 문단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갖추고 있다면, 요내 이후의 증국번(曾國藩, 1811∼1872), 오여륜(吳汝綸, 1840∼1903), 설복성(薛福成, 1838∼1894) 등을 떠올리며 허전한 마음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해명하자면 동성파는 청대를 관통하며 오랜 시간을 지속했던 문파이고 그 영향력도 대단히 컸기에, 전국적인 지명도를 누리며 각 지역마다 많은 문인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중 대표적 인물들만 해도 적지 않은 수다. 오히려 그 대표적인 인물들은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문장 선집을 따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나, 현재 내게 주어진 임무는 동성파를 바로 이 한 권의 작은 책자에 욱여넣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러 문인들의 작품을 한두 편씩 백화점처럼 벌여 놓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어서, 결국 차선책으로 증국번을 위시한 그 이후 동성파[이를 학계에서는 후기 동성파(後期桐城派)라고 명명하기도 하고, 상향파(湘鄕派)라고 부르기도 한다]에 대해서는 차후의 숙제로 남겨 두고, 우선은 동성파가 태동해 확립된 단계, 그래서 대개의 문학사에서 주요 작가로 꼽는 인물들을 망라함으로써 완성도를 갖추려고 했다는 점에서 다소의 위안을 삼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