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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1부 시가 이따금 부른 노래 지원병 송가(頌歌) 일기에서 조선신궁 대전(大前)에서 새해 첫날 동지(冬至)에 내린 비 소리 아침 나의 샘 선전(宣戰) 싱가포르 함락 전망 대군(大君)께서 하시는 일에 무학(舞鶴)의 소녀들 강서(江西)에서 징병제에 부쳐 놋그릇 헌납 2부 수필·기행문·잡감(雜感) 여행 잡감(雜感) 오도(五道) 답파 여행 잠시 영흥(永興)까지 차중 잡감(雜感) 경부선 열차 안에서 산요센(山陽線) 열차 안에서 무부쓰(無佛) 옹의 추억 세모(歲暮) 잡감(雜感) 흥천사(興天寺)에서 경성의 봄 조선의 초여름 나의 교우록 행자(行者) 도쿄의 추억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 선생과 만난 이야기 삼경(三京) 인상기 새로운 미(美) 감상을 대신하여 기쿠치 간(菊池寬) 의장께 올바른 생활 태도 산골 여행 몇 가지 낭비 3부 좌담·대담 애쓰는 흥아(興亞)의 중견 전사 청년에게 주는 채찍 내선인(內鮮人) 문제 대담 문인의 입장에서 조선의 ‘신체제’와 ‘지도자와 민중’ 문제를 말하다 ‘군인의 길’을 묻는 좌담회 일본의 인상을 말하는 좌담회 대동아 문학자 대표 교환(交驩) 좌담회 도쿄 대담 4부 앙케트·기사 1916년(大正 5) 무렵 당시 청년 남녀 간에 개선(凱旋) 때는 제가 조선을 안내하겠습니다 반도 문단의 대가 이광수 씨, 씨(氏)를 가져 완전한 일본 국민으로 고마운 시대의 은혜 반도의 지식층에게 물음 타오르는 대공(大空) 비상시를 자각 일미(日米) 개전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은 대회를 마치고 교토(京都)에 입성 전과(戰果)에 응하여 이렇게 맹서함 ‘총독상’ 제정의 기쁨을 말함 현대 청년에게 추천할 만한 책 결전의 해와 반도 사상계에 바라는 것 의무교육제 실시와 조선의 교육 문제 나부끼는 일장기 아래 수립하라, 도의문화(道義文化) 학병을 보내는 말 정치 처우안(處遇案) 상정의 기쁨 5부 소호(蘇峰)에게 보낸 서간 조선의 가을은 작별 인사 때 고궁의 가을날 경성도 봄다워져서 『소옹언지록(蘇翁言志錄)』 감사히 받아 보고 오늘 세이카이루(淸快樓)에서 일본과 조선은 본시 같은 뿌리의 민족 지금 『오사카마이니치신문[大每]』 지면에 어제부터 봄비가 북대륙과 남양은 가야마 미쓰로, 11월 17일에 지금 라디오를 통해 더욱더 건승하시기를 소생(小生) 11월 12일 도쿄에 와서 해설: 일본어 시가 외 문장에 대하여 _ 하타노 세쓰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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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시가 - 개인의 서정이 제국의 언어로 바뀌어 가는 과정
1939년부터 1944년까지 일본어로 발표한 단카와 자유시 16편을 수록했다. 「이따금 부른 노래」와 「새해 첫날」에는 인생에 대한 성찰과 불교적 사유가 드러나고, 「나의 샘」과 「강서(江西)에서」에는 자연과 일상을 바라보는 서정적 감각이 담겨 있다. 그러나 「지원병 송가(頌歌)」, 「선전(宣戰)」, 「싱가포르 함락」, 「징병제에 부쳐」, 「놋그릇 헌납」으로 갈수록 천황 숭배와 전쟁 찬양, 조선인의 병력과 물자 동원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전면화된다. 개인의 종교적 감정과 가족애, 자연의 이미지까지 전시 동원 논리에 흡수되는 양상을 보여 준다. 2부 수필·기행문·잡감 - 조선의 현실을 바라보던 시선에서 ‘일본 정신’의 수행으로 1910년대에 쓴 초기 기행문에서 1940년대의 수필과 잡감까지 가장 폭넓은 시기의 글 22편을 담았다. 「여행 잡감(雜感)」에서는 귀국길에 마주한 조선의 피폐한 현실을 개탄하며 청년의 각성을 호소하고, 「오도(五道) 답파 여행」에서는 각 지방의 산업·교육·교통·풍속과 명승고적을 기록한다. 「나의 교우록」과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 선생과 만난 이야기」에는 일본 지식인들과의 인맥이 드러나며, 「행자(行者)」에서는 자신을 ‘일본 정신’을 수련하는 존재로 서술한다. 풍경과 역사, 인간관계, 생활론을 따라가면, 그의 일본어 글쓰기가 민족 계몽에서 황민화의 자기 고백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3부 좌담·대담 - 전시(戰時) 식민지 지식인들이 만들어 낸 공적 담론의 현장 1940년부터 1944년까지 여러 신문과 잡지에 실린 좌담과 대담 8편을 수록했다. 이광수는 조선과 일본의 정치인·문인·언론인·종교인들과 함께 청년 교육, 근로봉사, 종교적 훈련, 내선일체, 신체제, 군인의 길, 대동아문학 등을 논한다. 그는 조선인의 문제를 신앙과 규율의 부족으로 돌리고, 조선 문학이 황국신민 의식을 확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전쟁과 식민 통치에 문학이 기여할 길을 모색한다. 다듬어진 논설문이 아니라 질문과 반론, 동조가 오가는 대화 형식이어서, 당시 지식인 사회에서 전쟁 협력의 논리를 함께 구성하고 확대해 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4부 앙케트·기사 - 짧고 직접적인 발언으로 확인하는 전쟁 협력의 언어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신문과 잡지에 수록된 설문 답변, 인물 기사, 시사 논평 등 짧은 글 18편을 수록했다. 이광수는 「완전한 일본 국민으로」에서는 인터뷰 기사에서 조선인이 도달해야 할 목표를 ‘완전한 일본 국민’으로 제시하고, 「비상시를 자각」과 「일미(日米) 개전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은」에서는 전시체제와 태평양전쟁을 지지한다. 학병 출정을 독려한 「학병을 보내는 말」, 전쟁 말기 조선인의 국정 참여를 ‘봉공’의 확대라고 평가한 「정치 처우안(處遇案) 상정의 기쁨」 등에서 황민화, 전쟁 동원, 도의문화, 교육 문제에 관한 그의 공식 발언을 읽을 수 있다. 짧은 글들이지만 이광수의 후기 행적과 책임을 판단하는 데 특히 직접적인 자료들이다. 5부 소호에게 보낸 서간 - 인맥과 사상적 변화를 보여 주는 사적 기록 일본의 언론인이자 사상가인 도쿠토미 소호에게 일본어로 써서 보낸 편지 14편을 수록했다. 조선의 계절과 고궁 풍경, 책을 주고받은 일, 여행과 건강, 만남에 대한 감사 등 사적인 안부에서 두 사람의 교유가 오래되었음이 드러난다. 동우회사건으로 투옥된 뒤 한동안 끊겼던 서신은 1940년 창씨개명 사실을 알리는 편지와 함께 재개된다. 이후 이광수는 ‘가야마 미쓰로’라는 이름으로 일선동근론(日鮮同根論)과 전쟁, 조선 학생들의 학병 출정을 소호에게 보고한다. 개인적인 존경과 후원 관계가 이광수의 일본 인식 및 전향 이후의 행보와 어떻게 맞물렸는지 보여 주는 내밀한 기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