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일본어 시가 수필 좌담 서긴 외
가격
26,000
10 23,400
YES포인트?
1,30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변경
배송비?
무료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국내배송만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춘원 이광수 전집

책소개

목차

발간사

1부 시가

이따금 부른 노래
지원병 송가(頌歌)
일기에서
조선신궁 대전(大前)에서
새해 첫날
동지(冬至)에 내린 비
소리
아침
나의 샘
선전(宣戰)
싱가포르 함락
전망
대군(大君)께서 하시는 일에
무학(舞鶴)의 소녀들
강서(江西)에서
징병제에 부쳐
놋그릇 헌납

2부 수필·기행문·잡감(雜感)

여행 잡감(雜感)
오도(五道) 답파 여행
잠시 영흥(永興)까지
차중 잡감(雜感)
경부선 열차 안에서
산요센(山陽線) 열차 안에서
무부쓰(無佛) 옹의 추억
세모(歲暮) 잡감(雜感)
흥천사(興天寺)에서
경성의 봄
조선의 초여름
나의 교우록
행자(行者)
도쿄의 추억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 선생과 만난 이야기
삼경(三京) 인상기
새로운 미(美)
감상을 대신하여
기쿠치 간(菊池寬) 의장께
올바른 생활 태도
산골 여행
몇 가지 낭비

3부 좌담·대담

애쓰는 흥아(興亞)의 중견 전사 청년에게 주는 채찍
내선인(內鮮人) 문제 대담
문인의 입장에서
조선의 ‘신체제’와 ‘지도자와 민중’ 문제를 말하다
‘군인의 길’을 묻는 좌담회
일본의 인상을 말하는 좌담회
대동아 문학자 대표 교환(交驩) 좌담회
도쿄 대담

4부 앙케트·기사

1916년(大正 5) 무렵 당시 청년 남녀 간에
개선(凱旋) 때는 제가 조선을 안내하겠습니다
반도 문단의 대가 이광수 씨, 씨(氏)를 가져
완전한 일본 국민으로
고마운 시대의 은혜
반도의 지식층에게 물음
타오르는 대공(大空)
비상시를 자각
일미(日米) 개전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은
대회를 마치고 교토(京都)에 입성
전과(戰果)에 응하여 이렇게 맹서함
‘총독상’ 제정의 기쁨을 말함
현대 청년에게 추천할 만한 책
결전의 해와 반도 사상계에 바라는 것
의무교육제 실시와 조선의 교육 문제
나부끼는 일장기 아래 수립하라, 도의문화(道義文化)
학병을 보내는 말
정치 처우안(處遇案) 상정의 기쁨

5부 소호(蘇峰)에게 보낸 서간

조선의 가을은
작별 인사 때
고궁의 가을날
경성도 봄다워져서
『소옹언지록(蘇翁言志錄)』 감사히 받아 보고
오늘 세이카이루(淸快樓)에서
일본과 조선은 본시 같은 뿌리의 민족
지금 『오사카마이니치신문[大每]』 지면에
어제부터 봄비가
북대륙과 남양은
가야마 미쓰로, 11월 17일에
지금 라디오를 통해
더욱더 건승하시기를
소생(小生) 11월 12일 도쿄에 와서

해설: 일본어 시가 외 문장에 대하여 _ 하타노 세쓰코

저자 소개 3

李光洙, 춘원春園

호는 춘원(春園). 한국 현대소설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가장 중요한 작가다. 조선왕조의 국운이 기울어가던 구한말에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여, 일찍 부모를 여의고도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유학을 통하여 근대사상과 문학에 눈뜨고 이를 한국적 사상 및 문학 전통에 접맥시켜 새로운 문학의 시대를 열어나갔으며, 한국전쟁 와중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붓을 놓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놀라운 창작적 삶을 이어간 작가였다. 14세 때 일진회 유학생으로 도일하여, 메이지 중학부에서 공부하면서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하고 [소년]지를 발행하는 한편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호는 춘원(春園). 한국 현대소설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가장 중요한 작가다. 조선왕조의 국운이 기울어가던 구한말에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여, 일찍 부모를 여의고도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유학을 통하여 근대사상과 문학에 눈뜨고 이를 한국적 사상 및 문학 전통에 접맥시켜 새로운 문학의 시대를 열어나갔으며, 한국전쟁 와중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붓을 놓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놀라운 창작적 삶을 이어간 작가였다. 14세 때 일진회 유학생으로 도일하여, 메이지 중학부에서 공부하면서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하고 [소년]지를 발행하는 한편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입학, 1917년 1월 1일부터 한국 신문학 사상 최초의 장편인 『무정』을 연재했다.

1919년 도쿄 유학생의 2 ·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상하이로 망명,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독립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다.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을 지내고, 1933년조선일보 부사장을 거치는 등 언론계에서 활약했고,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보석된 뒤부터 본격적인 친일 행위를 했다.1939년에는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이 되었으며 가야마 미쓰로라고 창씨개명을 하였다. 8 ·15광복 후 반민법으로 구속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했으나 6 ·25전쟁 때 납북되었다.

34년 동안 작가로 활동하면서 『개척자』, 『선도자』, 『재생』, 『마의태자』,『단종애사』, 『군상』, 『흙』,『유정』, 『이순신』, 『그 여자의 일생』, 『이차돈의 사』, 『그의 자서전』, 『사랑』, 『원효대사』 등 60여 편의 소설과 시가, 수필, 논문, 평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몽주의 문학을 통하여 브나로드 운동 등 사회개혁 활동을 북돋우기도 하였다. 일제 시대 그의 친일 행각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었다가 자강도에서 병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문학은 50년이라는 지속성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소설 외에도 시가·평론·수필 등 전영역에 걸친 방대한 규모를 드러냈다. 그러나 주류는 역시 소설이며 더불어 문학사적 가치를 1차적으로 결정해주는 것은 1910년대 계몽주의 소설들이다. 이 시기의 장편 『무정』(1917)은 우선 시제의 정확한 구별과 새롭고 의욕적인 문체 등으로 형식 면에서 근대소설로서의 획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특히 이전의 신소설과 달리 당대인들의 삶과 성격을 실감나게 그렸고, 사회현실에 대응하는 젊은 지식인의 내면세계를 잘 그려냈다는 점에서 근대성을 획득하고 있다. 또한 시대적 이념이라 할 수 있는 부르주아 계몽주의 입장에서 자유결혼 및 근대적 자아각성의 문제 제기를 통해 전통적 인습·윤리를 반대하고, 신교육·신문명을 통한 자강주의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나타난 추상적 계몽주의, 식민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인식의 결여는 『무정』을 진정한 의미의 근대소설로의 평가를 유보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무정』과 같은 계몽소설의 연장에 놓이는 『흙』은 농촌계몽소설로서, 브나로드 운동 등의 민족적 교화운동의 일환에서 나온 작품이다. 이광수의 농촌현실에 대한 관심은 이보다 앞선 1916년 『매일신보』에 발표한 『농촌계발』이라는 논문에서 발견되는데, 그는 이 글에서 우리 농촌의 결점 중의 하나로 '교육이 없음'을 지적하며 선각자적 지식인이 농촌계발에 앞장서야 함을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정신에서 나온 『흙』은 농민과의 정신적 연대성이 고조되던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며 주인공 '허숭'은 자신의 신분(변호사)을 버리고 농촌으로 돌아가는 이상적인 지식인으로 그려진다. 한편 이광수의 작품 중 상당수가 남녀의 애정을 다루고 있는데 『유정』(1933)·『그 여자의 일생』(1934~35)·『사랑』(1938) 등에 나타난 남녀간의 애정은 통속적인 애정소설과는 달리 정신적인 이상주의를 지향하는 특유한 성격을 지닌다.

이광수는 『단종애사』(1928~29)를 포함한 다수의 역사소설을 발표해 역사소설가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발휘했다. 그가 역사소설을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시기는 1920년대 후반이며, 일제에 대한 직접적인 대항이 어려워지자 현실적인 소재보다 역사소설의 비유적 기능을 빌려 현실을 비판하고 이에 항의하려는 역사소설을 쓴 것으로 보인다. 대표작인 『이순신』(1931~32)·『이차돈의 사』(1935~36)·『공민왕』(1937) 등은 옛 것을 재현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역사를 대중화한 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복고주의에 흘러 당대 현실에 대응한 실현적 관심을 제기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이광수의 대표적 평론은 초기의 『문학의 가치』(1910)· 『문학이란 하(何)오』(1916)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한국 최초의 본격적 평론이라 할 수 있으나 명확한 문학관에 입각하여 하나의 문학적 주의를 이론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서구 문학의 여러 주의를 체계 없이 나열한 한계를 드러낸다. 초기의 잡다한 주의들은 그후 톨스토이 예술론의 영향 아래 공리주의 내지 계몽주의에 뿌리를 내렸고 이후의 문학론들은 대개가 '인생을 위한 예술' 및 '도덕과 예술의 일치'를 강조하는 것으로 모아졌다. 그래서 그의 논설은 항상 주목이 되었고 당시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다.

이광수의 다른 상품

편역최주한

관심작가 알림신청
 

Choi Juhan,崔珠瀚

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숙명여자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 국어국문학과에서 이광수 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상하이 시절 이광수의 글쓰기를 재조명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이광수 전집 간행에도 힘쓰고 있다. 2014년부터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동 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에 『제국 권력에의 야망과 반감 사이에서 - 소설을 통해 본 식민지 지식인 이광수의 초상』(2005), 『이광수와 식민지 문학의 윤리』(2014)가 있고, 역서에 『근대일본사상사』(공역, 2006), 『무정』을 읽는다』(2008), 『
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숙명여자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 국어국문학과에서 이광수 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상하이 시절 이광수의 글쓰기를 재조명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이광수 전집 간행에도 힘쓰고 있다. 2014년부터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동 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에 『제국 권력에의 야망과 반감 사이에서 - 소설을 통해 본 식민지 지식인 이광수의 초상』(2005), 『이광수와 식민지 문학의 윤리』(2014)가 있고, 역서에 『근대일본사상사』(공역, 2006), 『무정』을 읽는다』(2008), 『일본 유학생 작가 연구』(2012), 『이광수, 일본을 만나다』(2016), 『일본어라는 이향-이광수의 이언어 창작』(2019) 등이 있다. 편서에 공편 자료집 『이광수 초기 문장집』 I·II(2015)와 『이광수 후기 문장집』 I·II·III(2017·2018·2019), 이광수 전집 소재 『허생전』(2019), 『사랑』(2019) 등이 있다.

최주한의 다른 상품

편역하타노 세쓰코

관심작가 알림신청
 

波田野節子

니가타 현립대학 명예교수. 아오야마학원대학 문학부 일본문학과를 졸업하고 니가타대학 국제지역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어 번역 저서로 『『무정』을 읽는다』, 『일본 유학생 작가 연구』, 『이광수, 일본을 만나다』, 『일본어라는 이향 - 이광수의 이언어 창작』, 『이광수의 한글창작』이 있고, 일본어 역서로 『無情』, 『夜のゲ?ム』, 『金東仁作品集』, 『樂器たちの圖書館』, 『血の淚』 등이 있다. 공편 자료집 『이광수 초기 문장집』 I?II?III과 『이광수 후기 문장집』 I?II?III, 『이광수 친필 시첩 <내 노래>, <내 노래 上>』 등을 간행했다.

하타노 세쓰코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8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480쪽 | 148*210*30mm
ISBN13
9791168104440

출판사 리뷰

1부 시가 - 개인의 서정이 제국의 언어로 바뀌어 가는 과정

1939년부터 1944년까지 일본어로 발표한 단카와 자유시 16편을 수록했다. 「이따금 부른 노래」와 「새해 첫날」에는 인생에 대한 성찰과 불교적 사유가 드러나고, 「나의 샘」과 「강서(江西)에서」에는 자연과 일상을 바라보는 서정적 감각이 담겨 있다. 그러나 「지원병 송가(頌歌)」, 「선전(宣戰)」, 「싱가포르 함락」, 「징병제에 부쳐」, 「놋그릇 헌납」으로 갈수록 천황 숭배와 전쟁 찬양, 조선인의 병력과 물자 동원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전면화된다. 개인의 종교적 감정과 가족애, 자연의 이미지까지 전시 동원 논리에 흡수되는 양상을 보여 준다.

2부 수필·기행문·잡감 - 조선의 현실을 바라보던 시선에서 ‘일본 정신’의 수행으로

1910년대에 쓴 초기 기행문에서 1940년대의 수필과 잡감까지 가장 폭넓은 시기의 글 22편을 담았다. 「여행 잡감(雜感)」에서는 귀국길에 마주한 조선의 피폐한 현실을 개탄하며 청년의 각성을 호소하고, 「오도(五道) 답파 여행」에서는 각 지방의 산업·교육·교통·풍속과 명승고적을 기록한다. 「나의 교우록」과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 선생과 만난 이야기」에는 일본 지식인들과의 인맥이 드러나며, 「행자(行者)」에서는 자신을 ‘일본 정신’을 수련하는 존재로 서술한다. 풍경과 역사, 인간관계, 생활론을 따라가면, 그의 일본어 글쓰기가 민족 계몽에서 황민화의 자기 고백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3부 좌담·대담 - 전시(戰時) 식민지 지식인들이 만들어 낸 공적 담론의 현장

1940년부터 1944년까지 여러 신문과 잡지에 실린 좌담과 대담 8편을 수록했다. 이광수는 조선과 일본의 정치인·문인·언론인·종교인들과 함께 청년 교육, 근로봉사, 종교적 훈련, 내선일체, 신체제, 군인의 길, 대동아문학 등을 논한다. 그는 조선인의 문제를 신앙과 규율의 부족으로 돌리고, 조선 문학이 황국신민 의식을 확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전쟁과 식민 통치에 문학이 기여할 길을 모색한다. 다듬어진 논설문이 아니라 질문과 반론, 동조가 오가는 대화 형식이어서, 당시 지식인 사회에서 전쟁 협력의 논리를 함께 구성하고 확대해 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4부 앙케트·기사 - 짧고 직접적인 발언으로 확인하는 전쟁 협력의 언어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신문과 잡지에 수록된 설문 답변, 인물 기사, 시사 논평 등 짧은 글 18편을 수록했다. 이광수는 「완전한 일본 국민으로」에서는 인터뷰 기사에서 조선인이 도달해야 할 목표를 ‘완전한 일본 국민’으로 제시하고, 「비상시를 자각」과 「일미(日米) 개전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은」에서는 전시체제와 태평양전쟁을 지지한다. 학병 출정을 독려한 「학병을 보내는 말」, 전쟁 말기 조선인의 국정 참여를 ‘봉공’의 확대라고 평가한 「정치 처우안(處遇案) 상정의 기쁨」 등에서 황민화, 전쟁 동원, 도의문화, 교육 문제에 관한 그의 공식 발언을 읽을 수 있다. 짧은 글들이지만 이광수의 후기 행적과 책임을 판단하는 데 특히 직접적인 자료들이다.

5부 소호에게 보낸 서간 - 인맥과 사상적 변화를 보여 주는 사적 기록

일본의 언론인이자 사상가인 도쿠토미 소호에게 일본어로 써서 보낸 편지 14편을 수록했다. 조선의 계절과 고궁 풍경, 책을 주고받은 일, 여행과 건강, 만남에 대한 감사 등 사적인 안부에서 두 사람의 교유가 오래되었음이 드러난다. 동우회사건으로 투옥된 뒤 한동안 끊겼던 서신은 1940년 창씨개명 사실을 알리는 편지와 함께 재개된다. 이후 이광수는 ‘가야마 미쓰로’라는 이름으로 일선동근론(日鮮同根論)과 전쟁, 조선 학생들의 학병 출정을 소호에게 보고한다. 개인적인 존경과 후원 관계가 이광수의 일본 인식 및 전향 이후의 행보와 어떻게 맞물렸는지 보여 주는 내밀한 기록이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23,400
1 23,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