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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전란
피로써 맺은 맹세 도살성 전투 아름다워라, 우지암의 양위여 여제, 신라를 치다 만원과 신월 당은 드디어 군사를 일으켰으나 부록 7세기 삼국의 주요 성곽 연표로 보는 삼한지 역사책 엿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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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남쪽을 차지하기 위해 백제와 신라는 끝없는 전쟁을 벌인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사로잡히는 전란의 참화 속에서 통일의 명분은 차츰 쌓여가고, 수세에 몰린 신라의 김춘추는 오랜 고심 끝에 당태종을 찾아가 피로써 동맹을 맺고 군기를 약정한다. 그러나 요동에서 겪은 패전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당태종 이세민이 급서하면서 정관의 치세도 막을 내리고, 나당동맹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김유신은 정병을 거느리고 백제군과 싸워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진덕여왕 사후에 열린 화백회의에서 알천은 김춘추에게 세 차례나 왕위를 양보함으로써 지도층으로부터 떠났던 민심을 일거에 되돌려놓는다. 고구려와 백제는 함께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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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이세민(당태종) _ 당나라의 황금시대인 ‘정관의 치세’를 연 주역이다. 거푸 고구려와 전쟁을 치르고도 별 소득을 얻지 못하자 궁여지책으로 김춘추와 나당동맹을 맺는다. 그러나 요동에서 얻은 병이 악화되어 군사를 내기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치(당고종) _ 이세민의 아홉 번째 아들. 아버지가 죽자 보위를 물려받고 선왕의 뜻을 받들어 신라와 우호 관계를 유지한다. 측천무후 _ 이치의 두 번째 부인. 탐욕스러운 여걸로 훗날 이치를 몰아내고 스스로 제위에 오른다. 자신의 아들로 태자를 교체한 뒤 서서히 정사에 관여하기 시작한다. 반대 세력을 피해 장안에서 낙양으로 수도를 옮기고 유약한 이치를 마음껏 주무른다. 의자왕 _ 백제 30번째 왕. 선왕 부여장(서동대왕)이 이루어놓은 태평성세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주변의 정세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차츰 국세가 기운다. 성충과 흥수 등의 충언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국이 마음대로 되지 않자 괴로움에 못 이겨 폭주를 일삼는다. 부여융 _ 의자왕의 장남. 태자에 책봉되었으나 왕의 후비인 은고의 간계로 아우에게 태자 자리를 뺏기고 궁에서 쫓겨난다. 춘추왕(태종무열왕) _ 보위에 오르기 전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이세민과 나당동맹을 체결한다. 돌아오는 중 서해에서 고구려군의 추격을 받으나 온군해의 죽음을 불사한 충절로 간신히 목숨을 구한다. 진덕여왕이 죽은 후 왕위를 승계한다. 김유신 _ 신라 최고의 명장. 백제와 본격적인 싸움을 벌이며 일진일퇴의 공방을 계속한다. 대야성에서 죽은 고타소와 품석 내외의 유골을 찾아와 춘추의 마음을 위로한다. 김법민 _ 김춘추와 문희 사이에서 태어난 장자. 생각이 깊고 지혜로워 춘추가 왕위에 오른 뒤부터 아버지의 왕업을 훌륭히 보필한다. 젊은 나이에 병부령이 되고, 곧 태자로 책봉된다. 백제를 칠 때는 선봉에 서서 맹활약을 펼친다. 김인문 _ 법민의 아우이자 춘추의 차남. 어려서부터 학문에 매진하여 유가의 경전은 물론 도교와 불교까지 두루 통달했고, 필법도 뛰어나다. 활쏘기와 말 타기, 예능 방면에도 탁월한 소양을 지닌 팔방미인이다. 아버지를 이어 당나라에 숙위사로 지내며 당주 이치와 교분을 쌓고 좌령군위장군에 봉해진다. 알천 _ 신라의 충신이자 명장. 진덕여왕이 죽은 뒤 다시 만조의 백관들이 임금으로 추대했으나 세 번이나 거절하며 끝내 김춘추에게 보위를 물려준다. 춘추가 왕이 되자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나 청렴한 생활로 만인의 추앙을 받는다. 원효 _ 당대 제일의 유학자로 명성이 높았던 대내마 설담날의 아들이다. 일찍부터 총명함을 드러내어 스승을 두지 않고도 혼자서 깨우쳤다. 도반인 의상과 더불어 당나라로 불법을 구하러 가던 중 해골바가지에 든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는다. 이후 경향 각지를 누비며 온갖 파격과 기행으로 나라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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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우리 역사의 밤하늘에 한 무리 휘황한 별자리를 이룬 시대,
그 눈부시게 찬란한 우리 영웅들의 이야기다. 1천 수백 년 전에 이 땅에서 태어나 살다가 하늘로 돌아가 별이 된 사람들. 나는 사서(史書)의 행간과 이면에서 그들이 뿜어내는 영롱한 빛을 그대로 백지에 옮겨놓으려고 노력했다. 그 세월이 돌아보면 10년이 훌쩍 넘는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소년은 『삼국지』에 흠뻑 빠져 있었다. 관우의 목이 잘리고 장비가 죽었을 때는 밥도 먹지 않고 슬퍼했다. 제갈공명의 무궁한 지략에 심취했고 그의 명석함을 닮고 싶어 했다. 『삼국지』에서 얻은 감동은 자연스fp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다. 중국인이 부럽고 중국이란 나라가 대단해 보였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역사는 별 재미가 없었다. 우리 역사란 늘 어려운 도표였고 골치 아픈 암기 대상이었지 감동이나 재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삼국지와 중국인에 대한 부러움은 안타까움으로 바뀌어 갔다. 고작 80년에 불과한 중국 삼국시대(위, 촉, 오)는 국경을 넘고 대대손손 전파되는데, 700년이나 우리 땅에 존재했던 우리의 삼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는 왜 여전히 사료와 학문이란 울타리에 갇혀 있는 걸까? 우리나라에는 그만한 영웅, 그만한 역사가 없었을까?’ “우리는 이런 선조들을 그리워했다!” 김정산 대하역사소설 『삼한지』 199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정산 작가는 줄곧 이런 의문에 사로잡혔고, 경주여행을 하던 중 그곳에서 해답을 찾았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방의 온 벽을 백지로 도배했고, 거기에 그가 그토록 찾던 역사와 영웅들의 행적을 하나둘씩 채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지 10년, 마침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열하고 웅대했던 격전의 현장을 고스란히 소설로 되살려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서로 대립과 경쟁 속에 세력을 키워가는 580년대에서부터 신라가 통일을 완성하는 676년까지 약 100년간의 역사를 생생하게 복원한 대하역사소설 『삼한지』가 바로 그것이다. 솥발처럼 버티고 서서 대립한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그 역사를 휘몰아간 을지문덕, 연개소문, 장왕, 계백, 김유신, 선덕여왕, 김춘추를 비롯한 불세출의 영웅들. 우리는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수나라 백만 대군을 무찌르는 장면에 환호하고, 마동과 선화공주의 애틋한 사랑에 가슴 시리며, 신라 김유신의 기백과 김춘추의 외교술에 감탄하고, 망해가는 나라를 안타까워하며 가족을 죽인 채 전장에 나서야만 했던 계백 장군의 충정에 옷깃을 여민다. 그리고 마침내 한반도에서 당나라 군을 몰아내고 진정한 삼국통일을 이루는 장면에 가슴이 저절로 뜨거워진다. 치밀한 사료 조사와 역사인식 소설이라면 으레 작가가 마음대로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 김정산 작가는 각종 매체에서 역사를 멋대로 비틀고 왜곡하여 정사(正史)는 빛을 잃고 흥미로운 야사(野史)만 널리 회자되는 풍토를 개탄한다. 앞사람이 살아간 흔적과 기록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긴 작가는 『삼한지』를 집필하기 위해 고시 공부를 하듯 고대사를 읽고 수많은 자료와 사료를 조사했다. 고증을 위해 전국을 샅샅이 돌아다녔고, 귀한 사료의 원본이나 필사본을 얻으려고 몇 달씩 눈물겨운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삼한지』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국내 자료를 근간으로 하고 《당서》, 《수서》, 《정관정요》, 《일본서기》 등 중국과 일본의 사료들까지 섭렵하며, 4년에 넘는 사료 취재와 현장 답사, 6년에 이르는 집필 기간 등 작가가 10년 세월을 오롯이 바쳐 완성한 필생의 역작이다. 김정산은 10년 청춘을 바친 머리품과 발품으로 문헌사료와 역사현장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켰다. 사료와 사료의 공백, 사료와 현장 사이의 공백, 실존인물과 가공인물 사이의 간극이 자연스레 연결되는 것은 문헌사료와 역사현장을 체화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사료와 현장을 아는 사람들은 안다. _이덕일(역사학자·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맛깔스럽고 신명나는 글맛 “1천 궁녀란 소리는 터무니없는 숫자였으나 입에서 입을 거치며 1천 궁녀는 금방 2천 궁녀가 되고, 2천 궁녀는 또다시 3천 궁녀가 되었다. 임금 한 사람이 무려 3천 명이나 되는 후궁을 거느리고 산다는 거였다. 곰곰 생각해보면 삼척동자도 믿지 못할 말이었지만 본래 소문이란 거북이의 털도, 처녀 불알도 근거만 있으면 얼마든지 만들어내는 법이다.” --- 본문 중에서 『삼한지』는 한국소설에서 이문구나 김주영 이래 거의 명맥이 끊어진 사설조의 긴 문장을 재연하고 있다. 길게 늘어지는 사설 가락에 풍자와 해학이 흘러넘치고 장단과 운율이 저절로 따라가는 맛깔스러운 문장이 읽는 이를 들뜨게 한다. 김정산 작가는 근래 쓰이는 대부분의 문장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유입된 일본식 단어와 말법이고, 최근에는 영어와 영어 문장이 우리말과 글을 오염시키는 것을 우려한다. 작가는 홍명희가 『임꺽정』을 쓸 때까지 오롯이 살아 있던 우리글이 최남선, 이광수 이후 급격히 단문으로 변한 점이 애석하기만 하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술술 풀리는 입담이 살아 있는 『삼한지』를 읽다 보면 독자들은 별다른 의식의 충돌 없이 과거 역사현장과 마주치게 된다. 윤기가 흐르는 찰밥처럼 찰지고 유려한 문장들을 소설 곳곳에서 만나는 것은 읽는 이에게 크나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우리식’ 문장에 가락이 녹아 있고, 높낮이와 빠르고 늦음이 문향(文香)의 격을 드높이고 있다.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기개가 넘치면서도 섬세하거나, 세밀하면서도 통 크게 휘몰아친다. --- 주강현(민속학자·제주대 석좌교수) 대하역사소설 『삼한지』, 역사의 현장과 만나다 삼국시대 웅혼한 대장정의 서사시인 『삼한지』를 읽도록 해야 한다. 우리 문학사는 『임꺽정』과 『토지』와 『장길산』을 잇는 대하소설 계보에 『삼한지』를 빠뜨릴 수 없을 것이다. --- 장석주 우리가 잊고 있었던 우리 역사와 영웅들을 깊이 있는 안목과 충실한 자료를 토대로 새롭게 해석한 『삼한지』는 ‘역사’와 ‘소설’을 동시에 포획한다.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이 사설조의 유장한 문체 속에 한데 어우러지며 ‘대하’를 이룬 『삼한지』는 문단은 물론 역사학자들도 인정한 보기 드문 역사소설이다. 이 작품은 출간 후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며 조선시대에만 머물러 있던 사극드라마의 지형을 삼국시대로 바꾸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기억의 편린으로만 흩어져 내려오던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대립과 경쟁, 그리고 마침내 통일에 이르는 100년간의 역사를 소설로 재구성한 『삼한지』. 그간 잊고 있었던 우리 민족의 웅혼한 기상을 유감없이 펼쳐 보여주는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어느새 영웅들과 함께 역사의 현장을 휘몰아가는 자신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어느 나라든 영웅은 모두 후대가 만든다. 그런 점에서 우리 선조들은 불행하고 우리도 불행하다.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우리에겐 너무 영웅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유례가 드문 우리만의 수천 년 역사가 있다 한들 후대에 널리 회자되지 않는 역사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작가의 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