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로스트 보이
가격
12,000
10 10,800
YES포인트?
60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책소개

저자 소개 2

아허 아롭 볼

관심작가 알림신청
 

Aher Arop Bol

1983년 시작된 수단 북부 이슬람정부와 수단인민군SPLA의 전쟁으로 부모와 헤어졌다. ‘로스트 보이(잃어버린 아이들)’라 불리는 1만 8,000명의 소년들과 똑같은 운명이었다. 삼촌 아템Atem에게 업혀 1987년 에티오피아 난민수용소에 도착했다. 당시 세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허 아롭 볼은 삼촌의 도움으로 굻고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들과 장작처럼 쌓여가는 시체들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다섯 살 때, 삼촌 아템이 수단인민군에 징집된 이후론 친구들과 함께 스스로 생존하는 법을 배웠다. 여러 해 동안 여러 나라의 수용소를 옮겨다니다 케냐 정부와 UNHCR이 조성한 카쿠마 수용
1983년 시작된 수단 북부 이슬람정부와 수단인민군SPLA의 전쟁으로 부모와 헤어졌다. ‘로스트 보이(잃어버린 아이들)’라 불리는 1만 8,000명의 소년들과 똑같은 운명이었다. 삼촌 아템Atem에게 업혀 1987년 에티오피아 난민수용소에 도착했다. 당시 세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허 아롭 볼은 삼촌의 도움으로 굻고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들과 장작처럼 쌓여가는 시체들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다섯 살 때, 삼촌 아템이 수단인민군에 징집된 이후론 친구들과 함께 스스로 생존하는 법을 배웠다. 여러 해 동안 여러 나라의 수용소를 옮겨다니다 케냐 정부와 UNHCR이 조성한 카쿠마 수용소에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고, 1994년 그곳에서 케냐의 초등교육 이수증명서를 받았다. 이후 짐바브웨의 성모방문 고등학교Visitation High School를 수료했고, 스페이스 대학에서 홍보를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한 2002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거처를 옮겼다. 프리토리아에 위치한 미저리코디아에서 영어를 배웠고 그곳 선생님의 권유로 난민으로 지냈던 경험을 글로 옮겼다. 2002년 여름, 부모님과 연락이 닿아 수단으로 돌아갔다. 기적적으로 부모님을 만나 지 48일 만에 두 남동생 마조크, 토크리엘의 학업을 위해 셋이서 케냐로 이사했고, 2004년 동생들을 나이로비의 기숙학교에 등록시킨 뒤 남아공으로 돌아왔다. 현재는 프리토리아에서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통신과정으로 법학을 공부하고 있다.
서강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신문」에 입사해 문화부, 국제부, 경제부 등에서 일했다. 문화부에서는 문학, 출판 담당기자로 활동하며 오랜 기간 신간 서평을 담당했다. 이후 월간 「포브스 코리아」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스무 살 백만장자 그레이』 『스마트 월드』,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비즈니스 바이블』, 『행복한 돈 만들기』 등이 있다.

손정숙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12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373g | 152*210*20mm
ISBN13
9788991508743

책 속으로

나는 고통과 좌절에 등떠밀렸던 내 유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이 책을 썼다. 또 다른 목적은 중재자들에게 수단 전쟁을 종식시키고 나아가 그 뒤에 감춰진 쟁점들을 해결해달라고 간청하기 위해서이다. 신께서 이를 가능하게 하시어 흩어졌던 사람들이 되돌아와 다시 한 번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 p.18, 프롤로그 중에서

트랙터도 수용소에 평화를 가져다주진 못했다. 밤낮없이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곯아떨어지거나 죽어버릴 때까지. 한밤중에는 다음날 숲속의 얕은 무덤에 가져다 묻을 수 있도록 시신을 모아두었다. 시신 썩는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 p.25

어른과 나이든 소년들이 점점 더 많이 군사훈련센터로 보내졌다. 이제 소년들이 어른의 일을 더 많이 떠맡아야 했다. 아침마다 팀이 꾸려져 요리에 필요한 물을 길어오고, 보호자 없이 캠프를 떠나지 못하는 아이들을 돌봤다. 가장 강하고 활동적인 소년들이 리더가 되었다. 그들은 다른 아이들이 허드렛일을 잘해내도록 살피고, 매일 아침과 오후에 강가로 내려가는 조를 짜기도 했다. --- p.34

전쟁이 할퀴어놓은 나라에서 고아로 어린시절을 보낸 우리 소년들은 질 좋은 양육 조건을 박탈당했고 우리의 재능이 짓이겨지는 경험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친절한 사람들도 만났다. 인간의 존엄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살인자는 항상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겁을 집어먹고 살겠지만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도와주는 행동은 보상받게 될 거라고 믿는 성숙한 어른들. --- p.85

촐과 나는 짐바브웨 정부를 원망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 정부는 우리에게 난민 지위와 약간의 재정적 원조를 해주었다. 그러나 SPLA 대표부는 어떤가! 우리의 비참한 생활을 뿌리까지 알고 있어야 할 사람이 동족을 배신하고 있었다. 그의 운동은 더 이상 우리의 운동이 아니었다. 교회나 NGO에 도움을 청하러 가면 그들은 항상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어제 너희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너의 대표부에 기부를 했는데? 그런데 아직도 배가 고프단 말이야?” --- p.125

다른 아이들에게서 뭔가를 배운다는 것은 너무나도 멋진 일이었다! 그들은 자기 시간을 들여 내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왔다. 뿐만 아니라 내가 너무 수줍어서 아이들이 하는 게임에 흔쾌히 참여할 수 없을 때 그들은 내게 좀더 자신감을 가지라고 격려해줬다. 저녁 자율학습 시간에 나는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여러 아이들에게서 쪽지를 받곤 했다. 거기에는 나에 대한 칭찬이나 오늘날까지도 도움을 주는 충고 등이 적혀 있었다. --- p.153

2002년이 됐다. 나는 스페이스 대학의 홍보 과정을 끝마치자마자 하라레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나는 수업료를 완납하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4월 최종시험을 볼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원금에 이자까지 합쳐서 등록금을 다 내기 전까지는 어떤 증명서도 받지 못할 거라고 했다.
신이 도왔다. 4월 25일, 신은 내가 머물고 있는 집에 수단인 방문객 한 명을 보냈다. --- p.167

프리토리아 시절 초기에 그토록 절절하게 무의미하다는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면 미저리코디아에서 영어 수업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니 목사님이 미국으로 떠난 뒤 나는 공원과 거리를 목적 없이 떠돌곤 했다. 살아갈 시간은 넘치게 가졌지만 살아갈 목적이 전혀 없었다. 나는 한때 알았던 소년들을 생각했다. 지금은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들은 스스로를 남수단의 ‘결실 없는 세대’로 여긴다. 나는 정치가와 그들의 선전, 아랍인과 싸우는 SPLA, 교전지대의 난민수용소에서 고통받는 내 또래들을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아무것도 하는 게 없었다. 직업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도, 인생의 의미도 없었다. --- p.184

나는 몇 시간이나 걸려 내 이야기를 했다. 내가 이야기를 끝내자 그녀는 말했다. “그러면 산티노, 글을 한번 써보는 게 어떻겠니?”
나는 항상 누군가에게 남수단에서 정치가들이 민중의 삶을 어떻게 송두리째 유린했는지 얘기하고픈 욕구를 느끼고 있었다. 내게 글을 쓰라고 권유한 사람은 마 새니 선생님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에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선생님이 자신의 컴퓨터를 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내 이야기를 쓰고 있다. --- p.188

그들이 내 부모를 모른다면? 갑자기 그런 생각이 스쳤다. 또는 그들이 돌아가셨거나 더 이상 그곳에 살지 않는다는, 생각지도 못한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혹은 어머니 아버지를 만난다 해도 그들의 잃어버린 아들인 내가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내가 느끼는 참된 감정을 어떻게 보여주고, 그들을 향한 내 그리움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벌써 15년이 흘렀다, 내 전 생애가! --- p.194

정말 외할머니의 마을 쪽에서 어머니가 오고 계셨다.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려고 자기 오두막에서 쏟아져나왔다. 나는 기쁨의 탄성을 들었다.
이윽고 나는 뛰기 시작했다. 내 잃어버린 세계를 되찾으려 뛰었다. 나는 마른 수수 더미를 뛰어넘어 어머니의 사랑을 향해 달려갔다. 내 어머니라는 것을 그냥 알았다.

--- p.222

출판사 리뷰

수단에서 에티오피아, 케냐, 짐바브웨를 거쳐 남아공까지…….
17년 간 아프리카 8개국 총 6,500킬로미터를 걸어온 소년, 우리에게 평화의 조건을 묻다.


1983년 시작된 수단 남북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20세기 세계 최대의 참극이다. 애초 종교와 자원분쟁으로 촉발된 이 내전으로 지금까지 250만 명이 죽고 4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로스트 보이(잃어버린 아이들)’라 불리는 1만 8,000명의 소년들이 세계 각지를 떠도는 미아가 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 시의 원더붐 역에서 노점상을 하는 청년 아허 아롭 볼 역시 로스트 보이 출신이다. 1987년 삼촌의 등에 업혀 에티오피아 파니도 난민촌에 들어온 이후 그는 매일매일 굶어죽고 병들어 죽는 사람들과 장작더미처럼 쌓여가는 시체들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이후 아프리카 8개국 6,500킬로미터를 홀로 떠도는 17년 동안 적의 총칼에, 정치가들의 탐욕에 스러지는 숱한 친구들을 가슴에 묻어야 했다.

살아남은 자의 아픔, 살아남은 자의 의무
그 진창 속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고향에서 데려온 두 동생과 아픈 어머니를 부양하고 있는 아허 아롭 볼이 자신의 경험을 재료 삼아 수단 내전의 참상을 들려주는 책 『로스트 보이』를 낸 건 순전히 살아남은 자의 책무 때문이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달아나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적은 누구인가? 우리를 이 수용소에서 저 수용소로 내모는 사람? 우리를 부모에게서 떼어놓은 이들? 기부금을 이용해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정치가들?
나는 그들 모두가 우리의 적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들 모두가 제 손에 우리의 피를 묻혔던 것이다.
이 책을 쓰라고 나를 부추긴 건 이런 경험이었다. 고통 속에서 죽어간 모든 소년들, 이제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그 아이들을 대신해 글을 써야 했다. 전쟁과 편견, 배신과 이기심이 무고한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세상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

이 책 『로스트 보이』는 아집과 편견, 폭력과 집단이기주의가 무력한 개인들의 삶을 얼마나 참혹하게 짓밟아놓는지를 생생하게 고발하는 보고서이다. 나아가 전쟁의 참화 속에 내던져진 한 아이가 가혹한 운명에 맞서 스스로를 지키고 자유와 평화를 쟁취해내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인간 승리 다큐멘터리다.

선의보다 악의가, 삶보다 죽음이 친숙했던 날들
아허가 고통스러웠던 자신의 성장기를 써내려가는 방식은 의외로 담담하다. 그 차분한 시적 어조가 담아내는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처연하고 극적이다.
1983년 딩카 족의 아이로 태어난 아허는 그 무렵 재발한 수단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부모와 생이별했다. 아템 삼촌이 지켜주던 초창기 파니도 시절은 그래도 견딜 만했다. 헐벗고 배고팠지만 생존의 위협은 직접적이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삼촌이 수단인민군에 징집된 이후 아허는 홀로 남았다. 어느 날, 북부 이슬람 정부군이 파니도 난민촌을 덮칠 거라는 소식이 날아왔다. 이제 막 일곱 살이 된 아허는 수단 국경지대 난민촌을 떠돌며 전쟁이 우리 삶에 가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폭력과 추함을 두 눈으로 목도했다. 적의 십자포화를 피해 강물로 내던져진 아기들, 난민 구호자금과 물품을 빼돌려 개인의 배를 채우는 정치인들, 허기를 달래기 위해 독풀을 먹고 죽는 노인들……. 한마디로 선의보다 악의가, 삶보다 죽음이 친숙한 날들이었다.

꿈을 찾아 먼 길을 떠나다
내전이 할퀴어놓은 나라의 고아로 산다는 것은 이렇듯 비참했지만 그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라고, 난민촌에는 임시 학교가 들어섰다. 나뭇가지로 땅 위에 알파벳을 그리며 글씨를 배웠다. 그렇게 포첼라와 코르추이, 카쿠마 난민수용소를 거치며 아허는 고등학교 중간과정까지 와 있었다.
어떻게든 이 고난을 이겨내고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된 건 자신의 운명에 총부리를 겨눈 사람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 신산한 삶 속에서도 따스한 손을 내밀어주었던 낯선 이들의 선의 덕분이었을 것이다. 1997년 말, 아허는 케냐의 아이포 수단 공동체를 떠나 남쪽으로 향했다. 여권도 출생신고서도 없이 케냐와 탄자니아, 말라위, 모잠비크를 거쳐 짐바브웨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 위험천만한 길 위에서 그를 살려낸 건 이번에도 인간의 존엄성을 굳게 믿는 이들의 고마운 마음이었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만나 자신의 책을 빌려주고 먹을 것과 입을 것, 숙박료와 교통비까지 대주었던 방글라데시인과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온 남자. 늦은 밤 도착한 하라레에서 아허를 경찰서로 데려가준 사람은 나이든 노숙자였다. 그런 이들의 끝없는 도움과 동지애가 있어 아허는 하라레의 성모방문고등학교와 스페이스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

자유와 평화의 대가는 무엇일까
꿈을 찾아 다시 길을 떠난 소년. 남아공 프리토리아에 있는 미저리코디아에서 영어를 배우며 아허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조국의 전쟁과 그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생각했다. 지나온 시간을 돌이킬 때마다 살아남지 못한, 이제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친구들이 떠올라 가슴을 쳤다. 이 마음을 헤아린 선생님이 아허에게 제안했다. 가슴 속에 쌓아둔 이야기를 글로 써보라고. 직접 체험한 전쟁의 끔찍함과 일부 정치가들의 사악한 배신을 있는 그대로 들려달라고. 그것이야말로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지난해 『로스트 보이』가 남아공에서 출간됐을 때 서방 유수 언론이 아허의 독특한 이야기에 주목했다. 영국 〈가디언〉은 책의 내용을 집중 조명하면서 아허를 “아프리카 문학사에 새롭게 떠오르는 신성”이라 극찬했고, CNN은 “평화를 찾아 아프리카 6,500킬로미터를 종단”한 아허가 지난 2002년 말 기적처럼 가족을 상봉한 내용과 고향에서 데려온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는 현재 삶을 상세히 보도했다. 언론 인터뷰에서 아허는 말했다. 작은 노점에서 사탕과 담배를 팔며 공부하는(통신과정으로 법학을 전공하고 있다) 일상은 고달프지만 전쟁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낸 두 동생 마조크, 토크리엘이 공부를 잘하는 덕에 자신은 행복하다고. 그리고 제발 수단 전쟁을 종식시켜달라고.

정치는, 종교는, 법과 제도는 누굴 위해 존재해야 할까? 아니 자유와 평화의 대가는 무엇일까? 우리는 이 대가를 제대로 지불하고 있는 걸까?
여러 가지로 몸과 마음이 평화롭지 않은 시절. 결코 평범할 수 없었던 한 소년의 성장과정을 담은 이 얇은 책 『로스트 보이』는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 더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리뷰/한줄평3

리뷰

9.4 리뷰 총점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