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k Thilli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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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검실에 처음 들어갈 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강렬한 특수 조명 아래 길게 누워 있는 벌거벗은 시신을 입구에서부터 아무런 여과 없이 대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절개되고 파헤쳐진 인간의 육체는 피의 계곡이나, 지진이 훑고 지나간 유기체의 잔해와 같은 느낌을 준다. --- p.92
그는 창가로 다가갔다. 센 강가에 달빛을 받으며 서 있는 TF1 방송국의 탑이, 아직까지 불이 켜져 있는 몇몇 사무실과 함께 이미지와 수익성에 굶주린 거대한 짐승처럼 보였다. 누가 이 시간까지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빅은 이런 광경을 진정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철판과 콘크리트, 매연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지 자문해보았다. --- p.104~105 “그거 아시나요. 이 사람들을 죽게 만든 건 비단 질병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 그래요? 그럼 또 뭐가 있죠?” “다른 이들의 시선입니다.” --- p.137 “점잖은 가장 흉내를 내며 살아가는 당신 방식과는 거리가 멀겠지, 안 그렇소? 하지만 인간의 본능은 어쩔 수 없는 거란 말이지. 우리 중에는 괴물을 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가까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세상 사람들은 얼굴이 일그러졌거나 타버린 사람들을 배척하지만, 다행히 이곳에는 그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지.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나?” --- p.203 “학교를 졸업한 후로 많은 것이 변했다네. 나이가 들어갈수록 생각은 점점 더 이성적으로 변하지. 곡선은 직선이 되고, 무지개는 태양광선의 회절回折 현상으로, 별은 원소의 합성에 의해 에너지를 발산하는 천체로 인식되는 것처럼. 좀 유감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 p.207 “뫼비우스의 띠?” 자키는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무한대의 상징을 만들어 보였다. 꼬여 있는 8자 형태의 띠를. “경계가 하나밖에 없는 흥미로운 위상수학적 도형이지. 한번 발을 내디디면 결코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길과 같은 거야. 다시 말해 자네는 무엇을 하든 반복해서 똑같은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거지. 끝없이 다시 시작하면서 말이야.” --- p.213 “난 우리의 자유의지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네. 자신의 운명을 의지로 바꿀 수 있다고 말이야. 난 결코 뫼비우스의 띠 같은 것 위에서 살아가지 않을 거야. 난 꼭두각시가 아니니까.” --- p.217 과학수사대의 실험실은 구체적이고 조용한 동작들과 움직임들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각자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알고있었다. 범죄현장에서 수집한 증거물들이 이곳 지하 실험실에 도착하면 적절한 부서로 나뉘어 전달된다. 탄도학, 마약, 화재 및 폭발물, 독극물학, 물리화학, 생물학…… 그러면 그들은 그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 분석해낸다. 살인자의 범행 동기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가 현장에 남긴 그의 일부, 즉 범인이 은밀하게 남긴 물질적인 증거를 찾아내는 것이다. --- p.245 빅은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듯한 열기를 뿜어내는 그곳을 유심히 관찰했다. 범죄를 퇴치하기 위한 기술적, 인간적 노력이 그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한 사람이 살인을 저지를 때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 수백만 유로에 달하는 장비와 수많은 이들의 노고가 동원된다는 것을 살인범은 생각지 못할 터였다. (246쪽) “문학이나 영화에서도 미묘하고 무의식적인 방식을 통해 그 두 사람을 연관지었던 게 사실입니다. (...) 프로테우스 증후군 같은 희귀 질병에 걸린 불행한 사람과 인류가 배출한 흉악한 살인범을 무조건 관련짓는 건 깊이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말할 수는 있겠지만, 메릭이 스물일곱 살에 단지 질병 때문이 아니라 절망감으로 인해 죽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 p.276 “요즘 사람들은 주름 하나라도 없애려고 안달하면서 보톡스로 입술을 부풀리기도 하죠. 하지만 이곳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은 무서운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건강한 몸을 가졌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고 이곳에서 나가게 되죠.” --- p.277 “당신이 찾는 남자는 괴물이 아니란 것만 알아두시오. 교통사고로 모습이 일그러진 이들을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다른 이들의 불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바로 괴물이오. 이 사회가 곧 괴물이란 말이오. 따라서 사회 전체가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요.” --- p.449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 고통은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몸의 기관을 지켜내기 위해, 외부로부터 공 격을 받았을 때 우리에게 경고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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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통해 미래를 보는 살인 용의자, 그리고 가족을 지켜야 하는 수사관
운명의 순환 고리 속에서 끊임없이 현실로 되살아나는 악몽 영화판에서 공포영화 촬영용 괴물이나 인체 모형을 제작하는 일을 하는 스테판 키스메는 오랜 시간 환영 혹은 망상에 시달려왔다. 설명할 수 없는 막연하고도 강렬한 이미지에 홀린 듯, 그는 잘 달리던 기차의 탈선 사고를 야기했고, 자동차 사고를 냈다. 그는 기차 사고가 일어나기 전 기차가 탈선하는 환영을 보았다고 했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기차를 강제로 멈추려 했지만, 오히려 비상제동장치를 작동시키는 바람에 브레이크가 고장나버린 기차는 끝내 레일을 벗어났고, 그 사고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자동차 사고도 마찬가지였다. 운전중 데자뷰처럼 떠오른 이미지에 놀라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아 차가 미끄러졌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어린 소녀가 차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예견된 죽음을 막고 싶었지만 비극을 막으려 할수록 예정된 비극이 운명처럼 찾아왔다. 차라리 그가 달리는 기차를 세우려 하지 않았더라면, 언덕길에서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 그는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지만 망상으로 인한 정신과 치료와 약물 복용을 계속하며 형사처분보다 무거운 죄책감과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마지막 자동차 사고가 있은 지 두 달 후, 이전의 환영들과는 달리 너무도 생생한 이미지들이 그의 꿈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섬광처럼 나타난 그 꿈속에서 그는 붉게 물든 손을 떨며 울고 있었다. 그리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살해된 채 발견된 멜린다 그라프라는 어린 소녀에 대한 소식을 들으며 몹시 불안해했다. 무엇보다, 뉴스가 전하는 유력한 용의자의 인상착의가 우연의 일치로 치부하기엔 그의 모습과 너무 흡사했다. 꿈에서 깨어나 예사롭지 않은 느낌에 사로잡힌 그는 꿈속의 단서를 추적해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꿈이 머지않은 미래를 보여주고 있음을 확신한다. 그 꿈이 정말 가까운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 거라면, 이번만은 예견된 죽음으로부터 소녀를 살리고 싶었다. 살인 용의자가 된 누명을 벗기 위해라도 스스로 꼭 소녀를 죽인 진범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는 비극을 멈추기 위해 단편적인 꿈의 조각들을 맞춰가며 미래의 누군가가 꿈을 통해 말하려 하는 진실을 파헤쳐간다. 그러던 중 연쇄살인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청 강력반의 수사관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마치 이 또한 정해진 운명의 한 면인 것처럼. “난 결코 뫼비우스의 띠 같은 것 위에서 살아가지 않을 거야. 난 꼭두각시가 아니니까.” 전직 지방경찰청 부청장이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형사가 된 파리 경찰청의 신참 수사관 빅 마르샬. 사격과 격투는 낙제에 가깝지만 심리학 점수 하나만으로 살인사건 전담반에 배치된 그는 주차위반 딱지를 붙이고 소매치기나 뒤쫓는 생활 대신 더 완벽한 수사관이 되겠다는 야망을 이루기 위해 햇살 따사롭고 평화로운 아비뇽을 떠나 삭막한 파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연일 쏟아지는 사건에, 임신한 아내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한다는 자격지심, 그를 ‘낙하산’이라 부르며 조롱하는 동료들까지 강력반 생활은 녹록지 않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디던 어느 날, 드디어 파리 근교 생투앙에서 벌어진 전직 포르노 스타의 살인사건 수사에 투입된다. 사건이 벌어진 곳은 산업 지대 외곽 한 영화사 인근의 창고 건물로, 피살자는 옷이 모두 벗겨진 채 혀와 입술, 손가락 끝마디 등 신체에서 가장 민감한 감각기관이 모두 잘려나가 있다. 피살자 몸에 난 수많은 바늘 자국, 시신 주변에 놓인 고무 인형 열여덟 개와 침대 머리맡에 적힌 의문의 숫자, 잔인한 살인 장면을 촬영했을 법한 카메라 삼각대 자국 등 사건현장은 기이하게 연출된 듯하다. 현장에서 범인이 사용한 백묵 조각과 피 묻은 범행 도구 등이 발견되었지만 수사의 실마리는 여전히 묘연하다. 다만 피살자의 애인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빅 마르샬은 이 사건이 아크로토모필리아, 즉 신체가 절단된 상대에게 성욕을 느끼는 성도착증과 관련이 있음을 밝혀낸다. 성도착자들이 모이는 모텔을 수사하던 수사관 빅 마르샬은 그곳에서 우연히, 아니 정해진 운명처럼 스테판 키스메를 만나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실타래에 얽히게 된다. 더욱 악랄한 방식으로 살인을 이어가는 연쇄살인마의 정체, 어린 소녀를 죽인 또다른 살인자, 곧 태어날 빅의 아기와 그들 가정에 닥칠 비극이 스테판 키스메의 꿈을 통해 전해지며 두 사람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한쪽으로 이어진 운명의 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의 교신을 시도한다. 악몽처럼 시작된 스테판의 꿈은 비극을 막기 위해 미래에서 보내온 간절한 신호가 아니었을까. 꿈으로 연결된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포기하지 않는다면, 과거는 바뀔 수 있을까? “최악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요.” “문학이나 영화에서도 미묘하고 무의식적인 방식을 통해 그 두 사람을 연관지었던 게 사실입니다. (...) 프로테우스 증후군 같은 희귀 질병에 걸린 불행한 사람과 인류가 배출한 흉악한 살인범을 무조건 관련짓는 건 깊이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말할 수는 있겠지만, 메릭이 스물일곱 살에 단지 질병 때문이 아니라 절망감으로 인해 죽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276쪽) 영화 속 괴물이나 인체 모형을 제작하는 스테판의 직업, 절단 장애인에게 끌리는 피살자의 성적 취향, 신체를 훼손하는 살해 방식 등을 통해 프랑크 틸리에는 이 작품 속에서 ‘신체의 기형’ ‘괴물성’ ‘비정상적인 존재’ 등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작가는 엄청난 자료 조사를 통해 이름조차 생소한 수많은 선천기형과 희귀한 질병들을 조명하며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 사고로 인한 부상 때문에 사회가 규정한 ‘괴물’이 되어버린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고립과 배척, 타인의 차가운 시선과 냉대 등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이들이 겪었을 정신의 고통, 육체의 고통보다 더 잔인한 정신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간의 추악한 면을 돌아보게 한다. 언론평 이토록 어둡고 잔혹한 이야기를 프랑크 틸리에만큼 훌륭하게 엮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탁월하고 복합적이며,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독자를 전율케 한다. -엘르 빈틈없이 정확하고 치밀한 플롯, 열광할 수밖에 없는 리얼리즘과 박력 넘치는 문체의 결합. 르 피가로 마가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