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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살의
제2장 준비 제3장 주의 제4장 변심 에필로그 옮긴이의 말 |
Jiro Akagawa,あかがわ じろう,赤川 次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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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코도 결혼 초기에는 저렇게 그악스럽지 않았다. 당연히 젊었고 야무진 사람이긴 했지만 여자다운 부드러움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니시모토는 구두를 신고 왼손 새끼손가락에 묶어놓은 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 pp.15~16
히토미도 처음에는 손만 잡아도 볼을 붉히는 순진한 처녀였다. 결혼 전에는 키스도 안 된다며 고집스럽게 그의 유혹을 거절했을 정도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그 재미를 알고 나더니 180도로 변해서 거의 밤이면 밤마다 먼저 달려들기 시작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고지도 자못 유쾌하게 히토미의 요구에 신나게 응해주었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남자와 여자의 차이, 게다가 35세와 22세의 차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 p.23 “독신인 가가와나 신혼인 고지 군에게는 좀 생각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만약 자네들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끔찍한 마누라에게 시달림을 받고 있다면, 그리고 마누라를 죽이려고 결심했다면 과연 어떻게 죽일 것인가. 물론 절대로 자신이 범인이라는 게 밝혀지게 해서는 안 되겠지.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목을 졸라 죽인다는 식의 이야기는 신문기사로는 좋은 재료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세련된 옴니버스 소설에는 맞지 않아.” “그렇습니다!” 고지가 정말 그렇다는 듯 몸을 내민다. “세련된 살인. 그것이 지금 요구되는 이야기입니다.” (……) “하지만 말이지. 나는 취재나 실록 다큐멘터리라면 자신이 있지만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게 되면…….” “아니,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하고 니시모토는 말했다. “넷이서 따로따로 쓰는 게 아니라고. 최종적으로 소설 형태로 만드는 건 늘 하던 그대로의 수순이야. 자네는 취재하러 다니고 고지는 스토리를 구성하고. 나랑 가가와가 주축이 되어 문장으로 만드는 거지.” --- p.34 “노부코를 죽인다고…….” 중얼거리다가 니시모토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그 여자를 죽일 수 있을까. 생각해보지 않아도 안다. 죽임을 당하는 일은 있을지 모르지만 죽이는 일이라니, 도저히, 절대로. 도대체가 그렇게 간단히 죽을 그런 여자가 아닌 것을. 게다가 노부코는 분명 좋은 아내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예전에는 좋은 아내였던 적도 있었고 지금 저렇게 되어버렸다고 해서 노부코 한 사람을 책망하는 것도 불공평한 처사가 아닐까. 악처를 만드는 건 남편일지도 모른다. --- p.47 이제 그는 시인이 아니다. 가가와는 지금 자신이 그렇게 되려고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어떻게 그걸 막을 수 있을까? 이혼을 해? 이혼사유는…… 너무 착한 마누라이기 때문에? 바보 같기는! 그런 미묘한 뉘앙스를 료코가 이해할 리 없다. --- p.80 소설 쪽의 계획이 성공하여 아내가 자살하면…… 하지만 그렇게까지 비슷한 현실이 따라올지 여부는 아직 의문이고 만약 현실에서 그렇게 된다면 아무래도 뒷맛이 개운치 않을 것이다. “이런 소리를 해봐야 마누라는 없애지도 못할 거야.” --- p.219 “그래도 그렇지요. 부인이 아무리 뭐든 멋대로 결정한다고 해도 이런 일은 남편의 책임이기도 하잖아요? 서로의 허점을 이용하려 들다니 부부가 할 짓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니시모토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 저 아가씨가 한 말은 어디까지나 이상론이다.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부부의 이야기다. 본인도 결혼을 하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그녀의 말은 니시모토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 p.263 “뭐 좀 없어? 새로운 장편 테마. 가가와 어때?” “글쎄.” 가가와는 잠시 생각하다가 “시인이 되다 만 시인 이야기는 어떨까?” 하고 말했다. “작가가 되다 만 기자 이야기는 어떨까?” 하고 가게야마가 말했다. “부자가 되다 만 작가 이야기.” 하는 고지. 니시모토는 웃으며 “다들 뭔가를 사무치게 깨달은 것 같군.” “이런 건 어떨까?” 하고 고지가 말했다. “마누라를 죽이는 이야기를 쓰다 만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 --- p.3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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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부인을 죽이고 싶냐고? 결혼하면 알아. 그게 답이야”
기 센 마누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네 남자의 포복절도 마누라 죽이기! 제7회 가도카와 소설상 수상작! 일본 미스터리의 특필할 만한 작품이자 아카가와 지로의 최고 걸작! 데뷔 이후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 수는 450여 편에 이를 정도로 경이로운 수준의 다작으로 유명한 아카가와 지로. 그 가운데 많은 작품들이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은 덕분에 1983년부터 3년 연속 일본 문단의 고액납세자 1위를 차지했으며, 1984년에는 베스트셀러 1위에서 4위까지가 모두 그의 작품으로 채워지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또 그의 작품 중 무려 12편이 영화화되었고, 64편이 TV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악처에게 바치는 레퀴엠』은 1980년 작품으로 잡지 『야성시대』 3월호에 전재되었고 이듬해 단행본으로 출간된 작품이다. 1980년은 아카가와 지로가 단숨에 열여덟 권이나 되는 신작을 발표하여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던 해다. 이 작품은 그중에서도 기념할 만한 대표작으로 제7회 가도카와 소설상을 수상했다. 문화평론가 스기에 맛코이杉江松? 씨는 1980년 발표 당시만 해도 놀랄 정도로 참신한 플롯을 가진 작품이자 21세기로 접어든 지 여러 해가 지난 지금 다시 읽어봐도 마찬가지로 눈부시게 새로운 소설이라고 했다. 세월의 흐름을 초월해 보편적인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작품으로 아카가와 지로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걸작으로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만약 아카가와 지로를 잘 모르거나 혹은 알고는 있어도 그 많은 작품들 중에 무엇부터 읽을까 망설이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이 책 『악처에게 바치는 레퀴엠』부터 읽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아카가와 지로 본연의 작품을 찾는 독자라면, 그리고 좀 색다른 일본 미스터리를 접하고 싶은 독자라면 주저 없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전직 소설가, 기자, 시나리오 작가, 시인인 네 명의 찌질남이 풀어가는 초 절정 마누라 죽이기 ‘마누라가 죽었으면……’ 결혼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품었을 법한 불온한 생각이다. 물론 결혼 전과 다름없이 둘이 좋아 죽겠다는 부부 또한 있을 테지만 과연 이러한 부부가 얼마나 될까 싶은 게 아카가와 지로의 생각이고 그 생각이 이 작품을 구상하는 동기가 되었다. 남편이 아내를 죽이는 이야기 자체는 미스터리에서는 흔해빠진 테마일지 모르지만 이 작품이라면 다르다. 마누라 죽이기라는 테마로 네 명이 모여 쓴 옴니버스 이야기를 하나의 소설 속 허구로 구성해낸 액자소설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은 ‘니시코지 도시카즈’라는 필명으로 공동집필을 해나가는 네 명의 남자들이다. 전직 신문기자로 취재를 맡고 있는 가게야마, 시나리오 작가로 작품의 스토리를 구성하는 고지, 문학신인상을 받고 소설가로 등단한 니시모토,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완성하는 시인 가가와. 이들은 어느 날 ‘마누라 죽이기’라는 테마로 소설을 써보자고 제안한다. 네 명의 작가들에겐 우연하게도 각자 아내를 죽이고 싶은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었다. 니시모토는 돈만 밝히는 아내를 자살로 내몰기 위해 아내가 자식처럼 아끼는 조카를 이용해 대출을 받게 하는 소설 초안을 작성하고, 고지는 비오는 날 자동차로 역에 마중을 나오라고 해놓고 도중에 불량배들을 시켜 아내를 겁탈하게 하여 밤이고 낮이고 침대로 끌어들이는 버릇을 고친다는 내용의 소설을 쓰고, 가게야마는 여행을 떠난 아내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고 애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는 내용으로 소설을 작성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네 사람이 쓴 소설이 현실에서도 소설 초안과 비슷하게 맞아떨어지는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꿈과 현실은 뒤죽박죽이 되고 사태는 전혀 뜻밖의 방향으로 치닫고 만다. 허구와 현실이 뒤엉키면서 작가들은 의외의 운명에 내몰리는 신세가 되고 마는데……. ‘결혼 초기엔 그녀도 그렇게 그악스럽지 않았다’ 포복절도할 웃음 뒤에 감춰진 결혼에 관한 쓰디쓴 진실! 소설은 이처럼 메타 미스터리적인 범주 속에서 현실의 모방을 포기하고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뭔가를 구현하고자 한다. 소설 속 캐릭터들은 ‘마누라 죽이기’라는 이야기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자신을 모델로 한 작중 인물을 만들어내고 그 인생을 스스로 더듬어가려고 한다. 작품 중의 ‘허구’에서 일어난 사건이 ‘현실’의 인생에서도 일어나는 역전의 얄궂음은 그들이 현실을 허구화하는 소설가이기 때문에 그럴듯하게 먹히는 것이다. 이렇게 응집된 구조를 가지면서도 참으로 편하고 재미있게 읽히는 것이 이 소설의 미덕이자 훌륭한 점이기도 하다. 분명 이야기는 엔터테인먼트 자체다. 작가들 중 한 명이 사나운 아내에게 호되게 질책을 ?하고 주눅이 들어 있는 도입부부터 마누라 죽이기의 발상을 하는 데 이르기까지 물 흐르는 듯한 전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허구가 현실을 침범하기 시작하는 중반 이후는 예측불허의 치밀한 복선을 가지고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종반에 이르러서는 마치 마법과도 같이 솜사탕처럼 아쉬운 뒷맛을 남긴 채 스르르 막을 내린다. 한마디로 시종 일관 눈물 나게 공감하며 배꼽 빠지게 웃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을 움켜쥔 자신을 깨닫게 된다. 마냥 웃기기만 하느냐? 그렇지 않다. 읽고 난 후의 여운도 상당하다. 마냥 사랑스럽기만 한 와이프에 핑크빛 행복에 젖어 지낼 것만 같은 결혼 초기의 기대와는 달리 돈만 밝히는 마누라에 밤만 되면 침대로 끌어들이고, 현실과는 담을 쌓고 사는 꽉 막힌 마누라의 등살에 괴롭기만 한 남자들의 현실이 결혼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백 퍼센트 공감할 만한 에피소드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결혼의 끔찍한 현실을 유머러스하게 그리면서도 몸을 부대끼고 살면서 켜켜이 쌓이는 정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환기시킨다. ‘아무 불만도 없는 삶이란 살맛나지 않은 건지 모른다.’는 니시모토의 자조 섞인 말처럼 마누라가 죽이고 싶을 만큼 밉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한 이불 덮고 사는 게 우리네 인생이 아니고 무엇이겠냐고 이 책은 힘주어 말하는 듯하다. 각각의 개성이 뚜렷이 묻어난 네 개의 이야기, 살아 있는 캐릭터의 조형 교과서 작품을 거의 다 읽었을 즈음, 혹시 아카가와 지로라는 이 작가, 복수의 멤버로 이루어진 작가 군단을 대표하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슬쩍 고개를 쳐든다. 한 사람이 썼다고 보기엔 네 개의 이야기가 갖는 분위기가 너무도 다채롭기 때문이다. 니시코지 도시카즈를 구성하는 네 명의 작가는 소설가 니시모토, 시나리오 작가 고지, 전직 신문기자 가게야마, 시인 가가와, 이런 식으로 서로 다른 배경을 갖고 있다. 따라서 네 사람이 쓴 마누라 죽이기 이야기도 각각의 개성이 묻어난다. 소설가 니시모토의 것은 ‘전형적인 소설’이지만 고지는 ‘시나리오 각본식’으로, 가게야마는 ‘인터뷰 기사’처럼, 가가와의 작품에 이르러서는 요령부득의 ‘산문시’가 되고 만다.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가 탁월하다. 작가들이 아내에 대해 갖는 살의도 멋지게 나열되어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니시모토의 그것은 ‘전형적’이고 고지는 ‘즉흥적’, 가게야마는 ‘현실적’, 가가와는 ‘철학적’인 정도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 작품이 캐릭터의 조형 교과서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인물들에 입체적인 살을 입혀 캐릭터들의 개성을 효과적으로 구현한다. 캐릭터들의 탄탄한 조형만큼이나 책의 코믹한 설정이나 상황도 너무나 그럴듯해 읽다 보면 어느새 책 속의 캐릭터에 배우자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지리멸렬한 사랑싸움에 지치고 힘든 커플이 있다면, 결혼생활의 매너리즘에 빠져 인생을 한 번쯤 뒤돌아보고 싶은 이가 있다면 이 책은 분명 당신을 웃고 울게 만드는 속에서도 인생의 감춰진 진실을 넌지시 알려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