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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 이광수 전집

책소개

목차

발간사

세조대왕

대원각사(大圓覺寺)
경찬회(慶讚會)
추천재(追薦齋)
매월당(梅月堂)
동순(東巡)
번뇌무진(煩惱無盡)
무상(無常)
생사(生死)의 경(境)

작품 해설: ‘나는 왕이로소이다’―시원의 계승과 탈세속화의 간극_김형규

저자 소개 2

李光洙, 춘원春園

호는 춘원(春園). 한국 현대소설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가장 중요한 작가다. 조선왕조의 국운이 기울어가던 구한말에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여, 일찍 부모를 여의고도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유학을 통하여 근대사상과 문학에 눈뜨고 이를 한국적 사상 및 문학 전통에 접맥시켜 새로운 문학의 시대를 열어나갔으며, 한국전쟁 와중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붓을 놓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놀라운 창작적 삶을 이어간 작가였다. 14세 때 일진회 유학생으로 도일하여, 메이지 중학부에서 공부하면서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하고 [소년]지를 발행하는 한편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호는 춘원(春園). 한국 현대소설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가장 중요한 작가다. 조선왕조의 국운이 기울어가던 구한말에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여, 일찍 부모를 여의고도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유학을 통하여 근대사상과 문학에 눈뜨고 이를 한국적 사상 및 문학 전통에 접맥시켜 새로운 문학의 시대를 열어나갔으며, 한국전쟁 와중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붓을 놓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놀라운 창작적 삶을 이어간 작가였다. 14세 때 일진회 유학생으로 도일하여, 메이지 중학부에서 공부하면서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하고 [소년]지를 발행하는 한편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입학, 1917년 1월 1일부터 한국 신문학 사상 최초의 장편인 『무정』을 연재했다.

1919년 도쿄 유학생의 2 ·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상하이로 망명,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독립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다.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을 지내고, 1933년조선일보 부사장을 거치는 등 언론계에서 활약했고,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보석된 뒤부터 본격적인 친일 행위를 했다.1939년에는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이 되었으며 가야마 미쓰로라고 창씨개명을 하였다. 8 ·15광복 후 반민법으로 구속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했으나 6 ·25전쟁 때 납북되었다.

34년 동안 작가로 활동하면서 『개척자』, 『선도자』, 『재생』, 『마의태자』,『단종애사』, 『군상』, 『흙』,『유정』, 『이순신』, 『그 여자의 일생』, 『이차돈의 사』, 『그의 자서전』, 『사랑』, 『원효대사』 등 60여 편의 소설과 시가, 수필, 논문, 평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몽주의 문학을 통하여 브나로드 운동 등 사회개혁 활동을 북돋우기도 하였다. 일제 시대 그의 친일 행각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었다가 자강도에서 병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문학은 50년이라는 지속성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소설 외에도 시가·평론·수필 등 전영역에 걸친 방대한 규모를 드러냈다. 그러나 주류는 역시 소설이며 더불어 문학사적 가치를 1차적으로 결정해주는 것은 1910년대 계몽주의 소설들이다. 이 시기의 장편 『무정』(1917)은 우선 시제의 정확한 구별과 새롭고 의욕적인 문체 등으로 형식 면에서 근대소설로서의 획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특히 이전의 신소설과 달리 당대인들의 삶과 성격을 실감나게 그렸고, 사회현실에 대응하는 젊은 지식인의 내면세계를 잘 그려냈다는 점에서 근대성을 획득하고 있다. 또한 시대적 이념이라 할 수 있는 부르주아 계몽주의 입장에서 자유결혼 및 근대적 자아각성의 문제 제기를 통해 전통적 인습·윤리를 반대하고, 신교육·신문명을 통한 자강주의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나타난 추상적 계몽주의, 식민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인식의 결여는 『무정』을 진정한 의미의 근대소설로의 평가를 유보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무정』과 같은 계몽소설의 연장에 놓이는 『흙』은 농촌계몽소설로서, 브나로드 운동 등의 민족적 교화운동의 일환에서 나온 작품이다. 이광수의 농촌현실에 대한 관심은 이보다 앞선 1916년 『매일신보』에 발표한 『농촌계발』이라는 논문에서 발견되는데, 그는 이 글에서 우리 농촌의 결점 중의 하나로 '교육이 없음'을 지적하며 선각자적 지식인이 농촌계발에 앞장서야 함을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정신에서 나온 『흙』은 농민과의 정신적 연대성이 고조되던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며 주인공 '허숭'은 자신의 신분(변호사)을 버리고 농촌으로 돌아가는 이상적인 지식인으로 그려진다. 한편 이광수의 작품 중 상당수가 남녀의 애정을 다루고 있는데 『유정』(1933)·『그 여자의 일생』(1934~35)·『사랑』(1938) 등에 나타난 남녀간의 애정은 통속적인 애정소설과는 달리 정신적인 이상주의를 지향하는 특유한 성격을 지닌다.

이광수는 『단종애사』(1928~29)를 포함한 다수의 역사소설을 발표해 역사소설가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발휘했다. 그가 역사소설을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시기는 1920년대 후반이며, 일제에 대한 직접적인 대항이 어려워지자 현실적인 소재보다 역사소설의 비유적 기능을 빌려 현실을 비판하고 이에 항의하려는 역사소설을 쓴 것으로 보인다. 대표작인 『이순신』(1931~32)·『이차돈의 사』(1935~36)·『공민왕』(1937) 등은 옛 것을 재현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역사를 대중화한 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복고주의에 흘러 당대 현실에 대응한 실현적 관심을 제기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이광수의 대표적 평론은 초기의 『문학의 가치』(1910)· 『문학이란 하(何)오』(1916)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한국 최초의 본격적 평론이라 할 수 있으나 명확한 문학관에 입각하여 하나의 문학적 주의를 이론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서구 문학의 여러 주의를 체계 없이 나열한 한계를 드러낸다. 초기의 잡다한 주의들은 그후 톨스토이 예술론의 영향 아래 공리주의 내지 계몽주의에 뿌리를 내렸고 이후의 문학론들은 대개가 '인생을 위한 예술' 및 '도덕과 예술의 일치'를 강조하는 것으로 모아졌다. 그래서 그의 논설은 항상 주목이 되었고 당시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다.

이광수의 다른 상품

감수김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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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다산학부대학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민족의 기억과 재외동포 소설』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 「식민주의 질서와 농토의 상동성 혹은 거리」, 「새로운 마을의 계보 만들기―개혁개방 이후 조선족 소설이 ‘만주’를 구성하는 방식」, 「교육과정 개선을 위한 의사소통 역량평가 개발」, 「‘재일(在日)’에 대한 성찰과 타자 지향」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1월 2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512g | 156*218*20mm
ISBN13
9791196964153

책 속으로

“그러하오면 상감께서는 계유정난과 대통을 받으신 것을 후회하시는 것이오니까?” 숙주는 이거 큰일이라 하는 생각으로 담대하게 물었다. 그것은 참말로 묻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 아니. 나는 후회는 아니 하오. 죄는 죄대로 죄 갚음은 내가 받을 작정 하고 이 나랏일은 내가 맡아야 되겠으니 맡은 것이오. 그것이 다 부질없는 생각일는지 모르지. 망자존대한 생각이겠지마는 황보인, 김종서 같은 늙은이들을 맡겨서 나라가 아니 망할 리가 없지 않소? 내가 대통을 이은 지 십일 년에 내우외환이 하루도 끊일 날이 없었지마는 이 난국을 나와 범옹이니까 이만큼 진정하여서 인제는 수령 방백이 겨우 내행을 데리고 갈 만큼 되었지마는 만일 그대로 그 늙은이들께 맡겨두었더면 아마 뒤죽박죽이겠지. 함평 양도는 벌써 오랑캐의 것이 되었을 것이고, 민심은 소란하였을 것이고. 그러니까 내 몸이 천만겁에 지옥고를 받을 작정 하고 이 일을 한 것이오. 범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하였소?”

--- p.68~69

출판사 리뷰

세조는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자신이 했던 일들을 스스로 죄라 고백한다. 그리고 불교를 통해 자신의 과업과 행적을 참회하며 구원을 구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역(弑逆)을 일으켰던 자신의 행위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세조의 말년 행적을 그리고 있는 소설 『세조대왕』 속 세조는 이렇게 참회하면서 동시에 합리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광수는 해방 후에 「나의 고백」을 통해 친일 행위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민족과 조선을 위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한 바 있다. 민족을 배반했지만 나라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역설은 자신의 과업을 참회하면서도 대의를 위한 행동으로 합리화하는 세조의 모습과 묘하게 닮아 있다. 이러한 태도는 조선의 근대화라는 목적의식 아래 일제의 식민 지배가 지닌 부정성을 약화시키는 논리로 쉽게 이어질 수 있으며, 민족을 개조해서라도 문명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이광수의 근대관과 결부되기도 한다. 결국 『세조대왕』은 일제 말기에 작가 이광수가 민족과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와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참회와 합리화는 대등하게 병립하는 태도라 보기는 어렵다. 참회가 과거의 행동이나 행적을 반성적으로 성찰하여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라면, 합리화는 그러한 행동이나 행적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회의 형식을 통해 결국엔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병립하기 힘든 참회와 합리화 두 가지 모두를 놓을 수 없어 고뇌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강조할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떤 모습으로 보든 세조의 모습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과 그러한 행위가 가능했던 사상과의 연관 속에서 그가 줄기차게 주장해온 ‘민족’이란 명분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 『세조대왕』을 일제의 내선일체 사상이나 황민화론에 동조하거나 부역하는 이광수의 작가적 행동의 결과물로 보거나, 아니면 『세조대왕』 속에서 친일과 민족 사이에서 고뇌하는 작가 이광수의 심연을 보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세조의 입장에서 보면 이 작품은 자기 구원을 시도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만민의 임금이 되기 위해서, 혹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라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지만 이러한 논리는 세조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만 기능한다. 이러한 구원이 가능한 것은 역사적인 사명감을 부여받은 존재로 현실의 권위는 인정받으면서 한편으로는 불교를 통해 현실 논리를 무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사명감은 태조라는 건국 대왕의 유업을 이은 시원의 주체임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방식은 역사적 사명의 대상인 나라와 백성, 즉 국가와 민족보다는 사명감의 주체인 왕을 우위에 두는 방식이다. 백성을 가르치고 다스리는 것이 임금의 일이요, 그 일을 하는 것은 왕의 권능이다. 나라와 백성은 절대 권력의 실현 대상으로 만들어지며 실체 없이 권력의 존재를 욕구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 『세조대왕』이 결국 사명감의 주체로 세조를 대왕의 자리에 올리고 그를 구원하는 데 초점이 놓인 이야기라고 정리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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