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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고통과 비애와 상실의 기록
이광수. 윤광호 최서해. 백금 박태원.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김유정. 형 이상. 봉별기 안회남. 고향 이태준. 손거부 강경애. 산남 김동인. 가신 어머님 한설야. 딸 채만식. 집 지하련. 산길 |
李光洙, 춘원春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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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는 자기 뒤를 따라오는 한 여성을 보았다. 그는 한번 흘깃 보기에도, 한 사나이의 애인 된 티가 있었다. 어느 틈엔가 이런 자도 연애를 하는 시대가 왔나. 새삼스러이 그 천한 얼굴이 쳐다보였으나, 그러나 서정 시인조차 황금광으로 나서는 때다.
의자에가 가장 자신 있게 앉아, 그는 주문 들으러 온 소녀에게, 나는 가루삐스(칼피스). 그리고 구보를 향하여, 자네두 그걸루 하지. 그러나 구보는 거의 황급하게 고개를 흔들고, 나는 홍차나 커피로 하지. 음료 칼피스를, 구보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외설한 색채를 갖는다. 또, 그 맛은 결코 그의 미각에 맞지 않았다. 구보는 차를 마시며, 문득, 끽다점에서 사람들이 취하는 음료를 가져, 그들의 성격, 교양, 취미를 어느 정도까지는 알 수 있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여 본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그네들의 그때그때의 기분조차 표현하고 잇을 게다. 구보는 맞은편에 앉은 사나이의, 그 교양 없는 이야기에 건성 맞장구를 치며, 언제든 그러한 것을 연구하여 보리라 생각한다. --- p.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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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전적 소설이 나오게 된 배경
방민호 교수가 ‘한국의 자전적 소설’을 정리하여 책으로 묶어낼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1997년의 일본 여행길에 일본의 비평가 나카무라 미쓰오[中村光夫]의「풍속소설론 ― 근대 리얼리즘 비판」을 읽은 뒤부터였다. 그 글은 사소설(私小說)이라는 지극히 일본적인 소설 양식에 의거한 일본 문학사를 서술하고자 하는 의욕적인 비평이었다.
나카무라에 따르면 1906, 7년경에 뚜렷하게 형성된 일본의 ‘고유한’ 현대소설 장르로서 사소설은 작가가 자기 경험을 ‘그대로’ 쓴다는 점에서 작가가 허구를 통해 자기의 사상을 표현한다는 의미의 서구 소설과 구별되는 것이었다. 사소설은 ‘그대로’ 쓴다는 이념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리얼리즘의 일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작가의 사상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것. 세계와 현실에 관한 객관적 진실, 즉 사실을 파지한 사상을 추구하는 대신에 자기 이야기를 ‘그대로’ 쓴다는 경험적 진실의 환상에 매달리는 것이 바로 일본의 사소설이라는 것이었다. 나카무라는 이러한 일본풍 리얼리즘(=사소설)이 일본 문단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게 된 과정을 추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것에 도전한 신감각파와 프롤레타리아 문학조차 기실 사소설의 방법론에 기대고 있었으며 따라서 일본 근대소설의 특징과 약점은 전혀 극복되지 못한 채 후대로 이어져 간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서양과 일본의 소설이 다른 점은, 서양에서는 작가가 사회나 시대를 총체적으로 묘사하면서 그러한 개인의 존재를 드러내는 데 비해 일본에서는 작가가 자기 자신을 직접 문제적 개인으로 묘사한다는 점이다. 일본의 소설에서 사회나 시대는 충분히 객관화되지 못한 채 작가 자신의 주관에 투영된 객관으로 한정되어 나타난다. 작가 자신이 작품의 유일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카무라가 말한 일본 사소설의 근본적인 한계다. 한국의 현대소설에서는 이러한 사회와 개인의 문제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근대화 과정 자체는 곧 식민지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즉 형성기 한국의 현대소설은 식민화 과정, 식민지 상태에 놓인 사회의 소설이었다. 이 시대에 한국의 작가는 그들 자신 ‘선택받은’ 사람이었고 남다른 개인이었지만 그들 앞에 놓인 절박한 문제는 조국의 식민지화 또는 식민화된 조국이었다. 그들은 그들 자신 특별한 개인으로서 그들 자신의 문제를 놓고 고민해야 했으나 동시에, 또는 그보다 앞서, 그들 앞에 놓인 조국의 현실 및 상황을 문제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양상을 가장 문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당대의 자전적 소설이다. 이 시대 한국의 자전적 소설은 현실 앞에서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신음하고 나아가 자기를 가장하거나 은폐하기까지 하는 특이한 양상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이유로 삼아 울지 못한다. 방민호 교수는 이 책의 해설에서 “자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표현한다고 하는 순진한 에고이스트가 한국의 작가 가운데는 없다”고 단언한다. 이것이 “한국의 자전적 소설이 일본의 사소설 전통과 확연히 다른 점”이며, 바로 이 같은 점에 착안해 ‘한국의 자전적 소설’을 정리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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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구성과 특징
첫째, 여기 실린 작품들을 보면 일제하 당대 최고의 수준급 작가들은 한결같이 자전적 소설 창작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둘째, 한국의 자전적 소설은 작가 자신의 표현 내지 해명에 머무르지 않고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낼 수 있는 당대 사회의 성격이나 양상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여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 한 예로 이기영의 「오매 둔 아버지」(1926)와 이태준의 「패강랭」(1938)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이광수, 염상섭, 현진건, 한설야, 채만식, 강경애, 유진오 등은 물론이고 현실이나 시대와의 긴장을 추구한 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듯한 이상의 소설에서도 쉽게 간취된다. 조선의 작가들은 많은 경우 자기 이야기를 그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는 것으로 취급하지 않고 시대 현실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 결과『꽃을 잃고 나는 쓴다』에 수록된 작품들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일제시대 한국의 작가들의 자전적 소설은 일종의 사상의 자태를 보여주게 된다. 강경애의 「원고료 이백 원」(1935)에 나타난 프롤레타리아 이념,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1921)에 나타난 현실에의 절망과 환멸, 이광수의 「육장기」(1939)에 나타나는 법화경적 인식 세계, 이상의 「실화」(1939)를 통해서 재삼 확인하게 되는 식민지 지식인의 비애, 한설야의 「태양」(1936)과 김남천의 「등불」(1942)이 보여주는 비전향과 전향의 내적 의미, 유진오의 「창랑정기」(1938)에 각인된 시대 변천, 채만식의 「민족의 죄인」(1948-9)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친일의 문제 등 일제시대 작가들의 자전적 소설은 한갓 개인의 삶의 기록으로 취급할 수 없는 심각한 의미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을 적절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은 주로『꽃을 잃고 나는 쓴다』에 나타나 있다. 셋째, 일제시대 한국의 자전적 소설은 그 양적인 풍부함에 비례하여 이야기의 자전적 수준 또는 자전화 방식 면에서 실로 다양하고 풍부한 양상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작품들은 주로『구보 씨의 얼굴』에 실린 작품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구보 씨의 얼굴』에 실린 작품들은 그 자체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거나, 작중 주인공과 작가 사이에 가로놓인 유사성을 상당한 수준에서 발견하고 입증할 수 있는 좁은 범주의 자전적 소설의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강경애의 소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단편소설의 하나이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인 「산남」이 그 대표격이다. 『구보 씨의 얼굴』은 이처럼 다양하면서도 자전적 성격이 농후한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다. 소설의 자전적 성격이 점점 강화되어 나중에는 수필과 소설이 만나는 양상을 보여주는 최서해, 실험적 기법으로 자기 이야기를 펼쳐간 박태원, 각기 형과 애인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쓴 김유정과 이상, 신변소설 장르에 집착했던 안회남, 남편 임화와의 관계를 드러내는 문학성 높은 작품들을 발표한 지하련 등등. 1권 11편, 2권 12편이 실린 이 소설들을 통해서 독자들은 일제시대 한국의 작가들이 봉착했던 다양하고도 곡절한 삶의 문제들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