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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都鍾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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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슥 칼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하얗게 살이 드러나는 칼날의 모습은 가뿐함과 신선함을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검은 때를 벗고 제 빛깔을 되찾으며 드러나는 그 예리함, 베어야 할 배추며 무며 고구마며 이런 것들의 살 속을 파고드는 부드러운 감촉, 팔놀림이 훨씬 수월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가뿟한 어깨, 할아버지는 그런 것을 가져다주셨다.
나는 낫이나 칼을 그렇게 산뜻한 물건으로 바꾸어주는 숫돌을 들어 옮기면서 작지만 묵직한 숫돌을 늘 대단한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쇠로 만든 칼을 예리하게 벼리어 주는 돌이니 어찌 예사로운 돌이라 하겠는가. 쇠보다 단단하고 쇠를 갈아서 다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제 용도에 맞게 쓰일 수 있게 만들어주니 어찌 대단하다고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거기까지만 생각했지 칼이나 낫을 예리하게 벼리어 주는 동안 숫돌도 조금씩 닳아 없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쇠를 그냥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는 요술을 부리는 게 아니라 제 몸도 닳아 없어지면서 칼날을 세워주는 것이었다. 무딘 연장을 날카롭게 바꾸어주는, 쇠보다 단단해 보이는 숫돌도 보이지 않게 제 몸이 깎여져 나가는 아픔을 견디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p. 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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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 옹달샘물처럼 맑고 차가운 글과의 만남
스테디셀러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새롭게 단장!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그러나 모두가 장미일 필요는 없다. 나는 나대로, 내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산국화이어도 좋고 나리꽃이어도 좋은 것이다. 아니, 달맞이꽃이면 또 어떤가!” 『접시꽃 당신』으로 널리 알려진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의 시인 도종환의 신작 산문집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가 좋은생각사에서 출간되었다. 최근 지병으로 교육현장을 떠나게 되어 주위를 안타깝게 한 도종환 시인은 그동안 속리산 기슭에서 작품활동에만 몰두해 왔다. 그가 감당해야 했던 현실의 짐이 너무도 무거웠던 탓일까. 지난해 3월,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일인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잠시 그만두고 속리산 골짜기에 있는 후배 소유의 황토집에 머물렀다. 지난 1년여 가까운 시간 동안 숲과 벌레와 짐승과, 고요와 평화, 그리고 그 자신과의 만남을 통해, 또 깊은 사색을 통해 길어 올린 맑고 차가운 글들을 이 책에 정리했다. 곰곰 생각해 보면, ‘자연’과 ‘어머니’는 서로 닮은 점이 많다. 자연이 자신의 품 안에 풀과 꽃과 나무를 기르고, 벌레와 짐승을 놀게 하며, ‘못된’ 인간까지도 사랑으로 품어 안듯 어머니 또한 무한한 사랑으로 자식을 감싸 안으신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할 곳이 자연이듯 자식이 안식을 찾을 수 있는 곳 또한 어머니 품안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책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에는 과거에 출간되었던 그의 다른 어떤 산문집보다도 자연의 섭리에 바짝 다가가는 인간의 소박한 삶이 잘 그려져 있다. 글이 가장 글답고 아름다울 때는 언제일까. 현란한 미사여구와 감칠맛나는 어휘로 몸을 치장하고 있을 때일까. 그보다는 억지로 꾸미는 일없이 글쓴이의 마음의 바탕을 가장 투명하게 드러낼 때가 아닐까.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마치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고치듯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고 성찰하며 실천으로 나아가게 할 때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담긴 도종환의 글들은 한 편 한 편이 정말 아름답다고 칭송하지 않을 수 없다. 잘 알려진 대로, 도종환 시인은 서슬 퍼렇던 군사독재 시절, 해직과 수감이라는 모진 수난과 고통까지 감내해내며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불의에 맞서 싸웠다. 그런 까닭에선지, 그의 글은 짙은 서정성과 감수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생동감을 잃지 않으며, 관념의 나락으로 빠져들어 현실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의 글이 그토록 강한 설득력을 갖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공허한 말이나 글이 아닌, 실천을 전제로 한 살아있는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용택 시인이 쓴 추천의 글에 이런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어느 해 가을 그는 고은, 도종환 시인과 함께 차를 타고 하재를 향해 가고 있었다. 술에 얼큰하게 취한 고은 시인은 또 시에 흠뻑 취해 쉴 새 없이 입으로 시를 토해냈고, 김용택은 그런 고은을 보고 ‘저래서 고은 선생은 시인이구나’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런데 그러던 고은 시인이 느닷없이 도종환 시인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도종환, 너는 문학에도, 정치에도 진실한 놈이다. 너만 그래!” 그렇다. 도종환은 삶에 대해서도 글에 대해서도 정직하고 투명한 시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