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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프롤로그: 발밑에 펼쳐져 있는 세상 지구는 갈색이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1장 흙이 걸어온 길: 역경을 극복한 식물들 토양이 존재하지 않았던 지구 대륙 이동과 양치식물 숲 나무와 버섯의 물질 순환 쥐라기의 흙 모래 위의 열대우림 얼음세계의 숲과 흙 기적의 섬나라, 일본 2장 흙이 키운 동물들: 미생물에서 공룡까지 양분을 긁어모으는 생물들 장내 세균의 활동 흙과 생물을 연결하는 숲의 엑기스와 용존유기물 긴축재정의 양분 순환 3장 인류와 흙의 1만 년 산성토양에 적응한 인간 물과 양분의 트레이드오프 고대문명의 흥망성쇠 열대림에 적응한 인간 논농사를 시작한 아시아 사람들 사라진 미꾸라지와 식문화의 변모 당신의 오줌 값은 얼마일까 인구 증가와 토양산성화를 가속시킨 하버-보슈법 4장 흙의 현재와 미래: 시장경제에 흔들리는 흙 에너지가 전달될 때까지 삼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불가사의한 경치 포테이토칩의 대가 시장경제에 흔들리는 흙 낫토 밥과 논토양 흙이 비추는 미래: 적응과 파멸의 경계선 나가는 말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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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흙을 이야기하는가
흙은 위기에 처해 있다.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온난화나 사막화, 열대우림의 감소를 생각해보라. 이뿐이랴,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주는 황사와 미세먼지 문제도 있다. 모든 것이 다 흙과 관련된 화제지만 그중에 좋은 것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오늘날에는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꽉 막힌 지면, 모래 없는 놀이터, 깨끗하게 씻긴 채 진열된 채소 탓에 흙과 생명의 연결 고리를 찾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흙은 중요하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흙에서 살 곳을 얻고 양분을 얻는다. 게다가 흙 속에 묻힌 기록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를 비춰주기도 한다. 《흙의 시간》은 좀처럼 흙을 마주칠 기회가 없는 우리에게 내미는 흙의 초대장이다. 이 책은 흙에 주목하도록 돕는다. 흙이 무엇인지, 흙과 생명에는 어떤 연결 고리가 있는지 알게 될수록 흙에 담긴 이야기에 놀라게 된다. 흙은 무엇인가 생물이 없는 곳에서는 흙이 생길 수 없다 흙이 지구의 특산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물론 달과 화성에서도 모래(레골리스)를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흙이 아니다. 사전에서 ‘흙’을 찾아보면, “지구의 표면을 덮고 있는, 바위가 부스러져 생긴 가루인 무기물과 동식물에서 생긴 유기물이 섞여 이루어진 물질”이라고 정의한다. 흙이 동식물과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식물이 존재하는 곳에서만 흙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최초의 흙은 무엇이었을까? 5억 년 전 처음으로 지표면에 등장한 이끼와 지의류, 이들의 유해(유기물)에 모래와 점토가 섞여 탄생한 것이 최초의 흙이다! 이 흙에서 양치식물이 나타날 수 있었고, 양치식물의 유해가 쌓여 또다시 흙이 되었으며, 그 흙은 새로운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다양한 흙은 다양한 변화를 일으킨다 흙으로만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만큼 흙의 색깔은 다양하다. 세계적인 곡창 지대를 만든 비옥한 체르노젬은 검은색이고, 양분이 적은 열대우림의 울티솔은 노란색이다. 붉은 흙인 중남아메리카의 옥시솔이나 흰색을 띠는 사막토도 있다. 중국의 진시황릉에서 발견된 병마용도 만들어질 당시에는 다섯 가지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고 한다. 황토 고원의 황색, 동북부 흑토 지대의 흑색, 사막 지대의 백색, 논토양의 청색, 남부 아열대 토양의 적색까지. 당시 사람들은 서로 다른 흙의 색으로 지역에 따라 다른 풍토를 나타냈던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진화론으로 유명한 다윈도 흙의 다양성에 관심을 가졌다. 다윈은 30년의 시차를 두고 지렁이가 흙을 일구는 모습을 관찰한 뒤 그에 대해 책을 쓰기도 한 지질학자였다. 《종의 기원》의 저술에 큰 영감을 주었던 비글호 항해에서도 다윈은 남아메리카 각지를 돌아보면서 대륙과 기후에 따라 다른 성격의 흙이 만들어진다는 것에 관심을 보였다. 나아가 흙의 다양성에 생물들도 발맞추어 변화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흙을 포함한 환경의 차이에 적응하기 위해 생물들이 반복한 작은 변화가 진화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밝혔다. 흙은 5억 년에 걸쳐 꾸준히 변화해왔으며 이에 따라 생물들도 다양하게 변화한 것이다. 흙을 변화시키는 생물들 그런데 이 변화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서, 흙이 생물을 변화시키듯 생물도 흙을 변화시켰다. 그중 하나가 흙의 산성화다. 일반적으로 흙이 산성이 되면 생물이 살아남기 어려운데, 생물은 생존하기 위해 흙을 산성으로 만들기도 한다. 식물은 뿌리로 물을 흡수하면서 산성 물질을 방출해 흙 속의 양분을 녹여 이를 흡수하고, 미생물은 낙엽을 분해하면서 그 일부를 산성 물질로 방출하는 동시에 그 산성 물질로 낙엽을 분해해 또 양분을 얻는다. 이렇게 생물이 방출하는 산성 물질로 인해 흙은 서서히 산성으로 변해간다. 대표적인 예로 침엽수를 들 수 있다. 침엽수는 산성토양을 더욱 산성으로 변하게 하는 전략으로 흙에서 양분을 획득했고, 그 결과 침엽수들의 아래에는 산성 물질로 표백된 하얀 흙, 포드졸이 생겨난다. 이것은 주어진 토양 환경을 받아들여 생명을 유지시킬 뿐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흙을 변화시키게 되었다는 뜻이다. 침엽수라고 처음부터 산성토양이 좋았을 리 없다. 어쩌면 흙의 산성화는 식물이 목숨을 걸고 실행한 전략일지도 모른다. 식물, 미생물 등 흙을 둘러싼 생물들의 작은 변화는 흙을 변화시키고 대지의 모습도 크게 바꿔놓았다. 흙에서 양분을 긁어모으는 생물들 모든 생물은 흙에서 양분을 얻는다. 하지만 흙에서 양분을 흡수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생물들은 양분을 얻기 위한 저마다의 생존전략을 개발했다. 식충식물로 유명한 벌레잡이통풀은 극히 양분이 적은 토양에서 살기 때문에 곤충을 익사시켜 직접 소화하거나, 반대로 곤충을 자기 몸 안에서 살게 해 그 배설물을 받아들여 영양 결핍을 보충한다. 지렁이나 장수풍뎅이는 양분을 잘 소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독특한 소화기관을 발달시켜 장내 미생물과 공존한다. 나뭇잎을 잘라 거기서 버섯을 키워 그 균사를 먹어 에너지를 얻는 가위개미나 버섯흰개미도 있다. 양분을 효율적으로 얻기 위해 공생관계를 맺는 버섯과 나무도 있다. 때로는 이런 전략이 지질학적으로 큰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지금 인간이 이용하는 석탄은 3억 년 전에 쌓였던 나무들의 유해가 변한 것으로, 우리가 석탄기라 부르는 이 시기는 죽은 나무를 분해할 수 있는 효소를 방출하는 능력을 갖춘 버섯들이 등장하면서 끝이 났다. 이러한 흐름에서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흙에서 얻을 수 있는 양분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간이 짜낸 방법이 농업과 요리 아니겠는가. 흙 속에 담긴 과거, 현재, 미래 지구의 피부가 되어 대지를 덮고 있는 흙의 평균 두께는 불과 1미터라고 한다. 하지만 그 흙의 존재가 화성과 지구를 구별하고, 생물을 키웠다. 다양한 성질의 흙이 우리의 농업 문화와 풍토에 차이를 불러일으키며 역사를 다양하게 엮어왔다. 황사, 산사태, 열대우림의 감소 등 흙과 관련해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는 과거에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들 수 있다. 이 고대 국가는 벽돌을 만들기 위해 상류 유역의 숲을 베어냈다. 그러나 결국 비바람 탓에 흙이 유출되고, 수로는 토사에 막혀버렸다. 유출된 흙의 양이 엄청나서 강을 메울 정도였고, 그 결과 항구 도시는 결국 사막이 되어 폐허로 변했다. 비슷한 사례로 댐 건설 때문에 비옥한 토양을 잃은 이집트도 있다. 토양의 열화는 식량 생산의 터전, 나아가서는 문명 그 자체의 파탄을 의미했다. 인간들도 한때는 화전농업이나 분뇨 재활용을 통해 흙을 둘러싼 양분 순환 시스템의 일부로 지내왔다. 그러나 지금 인간은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자연에 돌려주지 않는다. 이 책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생물로서 필요로 하는 양의 두 배 이상 음식을 소비하고, 서른 배 이상의 에너지를 쓰고 있다. 온난화 등의 문제가 시작된 것도 필연적이었다. 과다하게 투입된 질소비료, 공장과 자동차에서 배출한 황산화물와 질소산화물이 원인이 된 산성비는 산성토양에 적응해 살아가던 침엽수들조차 선 채로 죽게 만들 정도로 토양을 산성화하고 있다. 수억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산성토양과 더불어 진화해온 식물이나 미생물과 달리, 흙과 인간이 함께 지낸 기간은 겨우 1만 년 정도다. 인간이 스스로 일으킨 변화에 대응하려면 가혹한 대지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생물들의 지혜, 척박한 토양을 극복해온 선조들의 지혜를 빌려야 한다. 그 지혜는 우리가 흙과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밝혀줄 것이다. 당연하게 여겼던 낭비를 줄이고, 오래된 혹은 새로운 힌트를 발굴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