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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하나 굴속으로 떨어지다 둘 넛 셋 밧줄을 풀고 출항하기 넷 집으로, 어머니에게 돌아가라 다섯 비어 퐁 여섯 기계적으로 연주하지 말라 일곱 세상에서 가장 큰 만화경 여덟 감자 프라이 두 개가 부족한 해피밀 |
Daniel Doen Silber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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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아니다, 맞다 아니다”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핵심에 있다. 앨리스가 땅속으로 떨어지기 전 지상의 생활에서는 규칙들이 분명했고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이야기가 시작될 때 앨리스는 언니와 함께 강둑에 앉아 데이지로 꽃목걸이를 만들까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그러다가 시계를 지닌 하얀 토끼를 보았고, 토끼를 따라가다 한순간 굴속으로 빠져버린 것이다. 아주 큰 굴속으로. 그렇게 떨어진 후에는 지상에서 알고 있던 모든 것이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다. 규칙도 같은 것이 없었다.---p.15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그 삶을 절대 완벽하게 만들 수 없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똥벼락을 맞게 되어 있지만 그것은 ‘좋은 똥벼락’이다. 내가 좋아하는 재즈 선생님은 좋은 음악을 ‘좋은 똥’이라 부른다. 우리가 좋은 거름을 음미할 수 있을까? 거름은 완벽하다. 다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방식의 완벽이 아닐 뿐이다.---p.47 우리는 상대방이 불을 질렀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 방화광인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그들이 달라지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당신은 결국 그들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들이 그대로 존재하게 해주는 것. 만약 누군가를 당신의 프로젝트로 삼았다면 그 프로젝트를 버려라. 차라리 레고 블록을 가지고 놀아라.---p.52 몸이 좋지 않거나 마음이 분노와 짜증으로 가득할 때는 남들에게 자비심을 가지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수행은 당연히 몸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인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수행에 진지하고 진실한 것이다. 우리의 현재 상태를 잘 알아차리고 몸과 마음의 상태가 남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라. 우리가 더는 배울 것이 없는 그런 지점에 도달하는 날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수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수행을 통해 배움도 늘어나고 마음도 더 열리며 더 겸허해질 것이다.---p.114 ‘깨어난 사람’은 누구이고 무엇인가? ‘깨어난 사람’은 마치 오리가 물을 향해 가듯 그런 성품으로 간다.---p.131 혹시 신이냐는 질문에 부처님은 아니라고 했다. 그럼 성인인가요? 아니요. 도인인가요? 아니요. 그럼 무엇인가요? 그러자 부처님은 말했다. “나는 깨어났어요. 저는 고통의 멸을 가르칩니다.” ---p.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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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의 황홀한 선 탐험기 『원더랜드』
서양에 닻을 내린 선 원더랜드 속의 원더랜드를 발견하다! 환상 동화의 효시이자 고전으로 자리 잡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수많은 비평가들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되었다. 버트러트 러셀은 이 책에 ‘어른만 읽을 것‘이란 딱지를 붙이고 싶다 했다. 환상 동화라는 이면에 자리 잡은 정치학, 언어학, 심리학, 법학, 시간학, 유머, 교육학, 정신분석학, 뇌과학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문학 코드가 무수히 얽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루이스 케럴이 펼쳐놓은 독창적인 세계는 시대를 초월해 복잡다단한 열린 텍스트의 장을 마련해 놓았다. 『원더랜드』는 이러한 인문학적 접근과 맥을 달리해 또 다른 시선을 담고 있다. 25년간 선 수행을 하며 직접 수행 단체 ‘로스트 코인(http://lostcoinzen.com)’을 이끌고 있는 저자 대니얼 노엔은 불교적 시각으로, 특히 선적으로 원더랜드를 풀어낸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무수한 선적인 코드들이 원더랜드 곳곳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해 낼 수 있다. 이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텍스트 자체가 지닌 '순수한 즐거움'은 물론 '지금 이 순간의 엄청난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원더랜드에 숨어 있던 풍부한 선의 가르침을 발견하며 서양인들에게 간절히 수행하라고 얘기하는 선 수행자 대니얼 노엔의 얘기에 우리도 귀를 기울여 보자. 수많은 선문답으로 이어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앨리스가 토끼를 뒤쫓다 빠지게 된 지하의 세계, ‘원더랜드’를 기억하는가? 몸 크기부터 멋대로 바뀌더니 제멋대로(물론 앨리스의 입장에서)인 모자장수, 삼월토끼, 고양이, 겨울잠쥐, 애벌레, 여왕 등등이 앨리스의 정신을 빼놓는다. 애벌레가 묻는다. “너는 어떤 크기로 되고 싶다는 거니?” “아! 크기는 별로 상관이 없어요. 단지 자꾸 크기가 바뀌는 것이 싫다는 거죠. 아시잖아요?” “모르겠는데” “수수께끼를 풀었니?” 모자장수가 다시 앨리스를 보며 말했다. “아니요, 포기할래요.” 앨리스가 말했다. “답이 뭔가요?” “나도 모르지.” 저자는 이런 대화들이 선수행에서의 공안과 같다고 얘기한다. 말을 초월하기 위해 말을 사용하는 공안은 지성이 아니라 지혜를 사용하여 경험적으로 답해야 한다. 소녀 앨리스는 그동안 읽은 책에서,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총동원해 상황에 대처하려 하지만 혼란은 가증되기만 한다. 지상에서 배운 규칙이란 규칙은 도무지 적용 안 되는 곳이 원더랜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이론적 허구를 잊어버리고, 자신만의 관점을 버리면 앨리스는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우리 역시 그동안 거부했던 사람들이나 상황들을 받아들여 현실과 참모습을 깊이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개념과 말과 생각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원더랜드는 선의 세계와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공안의 핵심은 하나의 질문으로 압축된다. 자아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죄송하지만 ‘저’를 잘 설명할 수가 없네요.” 앨리스가 말했다.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제가 지금 제가 아니거든요.” 품격 있는 즐거움, 선수행! 두려움에 가득차 있는 것이 ‘나’이고 ‘우리’라고 단정한다면 어떠한가? 한번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적어보라. 그것은 대부분 우리가 얻지 못한 것들이다. 더 좋은 차, 더 연봉이 높은 직장. 그것을 가지게 되면 한동안은 기분이 좋다. 그러나 우리는 머잖아 또 다른 것을 원한다. 무엇이든 다른 것. 우린 절대 ‘이것’을 원하지 않고 언제나 ‘저것’을 원한다. 저것을 얻기까지는 안달과 두려움의 연속이다. 두려움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 사이에 벽을 쳐버린다. 두려움은 우리를 상하게 하고 마비시킨다. 그런데 하도 자주 두려움에, 또는 그 사촌인 불안에 사로잡힌 나머지 이제는 우리가 불안하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그 두려움의 자리에 머물며 두려움의 행동만을 할 뿐이다. 우리는 불안과 분노를 행동으로 옮긴다. 다만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규칙이라는 틀에 맞춰 낯익은 화음을 내는 것이 나름 잘 돌아가는 삶, 좋은 삶이라고 생각하는 동안 실은 그것이 무엇인지 심지어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아니, 아니다!” 여왕이 말했다. “선고가 먼저, 평결은 나중에 한다.” 저자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삶은 고통’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고통을 없애는 방법이 수행임을 거듭 말한다. 그렇다고 파도들이 서로 부딪쳐 밀려오는 것처럼 수없이 밀려오는 삶의 고통, 두려움 등등이 없어질 거라고, 마음이 편하게 될 거라는 기대감으로, 심지어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선수행하지 말라고 저자는 말한다. 좋고 나쁜 일이 일어난다는 꿈에서 ?어나서 우리가 파도이며 또한 동시에 바다임을 깨닫는 것이 수행이다. 선수행은 고행도, 재미도 아닌 ‘즐거움’이다. 그것은 숙취를 남기는 거친 즐거움, 충족감을 주지 못하는 그런 즐거움이 아니라 참다운 즐거움, 품격 있는 즐거움 그 자체이다. 출래 말래, 출래 말래, 춤추지 않을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