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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수립까지
(1904-1949) 생활이 어려워 도처를 떠돌았던 유년 시절 _11 베이핑 평민의무학교에 들어가 공부하다 _17 즈리여자사범학교에서 학업을 잇다 _21 15세의 강연대장 _29 각오사(覺悟社)의 사원 _35 소학교 교사로 지원하다 _43 다런여학교에 부임하다 _49 여권운동의 선봉이 되다 _55 여성사(女星社) 창립에 참여하다 _61 《부녀일보(婦女日報)》를 창간하다 _67 보습학교를 세우다 _73 국민회의 운동에 투신하다 _79 사회주의 청년단에 참여하다 _85 톈진 지역위원회 부녀부 부장을 맡다 _91 저우언라이와 결혼하다 _99 차오산(潮汕)에서 전투하다 _107 광둥 여성운동을 지도하다 _113 중국공산당 중앙 부녀위원회 서기를 맡다 _119 위험한 여정 _125 중국공산당 6차 대회에 열석하다 _129 중앙소비에트지구로 달려가다 _133 장정(長征)을 경험하다 _139 베이핑 시산에서 요양하다 _145 여성계를 단합해 공동 항전에 나서다 _151 전시(戰時)아동보육회 건립을 추진하다 _157 어린이 극단에 관심을 쏟다 _163 루산부녀담화회에 참석하다 _169 유일한 중국공산당 여성 참정원 _177 홍콩과 광저우로 원정을 가다 _183 남방국 여성 사업을 주관하다 _189 옌안 ‘여대’에 가다 _195 모스크바행 _199 훙옌촌에서 _205 옌안 정풍(整風)에 참여하다 _215 중국공산당 7차 전국대표대회에 참석하다 _221 옛 정협의 유일한 여성 대표 _227 ‘3·8’절 대회를 기획하다 _235 세계 여성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투쟁 _239 메이위안신촌에서 _249 전국토지사업회의에 참석하다 _259 시거우촌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하다 _265 해방구 여성공작회의에 참석하다 _271 중국여성 제1차 대표대회에 참석하다 _277 새로운 정협에 참여하다 _281 중화인민공화국 시절 (1949-1992) 여성운동의 새로운 물결을 이끌다 _289 바쁜 나날 속에 밀려오는 그리움 _297 ㆍ〈혼인법〉초안을 주관하다 _307 도시에서 여성운동을 추진하다 _313 중국부녀 제2차 전국대표대회에 참가하다 _321 국제무대에 데뷔하다 _327 각국의 진보 여성과 깊은 우정을 쌓다 _333 국제여성민주연맹 이사회에 참석하다 _339 저우언라이의 아내로 내조에 힘쓰다 _347 상공업계 여성들을 이끌며 조국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다 _359 중국공산당 제8기 전국대표대회에 참석하다 _365 외교관 부인의 일을 중시하다 _373 베트남 여성연합회 제3차 전국대표대회에 참석하다 _381 보옌을 조사하러 떠나다 _387 둥베이로 가다 _397 만성질환과 싸우다 _403 저우언라이와 어려운 세월을 함께 보내다 _411 남편의 마지막 부탁을 완수하다 _423 멀리서 온 정이 점점 깊어지다 _433 미얀마 방문 _441 스리랑카 방문 _449 이란 방문 _455 캄보디아 방문 _461 일본 방문 _469 북한 방문 _479 태국 방문 _485 프랑스, 유럽의회 방문 _491 전국부녀연합회 명예주석에 당선되다 _499 당풍(黨風) 건설을 촉진하다 _505 여성운동사 편찬 작업에 관심을 갖다 _513 양안 교류를 추진하다 _519 당 중앙의 정년제를 지지하다 _529 기밀유지 기율을 엄격히 준수하는 공산당원 _535 ‘친정’으로 돌아오다 _541 제6기 전국 정협 주석에 임명되다 _547 산둥 방문 _555 고향의 정 _561 특구를 시찰하다 _569 전 중국의 어린이에게 관심을 쏟다 _579 구술〈시화팅 해당화를 생각하며〉 _585 마지막 당부 _601 국민의 회상 _609 후기 _616 역자후기 _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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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영원한 총리 주은래와 등영초 부부는 결혼 할 때 서약한 8호(서로 사랑하기, 서로 존중하기, 서로 돕기, 서로 격려하기, 서로 의논하기, 서로 용서하기, 서로 신뢰하기, 서로 이해하기.)의 약속을 평생 동안 지키며 애정어린 부부로, 진정한 혁명동지로 함께 했으며, 지금도 중국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다.
덩잉차오는 중국공산화혁명 성공에 기여한 여성 혁명가다. 덩잉차오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1919년 5·4운동 당시 신극(新劇) [안중근 전]에서 덩잉차오는 안중근 역을, 저우언라이는 연출을 맡은 것이다. 덩잉차오는 15세, 저우언라이는 21세였다. 후에 이 인연으로 둘은 부부가 된다. 덩잉차오는 일곱 살에 아버지를 잃고 중국사회당이 설립한 소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어머니는 같은 학교의 교사였다. 어려서부터 받은 사회주의 교육은 중국의 전통적 여성관에 대한 비판의식을 키워주었다. 청소년기에 이미 정치사회조직에 가담한다. 거의 1천 년간 중국 여성에게 가해진 전족에 대한 저항의식은 그를 전족 폐지 운동으로 이끈다. 뒤이어 평생의 반려자 저우언라이와 함께 5·4운동, 국공합작, 항일전쟁, 국공내전, 문화대혁명, 개혁·개방에 이르기까지 중국 공산당이 주도했던 변혁의 중심에 서서 투쟁한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혁명과 사회주의 사업에 열정을 불태웠던 그는 질병이 찾아올 때에도 하루를 더 투쟁하기 위해 하루를 더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병마와 싸웠다. 이러한 열정은 인민을 위한 특히 억압받는 여성을 위한 사랑에 기초했다. 덩잉차오는 무엇보다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였다. 여성해방의 기치 아래 수많은 여성을 혁명의 대열에 동참시켰고 이는 큰 힘을 발휘해 혁명의 성공에 기여했다. 덩잉차오는 이를 발판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이 설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한편, 여성 스스로 자각심을 갖도록 부단히 애썼다. 전족은 폐지되었고 구 봉건사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성의 사회진출을 열어놓았다. 덩잉차오는 한중수교에도 영향을 끼쳤다. 덩샤오핑의 집권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중수교의 첫걸음이 가능했던 원인에 대해 냉전의 종식을 거론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마오쩌둥에 의해 수립된 인민의 나라는 역설적이게도 마오에 의한 문화대혁명으로 위기에 봉착한다. 문화대혁명은 마오의 사상과 숭배를 제외한 모든 지식과 문화를 철저히 거부하고 숙청했다. 이로 인해 국가를 이끌어 갈 수많은 지식인과 인재가 죽거나 고초를 겪고 유배를 갔다. 이 어두웠던 문화대혁명기에 마오 이후의 새 시대를 열어갈 덩샤오핑을 보호하고 개혁개방의 토대를 세운 인물이 바로 덩잉차오와 저우언라이다. 저우언라이는 덩샤오핑의 실각 때마다 그를 보호했고 덩잉차오는 저우언라이 사후에도 덩샤오핑의 재기를 도왔다. 억측일지 모르지만 덩잉차오와 저우언라이가 한중수교의 밑거름을 놓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사족을 붙이자면 덩잉차오는 한중수교의 물꼬를 연 바로 이 덩샤오핑과 성씨도 태어난 해도 같다. 마침내 덩샤오핑이 건재하던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가 이루어졌다. 덩잉차오는 한중수교를 눈앞에 둔 1992년 7월 11일, 눈을 감았다. 권력욕에 불타는 마오가 수많은 혁명동지를 숙청하는 상황에서도 저우언라이와 덩잉차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권력과 재물에 대한 욕심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청렴결백하게 나라와 인민을 위해 봉사한 이들을 인민은 물론 함께 일하는 당원뿐만 아니라 마오도 인정했던 것이다. 간난의 시기였던 문화혁명기에 살아남은 덩잉차오와 저우언라이로 말미암아 오늘과 같이 세계와 교류하는 새로운 중국이 부상할 수 있었다. 공산당과 덩잉차오 및 저우언라이에 대한 찬양일색 편집, 북한 김일성과 캄보디아 양민 학살 가해자 폴 포트 순방 내용 등이 거북스러울 수 있다. 이 책이 중국 공산당 관영출판사에서 나온 것임을 감안해야겠다. 이 책은 화전(畵傳)이다. 혁명가, 정치가, 여성해방운동가에서 저우언라이의 아내이자 동지로서의 모습까지 덩잉차오의 다양한 활동상과 가족, 동지의 모습이 담겨 있다. 덩잉차오의 친필 글씨, 신문과 잡지 기고문, 지인 및 저우언라이에게 보낸 서신, 덩잉차오 비서 자오웨이 등의 구술 자료, 덩잉차오 개인 사진 등 저우언라이·덩잉차오 기념관 자료를 바탕으로 덩잉차오 생애를 엮었다. 독자 여러분은 이 책을 통해 처음 공개되는 여러 사진과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마지막 순간까지 꼿꼿하고 굳건하게 조국을 위해 살다간 작은 거인, 덩잉차오를 새롭게 만날 것이다. 사드 배치로 친미, 친중 논란이 일던 요즘 문학과지성사 서남 동양학술 총서 간행사가 새삼 다시 떠오른다. “중국과의 유구한 관계 속에서 모화파(慕華派)는 넘쳐나도 중국을 아는 이는 적었고, 일본과의 특수한 관계 속에서 친일파가 양산되어도 일본을 아는 이 또한 적다. 친러파 또는 친소파, 지금도 들끓는 친미파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역의 진리도 성립한다. 항중파·항일파·반소파·반미파 역시 반대하는 대상에 대한 옳은 인식 위에 서 있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이 책이 중국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