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측인(測人)에 나타난 혜강의 생각
기철학서설(氣哲學序說) 19세기 서울의 코스모폴리탄 유교와 앎 한국은 유교복덕방 |
KIM, YONG-OK,金容沃,도올
김용옥의 다른 상품
|
본서는 {독기학설}이 나온 후 도올이 여러 학술회의에서 혜강 최한기의 사상에 관하여 발표한 연구업적을 망라한 것이다. "기철학서설"은 우리나라 과학문화를 선도해온 잡지 {과학사상}이 혜강특집을 내었을 때 권두논문으로 발표한 글이다(1999년 가을). 파격적인 해석으로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 논문이 구해보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독자들의 갈증이 있었다. 그 갈증의 해소차원에서도 본서의 출간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19세기 조선사상사의 흐름이 당시 세계의 선진 어느 문명보다도 "과학"의 이해방식에 있어서 조금도 뒤져있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혜강의 기학이 오늘날의 과학적 우주관의 상식에 비추어 보아도 조금도 무리함이 없는 정확한 이론적 구성이었다는 것을 논증하고 있다. 그리고 자연과학(천지운화)적 사유를 인문과학(일신운화)과 사회과학(통민운화)의 영역에까지 적용시켜 대통합의 장(場)을 이룩하려 했던 혜강의 선구적 작업은 당시 일본이나 중국의 학문수준에 비추어 보아도 훨씬 선진적인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혜강은 서구라파에서도 보기 힘든 코스모폴리탄이었고, 과학예찬자였다. 그의 사고는 이미 동양과 서양을 대등하게 융합하고 있었다. "측인에 나타난 혜강의 생각"은 혜강 최한기의 정치철학을 압축한 {人政}(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정치라는 뜻)을 분석한 것이다. 이 논문은 2003년 11월 21일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에서 주최한 국제학술회의, "혜강 기학의 사상" 모임에서 발표되었다. 혜강은 58세(1860)에 {인정}을 지었다. 그 해는 수운 최제우가 무극대도를 받은 해였다. 이 {인정}은 [측인문測人門] [교인문敎人門] [선인문選人門] [용인문用人門]의 4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 논문은 제1문인 측인문의 분석이다. 이 4문은 사람을 어떻게 헤아리고, 가르치고, 뽑고, 쓰냐에 관한 것이다. "사람을 헤아린다"(測人)는 것은 인간을 어떠한 근거 위에서 평가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혜강은 인간평가의 근거가 과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만이 나라의 살길이라고 믿었다. 혜강은 인간의 평가가 과학적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양화(量化)된 수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점수를 매길 수 있는 인간평가표를 만들었다. 그 표를 {감평鑑枰}이라 불렀다. 이 {감평}은 오늘날의 인터뷰학으로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닐 만한 훌륭한 작품이다. 회사의 입사시험방식에도 응용될 수 있는 그런 측인의 과학적 기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세기 중엽에 이런 도표가 시도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다. 국가대계를 염려한 선인들의 애틋한 마음이 돋보인다. "유교와 앎"은 2003년 10월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서 주최한 국제학술회의, "동아시아 유교와 근대의 앎"의 기조강연으로서 발표된 논문이다. 원시유교에 있어서 앎(지식)의 문제를 플라톤의 "에피스테메"(episteme, 眞知)와 대비하여 심도있게 탐구하고 있다. 유교 인식론에 관한 새로운 시도라고 평가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