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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헌은 세 치 혀로 금성을 농락하고
오합사 난세의 충신들 중국에서 온 손님 김춘추 사슴뿔 천우신조 남역평정 다시 어지러워지는 삼국의 정세 부록 팽창하는 백제 연표로 보는 삼한지 역사책 엿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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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와 밀접한 친분을 쌓고 이를 활용해 고구려와 신라를 제압하려던 백제 임금 부여장은 수나라가 멸망할 조짐을 보이자 곧바로 전략을 수정해 신라를 쳐서 병탄하겠다는 남역평정의 뜻을 세운다. 즉위 이후 추구한 강력한 개혁정치의 영향으로 백제는 점점 강국이 되어가고 장왕은 선화왕비를 통해 신라와 맺은 특수한 관계를 적절히 이용하며 신라 조정을 끝없이 혼란에 빠뜨린다. 서현의 맏이인 김유신은 용화향도를 조직해 힘을 기르고, 용춘의 아들 김춘추는 수나라가 망한 직후 신흥세력들이 할거하는 중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인연들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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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장왕(무왕) _ 백제의 29번째 왕. 어린 시절 마를 캐어 팔며 살아 마동왕자란 별명을 얻는다. 법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왕권을 강화하고 제도와 문물을 정비하여 백제를 다시 강국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남역 평정의 기치를 내걸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신라를 공격하여 영토를 크게 확장한다.
백정왕(진평왕) _ 신라의 26번째 왕. 폐위된 숙부(진지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인품이 너그럽고 성정이 우유부단하여 일을 잘 결단하지 못한다. 효심과 우애가 깊어 태후들의 알력과 아우의 등쌀에 번번이 곤란을 겪는다. 게다가 강신(强臣)들의 기세에 눌려 왕권이 몹시 위축된다. 이때를 틈타 백제와 고구려가 번갈아 침략하므로 영토마저 크게 줄어든다. 신라의 백성들은 날이 갈수록 불안감과 패배감에 사로잡았다. 부여현 _ 무왕의 이복 아우. 성심으로 무왕의 왕업을 돕는다. 신라의 가잠성을 빼앗은 후 사신을 자청하여 직접 신라에 들어가 뛰어난 언변으로 미륵사를 지을 백공까지 얻어 돌아온다. 책봉사를 따라 당나라에 갔다 온 후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건무왕(영류왕) _ 고구려의 27번째 왕. 즉위 초부터 당나라와 우호 관계를 구축한다. 백제와 신라가 당과 내왕하는 것을 막고 두 나라를 한꺼번에 공략하기 위해 서남쪽 해역에 수군을 집중 배치한다. 백반 _ 진평왕의 아우. 성품이 거칠고 탐욕스러워서 끊임없이 다음 왕위를 노린다. 자신에게 반감을 가진 자들을 외관으로 내몰고 중앙의 요직에는 자신의 심복들을 심어 실권을 장악한다. 사촌간인 용춘을 견제하기 위해 갖은 술수를 써서 결국 왕위에 오를 수 없는 진골로 강등시킨다. 칠숙 _ 백반의 책사. 병부 책임자로 주군의 찬역을 돕는다. 염종 _ 백반이 그를 병부령(국방부장관)에 천거한다. 용춘의 손에 죽은 역부의 아우로, 백반을 섬기면서 한편으로는 호시탐탐 용춘을 죽이려고 기회를 노린다. 김춘추 _ 용춘과 천명공주의 외아들. 일찍부터 자질이 영특하고 명민하여 외조부인 임금과 왕실의 사랑을 받는다. 김유신 _ 일명 용화. 가야국 왕족인 김서현과 신라 왕족인 만명부인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만노군(진천)에서 용화향도라는 화랑 조직을 이끌며 호연지기를 키우다가 금성에 인질로 붙잡혀와서 하루하루 비참한 세월을 보낸다. 은상 _ 백제의 장수로, 가잠성에서 전사한 길지의 아들이다. 아직 어린 나이로 흑치사차와 함께 전쟁에 나가 큰 공을 세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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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우리 역사의 밤하늘에 한 무리 휘황한 별자리를 이룬 시대,
그 눈부시게 찬란한 우리 영웅들의 이야기다. 1천 수백 년 전에 이 땅에서 태어나 살다가 하늘로 돌아가 별이 된 사람들. 나는 사서(史書)의 행간과 이면에서 그들이 뿜어내는 영롱한 빛을 그대로 백지에 옮겨놓으려고 노력했다. 그 세월이 돌아보면 10년이 훌쩍 넘는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소년은 『삼국지』에 흠뻑 빠져 있었다. 관우의 목이 잘리고 장비가 죽었을 때는 밥도 먹지 않고 슬퍼했다. 제갈공명의 무궁한 지략에 심취했고 그의 명석함을 닮고 싶어 했다. 『삼국지』에서 얻은 감동은 자연스fp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다. 중국인이 부럽고 중국이란 나라가 대단해 보였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역사는 별 재미가 없었다. 우리 역사란 늘 어려운 도표였고 골치 아픈 암기 대상이었지 감동이나 재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삼국지와 중국인에 대한 부러움은 안타까움으로 바뀌어 갔다. 고작 80년에 불과한 중국 삼국시대(위, 촉, 오)는 국경을 넘고 대대손손 전파되는데, 700년이나 우리 땅에 존재했던 우리의 삼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는 왜 여전히 사료와 학문이란 울타리에 갇혀 있는 걸까? 우리나라에는 그만한 영웅, 그만한 역사가 없었을까?’ “우리는 이런 선조들을 그리워했다!” 김정산 대하역사소설 『삼한지』 199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정산 작가는 줄곧 이런 의문에 사로잡혔고, 경주여행을 하던 중 그곳에서 해답을 찾았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방의 온 벽을 백지로 도배했고, 거기에 그가 그토록 찾던 역사와 영웅들의 행적을 하나둘씩 채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지 10년, 마침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열하고 웅대했던 격전의 현장을 고스란히 소설로 되살려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서로 대립과 경쟁 속에 세력을 키워가는 580년대에서부터 신라가 통일을 완성하는 676년까지 약 100년간의 역사를 생생하게 복원한 대하역사소설 『삼한지』가 바로 그것이다. 솥발처럼 버티고 서서 대립한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그 역사를 휘몰아간 을지문덕, 연개소문, 장왕, 계백, 김유신, 선덕여왕, 김춘추를 비롯한 불세출의 영웅들. 우리는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수나라 백만 대군을 무찌르는 장면에 환호하고, 마동과 선화공주의 애틋한 사랑에 가슴 시리며, 신라 김유신의 기백과 김춘추의 외교술에 감탄하고, 망해가는 나라를 안타까워하며 가족을 죽인 채 전장에 나서야만 했던 계백 장군의 충정에 옷깃을 여민다. 그리고 마침내 한반도에서 당나라 군을 몰아내고 진정한 삼국통일을 이루는 장면에 가슴이 저절로 뜨거워진다. 치밀한 사료 조사와 역사인식 소설이라면 으레 작가가 마음대로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 김정산 작가는 각종 매체에서 역사를 멋대로 비틀고 왜곡하여 정사(正史)는 빛을 잃고 흥미로운 야사(野史)만 널리 회자되는 풍토를 개탄한다. 앞사람이 살아간 흔적과 기록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긴 작가는 『삼한지』를 집필하기 위해 고시 공부를 하듯 고대사를 읽고 수많은 자료와 사료를 조사했다. 고증을 위해 전국을 샅샅이 돌아다녔고, 귀한 사료의 원본이나 필사본을 얻으려고 몇 달씩 눈물겨운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삼한지』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국내 자료를 근간으로 하고 《당서》, 《수서》, 《정관정요》, 《일본서기》 등 중국과 일본의 사료들까지 섭렵하며, 4년에 넘는 사료 취재와 현장 답사, 6년에 이르는 집필 기간 등 작가가 10년 세월을 오롯이 바쳐 완성한 필생의 역작이다. 김정산은 10년 청춘을 바친 머리품과 발품으로 문헌사료와 역사현장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켰다. 사료와 사료의 공백, 사료와 현장 사이의 공백, 실존인물과 가공인물 사이의 간극이 자연스레 연결되는 것은 문헌사료와 역사현장을 체화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사료와 현장을 아는 사람들은 안다. _이덕일(역사학자·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맛깔스럽고 신명나는 글맛 “1천 궁녀란 소리는 터무니없는 숫자였으나 입에서 입을 거치며 1천 궁녀는 금방 2천 궁녀가 되고, 2천 궁녀는 또다시 3천 궁녀가 되었다. 임금 한 사람이 무려 3천 명이나 되는 후궁을 거느리고 산다는 거였다. 곰곰 생각해보면 삼척동자도 믿지 못할 말이었지만 본래 소문이란 거북이의 털도, 처녀 불알도 근거만 있으면 얼마든지 만들어내는 법이다.” --- 본문 중에서 『삼한지』는 한국소설에서 이문구나 김주영 이래 거의 명맥이 끊어진 사설조의 긴 문장을 재연하고 있다. 길게 늘어지는 사설 가락에 풍자와 해학이 흘러넘치고 장단과 운율이 저절로 따라가는 맛깔스러운 문장이 읽는 이를 들뜨게 한다. 김정산 작가는 근래 쓰이는 대부분의 문장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유입된 일본식 단어와 말법이고, 최근에는 영어와 영어 문장이 우리말과 글을 오염시키는 것을 우려한다. 작가는 홍명희가 『임꺽정』을 쓸 때까지 오롯이 살아 있던 우리글이 최남선, 이광수 이후 급격히 단문으로 변한 점이 애석하기만 하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술술 풀리는 입담이 살아 있는 『삼한지』를 읽다 보면 독자들은 별다른 의식의 충돌 없이 과거 역사현장과 마주치게 된다. 윤기가 흐르는 찰밥처럼 찰지고 유려한 문장들을 소설 곳곳에서 만나는 것은 읽는 이에게 크나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우리식’ 문장에 가락이 녹아 있고, 높낮이와 빠르고 늦음이 문향(文香)의 격을 드높이고 있다.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기개가 넘치면서도 섬세하거나, 세밀하면서도 통 크게 휘몰아친다. --- 주강현(민속학자·제주대 석좌교수) 대하역사소설 『삼한지』, 역사의 현장과 만나다 삼국시대 웅혼한 대장정의 서사시인 『삼한지』를 읽도록 해야 한다. 우리 문학사는 『임꺽정』과 『토지』와 『장길산』을 잇는 대하소설 계보에 『삼한지』를 빠뜨릴 수 없을 것이다. --- 장석주 우리가 잊고 있었던 우리 역사와 영웅들을 깊이 있는 안목과 충실한 자료를 토대로 새롭게 해석한 『삼한지』는 ‘역사’와 ‘소설’을 동시에 포획한다.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이 사설조의 유장한 문체 속에 한데 어우러지며 ‘대하’를 이룬 『삼한지』는 문단은 물론 역사학자들도 인정한 보기 드문 역사소설이다. 이 작품은 출간 후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며 조선시대에만 머물러 있던 사극드라마의 지형을 삼국시대로 바꾸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기억의 편린으로만 흩어져 내려오던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대립과 경쟁, 그리고 마침내 통일에 이르는 100년간의 역사를 소설로 재구성한 『삼한지』. 그간 잊고 있었던 우리 민족의 웅혼한 기상을 유감없이 펼쳐 보여주는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어느새 영웅들과 함께 역사의 현장을 휘몰아가는 자신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어느 나라든 영웅은 모두 후대가 만든다. 그런 점에서 우리 선조들은 불행하고 우리도 불행하다.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우리에겐 너무 영웅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유례가 드문 우리만의 수천 년 역사가 있다 한들 후대에 널리 회자되지 않는 역사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작가의 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