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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무슨 일을 하시나요?” 01 일요일 오후 / 환승 02 일 / 성공 03 행복 04 저커버그의 옷장 05 돈 “전방에 과속 방지턱이 있습니다” 06 걱정 말아요 그대 07 혼자 08 사랑 / 결혼 09 스마트폰 10 자연 “삶은 대부분 동어반복” 11 여행 12 집 13 음식이라는 심리학 14 나는 누구? 15 정상正常 “우리는 본능이 과대평가된 시대에 살고……” 16 나르시시즘 17 슬픔 / 우울 18 분노 19 중력 / 낭만주의 20 습관 / 예술 “껍데기가 단단할수록 속은 허하다” 21 섹스 22 무기력 23 미루기 24 미신迷信과 미신美信 25 죽음 / 비관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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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만 되면 우리가 저마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일과 월요일부터 해야 할 일 사이에 틈새가 커 보이는 까닭은 뭘까. 역설적이지만 그것은 일터에서 행복감을 느껴야 한다는 그릇된 기대 때문이다. 사람들이 일을 하면서 즐거울 수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된 역사는 매우 짧다. 18세기 중반 이전까지 일은 그저 먹고살기 위해 피할 수 없는 고역이었다.
---「일요일 오후/환승」중에서 일요일의 우울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심각하게 다뤄야 할 전염병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월요일이 오기도 전에 일요일 오후부터 우리는 자신을 들볶는다. 일을 준비하느라 정신을 예열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 패턴은 매주 반복된다. 하지만 희소식도 있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의 환승이 꼭 우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거꾸로 월요일이 반가울 수도 있다. 집이나 어떤 삶의 문제에서 도망쳐 근심을 잊고 싶을 때도 더러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일이라는 과제는 사랑이나 결혼 생활에 비하면 훨씬 더 수월하다. ---「일요일 오후/환승」중에서 장 밥티스트 르뇨가 그린 ‘회화의 기원: 양치기의 그림자를 더듬어가는 디부타데스’(1785)는 사랑에 빠진 남녀가 헤어지는 순간에 여자가 남자의 그림자 윤곽을 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떠난 뒤에도 그를 붙잡아두기 위해서다. 기억은 불확실하고 믿을 만한 게 못 되니까. 예술은 어쩌면 그래서 존재한다. ---「사랑/결혼」중에서 타인의 스마트폰보다 더 흥미롭다는 것을 증명하기. 이것은 책을 덜 읽는다거나 기억력 감퇴 못지않게 위중한 문제다. 현대적인 관계의 시험대일 수 있다. 일종의 유체이탈이랄까. 우리는 스마트폰 때문에 ‘몸은 이곳에 있지만 정신은 이곳에 없는’ 상황에 빠지거나 그런 상대방을 목격한다. ---「스마트폰」중에서 캠핑은 집 밖에 또 다른 안식처를 짓는 행위와 같았다. 밖으로 나가보니 동이 트고 있었다. “방학하면 우리 또 캠핑 가자.” 차가 캠핑장을 빠져나오는데 딸이 말했다. 이정표에 올림픽대로가 보인다. 내비게이션이 불쑥 끼어들었다. “전방에 과속 방지턱이 있습니다.” 일상으로 진입하니 각오하라는 경고 같았다. ---「자연」중에서 때로는 환호하고 때론 숙연해지지만 삶은 대부분은 동어반복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에 끌린다. ---「여행」중에서 나도 사실 몽롱하게 살아간다. 누가 근황을 물어오면 쓴지 단지 말하지 않는다. “바쁘지만 그럭저럭 잘 지낸다”를 방패로 삼곤 한다. 생존을 위한 둔감력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면서 이따금 무력감에 젖는다. (…) 이따금 마음의 스위치를 ‘OFF’로 바꾸려고 애쓰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이쪽 불을 꺼야 저쪽이 환해진다고. 세상이 아니라 나를 좀 챙기자고. ---「무기력」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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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팩트를, 밤에는 감정을
박 기자의 이중생활 글쓰기 신간과 개봉 영화, 문화계 새 소식을 직장에서 업무로 누리는 문화부 기자의 혜택, 그리고 예술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뉴스화시켜야만 하는 예술 소비자의 고충, 이 모두 문화부 기자인 저자가 매일 겪는 일상이다. “집에 돌아와서야 우리는 가면을 벗고 ‘진짜 나’를 마주한다. 내적인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 깊은 의미에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_160쪽, 「집」 모든 것을 떨쳐버린 나의 내면만이 오롯이 내 집이라는 저자의 고백이 와닿는다. 저자는 이중생활을 한다는 솔직한 자백에 머무르지 않고 부지런하게 이 ‘집’을 어떻게 하면 더 크게 만들어 더 오래 머물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손에 쥔 스타벅스 커피잔에서 시작된 의문은 벤저민 프랭클린의 잠언으로 닫힌다. 「개그콘서트」를 보며 웃다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으로 건너간다. 라면을 먹다가 음식의 기호학을 생각한다. ‘삶의 겉과 속,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배관공’이라는 저자 스스로의 소개에 충실하다. 티브이는 친숙하지만 책은 어려운 독자들, 고민은 첨예하지만 출구는 오리무중인 청년들, 자신의 이중성에 이유 모를 죄책감을 느끼는 중년들에게 저자는 말한다. 괜찮다고, 나 또한 그렇다고. 그리고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주변의 문화를 자양분으로 삶을 더 행복하게 가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못 말리는 대중문화 애호가, 아니 어쩌면 문화 중독자 딸을 위해 떠난 캠핑장에서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다음 페이지를 생각하고, 그랜드캐니언으로 가는 길 위에서 권혁웅 시인의 시 ‘국수’를 떠올린다. 신문사 입사 시험 감독을 보다가 문뜩 배우 오달수의 연기론을 펼치는 저자의 사고의 흐름을 쫒다보면 못 말리는 대중문화 애호가라는 생각이 든다. 시도 때도 없는 문화 비평이랄까, 뜬금없는 고해성사랄까, 독창적이면서도 막힘없는, 지적이면서도 세속적인 사유는 면숙하지만 낯설다. ‘일요일 오후, 일, 행복, 질투, 돈, 걱정, 고독, 사랑과 결혼, 스마트폰, 자연, 여행, 집, 음식, 자기 이해, 정상, 나르시시즘, 슬픔, 분노, 중력, 습관과 예술, 섹스, 무기력, 미루기, 종교, 그리고 죽음’이라는 스물다섯 단어가 감미로우면서도 어렵게 다가오는 것과 같다. 일상에 숱한 기쁨의 순간들에 감사해 하며 살라는 ‘숙제’를 우리가 도무지 해내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습관의 장막을 걷고 일상을 새롭고 더 민감하게 바라볼 것을 권한다. 그 일을 가장 잘 해내는 이가 바로 예술가라고 말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술을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저자가 문화에 중독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읽고 보고 듣고 말하는 것들로 채워진 예리하고도 통쾌한 정통 펀치 저자 박돈규는 몽테뉴, 세네카, 에피쿠로스, 프로이트, 뒤르켐을 비롯한 학자들과 알랭 드 보통, 스탕달, 유발 하라리, 올리버 색스, 마르셀 프루스트 등의 작가들을 인용하며 그들이 ‘삶’이라는 낯선 산을 오르는 등반길의 길잡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가슴에 나침표로 삼은 문장을 엮어낸 이 책이 희망과 현실 사이의 까마득한 크레바스를 건너는 로프가 될 수 있을까. “낯선 길이 좋은 건 겸손해지기 때문이다. 습관에서 벗어나 선입견을 버릴 수 있고, 익숙해서 무뎌졌던 감각이 다시 예민하게 돌아온다. 미국 소설가 헨리 밀러의 말처럼 “여행에서 목적지는 어떤 장소가 아니라 사물을 보는 새로운 방식이” 될 수도 있다.” _146쪽, 「여행」 진정한 길잡이는 물고기가 아닌 낚시를 가르쳐주는 법. 독자들은 저자의 사유를 따라가다 문득 동어반복의 삶을 벗어나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 읽고 보고 듣고 쓰는, 유유자적 기술을 터득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