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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법으로 저항하라 제1부 빵을 위한 투쟁기 (Economy) -판자촌에 쏘아올린 작은 공 (구룡마을?잔디마을 사람들에게 거주이전의 자유라는 기본권이 있는가): 최중영 -1300일간의 해고 (콜트악기, 무단 정리해고에 관한 사연): 최종연 -배부른 자여, 비정규직에게 날개를!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 직원 정규직으로 태어나다): 박주민 제2부 사회 속에서 행진하라 (Society) -떡값검사를 떡값검사라 부를 수 있는 이유 (진실적시에 대한 명예훼손 vs 중립보도의 원리, 노회찬 사건) : 손익찬 -집회하러 상경하는 농민을 저지한 경찰은 유죄? 무죄? (가상적 범죄에 대한 손해배상 vs 공무집행방해, 상경저지 사건): 박주민 -대강의 정의가 상식이 되는 나라, 좋지 아니한가? (망원동 수재사건과 김포공항 소음소송을 통해 본 한국식 집단소송): 박경신 -아름다운 밤이에요! (밤이 두려운 법, 그 법을 바꾼 시민민주주의): 박주민 제3부 환경, 진짜 눈물의 공포 (Environment) -90% 진행된 공사도 중단될 수 있다 (새만금 사업을 둘러싼 법정공방, 개발가치 vs 환경가치): 허진민 제4부 틀어진 역사 바로잡기 (History) -출가한 딸은 제사를 지내면 안 되나? (종중의 자격을 두고 벌이는 혈연집단의 법적 공방): 허진민 -종잇조각만으로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없다 (조서재판의 편리성 vs 공판중심주의의 진정성): 양홍석 제5부 미디어 민주주의 (Culture) -저작권, 어린 딸의 재롱잔치를 위법으로 만들다 (부당한 저작권 행사에 책임을 물은 세계 최초의 판례, 손담비 UCC사건 ): 최중영 -보호할 가치가 없는 표현은 없다 (대한민국 표현의 자유의 현주소, 미네르바 사건) : 박경신 제6부 종교, 진리, 그리고 인권 (Religion) -학내 종교의 자유, 그 까칠함의 벽을 넘다 (교복 입은 자, 신앙마저 입혀져야 하는가? 강의석 사건): 양홍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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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 책의 저자입니다.
2011-01-06
안녕하세요, [호모 레지스탕스]에서 "1300일의 해고"를 작성한 최종연입니다.
본 책의 저자분들을 만나보고 싶지 않으세요? [호모 레지스탕스] "저자와의 만남"이 1월 8일 오후 3시 교보문고 광화문점 '배움터'에서 있습니다. 미네르바 처벌의 위헌성을 강력하게 주장한 박경신 교수, 야간집회금지 위헌판결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박주민 변호사, 그리고 제가 강연자로 나서서 책에서 못다한 이야기들을 할 예정입니다. 법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하시는 분들, 기존의 법논리와 법판단이 부당하다고 느끼시는 분들, 이 책에 대해 질문이 있으신 분들의 많은 참석 기다리겠습니다. 1월 8일에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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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저항하라 中」
법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군림했을 뿐이다. 이제 그 법을 우리 것으로 만들 때가 왔다. 법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방법은 하나다. 우리가 그 법 위에 앉는 것이다. 우리의 도덕과 정의감을 법 위에 앉히는 것이다. ---p.4 「판자촌에 쏘아올린 작은 공 中」 판자촌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들이 무단점유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강제로 이주당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당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거주이전의 자유에는 단순히 원하는 곳으로 거주를 이전할 수 있는 자유뿐 아니라 현재 살고 있는 거주를 이전하지 않을 자유도 동시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p.15 서울행정법원은 토지 소유자의 사용 승낙에 문제가 있다는 사유에 대해서, 주민등록 전입신고 수리를 거부할 정당한 이유가 아니라고 보았다. 또 서 씨와 같은 사람들의 주민등록 전입신고 수리를 거부하는 것은, 행정관청이 주민들에게 위장전입과 불법을 조장하고 주민들을 복지의 사각지대 안에 방치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pp.23~24 「1300일간의 해고 中」 정리해고는 본질적으로 사용자가 부담해야 하는 경영상의 위험이나 기업 외부에서 발생하는 경제적인 요인 때문에 시행된다. 근로자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정리해고가 시행되면 근로자는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이 일하고 의지하던 일터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다. ---p.29 콜트악기는 계속되는 경영 악화의 확대를 막고 회사를 회생시킨다는 이유로 경영상의 해고 계획을 발표, 실시할 계획을 노동조합에 통보한 후 38명의 직원을 전격 해고했다.---pp.33~34 법원은 재무제표와 회사 내외의 사정을 모두 고려하여 정리해고를 해야 할 정도의 경영상의 필요를 부정했다. ---p.35 이번 콜트악기 판결에서는 단순히 도산의 위험이 있거나 장래 막연한 경영상의 위기라는 이유로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충족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난 것이다. 법원은 정리해고로 불안정한 지위에 놓이는 근로자의 처지에도 정리해고가 정당화될 수 있을 만한 극도로 엄격한 ‘긴박함’을 요구했다. 이는 재판부가 기업을 주주이익 우선 모델보다 이해관계자 모델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중략) 기업을 이해관계자 모델로 정의하고 정리해고로 인해 위태로워지는 근로자의 처지를 고려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p.37 「배부른 자여, 비정규직에게 날개를!」 현대자동차는 노동의 수량적 유연성을 구현하는 방편으로 사내하청을 적극 이용해왔다. ...(중략) 그러나 IMF라는 경제위기로 인력 조정의 필요성에 직면하자 사내하청 업체의 근로자들을 최우선 해고대상으로 삼았다. ...(중략) 해고의 부당성 및 현대자동차의 직접고용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의 쟁점은 첫째, 3년 넘게 사내하청 직원으로 일한 근로자들과 원청업체인 현대자동차 사이에 직접고용 관계가 있었는지, 직접고용 관계가 없었다면 이를 도급으로 볼 것인지, 파견으로 볼 것인지 셋째, 파견으로 본다면 불법파견에 해당하는데 현대자동차가 불법파견된 근로자들을 직접고용할 의무가 있는지에 있었다.---p.46 대법원은 대규모 제조업체에서 일반화된 사내하청을 도급이 아닌 파견으로 보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제조업 사내하청이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모습들을 그 판단의 근거로 삼음으로써 여타의 사내하청 근로자들 역시 파견법에 의해 보호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p.51 「떡값검사를 떡값검사라 부를 수 있는 이유 中」 노회찬 의원은 입수한 X파일의 녹취 내용을 근거로 ‘삼성그룹이 명절 때마다 검사들에게 떡값을 제공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같은 내용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떡값검사 중 1인으로 지목된 안강민 씨는 노 의원을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명예를 훼손했다며 검찰에 고소했다.---p.63 제2심 법원인 서울고등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인터넷 홈페이지 게재에 의한 명예훼손 및 통신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보도자료 배포에 의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국회의원의 면책 특권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공소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중략) 사실 이 판결은 획기적이었다. ...(중략) 요컨대 권력비리에 대한 단서가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 그 단서가 제시하는 사실이 허위인지 아닌지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그 단서를 공개한 사람이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처벌될 수 없다는 것이다.---pp.64~65 공익적인 정보의 공개는 그 정보가 불법적으로 취득되었다 할지라도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판결이었다.---p.69 「집회하러 상경하는 농민을 저지한 경찰은 유죄? 무죄? 中」 국가의 강제력을 규정한 법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문제가 과연 어느 시점부터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다. 가장 강력한 국가 강제력인 형벌을 다루는 헌법의 역사는 이 폭을 합리적으로 줄여나가는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중략) 이렇게 폭이 좁혀져 간 이유는 인간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기 위해서 인간의 행동 중 범죄에 직접적인 연관을 갖는 위험한 행위에 한하여 처벌과 금지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p.77 「대강의 정의가 상식이 되는 나라, 좋지 아니한가?」 집단소송제도는 매우 적은 수의 원고가 불특정 다수인 잠재적 원고들로부터 위임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을 대표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말한다. 그 소송을 승소나 합의로 이끈 후에 불특정다수에게 판결액이나 합의금을 나눠주는 제도이다.---p.84 피해의 인식은 당연히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억압을 참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은 고난을 피해라 생각하지 않고,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삶의 일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피해를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면 사회는 발전하지 않는다.---p.88 대강의 정의(rough justice)는 집단소송제도의 핵심요소이다. 이처럼 간접적인 피해 입증을 허용하지 않아 일일이 피해의 종류와 정도를 입증해야 한다면, 동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을 대표할 수 있는 집단소송의 취지를 살릴 수 없다. 집단소송은 전적으로 분산이익의 구제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사법효율의 문제도 있다. ...(중략) 우리나라 법원은 대강의 정의가 뿌리내릴 수 있는 적절한 토양이다. 적은 액수의 피해를 비교적 잘 인정해주는 편이기 때문이다.---p.94 「아름다운 밤이에요! 中」 현행 집시법 제10조에는 일몰 후의 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중략) 이 조항에 근거해 물리적 충돌이 전혀 없이 평화롭게 진행된 집회마저도 불법집회로 간주되었고, 결국 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현행범으로 연행되었다.---p.107 과연 우리나라 집회 문화가 폭력적일까? 야간집회라고 해서 폭력이 난무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는 것은 집회현황에 대한 경찰청의 통계에 비추어 봐도 터무니없다.---p.108 미국은 ...(중략) 야간집회 자체를 지자체의 공공질서 유지라는 이익으로도 제한할 수 없는 본질적인 권리로 본다. 일본, 독일, 영국의 경우 일몰 후 집회에 대한 규제가 아예 없다. ---p.113 주로 야간에 집회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현대인들이기에 야간집회를 막는 것은 시민의 집회 참가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이다. ---p.114 「90% 진행된 공사도 중단될 수 있다 中」 새만금 공사의 시작은 1970년 초였다. 당시 간척 예정지로 조사되었다가 1980년대 초 사업 시행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중략) 대체 농지 조성을 목적으로 한 새만금 사업은 계획 추진 단계에서부터 각종 이견이 난무했다. ...(중략) 가장 큰 문제는 환경문제였다.---pp.126~127 새만금 사업의 시행지역이나 관련 환경영향 평가의 대상 지역주민들, 환경단체 회원, 일반인 등은 공사를 중단해 줄 것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중략) 이에 1심 법원은 ‘방조제 공사를 중지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중략) 재판을 통해 대규모 국책사업을 그것도 90% 이상 진행된 상황에서 중단시킨 것은 우리나라 사법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중략) 그러나 1심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은 오래가지 않았다.---p.130 새만금 사건 판결을 통해 상당히 진행된 공공사업의 경우 사법부를 통해 정책의 위법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그리고 공공정책의 타당성 여부에 대해 과연 사법부가 이를 판단대상으로 삼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도 고려해보아야 할 것이다.---p.136 사건의 경과를 보면서 우리는 개발가치와 환경가치의 대립이 필연적인 대규모 공공개발정책에서 꼭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확인하게 된다. 그것은 ‘사업을 구상하는 단계에서부터, 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p.143 「출가한 딸은 제사를 지내면 안 되나? 中」 종원의 자격을 성년 남자로만 제한하고 여성에게는 종원의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종래관습에 대하여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던 법적 확신은 상당 부분 흔들리거나 약화되었다. 무엇보다 헌법을 최상위 규범으로 하는 법질서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한 가족생활을 보장하고, 가족 내의 실질적인 권리와 의무에 있어서 남녀의 차별을 두지 않는다. ...(중략) 성년 남자만을 종중의 구성원으로 하고 여성은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종래의 관습은 변화된 우리의 전체 법질서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정당성과 합리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p.153 「보호할 가치가 없는 표현은 없다 中」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허위사실유포에 대한 처벌을 인정하는 입장과 미네르바를 옹호하는 입장, 그리고 미네르바의 항변 모두 위험한 주장이라고 보았다. 이들의 주장은 모두 기본적으로 소위 반공익적인 허위사실에 대한 처벌을 인정하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명백히 허위도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 ---p.198 「학내 종교의 자유, 그 까칠함의 벽을 넘다 中」 종교적 중립성이 유지된 보편적 교양으로서의 종교교육의 범위를 넘어서 특정 교리를 전파하는 종교교육은 ‘종파교육’으로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이 판결은 종립학교에서 폭넓게 행해진 강제적인 종교교육에 경종을 울렸다. ---p.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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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레지스탕스
저항하는 인간, 법체계를 전복하다 인권에 대한 정의가 순진한 낭만가로 울리는 절망의 시대. 그 시대의 불의함에 저항하며 현실을 개선하고 법체계를 뒤바꾼 헐벗은 혁명가들의 리얼 스토리. 저항하는 인간, 호모 레지스탕스. 왜 지금 여기의 우리는 호모 레지스탕스여야만 하는가? 세상사의 초점이 ‘인간’이 아닌 시절이 있었다. 봉건적 사회질서와 거대한 종교담론 속에서, 세계를 구성하고 분투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지위가 바닥을 친 중세암흑기. 인간을 여타의 동물과 차별짓고 종적인 승자로 만든 ‘지성’조차 신을 위한 담론의 사용인으로 전락한 시대적 상황을 두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렇게 말했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고. 그로부터 수세기가 흐른 지금, 우리는 꽤나 인간만이 소중해진 시절에 살고 있는 듯하다. 무리가 아닌 것이 인류는 인본주의를 근간으로 지성을 해방시킨 르네상스를 거쳐왔고, 크고 작은 사회과학적 혁명을 일구어왔으며, 근대성과 인륜성을 항변하는 법체계를 무고한 이들의 피와 땀을 발판으로 발달시켜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어찌된 일일까. 아퀴나스의 명제가 낯설지 않다. 세상의 중심이 ‘인간’이 아닌 인간 저 너머의 무언가로 좁혀진 시절의 명제. 인간이 세계를 구성하고 경작하는 주체로서 오롯이 설 수 없던 시절의 명제에서 구태가 나지 않는다. 약간의 수정만 거치면 오히려 공감은 백배가 된다. 인간은 권력의 시녀라고. 인간을 인간이라 부를 수 없게 만드는 권력 앞에서, 인간성을 앗아가는 그 거대한 폭력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것은 저항이다. 저항하는 자만이 오롯이 인간으로 바로 설 수 있다. 거꾸로 가는 민주주의를 바로 잡고, 인간을 권력의 시녀가 아닌 삶의 주인으로 정립한 13편의 이야기 거꾸로 가는 역사를 바로 잡은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이다. 시쳇말로 오늘을 살아야 하므로 내일을 꿈꾸기 어려운, 없는 사람들이다. 근대적 법체계에 사상적 공언을 한 헤겔의 언명에 따라 객관화된 이성적 의지가 외연을 가지고 나타난 것이 법이라면, 식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난해한 뜻을 가져서인지 법은 결코 가난한 사람의 편에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편견을 깨고 법은 가난한 자들에게 왔다. 헐벗고 굶주려 상처받기 쉬운 호모 루덴스의 저항을 통해 법은 그들의 편에 설 수 있었다. 법의 민주화는, 곧 역사의 진보는 저항하는 인간의 투쟁으로 가능할 수 있었다. 부당한 권력과 법의 민주화를 위해 분투하는 파수꾼들이 들려주는 13개의 이야기의 뿌리는 동일하다. 시대착오적인 법에 대항하는 인간의 정신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가상의 범죄자로서 법 앞에 유린당하는 인간, 학칙 앞에 애당초 종교적 자유를 박탈당한 인간, 출가한 자제로서 더 이상 정당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바로 설 수 없는 인간, 새로운 소통의 창구로 추앙된 인터넷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를 거세당한 인간 등의 이야기는 픽션이 아니다. 부당한 만큼 서슬이 퍼런 법으로부터 소외당한 인간의 실재하는 삶이다. 다행인 것은 그들의 저항이 공허한 외침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권리의 쟁취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부당한 법 앞에 저항‘함’으로서, 즉 ‘함’(doing)에 의해, 권력의 시녀가 아닌 독자적인 삶의 주인으로서 바로선 사람들의 이야기는 정치적 의사표현의 활성화가 시급한 우리 사회에 깊고 멀리 울려퍼져야 하지 않을까. 《호모 레지스탕스》는 어떤 책인가? 전 세계의 시민은 왜 저항이라는 행위에 몰두하는가? 저항함으로 정의를 구현하고자 이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 《호모 레지스탕스》(레지스탕스 총서1)는 비정규직, 도시빈민, 농민, 여성, 미성년 학생 등 사회적 소수이자 약자인 사람들이 저항을 통해 현실을 개혁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들이 개혁한 현실은 구체적이고도 제도적이다. 그들은 부당한 현사실적 상황과 그 상황을 제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법, 양자 모두에 저항하고 마침내 법을 창조함으로써 역사의 진보를 추동했다. 그들의 분투는 결과적으로 정의가 들어설 수 있는, 상식적이고 체계적인 정의의 토대, 즉 대강의 정의(rough justice)를 만들어 낸 것과 다름없다. 그들의 이야기는 오래된 것이 아니다. 2010년이란 아주 가까운 시점을 공유하고 있다. 그 가까운 역사를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법조인 7명이 이야기한다. 경제, 사회, 환경, 역사, 문화, 종교라는 인간의 삶 전반을 아우르는 줄기를 통해 대한민국의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자리했던 사건들을 정리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시대의 요구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용기있는 행위가 법체계의 긍정적인 변화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저절로 깨닫게 된다. 부당한 현실에 저항이라는 행위로 맞서지 않는 인간은 사회적인 무생물과 다름없다는 사실과 함께. 제1부 빵을 위한 투쟁기는 경제의 영역에서 다루어 질 수 있는 이야기다. 시민으로서의 기본권을 정당하게 행사할 수 없는 도시빈민들의 고단함이 짙게 묻은 장이다. 「판자촌에 쏘아올린 작은 공」은 거주이전의 자유와 전입신고라는 행정제도가 극빈층을 사회적 유령으로 만들고 있음을 고발한다. 「1300일의 해고」는 정리해고라는 일방적인 사용자의 횡포를 ‘콜트악기 정리해고에 관한 판결’을 통해 정치하게 기술하고 있다. 「배부른 자여, 비정규직에게 날개를!」는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를 일방적으로 해고한 현대자동차 사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헐벗은 사람들이 거대한 권력 앞에 기죽지 않고 짱돌을 들었을 때, 짱돌은 결코 그들의 발등을 찍지 않음을 보여준다. 제2부 사회 속에서 행진하라는 사회적 영역의 이야기이다. 「떡값검사를 떡값검사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삼성 비자금과 연루된 떡값검사를 공개한 노회찬 의원의 명예훼손죄를 다룬다. 「집회하러 상경하는 농민을 저지한 경찰은 유죄? 무죄?」는 한미 FTA 반대집회를 위해 입성한 농민들을 폭동을 일으킬 ‘예정된’ 주체라 가정하고 그들에게 공권력을 행사한 경찰의 섣부른 진압, 그 경솔함을 고발하고 있다. 「대강의 정의가 상식이 되는 나라, 좋지 아니한가?」는 망원동 수재사건과 김포공항 소음소송을 통해 단수가 아닌 복수로 움직이는 시민의 힘이 얼마나 큰지 살피고 있다. 「아름다운 밤이에요!」에서는 촛불시위가 범국민적 항의의 수단으로 받아들여진 이후 야간집회를 법적으로 금지한 사정이 기록되어 있다. 제3부 환경, 진짜 눈물의 공포는 환경의 영역인데, 새만금 사업의 해악성을 알린 꾸준한 움직임이 거의 완공된 공사조차 잠시나마 중단시킬 수 있었음을 「90% 진행된 공사도 중단시킬 수 있다」를 통해 그리고 있다. 제4부 틀어진 역사 바로잡기는 역사의 영역이다. 관습적으로 유지되어온 기조가 명문화되었을 때 인간을 기본권을 얼마나 침해할 수 있는지 「출가한 딸은 제사를 지내면 안되나?」,「종잇조각만으로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없다」를 통해 비판하고 있다. 전자는 전통적인 남녀차별의 풍습 때문에 토대집단인 ‘가족’으로부터 소외당한 여성의 권리를 다루고 있다. 후자는 일제강점기의 권력의 편의를 위해 사용된 조서제도가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는 법적 싸움에서 얼마나 배반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는지 풍부한 실증을 통해 검증하고 있다. 제5부 미디어 민주주의는 문화의 영역이다. 유명가수의 노래와 춤을 따라한 어린 딸의 동영상을 올린 것이 저작권 침해 판정을 받아 지리한 싸움을 해야 했던 아버지의 이야기가 「저작권, 어린 딸의 재롱잔치를 위법으로 만들다」에 담겨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표현의 문제를 다룬 「보호할 가치가 없는 표현은 없다」에서 한때 경제대통령이라 회자되며 전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미네르바 사건의 진상을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 6부 종교, 진리, 그리고 인권은 종교적 영역의 이야기를 다룬다. 「학내 종교의 자유, 그 까칠함의 벽을 넘다」에서는 대광고등학교 재학 중 강제적인 종교교육에 염증을 느끼고 목숨 걸고 항거한 강의석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레지스탕스 총서를 시작하며 포장된 현실은 젊고 아름답지만, 실상은 늙고 추하다. 권력이 중심에 선 현실은 더욱 그러하다. 다양성을 본질로 하는 현대사회에서 권력은 다양한 모습으로 출현한다. 자본으로, 계층으로, 계급장으로, 부당한 명목으로 자리잡아온 관습 등으로. 유형과 무형의 경계가 없는 권력은 형태의 무제약성으로 인해 생활 곳곳에 침투해 있다. 수많은 권력의 양태는 하나의 특질로 수렴될 수 있는데, 바로 폭력이다. 인간이 권력의 시녀로 추락한 시대. 법체계마저 권력의 좌우에서 추락한 인간의 지위를 돋는 시대. 거꾸로 가는 민주주의를 바로 잡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저항이다. 저항만이 퇴행하는 역사의 물꼬를 바로 잡을 수 있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본성적 정의에 근거할 때, 부당한 현실에 저항하지 않는 인간은 사회적 무생물과 다름없다. 살아도 산 것 같지가 않다. 그것이 자율이건 타율이건 마찬가지다. 레지스탕스 총서는 저항을 통해 정지당한 희망에 엔진을 단 혁명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