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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의 망명
신라, 백제 구토를 치다 친당파와 석성 전투 선전포고 웅진을 멸하다 계림의 큰 별은 마침내 떨어지고 법민과 인문 마침내 평양으로 대반격 유신의 두 아들 마지막 전투 그 후의 일들 부록 고구려와 백제의 부흥운동 나당대전 연표로 보는 삼한지 설인귀에게 보내는 문무왕의 답신 역사책 엿보기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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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백제 땅을 차지한 당나라 도독부를 힘으로 평정하면서 나당동맹은 여지없이 깨진다. 당나라의 학정에 못 이긴 고구려 왕자 안승은 유민들을 이끌고 내려와 신라에 도움을 청하고, 신라왕 법민은 기인 강수의 보필에 힘입어 삼한 백성을 모두 포용하는 대동화합 정책을 펼친다. 노장 김유신이 죽자 자식을 당나라에 유학 보낸 친당파 장수와 신하들이 법민왕의 정책에 반대하여 대거 사직한다. 당고종 이치와 측천무후는 당에 오랫동안 숙위사로 머물던 법민의 아우 김인문을 신라왕으로 책봉하고 당나라 군사들을 대거 소집하여 법민왕을 치도록 명령한다. 마침내 신라와 당의 피할 수 없는 일대 결전,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건 나당 8년 대전이 시작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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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안승 _ 보장왕의 서자. 덕이 있고 의로움과 지략을 겸비하였다. 고구려 멸망 후 장수와 중신들을 모아 고구려 재건을 도모한다. 후에 신라로 망명해 문무왕에게서 보덕왕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설인귀 _ 당나라 장수다. 고구려가 망한 뒤 당이 평양에 설치한 안동도호부의 책임자로 부임해 유민들을 지배하고 다물군과 싸우며 신라를 압박한다. 측천무후 _ 당고종 이치의 두 번째 처이자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제. 성은 무(武)씨. 산서 사람으로 재색을 겸비했다. 훗날 고종이 죽은 뒤 중종, 예종을 폐하고 690년 스스로 제위에 올라 국호를 주(周)로 고친다. 말년에 장간지 등에게 폐위된다. 무측천, 혹은 무후로도 불린다. 검모잠 _ 고구려 말명 후 왕자 안승을 호위해 신라로 망명한다. 옛 고구려 땅을 되찾기 위해 신라와 당나라가 전투를 벌일 때 큰 공을 세우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뒤에 신라 왕실에서 벼슬과 품계를 받는다. 온사문 _ 고구려 장수. 온달의 후손이며, 검모잠이 아버지처럼 따른다. 절색의 며느리를 둔 탓에 여색을 탐하는 당나라 관리 마소삼에게 큰 고소를 겪는다. 부여융 _ 의자왕의 장남. 백제가 망한 후 당으로 끌려가지만 이치의 계획에 따라 당나라 관리인 웅진도독에 임명되어 돌아온다. 흑치상지와 사마 녜군의 보필에 힘입어 남몰래 사직의 재건을 도모한다. 사마 녜군 _ 백제의 마지막 책사. 사마는 직책명이다. 지략이 무궁무진하고 병법에 밝다. 백제 멸망 후 사직을 다시 일으키려는 부여융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지만 강수의 계략에 빠져 신라에 포로로 붙잡힌다. 흑치상지 _ 백제의 명장. 흑치사차의 막내아들이다. 웅진도독으로 귀국한 부여융을 도와 백제의 재건을 도모한다. 김풍훈 _ 무열왕 때 병부령을 지낸 명장 김진주의 아들이다. 문무왕에 의해 진주와 진흠 형제가 구족과 더불어 참수형을 당할 때 당나라 숙위학생으로 가 있어 화를 모면한다. 아버지의 원한을 풀 일념으로 설인귀의 향도(길 안내자)를 자청해 귀국한다. 신라의 문장가로도 이름이 높다. 강수 _ 본래 이름은 자두다. 머리 모양이 특이하게 생겨 강수란 이름으로 불린다. 가야 출신의 5두품인 내마 석체의 아들로 일찍부터 총명함이 돋보였고 문장에 뛰어나다. 김유신의 천거로 문무왕을 보필해 훗날 삼한을 통일하는 데 큰 공을 세운다. 지략과 용병이 탁월하나 사서에는 신라의 3대 문장가로 알려져 있다. 원술 _ 김유신의 둘째아들. 석문벌에서 당나라 군사에게 패하고 돌아오자 유신의 노여움을 사 쫓겨난다. 소나에게 의탁하여 지내다가 신라군이 평양성을 칠 때 백의종군하여 황산벌에서 탁월한 전공을 세운다. 소나 _ 신라의 용장 심나의 아들. 이근행이 이끄는 당군이 아달성을 약탈하자 원술과 함께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다. 시득 _ 김유신과 천관녀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로, 군승이라고도 한다. 스스로 신분을 감추며 지내다가 김유신이 죽고 나서 세상에 알려져 서해 수군을 통솔하는 요직에 오른다. 기벌포에서 설인귀가 이끄는 당군을 맞아 크게 물리치고 명실공히 8년 나당 대전의 종지부를 찍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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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우리 역사의 밤하늘에 한 무리 휘황한 별자리를 이룬 시대,
그 눈부시게 찬란한 우리 영웅들의 이야기다. 1천 수백 년 전에 이 땅에서 태어나 살다가 하늘로 돌아가 별이 된 사람들. 나는 사서(史書)의 행간과 이면에서 그들이 뿜어내는 영롱한 빛을 그대로 백지에 옮겨놓으려고 노력했다. 그 세월이 돌아보면 10년이 훌쩍 넘는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소년은 『삼국지』에 흠뻑 빠져 있었다. 관우의 목이 잘리고 장비가 죽었을 때는 밥도 먹지 않고 슬퍼했다. 제갈공명의 무궁한 지략에 심취했고 그의 명석함을 닮고 싶어 했다. 『삼국지』에서 얻은 감동은 자연스fp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다. 중국인이 부럽고 중국이란 나라가 대단해 보였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역사는 별 재미가 없었다. 우리 역사란 늘 어려운 도표였고 골치 아픈 암기 대상이었지 감동이나 재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삼국지와 중국인에 대한 부러움은 안타까움으로 바뀌어 갔다. 고작 80년에 불과한 중국 삼국시대(위, 촉, 오)는 국경을 넘고 대대손손 전파되는데, 700년이나 우리 땅에 존재했던 우리의 삼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는 왜 여전히 사료와 학문이란 울타리에 갇혀 있는 걸까? 우리나라에는 그만한 영웅, 그만한 역사가 없었을까?’ “우리는 이런 선조들을 그리워했다!” 김정산 대하역사소설 『삼한지』 199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정산 작가는 줄곧 이런 의문에 사로잡혔고, 경주여행을 하던 중 그곳에서 해답을 찾았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방의 온 벽을 백지로 도배했고, 거기에 그가 그토록 찾던 역사와 영웅들의 행적을 하나둘씩 채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지 10년, 마침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열하고 웅대했던 격전의 현장을 고스란히 소설로 되살려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서로 대립과 경쟁 속에 세력을 키워가는 580년대에서부터 신라가 통일을 완성하는 676년까지 약 100년간의 역사를 생생하게 복원한 대하역사소설 『삼한지』가 바로 그것이다. 솥발처럼 버티고 서서 대립한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그 역사를 휘몰아간 을지문덕, 연개소문, 장왕, 계백, 김유신, 선덕여왕, 김춘추를 비롯한 불세출의 영웅들. 우리는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수나라 백만 대군을 무찌르는 장면에 환호하고, 마동과 선화공주의 애틋한 사랑에 가슴 시리며, 신라 김유신의 기백과 김춘추의 외교술에 감탄하고, 망해가는 나라를 안타까워하며 가족을 죽인 채 전장에 나서야만 했던 계백 장군의 충정에 옷깃을 여민다. 그리고 마침내 한반도에서 당나라 군을 몰아내고 진정한 삼국통일을 이루는 장면에 가슴이 저절로 뜨거워진다. 치밀한 사료 조사와 역사인식 소설이라면 으레 작가가 마음대로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 김정산 작가는 각종 매체에서 역사를 멋대로 비틀고 왜곡하여 정사(正史)는 빛을 잃고 흥미로운 야사(野史)만 널리 회자되는 풍토를 개탄한다. 앞사람이 살아간 흔적과 기록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긴 작가는 『삼한지』를 집필하기 위해 고시 공부를 하듯 고대사를 읽고 수많은 자료와 사료를 조사했다. 고증을 위해 전국을 샅샅이 돌아다녔고, 귀한 사료의 원본이나 필사본을 얻으려고 몇 달씩 눈물겨운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삼한지』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국내 자료를 근간으로 하고 《당서》, 《수서》, 《정관정요》, 《일본서기》 등 중국과 일본의 사료들까지 섭렵하며, 4년에 넘는 사료 취재와 현장 답사, 6년에 이르는 집필 기간 등 작가가 10년 세월을 오롯이 바쳐 완성한 필생의 역작이다. 김정산은 10년 청춘을 바친 머리품과 발품으로 문헌사료와 역사현장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켰다. 사료와 사료의 공백, 사료와 현장 사이의 공백, 실존인물과 가공인물 사이의 간극이 자연스레 연결되는 것은 문헌사료와 역사현장을 체화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사료와 현장을 아는 사람들은 안다. _이덕일(역사학자·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맛깔스럽고 신명나는 글맛 “1천 궁녀란 소리는 터무니없는 숫자였으나 입에서 입을 거치며 1천 궁녀는 금방 2천 궁녀가 되고, 2천 궁녀는 또다시 3천 궁녀가 되었다. 임금 한 사람이 무려 3천 명이나 되는 후궁을 거느리고 산다는 거였다. 곰곰 생각해보면 삼척동자도 믿지 못할 말이었지만 본래 소문이란 거북이의 털도, 처녀 불알도 근거만 있으면 얼마든지 만들어내는 법이다.” --- 본문 중에서 『삼한지』는 한국소설에서 이문구나 김주영 이래 거의 명맥이 끊어진 사설조의 긴 문장을 재연하고 있다. 길게 늘어지는 사설 가락에 풍자와 해학이 흘러넘치고 장단과 운율이 저절로 따라가는 맛깔스러운 문장이 읽는 이를 들뜨게 한다. 김정산 작가는 근래 쓰이는 대부분의 문장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유입된 일본식 단어와 말법이고, 최근에는 영어와 영어 문장이 우리말과 글을 오염시키는 것을 우려한다. 작가는 홍명희가 『임꺽정』을 쓸 때까지 오롯이 살아 있던 우리글이 최남선, 이광수 이후 급격히 단문으로 변한 점이 애석하기만 하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술술 풀리는 입담이 살아 있는 『삼한지』를 읽다 보면 독자들은 별다른 의식의 충돌 없이 과거 역사현장과 마주치게 된다. 윤기가 흐르는 찰밥처럼 찰지고 유려한 문장들을 소설 곳곳에서 만나는 것은 읽는 이에게 크나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우리식’ 문장에 가락이 녹아 있고, 높낮이와 빠르고 늦음이 문향(文香)의 격을 드높이고 있다.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기개가 넘치면서도 섬세하거나, 세밀하면서도 통 크게 휘몰아친다. --- 주강현(민속학자·제주대 석좌교수) 대하역사소설 『삼한지』, 역사의 현장과 만나다 삼국시대 웅혼한 대장정의 서사시인 『삼한지』를 읽도록 해야 한다. 우리 문학사는 『임꺽정』과 『토지』와 『장길산』을 잇는 대하소설 계보에 『삼한지』를 빠뜨릴 수 없을 것이다. --- 장석주 우리가 잊고 있었던 우리 역사와 영웅들을 깊이 있는 안목과 충실한 자료를 토대로 새롭게 해석한 『삼한지』는 ‘역사’와 ‘소설’을 동시에 포획한다.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이 사설조의 유장한 문체 속에 한데 어우러지며 ‘대하’를 이룬 『삼한지』는 문단은 물론 역사학자들도 인정한 보기 드문 역사소설이다. 이 작품은 출간 후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며 조선시대에만 머물러 있던 사극드라마의 지형을 삼국시대로 바꾸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기억의 편린으로만 흩어져 내려오던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대립과 경쟁, 그리고 마침내 통일에 이르는 100년간의 역사를 소설로 재구성한 『삼한지』. 그간 잊고 있었던 우리 민족의 웅혼한 기상을 유감없이 펼쳐 보여주는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어느새 영웅들과 함께 역사의 현장을 휘몰아가는 자신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어느 나라든 영웅은 모두 후대가 만든다. 그런 점에서 우리 선조들은 불행하고 우리도 불행하다.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우리에겐 너무 영웅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유례가 드문 우리만의 수천 년 역사가 있다 한들 후대에 널리 회자되지 않는 역사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작가의 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