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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책
두번째 책 세번째 책 옮긴이 해설·투시적 과거와 예시적 미래 사이에서 작가 연보 기획의 말 |
Peter schnei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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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자본주의 사회를 사회주의 사회로 바꾸는지는 수천 권의 책 속에 서술돼 있잖아요. 하지만 그것이 반대로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에 관한 책은 단 한 권도 없어요.” --- p.17
“자네들은 물론 언제나 장벽이 무너지길 원했지. 이젠 그 결과와 살게 될 거야. 국수주의, 인종차별, 종족학살 등……” “그럼 장벽을 절대 허물지 말았어야 했단 말인가요? 그것을 그냥 그대로 둬야 했습니까?” --- p.54 사람들은 청산하기 위해 집단적 복수 형태를 만들어냈으며, 단수 형태를 두려워했다. 사람들은 아버지들을 가해자와 일치시키고 “나치 파시즘에 책임져야 하는 세대”에 관해선 말했지만, 자신의 아버지나 조부에 관해 말하는 일은 드물었다. 사람들은 대형범죄의 “사회적, 심리적 조건들”에는 마음을 두면서도 친척들이 저지른 사소한 비겁함, 강요받지 않은 밀고 행위와 야비함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바로 그런 행위들이 모여 함께 홀로코스트를 가능하게 했는데도 말이다. --- p.109 “경악이란 새것의 최초의 치유입니다. 성홍열이나 홍진 그리고 천연두 같은 어린애들 병은 유기체가 그에 대한 면역성을 갖기 위해 발발해야 합니다. 시민혁명이 구사회의 잔재에서, 종교전쟁과 노예제도와 식민지주의에서 해방되기까진 수백 년이 걸렸습니다. 사회주의가 성장할 때까진 마찬가지로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p.225 “오류의 원칙, 그리고 인간이 세운 계획엔 끝없이 교정이 필요하다는 원칙을 인정하는 시스템이 우월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진실을 말하거나 발표할 수 없는 사회는 그 옆에서 견디지 못합니다.” 작별하면서 그는 에두아르트에게 앞으로 하루를 시간 내어 인터뷰에 응해달라고 청하였다. --- p.227-228 “동독 화폐는 서독 화폐와 일대일로 교환되었죠. 그러자 갑자기 저축했던 돈이 가치를 갖게 된 겁니다. 그 돈은 아파트를 사기엔 모자랐고 맞춤형 주방을 구입하기엔 안성맞춤이었죠.. […] 고객은 맞춤형 주방을 갖고 싶다는 자신의 소망에 확신이 필요하지요. 여기서 판매인의 자유 종목이 시작되고 여기서 그의 재능이, 그의 기술이 요구되는 겁니다. […]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삶의 감정 말입니다. 이것을 못해내면 믹서 하나도 못 팔아먹습니다.” --- p.270-271 우린, 지난 몇 달 동안 그리고 몇 주 동안 그를 만나고 그와 말을 나누었던 우리는 그를 괴롭히고 그를 쇠약하게 만들고 결국엔 그를 죽인 그 병을 압니다. 이 병의 이름은 바로 독일연방공화국입니다. […] 우리는 우리 땅과 우리 공장과 우리 집을 우리에게서 뺏어간 그자들이 이젠 우리의 정신적 재산까지 빼앗아가고 그에 대해 유산 요청까지 하는 걸 허락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장례식을 준비하고 우리의 연설자 목록을 결정하고 자신들의 명예를 위해 국장을 준비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 조문객으로서 그들은 환영입니다. 허나 경청하고 침묵하는 사람으로서이지, 슬픔의 도둑으로서는 아닙니다. --- p.387 우리가 그의 무덤가에 새로운 경계의 벽을 쌓지 않는 것이 우리 모두가 이 위대한 독일인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전의 테오 바렌베르크는 그의 시구들로 오래전에 새 경계의 벽을 가볍게 뛰어넘었습니다. […] 그를 살해한 것이 사회주의의 독재였다고 전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그건 사회주의를 너무 많이 인정하는 셈이 될 테니까요. 그러나 그가 자신의 질풍노도 시기에 더 나은 국가로 여겼으며 자신의 재능과 지능을 빌려주었던 그 다른 독일은 당연히 그의 삶의 큰 환멸이었습니다. […] 아닙니다, 이 시인은 이런저런 당에, 동독이나 서독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가 속하는 곳은 문학입니다. --- p.3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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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슈나이더는 독일에서 보기 드문, 매우 비범한 작가이다. 그는 과거를 부인하지 않는 정치적 전향자요, 배신자가 되지 않고도 비판을 가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정치적 오류를 고백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보와 연보를 부인하지 않으며, 또는 전혀 없었던 일로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다. 그는 영원히 68세대로 남아 있을 것이나, 젊은 시절과 똑같은 입장을 고수한다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다. 오직 변하는 자만이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게 남아 있을 수 있다. ―『슈피겔』, 2010년 고희를 맞은 페터 슈나이더와의 대담에서.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양심이자 심급, 페터 슈나이더의 대표작 베를린의 오디세우스가 되어 떠나는 눈부신 여정! ―그리고 ‘귀향’이 안겨다준 눈물겨운 선물 독일 통일 20주년을 맞아, 독일 68세대를 대표하며 독일 현대문학의 중심에 서 있는 작가 페터 슈나이더Peter Schneider의 대표작 두 권이 대산세계문학총서 97, 98번째 권으로 소개된다. 슈나이더는 68세대의 대표자답게 매번 당대의 과제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형상화시킴으로써 “68운동의 양심이자 심급” 혹은 “개혁과 변혁의 68정신을 가장 탄력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라 불리고 있다. 이번에 소개되는 『에두아르트의 귀향Eduards Heimkehr』(대산세계문학총서 98)은 주인공 에두아르트 및 주변 인물들의 삶과 시선을 통해 나치와 분단이라는 독일의 역사적 과제를 통찰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독일 통일 후 베를린의 재건 과정을 철저히 각 개인들의 시선과 말로써 기록하였는데, 분단국가에서 통일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주인공 에두아르트가 깊은 고뇌와 번민을 겪고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은 분단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절실하게 다가온다. 한국이 통일된 후 평양으로 할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찾으러 간다면 한국의 에두아르트는 어떤 일을 겪고 어떤 것을 느끼게 될까? 더불어 이 작품이 독일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상을 지니는 것은, 단지 독일의 과거 청산에 대해 의미 있는 성찰을 보여주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모든 역사는 결국 개인의 역사”라는 작가의 첨예한 인식이 작품 자체로 훌륭히 구현되어 있으며, 인간 간의 이념과 사랑에 대한 본질적인 주제들을 깊고도 넓은 시각으로 녹여낸 대작(大作)의 위용이 빛난다. 베를린의 오디세우스―어느 독일인의 방황과 모험 그리고 진정한 내면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 어느 날 유전생물공학자 에두아르트는 얼굴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로부터 거대한 임대주택단지를 유산으로 물려받았다는 통보를 받는다. 유산 상속과 더불어 구동독 지역의 한 연구소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받은 에두아르트는, 수년 전 가족들과 도망치듯 떠났던 베를린으로 귀향한다. 그러나 유산으로 받은 동베를린의 임대주택엔 이미 수십 명의 구동독 사람들이 무단 점거해 살고 있었다. 독일이 통일이 되어 분단 이전의 주택 소유주였던 할아버지에게로, 또 그 손자인 자기에게로 소유권이 돌아왔지만, 그 집을 마음대로 팔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입주자들을 대신해 수도세 ? 전기세 ? 청소비 등등의 온갖 세금을 다 내줘야 하는 기가 막힌 상황에 처하게 된 것. 이것이 바로, 현실과 맞지 않는 과거의 제도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설계만이 무수히 착종돼 현재는 비어버린 도시, 베를린의 현주소였다. 에두아르트는 베를린의 오디세우스처럼 낯선 이방인이 되어, 이제 막 통일 독일의 수도로 새단장을 시작한 도시 베를린의 문제점들을 속속들이 체험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에두아르트가 조부로부터 상속받은 동베를린의 임대주택은 그를 독일의 나치 과거와 더 깊숙이 연루시키고 만다. 나치가 유대인에게서 몰수했던 사유재산(임대주택)을 공산국가 구동독이 한 번 더 국유화함으로써, 동독 지역의 소유의 역사는 이중의 강탈로 점철되어 있었던 것이다. 에두아르트는 상속받은 건물 소유권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치의 과거와 독일 분단이라는 독일 현대사의 가장 큰 두 사건과 정면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작가는 이 역사의 문제를 집단적 ? 정치적 차원이 아닌, 철저히 개인의 차원에서, 개인사를 통해 제기한다. 작가 슈나이더가 보기에 독일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 ‘우리’를 강조하는 ‘단체적 사고’인데, 그러나 문학은 ‘우리’를 주어로는 시작될 수가 없다. 오직 ‘나’의 관점 속에서만 시작될 수 있다. 하여 슈나이더의 문학 속에 정치적인 것은 언제나 사적인 일이고 또 그 반대이기도 하다. 사랑? 아니면 시대의 과제? ―슈나이더 작품 속에서 이 둘은 경쟁한다 슈나이더의 문학에서 ‘남녀간의 사랑’과 ‘시대 과제’는 경쟁하듯 서로 중요한 주제로서 다투어왔는데, 주인공 에두욾르트의 인생의 숙제 중 하나 역시 아내 제니에 대한 성적 콤플렉스를 해소하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 것이다. 나치 독일의 할아버지 세대가 저질렀던 범죄에 대한 손자 세대의 죄의식과 무의식적인 자기부정이 에두아르트 안에서 자라왔고, 그것이 반(半)유대인 출신의 아내를 대하는 데 있어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든다. 이는 마리나라는 새로운 여성과의 만남과 소통을 통해, 또 그녀와 함께 떠난 바이마르에서 ‘훌륭한 사상가와 예술가의 나라 독일’을 재발견함으로써 한층 극복된다. 사랑을 찾는 열쇠는 대상(제니)에 대한 새로운 이해보다는, 에두아르트가 자신 안에 두고 있는 몇 겹의 장벽을 스스로 깨부수는 데에 있었던 것. 사랑? 혹은 시대 과제? 이 둘은 슈나이더의 『에두아르트의 귀향』 속에서 둘이 아니라 연결된 하나와 같이 끊임없이 같이 변화한다. 빼어난 도시문학의 전범―투시와 예시의 도시, 베를린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이 작품의 중요한 특징이 작품의 ‘장소성’이다. 통일 이후 유럽 최대의 공사 현장으로 돌변한 도시 베를린의 초역사적인 변화가 귀향자의 낯선 시각을 통해 재조명된다. 통일 독일의 미래 설계와 분단 독일의 과거청산은 서로 맞물려 있다는 소설의 주제의식은 특히 통일국가 독일의 새 수도인 베를린의 재건에서 깊이 성찰된다. 현재의 도시 풍경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 비어 있고, 그 속에서 주인공은 기억에 혼돈을 일으키는 무수한 장면들과 부딪친다. 그때마다 부단한 역사적 사건의 무대였던 베를린의 과거와 현재의 광경이 대립되며 명료하게 드러난다. 1870년 이후 독일 제국의 수도로서, 나치 독일의 수도로서, 동독의 수도로서(동베를린), 독일 분단과 동서 냉전시기를 대표하는 장소로서 베를린은 독일의 그 어느 장소보다도 현대사의 체험을 내면화한 기억의 공간으로, 어두운 역사의 부담을 감당하며 과거를 기억하고 재성찰하는 장소로 자리하게 되었다. 게다가 새 수도로서 베를린은 통일국가 독일의 미래상을 구현하는 예시적 공간의 성격도 지니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베를린은 20세기와 21세기의 독일 현대사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계속 기록해가는 독일 역사의 축소판 혹은 시시각각으로 ‘공간화되는 독일 역사’라고도 부를 수 있는데, 이런 부활하는 도시 공간의 관찰자로서 에두아르트는 각각의 장소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변화와 변혁들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기록한다. 베를린의 도시 풍경을 통해 그 사회의 삶과 역사적 상황을 기호학적으로 읽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장벽을 뛰어넘는 사람』(대산문학총서 97)과 함께 도시문학의 대표적인 예로 손꼽히고 있다. 자기 안의 장벽을 뛰어넘어 진정한 귀향에 이르다 이렇듯 소설은 냉전의 종말과 독일 통일이라는 정치적 대사건을 통해 일견 외관상으로는 완결된 듯 보였던 ‘독일문제,’ 특히 독일의 과거 청산과 통일 독일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귀향’이라는 매우 상징적이고 암시적인 개념으로 포착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재통일 후 미국에서 독일 베를린으로 이주하는 에두아르트의 첫번째 ‘귀향’은 그래서 진정한 귀향을 위한 출발점이 되며, 베를린에서의 최종적인 ‘귀향’은 주인공이 다양한 내적, 외적 상황들과 직면하며 힘든 노정을 거쳐 자기 속의 장벽들을 뛰어넘는 후에야 비로소 이르게 된다. 이 소설은, 에두아르트라는 귀향자의 오디세우스적인 방황과 모험 그리고 진정한 내면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독일 통일의 문제는 한민족으로 재결합한 독일인들의 미래에 대한 물음이자 그것은 다시 분단과 그 분단의 원인인 나치 과거에 대한 성찰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또렷이 드러내어 독일인들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다. 식민지배를 겪었으며 아직 분단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들이, ‘지금-여기’에 서 있는 자리를 성찰하고 미래를 그려보는 데 절실한 영감과 문학적 감동을 주리라 확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